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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책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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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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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달에 책 3권을 읽기로 마음 먹기로 한 지, 두 달 째이다. 나는 오로지 지하철 통근시간에만 독서를 한다. 출근길에는 철학(거의 정보전달 목적의 책이지만..), 퇴근길에는 소설을 읽기로 했다. 나만의 인생 작가를 만나고 싶기에, 해외작가 작품 1권, 국내작가 작품 1권씩 꼭 선정해서 읽기로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히가시노 게이고같은 일본작가들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읽어서 왠지 진부할 것만 같아 괜히 거리낌이 들었다. SF는 정말 관심이 전혀 없는 장르인데 테드창까지 도전해야하나 싶었다. 어쨌든, 사람들이 많이 읽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시작해 보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의 첫 입장을 말하자면... '진지한 병신'같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들이 이 글을 보면 빡쳐서 일상생활 불가일 수도 있는데.. 뭐 내가 그렇게 유명한 블로거도 아니고... 중요한건, 한국말은 끝까지 듣자. 

 

# 1960년대, 경제부흥시기

 아무런 지식없이 나는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분명, 소설의 배경이 현재는 아닐거라는 느낌이 주인공이 대학시절 운동한다는 내용이 나올 때부터인 것 같다. 그 정도로 최근 배경이라고 하더라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정말 문체가 세련됐다. 나중에 내가 잘 읽은 게 맞는지, 이 책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살짝 찾아봤다. 그 때, 알게 된 사실은 이 책의 배경은 1960년대였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청춘들의 자아를 찾기엔 너무 혼란한 시기였던걸까?

 

# 와타나베

- 주인공 와타나베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 이야기에서 주요 인물은 나오코, 미도리, 레이코, 나가사와 이 정도로 흘러간다.  와타나베는 친구 기즈키와 그의 여자친구 나오코와 학창시절 삼총사처럼 셋이 꼭 붙어다녔다. 셋 다 아웃사이더였는데, 아웃사이더 모임마냥 셋이 꼭 붙어다녔다. 나오코가 그녀의 친구들은 한 명씩 소개시켜주려 하면 이상하게 와타나베는 다른 여자들을 소개받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고, 이렇게 삼총사가 가장 편하고 좋았다. 

- 이 책은 서른 일곱살의 와타나베가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을 듣다가 문득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기즈키는 자살했고, 나오코와 와타나베는 그의 죽음으로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나오코와 와타나베는 기즈키의 죽음 이후, 교제하게 되었다. 

- 와타나베는 자기연민, 자기동정에 빠져 다른 사람을 챙길 수 없었다. 와타나베가 즐겨있는 소설들을 찾아보면 와타나베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다고들 하는데... 그 책까지 읽기엔 갈 길이 멀다. 기즈키가 자살을 했지만, 그의 외로움을 방관하지 않았을까? 마치 나오코가 자살했을 때처럼. 한 번도 와타나베는 나오코가 힘들 때, 적극적으로 그녀를 도우려고 하지 않았다. 항상 그녀가 허락할 때까지 기다리기만 했다. 마침내 나오코가 죽고 난 뒤에 자신의 방관했던 모습들을 생각하며 괴로워 했던 것 같다. 중간에 와타나베는 나가사와 선배의 여자친구 하쓰미의 자살 소식을 몇 년 뒤에 들었다고 말한다. 마지막에 봤던 하쓰미를 그냥 두고 왔던 것이 나중에 너무 괴로웠던 것이다. 물론 그로부터 몇 년 뒤에 자살 소식이었지만. 

 와타나베는 자신의 주변에서 자꾸 사람들이 자살하고 있기 때문에, 너무 힘들지만 무엇하나 적극적이지 않다. 그가 적극적이었던 장면은 두 번 정도 봤던 것 같다. 와타나베가 미도리의 아버지 병문안을 갔을 때, 나는 와타나베가 그렇게 적극적으로 밝은 성격인지 처음 알았다. 처음 봤던 미도리의 아버지에게 오이를 먹이고, 산다는 것은 정말 좋은거라며 신나게 말했다. 두번째는 화가 난 미도리에게 용서를 비는 것이었다. 매번 미도리가 다가와주니 무심코 신경을 끄고 살았는데, 미도리가 그에 서운하다며 연락을 끊어버리니 몇 달 내내 쫓아다니며 용서를 빈다. (이제와서 얘기지만, 미도리는 처음 용서를 빌었을 때부터 이미 마음이 누그러졌다. 미도리가 원하는 사랑은 질릴 때까지 자신에게 충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냅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ㅋㅋ)

- 와타나베는 과거(나오코)에 묶여 있지만, 현재(미도리)로 나아가고 싶다. 그렇지도 여기에도 저기에도 어느 곳도 움직일 수 없다. 그는 방황 중이다. 

- 미도리에 스며든 와타나베는 방황하느라 미도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녀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데 아주 오래걸렸다. 와타나베는 친구를 잃은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는 인물인데, 친구가 점점 잊혀져 가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곤 한다. 꽤 진지하지만, 여느 스무살 스무한살 남자답게 자위와 섹스를 하곤 한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와타나베가 말도 안되게 섹스와 자위를 자주 해서 뭐 이딴 글이 다 있나 싶었다. 

 작가의 의도는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와타나베에게 섹스와 자위란,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수단일 뿐이었다. 처음 기즈키를 잃고, 첫 여자친구를 사겼을 때, 그녀와 섹스를 하다 현타가 와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나가사와 선배를 따라 헌팅하면서 여자들이랑 섹스를 할 때, 공허한 자신을 채우기 위해 했을 뿐이다. 그러다 나오코와 첫 섹스를 했을 때, 그는 나오코와 함께 서로의 공허함을 같이 위로하고자 시작했던 것 같은데, 끝이 좋지 않았다. 

 이후, 나오코가 와타나베를 위해 손으로 해주었는데, 와타나베는 이 기억으로만 의존해서 자위를 해나갔다. 그런데, 와타나베는 미도리를 상상하면서 자위를 하는 것은 너무 힘들었고, 미도리와는 이 작품 내내 한 번도 사랑을 나누지 않았다. 심지어... 나오코의 정신적 지주였던 레이코와도 마지막에 섹스를 했는데 말이다.(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어이없었던 부분) 미도리와 한 번도 섹스를 하지 않았던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와타나베는 미도리와 섹스를 할 기회는 많았지만, 정말 완전히 준비가 되었을 때 그녀를 받아들이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미도리에게 전화를 걸어, 너와 꼭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 꼭 해야 할 말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이 세상에서 너 말고 내가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어. 너를 만나 이야기하고 싶어. 모든 것을 너와 둘이서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어, 하고 말했다. 
 미도리는 오래도록 수화기 저편에서 침묵을 지켰다. 마치 온 세상의 가느다란 빗줄기가 온 세상의 잔디밭 위에 내리는 듯한 그런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그동안 창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았다. 이윽고 미도리가 입을 열었다. "너, 지금 어디야?"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
 나는 수화기를 든 채 고개를 들고 공중전화 부스 주변을 휙 둘러보았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 그러나 거기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지? 내 눈에 비치는 것은 어디인지 모를 곳에 향해 그저 걸어가는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뿐이었다. 나는 어느 곳도 아닌 장소의 한가운데에서 애타게 미도리를 불렀다. 

- 그래서 서른 일곱살의 와타나베에게 묻고 싶다. 미도리와 행복하니? 아니면 행복했니?

 

# 나오코

- 나오코와 와타나베는 친구의 빈자리를 서로 위로하기 위해, 혹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친구를 붙잡지 못했던 상실감을 채우기 위해 그들 서로가 사랑했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 도입부에 나오코가 우물 이야기를 해줄 때, 끝으로 와타나베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녀가 왜 나에게 "나를 잊지 마."라고 말했는지, 지금은 그 이유를 안다. 물론 나오코는 알았다. 내 속에서 그녀에 대한 기억이 언젠가는 희미해져 가리라는 것을. 그랬기에 그녀는 나에게 호소해야만 했다. "언제까지고 나를 잊지 마. 내가 여기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줘."하고.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견딜 수 없이 슬프다. 왜냐하면, 나오코는 나를 사랑하지조차 않았던 것이다. 

 나오코는 곧 떠날 사람처럼 자기를 잊지 말라고 늘 신신당부했다. 나오코는 자살한 친언니와 전남자친구를 먼저 보냈다.  현재 '자신'과 '떠나보냈던 그 시점의 그들'이 멀어지고 잊혀지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던 것일까?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고 기억하고 싶은데, 나는 자꾸만 무뎌지는 것이 힘들었던 것 같다. 

- 나오코는 왜 젖지 않는다고 숱하게 말하는가? 나는 그녀가 기즈키와 사랑을 나누려 시도했지만 늘 실패했다고 했을 때, 찐사랑은 와타나베였던가? 이런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와타나베와 처음으로 섹스를 했을 때, 그녀는 처음으로 젖었다고 했다. 이후로는 쭉 메말라 있었다. 왜?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은 그녀는 언니의 자살 이후, 상실감을 기즈키를 통해 채우려고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기즈키를 통해서 채우려고 할 때마다 언니가 점점 잊혀져 가고, 자신이 일상을 되찾게 됨에 죄책감을 느껴 제대로 무언가를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나오코도 또한 자기연민에 빠져 다른 사람을 통해 채우려 했지만 그마저도 힘이 겨워 생을 마감한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런 힘든 나오코에게 와타나베는 똥을 투척했다. 너 처음이니? 왜 기즈키를 하지 않았니? 이러니 나오코가 요양원 안 가고 배겨?)

- 와타나베가 미도리를 사랑하게 된 것 같고, 그녀와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다는 편지를 레이코에게 썼는데, 그 편지를 보고 자신에게 남은 사람이 없었다고 생각하고 자살한 게 아닐까?

 

# 미도리

- 이 책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인물이다. 모든 여자들이 긴 머리를 하고, 얌전한 여자로 보이고 싶을 때, 그녀는 속옷이 보일랑 말랑하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칼단발을 했다. 미도리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싶은지 알고 있다.

- 자살과 죽음이 난무한 이 책에서 미도리가 죽지 않아 이것만으로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뇌종양으로 돌아가셨고, 그녀는 가난한 집에서 사랑받아보지 못한 채 커왔다. 어머니는 그녀 어릴 적부터 일찍이 아파서 모든 가족이 어머니에게 관심이 쏠려 있었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아버지가 뇌종양에 걸려 미도리와 미도리의 언니가 돌아가며 병간호를 해주었다. 그녀는 어딘가에 위로받고 싶었을 뿐이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까딱했다. "충분하지 않아와 아주 부족해의 중간쯤. 늘 목이 말랐어. 한 번이라도 좋으니 듬뿍 사랑받고 싶었어. 이제 됐어, 배가 터질 것 같아, 정말 잘 먹었어, 할 정도로. 한 번이라도 좋아, 단 한 번만. 그렇지만 그 사람들은 단 한 번도 나한테 그런 사랑을 주지 않았어. 어리광을 부리면 밀쳐 버리고, 돈이 많이 든다고 불평만 하고, 늘 그런 식이었거든. 그래서 난 생각했어. 나를 일 년 내내 100퍼센트 사랑해 줄 사람을 찾아내서 손에 넣고야 말겠다고. 초등학교 5학년인지 6학년인지 그때 그런 결심을 한 거야."
"와, 대단하네." 난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래서 성과는 있었어?"
"참 어려운 일이야." 말을 하고 미도리는 연기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겻다. "아마도 너무 오래 기다리다 보니, 엄청나게 완벽한 걸 바라게 된 것 같아. 그래서 어려워."
"완벽한 사랑을?"
"그게 아냐. 아무리 나라도 그 정도를 바라진 않아. 내가 바라는 건 그냥 투정을 마음껏 부리는 거야. 완벽한 투정. 이를테면 지금 내가 너한테 딸기 쇼트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해, 그러면 넌 모든 걸 내팽개치고 사러 달려가는 거야. 그리고 헉헉 숨을 헐떡이며 돌아와 '자, 미도리, 딸기 쇼트케이크.'하고 내밀어. 그러면 내가 '흥, 이제 이딴 건 먹고 싶지도 않아.'라며 그것을 창밖으로 집어 던져 버려. 내가 바라는 건 바로 그런 거야."

 이 부분은 나에게 있어서 뭉클하고, 공감이 갔던 장면이었다. 미도리는 와타나베에게 적극적으로 고백한 것이다. 난 널 놓치지 않을거고, 너가 나를 이렇게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 미도리는 와타나베에게 야한 이야기를 엄~~~~~청 많이 한다. 그녀가 야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왜 저러나 싶었다. 아무래도 당시 현모양처같은 여자들과 달리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말하는 당당한 여성을 표현하고 싶었던걸까? 무라카미상.. 맞나요? 미도리에게 감정을 이입해보자면, 와타나베에게 이렇게 야한 얘기를 해서라도 자신의 껍데기라도 차지했으면 좋겠다는 것을 어필하는 것 같다. 항상 와타나베가 자신을 겁탈해주길 바라듯이 이야기하지만, 와타나베를 믿는다는 듯이 넌 그러지 않을걸 믿는다고 말한다. 온전히 자신을 사랑해주었으면 좋겠지만, 와타나베의 정신머리는 딴 세상에 있기에 이렇게라도 자신을 어필하고 싶었던 것 같다. 

 

# 슬픔을 위로하는 법

 노르웨이의 숲은 한국 제목 그대로 상실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 같다. 와타나베는 기즈키와 나오코를 상실했다. 나오코는 친언니와 기즈키를 상실했다. 미도리는 부모님을 상실했다. 레이코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상실했다. 하쓰미는 나가사와를 상실했다. 누군가를 상실한 아픔과 슬픔은 똑같이 겪어도 겪어도 무뎌지지 않고 똑같이 아프다(혹은 더 아플 수도 있다). 대신 우리들에게 주어진 망각이라는 선물이 있기에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지겠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미도리가 부디 사랑을 듬뿍 받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른 일곱살의 와타나베는 행복하지? 독일로 가는 비행기가 나가사와를 만나러 가는 비행이니? 하여튼 모두들 슬픔과 아픔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난무한 섹스 이야기가 질릴만도 하였는데, 와타나베에게 섹스란 공허함을 풀고, 상실감을 지우기 위한 수단에 관한 표현이라면.... 일단 알겠다. 내가 해석을 겁나게 잘 해줬지 뭐..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음 작품을 한 번 더 읽어보고 이 사람의 세계관을 한 번 더 고민해보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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