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냥, 책

일의 기쁨과 슬픔(1), 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어요?

반응형

일의 기쁨과 슬픔 표지

반응형

 

1. 잘 살겠습니다.

 평소보다 이십분이나 늦게 일어나서 간단히라도 챙겨 먹던 아침을 거르고 출근한 날이었다. 사무실 책상 위에 자그마한 상자가 놓여 있었다. 빛나 언니의 결혼식 답례떡이었다. 상자 위에는 조잡한 폰트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빛나의 결혼식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축하해주신 마음 잊지 않고 잘 살겠습니다.
 상자를 열었다. 분홍색 하트가 그려진 백설기 한조각과 저마다 색이 다른 경단 네개, 쑥색 꿀떡 두개가 들어 있었다. 허기가 느껴졌고, 이내 침이 고였다. 랩 포장을 벗겨내고 샛노란 고물이 포슬포슬하게 묻혀진 경단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방금 쪄낸 듯, 아직 따뜻했다. 오늘 새벽에 찾았나보네. 나는 달고 쫄깃한 경단을 우물거리면서 생각했다. 빛나 언니는 잘 살 수 있을까. 부디 잘 살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주인공은 살벌한 취업난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했다. 주인공은 핵심부서로 가고 싶었는데, 남자동기들이나 화려한 스펙을 갖고 있는 몇몇 여자 동기만 들어갈 수 있었다. 대부분의 여자 직원들은 백오피스로 배치되었다. 그 중 '빛나'라는 동기언니와 같은 부서로 배치가 되었다. '빛나'라는 캐릭터는 세상물정 모르는 캐릭터였다. 자취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이중계약 사기를 당하고 돈을 날리는 둥, 회사 내에서 부서 이동 관련 메일에 자신이 해보겠다며 전체 회신을 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 답신을 봐버리는 둥.. 

 주인공은 결혼하기 위해 청첩장을 돌리기 시작했는데, '빛나'는 왜 자기는 주지 않느냐며 본인도 달라고 했다. 주인공은 자신이 '빛나'랑 친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녀에게 '빛나'에게도 청첩장을 돌리며 식사를 대접하였다. '빛나'는 청첩장과 식사까지 대접받았지만 주인공의 결혼식은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빛나'는 주인공에게 주인공보다 더 저렴한 식사를 대접하였다. 주인공은 '빛나'의 무심함에 어이가 없어 본때를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에, 칼같은 계산으로 결혼 선물을 준비했다. 그리고 남은 돈까지 채워야 한다는 마음에 카드를 썼다. '빛나'는 선물과 손편지에 감동의 도가니탕에 빠졌고, 주인공은 '빛나'의 결혼식 후에 책상에 놓여진 결혼식 답례떡을 먹으며 '빛나'가 잘 살길 바랬다. 

 위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났다. 나는 처음에 이 글이 단편 소설인지 모르고, 가독성이 너무 좋아 쭉쭉 읽어나가다가 뭔가 허무해져 버렸다.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이나 정유정의 <완전한 행복>을 읽었던 터라.. 뭔가 모를 스릴이나 반전을 원했었나 보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느꼈다. 무조건 책 읽기 전에 조금은 찾아보면서 읽자...

 허무하지만 여운이 남았다. 주인공은 힘들게 입사해서 가고싶었던 부서가 있었지만, 고학력자인 여자언니들 제외하고 모두 남자들이 자리를 꿰차버렸던 것이다. 별로 친하지도 않고, 세상물정 모르는 '빛나'를 보면서 저렇게는 안 되어야지 안심을 할 뿐이다. 그리고 주인공과 주인공의 남편은 같은 회사, 같은 부서, 같은 일을 하는데도 연봉이 1,030만원 차이가 난다. 슬픈 현실.. 

 

2. 일의 기쁨과 슬픔

 그달 25일, 월급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거북이알은 유비카드 포인트를 조회할 수 있는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회장의 한마디에 정말로 월급이 고스란히 포인트로 적립되어 있었다. 그 커다란 숫자를 보는 순간, 거북이알은 심장께의 무언가가 발밑의 어딘가로 곤두박질쳐지는 것만 같은 모멸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어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회사 생활 십오년 하면서 한번도 운 적이 없었거든요. 루바 공연 건 때문에 특직 취소되고, 팀 옮겨지고, 강남에서 판교로 짐 싸서 올 때도 눈물이 안 났어요. 그런데 그 포인트를 보고 있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포인트가 너무 많아서. 너무 막막해서."

 

 주인공은 판교에 있는 스타트업 회사에 근무한다. 몇 달 전, 정보처리기사 필기 공부를 하면서 '스크럼'이라는 것을 알게 됐는데, 제일 처음의 '스크럼'이라는 단어가 나와 얼마나 반가웠나 모른다. 스크럼은 전체적인 진행 상황을 점검하는 것이라 하는데, 대표가 20분 이상 떠들어대서 맨날 회의가 늦어진단다.ㅋㅋ

 주인공의 회사는 '우동마켓'인데 현실의 '당근마켓'과 같은 컨셉이다. '거북이알'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용자가 수시로 새상품을 시세보다 저렴하게 꾸준히 많이 팔고 있다. 이렇게 새상품을 파는 것 자체가 우동마켓에선 어디서 훔쳐서 파는 것이 아닌지, 우동마켓의 지역커뮤니티 컨셉과 달리 움직여 사장은 불만이 많다. 그래서 사장은 주인공 안나에게 '거북이알'을 만나고 오라는 특명을 내린다. 

 거북이알을 만나고 그 사연을 듣게 되었는데, 거북이알은 대형 카드회사인 유비카드사에서 공연기획을 맡고 있었다. 유비카드사의 조운범 회장은 인스타그램 관종이었는데, 사람들은 그 대표를 좋아했고 요구하는 것이 있으면 인스타그램에 사람들이 요구를 했다. 어느날 사람들이 루보프 스미르노바 내한공연을 열어달라며 요청을 많이 해서 조운범 회장이 공연기획팀에게 특명을 내렸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올해 안으로 무조건 성사시키라고. 거북이알은 성사시키고, 인턴 중 한 명이 홈페이지에 따로 공지를 했다. 관종끼 넘치는 회장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발표하지 못 함에 화가 난 것이다. 그래서 거북이알은 승진도 못 하고 다른 부서로 쫓겨나듯 갔다. 조운범 사장은 그녀의 기획발표를 듣고, 그녀는 1년동안 월급을 포인트로 받으라고 했다. 

 거북이알이 그녀에게 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냐고 물었지만, 안나는 운 적이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녀도 운 적이 있었다. '우동마켓'의 개발자 케빈의 온갖 짜증받이를 했을 때, 너무 서러웠다. 그녀는 거북이알에게 레고 하나를 더 사며, 케빈에게 선물해줬다. 그리고 케빈에게 버그가 많이 생겨도 자책하지 말라며 위로를 전한다. 그리고 그녀는 조성진 공연 티켓을 예매하며 끝이 난다. 

 나는 돌아서서 케빈에게 말을 건넸다. 
 "코드를 좀 멀리서 보면 어때요?"
 케빈이 말없이 나를 올려다봤다.
 "자기가 짠 코드랑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덧붙였다.
 "버그는, 그냥 버그죠. 버그가 케빈을 갉아먹는 건 아니니까."
 케빈의 시선이 내 운동화 쪽을 향해 있었다. 

 내성적인 개발자는 대화할 때, 자기 신발을 보고 외향적인 개발자는 상대방의 신발을 본다고 이 책에서 표현했다. 케빈은 꽤 외향적이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많은 의미가 있는 단편소설이다. 

 거북이알은 어떻게 보면 회장의 갑질의 피해자이다. 겨우 자신의 SNS에 내한공연 먼저 공지하지 못했다고 보복을 하지 않나, 남의 월급을 포인트로 주지 않나. 하지만 거북이알은 찍소리도 못한다. 왜냐면 그녀는 15년 동안 이 회사에 몸을 담아 일해왔고, 그녀는 자신이 키우는 거북이들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일년동안 어쩔 수 없이 포인트로 연명해야 한다. 현실적이지 않아 보이지만 정말 현실적인 부분이다. 

 거북이알은 회사에서 나오면 회사모드를 끄고, 자신의 삶의 모드로 돌아간다. 그리고 케빈도 매일 버그를 잡느라 진을 빼는 개발자이지만 그는 레고를 좋아하는 하나의 인간일 뿐이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안나는 그냥 평범한 회사원같지만, 일 마친 후에 피아니스트 조성진을 좋아하는 하나의 팬이다. 모두 자기의 삶을 살고 있다. 우리가 회사에 다니고 일을 한다고 해서 그 순간의 내가 다가 아니다. 나 자신은 어디에서나 다르게 나 자신일 수 있는 것이다. 

 

3.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찌질, 개찌질의 이야기지만 제일 재미있었다. 

 주인공 지훈은 회사에서 자주 어울렸던 지유에게 연락을 했다. 지훈은 예전에 지유를 짝사랑했는데, 지유는 이미 결혼을 하고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어 후쿠오카로 떠나 살고 있다.  지훈은 지유에게 후쿠오카 여행 가이드를 해달라고 말했다. 지유는 흔쾌히 승낙했다. 지훈은 지유가 적당히 예쁘고, 자신이랑 티키타카가 잘 돼서 참 좋았다. 

 일본의 황금연휴에 맞춰 지훈은 후쿠호카에 도착했고 지유는 료칸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혼욕을 경험하게 해주고, 다음 날도 지유가 가이드해줬다. 지훈은 꿈도 컸다. 지유의 모자를 자신의 가방에 넣어 묵고 있는 호텔로 유인해 지유랑 같이 하룻밤을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유는 자신의 모자를 알아서 챙겨갔다. 지훈이 자신의 계획대로 되지 않자 지유에게 화를 냈다.ㅋㅋㅋ 지유는 자신이랑 자고 싶었냐고 물어봤는데, 지훈은 자신이 오래전부터 지유를 좋아했었고 진심이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대차게 까였지. 

 다음날 공항에 가는 길에 어차피 두 번 다시 쓰지 않을 엔화를 노숙자처럼 보이는 할머니의 종이컵에 쑤셔박았다. 하지만 노숙자 할머니가 아니라 그냥 종이컵에 커피를 마시고 있는 할머니였다. 그 자리에서 지훈은 멀리멀리 도망쳤다. 

 "진짜 모르겠어요? 내가 지유씨 좋아하는 거잖아요. 저 여자 만날 만큼 만나봤어요. 그런데 여태까지 이렇게, 진짜, 뭔가, 통한다는 느낌이 드는 여자는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고요. 다른 게 아니라 바로 그것 때문에 지유씨 좋아하는 거라고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떨어트렸다. 숨을 몰아쉬었다. 누군가에게 내가 이런 말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창피하긴 했지만 진심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굳이, 한번 결혼했던 여자를 좋아할 리가 업었다. 눈을 떴다. 두 발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발가락들을 꽉 움츠리고 있었다. 잠깐의 침묵 끝에 그녀가 물었다. 
 "우리, 대화가 잘 통한다고 생각했어요?"
 "네."
 "음...... 제가 말을 잘하는 게 아닐까요?"
 뭐야. 고개를 들었다. 창밖의 그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 그녀의 목소리만 수화기에 남아 울렸다. 

 지훈은 지유를 마음 한 켠으론 무시를 하고 있었다. 지유가 결혼하기 전엔 범접할 수 없는 상대였지만, 결혼을 하고 과부가 되니 자신에게 승산이 있을거라 생각하고 다짜고짜 후쿠오카를 갔던 것이다. 여자를 만날만큼 다 만나봤는데, 내가 이렇게 잘났는데도 불구하고 널 만나주러 여기까지 왔어! 영광이지? 이런 마인드로 지유에게 진심어린 척 고백을 한다. 지유는 일찍이 지훈이 자기를 좋아했던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무시를 해왔던거지ㅋㅋ

 마지막에 지훈은 우리는 잘 통하잖아요! 이랬는데 지유가 제가 말을 잘하는 게 아닐까요? 이 말이 지유가 여태까지 동료로써 맞춰줬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지훈은 공항가는 길에 지나가던 행인인데, 노숙자라고 생각하고 갑자기 본인 엔화를 털어 넣어 버린다. 현실성있는 인물이라 무섭다 무서워ㅋㅋㅋ

 

4. 다소 낮음

 장우는 싱어송라이터이다.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누리끼리하고 커다란 구식 냉장고를 바라보며, "냉장고 장고 장고 장고 장고 고장은 아닐 거야."라고 불렀다. 장우의 여자친구 유미는 그 노래를 동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렸더니 조회수가 대박이 났다. 조회수가 정점을 찍으니, 대형 기획사에서 연락이 왔다. 대형 기획사에선 그의 노래를 듣고,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지 이미 계획이 다 있었다. 장우는 자신의 신조를 지키기 위해 그들의 마케팅을 거절했다. 

 그러고 유미도 떠나고, 제안해왔던 기획사도 떠나고, 자신의 인기도 떨어졌다. 그러던중 동물병원 쇼윈도 너머에 놓여 있는 비숑프리제를 보고 월급을 다 털어 분양받아 왔다. 장우는 저작권료로 3만원을 받아서 고이 보관했고, 자신의 소중한 강아지 보리를 키웠다. 어느날 보리가 쓰러졌고,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더니 탈장이라 수술비가 필요하단다. 그래서 돈을 벌러 예전에 자신에게 제안했던 기획사를 찾아갔다. 당연히 대차게 까이고 돌아왔지. 유튜브 댓글을 봤더니 노래가 별로란다. 결국 보리는 죽었고, 갈라진 보리의 배를 다시 꿰매는 데 3만원이었다. 저작권료로 고이 보관햇던 3만원을 보리에게 사용했다. 그리고 냉장고 앞에 누워 멍때린다. 

 장우는 냉장고 문을 연 채로 입구 쪽에 머리를 두고 누웠다. 그래도 냉장고라고.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참을 가만히 누워 있으니 나름대로 시원했다. 시원찮지만, 그래도 냉장고니까. 그래 이 정도면 됐지, 하고 장우는 생각했다. 냉장고의 진동이 장우의 뒤통수와 등을 타고 전해졌다. 낮게 웅웅거리는 냉장고 소리가 장우의 심장박동과 만나 규칙적인 리듬을 만들어냈다. 장우는 그제야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무사히 돌아온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졌다. 장우는 냉장고 문짝을 가만 올려다봤다. 부채꼴 모양의 에너지 소비 효율 등급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한심하게 그지없었고, 보리가 불쌍했다. 보리한테만큼은 귀족처럼 살게 해주려고 열심히 살려 했지만 결국은 결정적인 순간에 보리에게 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무엇을 성공이라고 말할지는 사람들마다 다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