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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책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인생에서 길을 잃는 수많은 순간마다 이 철학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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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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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의 리더들은 철학책을 읽는다고 한다. 왜? 나도 모른다. 그니까 한 번 읽어보기로 했다. 

 이 책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은 목차였다. 매일 매일이 전쟁같이 지나가는 와중 이 삶의 지혜들이 어떻게 더 나은 나로 이끌어줄지 기대에 가득 차게 만들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출발-새벽-정오-황혼-도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삶의 지혜는 볼드체로 표시해 두었다. 

1부 새벽 

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침대에서 나오는 법

2.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

3. 루소처럼 걷는 법

4. 소로처럼 보는 법

5. 쇼펜하우어처럼 듣는 법

2부 정오

6. 에피쿠로스처럼 즐기는 법

7. 시몬 베유처럼 관심을 기울이는 법

8. 간디처럼 싸우는 법

9. 공자처럼 친절을 베푸는 법

10. 세이 쇼나곤처럼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

3부 황혼

11. 니체처럼 후회하지 않는 법

12. 에픽테토스처럼 역경에 대처하는 법

13. 보부아르처럼 늙어가는 법

14. 몽테뉴처럼 죽는 법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나처럼 마르쿠스도 아침형 인간이 되기를 열망했다. 하지만 진짜 아침형 인간과 아침형 인간이 되기를 열망하는 사람 사이에는 크나큰 차이가 있다. 여기 이렇게 누워 기차가 부드럽게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따뜻한 암트랙의 담요를 덮고있자니, 그 격차는 절대 넘어설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첫 장부터 인간미 넘치는 문구였다. 2년 전, 처음 알게 되었던 '명상록'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라는 로마 황제이자 철학자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집안 책장 구석에 쳐박혀 있던 '명상록'은 단 두 페이지만 하품이 나와 덮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사람의 존재가 나랑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에 친밀감을 느꼈다.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는 것이 고역이었는데, 나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마르쿠스에게 도움을 받고 싶었다. 

 

 <명상록>은 내가 그동안 읽은 그 어떤 책과도 다르다. 사실 책이 아니다. 훈계다. 독촉과 격려 모음집이다. 로마 시대의 냉장고 메모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망각이었다. 그는 온전한 삶을 살라고 끊임없이 스스로 독촉했다. 마르쿠스는 자신의 냉장고 메모를 출판할 생각이 없었다. 혼자 보려고 쓴 것이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마르쿠스의 생각을 읽는다기 보다 엿보게 된다. 
 나는 그렇게 엿본 내용이 좋다. 마르쿠스의 솔직함이 좋다. 마르쿠스가 자신의 두려움과 취약함을 드러내며 종이 위에 스스로를 벌거벗겨놓은 방식이 좋다. 세상에서 가장 힘 있는 남자가 여기서는 자신의 불면증과 공황발작, 좋게 말해 형식적인 애인으로서의 모습을 털어놓는다(마르쿠스는 성교에 대해 "남자는 자신의  정자를 내어놓고 떠난다"라고 묘사한다). 마르쿠슨느 모든 철학이 스스로의 유약함을 깨닫는 데서 시작한다는 스토아철학의 교훈을 절대로 잊지 않았다. 

 나는 정신적으로 전쟁같은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지만 진짜 전쟁의 시간들을 감내해야 했던 마르쿠스의 처절한 침대 벗어나기 프로젝트는 내 머리를 퉁 치고 지나간다.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날 때, 오늘의 전쟁같은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일어난다. 나도 또한 오늘의 나를 위한 책임감을 지기 위해 기상한다. 다만 요즘 트렌드인 '미라클 모닝'같이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책임감이 도무지 생기지 않는다...ㅎㅎ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주창자, 문학의 거성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개자식이었다. 소로를 아는 모두가 그렇게 말했다. 너새니얼 호손은 소로에서 "무쇠로 만든 부지깽이처럼 뻣뻣한 완고함"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호손만큼 친절하지 않았다. 소설가 헨리 제임스와 철자 윌리엄 제임스의 아버지인 헨리 제임스 시니어는 "소로는 평생 내가 만난 그 누구보다도 유치하고 개념 없고 뻔뻔한 이기주의자"라고 했다. 
 소로가 받는 혹독한 비난은 주로 위선에 관한 것이다. 소로는 숲속에서 홀로 자족하는 척하면서 몰래 엄마 집에 들러 파이를 먹고 빨래를 맡겼다. 
 소로의 철학은 내가 보는 것이 곧 나라는, 아웃사이드 인(outside-in)철학이었다. 
 소로는 초월주의자로 간주된다. 철학 사조 중 하나인 초월주의는 다음 다섯 어절로 요약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 하지만 소로는 보이는 것을 더욱 굳게 믿었다. 실재의 본성보다는 자연의 실재에 더 관심이 있었다. 정말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까? 그럴 수도.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도 상당히 경이로우니, 거기서부터 시작해보자. 소로는 지식보다 시력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겼다. 지식은 언제나 잠정적이고 불완전하다. 오늘의 확신은 내일의 헛소리다. "그게 무엇인지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그것을 어떻게 보는지뿐이다."
(중략...)
소로는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것을 "마음 검사"로 여겼다.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있는 게 아니다.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마음속에 있다. 자기 자신을 향상시키지 않고는 자신의 시력을 향상시킬 수 없다. 보는 것의 역학은 양쪽으로 작용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가 무엇을 보는지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무엇을 보는가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한다.  <베다>에서 말하듯, "당신이 보는 것이 곧 당신 자신이다."

 소로의 철학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구절은 바로 아웃사이드 인 철학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을 보고 싶은 대로 본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 자체가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았지만, 소로의 눈과 에릭 와이너의 말로 풀어서 제대로 짚어주니 괜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의 어느 세상은 아름답지만, 어느 세상은 구역질나게 싫을 때가 있다. 특히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다른 사람을 통해 마주봤을 때, 그 사람이 정말 싫더라. 소로가 진정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이 관점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대목에서 그냥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나의 세상은 아름다운가?

 

 매일 틀에 박힌 것만 보지 않겠다는 다짐에서, 소로는 자신의 관점을 바꾸었다. 가끔은 작디작은 움직임만으로도, "늘 가던 길이나 늘 반복되는 일상에서 머리카락 한 올만큼만" 벗어나도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1855년 12월의 어느 추운 날, 소로는 "겨울치고는 이상하리만큼 남쪽으로 내려온" 솔양진 한 마리를 발견했는데, 그건 평소에 다니던 길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틀에 박힌 것만 보지 않겠다는 다짐, 나는 안정을 추구하지만 도전을 사랑한다. 나는 변화가 두렵지만 마음만 먹으면 잘 해낸다. 소로는 그 자신에게 관대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너무 관대해서 오늘의 편안한 나를 바꾸고 싶지 않았는데, 소로는 편안함의 중독에 걸리지 않으려고 어연간하니 노력했다. 그가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 것에 대해 노력했던 것처럼 나도 세상을 매일 달리 봐야할 필요가 있다. 밑에 계속 쓸 세이 쇼나곤처럼 작은 것에 감사하기 위해서 그의 눈이 필요하다.

 

# 세이 쇼나곤처럼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

  세이 쇼나곤의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은... 한 마디로 말해 소확행이다. 세이 쇼나곤이라는 일본인을 여기 철학자에 추가했다는 것에 1차 놀라움, 이 사람이 여자라는 것에 2차 놀라움.. ㅎㅎ 

 우리가 괴로운 것은 의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넘쳐나서라고 말이다. 소셜미디어 덕분에 이제는 언제든지 모두가 모든 것에 자기 의견을 내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의견들은 친구들에게, '전문가'들에게, 그리고 가장 교활한 알고리즘에 크게 영향받는다. 그 결과 우리는 희뿌연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의 신념은 종이처럼 얄팍하다. 당신은 새로 생긴 스시집을 좋아하는가? 아니면 그저 사람들이 별점을 다섯 개 줬기 때문에 좋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타지마할은 정말도 아름다운가? 아니면 인스타그램 속 황홀해하는 사진들을 보고 타지마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된 것인가? 세이 쇼나곤은 자기 렌즈가 투명하고 깨끗할 수 있도록, 자신의 생각이 온전히 자신만의 생각일 수 있도록 치열하게 노력했다. 

 세이 쇼나곤의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을 읽기 전에, 일본인들 작은 것 하나하나에 의미두는거야 뻔하지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괜히 읽기도 전에 적개심을 품었달까? 하지만 에릭 와이너는 정확하게 현대인의 삶을 간파하였다. 언제부턴가 나는 헷갈렸다. 나는 '커피 너드'라고 스스로 칭할 만큼,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 카페를 찾아다니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핫한 카페만을 찾기 시작했다. 왜냐? 보증된 핫플레이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싶어서 가는 커피 맛이 아닌, 여기 가서 인증 사진 찍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요즘 움직이는 것 같다. 자아를 잃은 기분이 드네. 갑자기...

 이 파트를 읽으면서 나의 모든 순간에 감사하고, 행복을 느끼고, 나의 오감을 키워가는 법을 조금은 알게된 것 같다. 어느 순간이든 그 순간에 집중하면, 그 날의 향기, 감촉, 소리 등으로 사물을 바라보면서 그에 만족해야 한다. 살아 있는 이 순간이 아니라면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이 모든 것들을 다 누리고 감사하리라. 굉장히 종교틱한데... 일단은 일본 감성 존중데쓰.

 

# 시몬 드 보부아르

 '필로소피 랩'에서 몇 번이나 나왔던 여성 인권 운동가이자 철학자인 보부아르를 이 책에서 보다니 반가웠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먼저 읽긴 했으나, 중간에 시몬 베유에서 지루해서 잠시 쉬다 '필로소피 랩'으로 갈아탔었다....) 

 젊음와 늙음에 관한 토론을 작가 에릭 와이너와 그의 딸 소냐가 여러번 했다. 딸과 이렇게 철학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심지어 소냐는 영리하다. 어떻게 그런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아버지는 딸의 말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지... 그들은 세대차이가 없는건지.. 굉장히 인상깊었다. 

 보부아르의 책 <노년>을 통해서 10가지의 잘 늙어가는 리스트를 만들어 주었다. 

1. 과거를 받아들일 것

2. 친구를 사귈 것

3. 타인의 생각을 신경쓰지 말 것 

4. 호기심을 잃지 말 것 

5. 프로젝트를 추구할 것

6. 습관의 시인이 될 것

7. 아무 것도 하지 말 것

8. 부조리를 받아들일 것 

9. 건설적으로 물러날 것

10.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넘겨줄 것

 위의 10가지의 리스트만 보더라도 솔직히 삶의 지혜는 보부아르에서 다 얻어간다. 잘 늙어가는 법이 아니라 늙어가더라도 품위를 지키면서 살자는 것이다. 

 

 이 책을 끝으로 나는 '필로소피 랩'이라는 도서를 읽는 중이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와 '필로소피 랩'은 삶의 지혜를 철학으로 얻고 싶으나 무엇부터 읽어야할지 전혀 지식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철학 입문서와 같다. 나는 아직 철학 어린이인지라.. 입문서를 2권이나 읽어보았는데.. 확실한건, 2년 전에 2페이지만 읽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마저 읽어보는 것이다. 이렇게 철학과 친해지려 한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작가 에릭와이너의 다른 작품 또한 궁금해졌다. 다음 작품은 '행복의 지도' 당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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