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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떠나온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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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레모사, 죽은 땅 위에 건설된 귀환자들의 마을이자 지구상 최후의 디스토피아 한나가 허전한 내 허벅지를 쓰다듬을 때, 그러면서 "금속 다리로 구두를 신고 춤추는 네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그걸 본 순간 나는 사랑에 빠졌지" 하고 속삭일 때, 나는 고통을 기꺼이 견디며 춤을 추고 싶었다. 실제로도 어느 정도는 그랬다. 한나가 내가 바란 것은 완성된 형태의 아름다움이나 강인함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어떤 나아감의 방향, 지향점이엇다. 불안정한 지면 위를 위태롭게 한 발 한 발 내딛는, 넘어질 듯 아슬아슬한 춤을 지속하는. 그 춤이 지속되기만 한다면, 한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새벽이 되면 나는 알 수 있었다. 고요와 적막이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깊은 밤이 되면, 바로 이곳이야말로 내가 궁금적으로 머물러야 할 자리라는 걸. 흔들림도 뒤척임도 없는 부동의 장소. 움직임이 없는..
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장편 소설 # '더스트', '모스바나' 그리고 '프림 빌리지' '더스트'는 붉은 안개로 인해 식물, 동물 가릴 것 없이 곧장 쓰러져 호흡을 멈추게 만들어 죽게 만든다. 미국 솔라리타 연구소에서 자가 증식 나노봇 입자 크기를 줄이는 실험을 하던 도중, 극도로 소형화된 입자는 통제를 벗어났고 증식 오류가 발생해 입자들이 그대로 풀려났다. 이 중에서도 더스트에 내성을 갖고 있는 내성종이 있는데, 내성종의 피로 연구를 하기 위해 사냥꾼들이 이 내성종들을 잡으러 다닌다. 내성종이라고 해도 더스트가 위험하긴 마찬가지라 모든 사람들이 방화복을 입고 다닌다. 더스트로 인해 인류가 반 이상 죽어 나갔던 시절을 '더스트 시대'라고 부른다. 훗날, 더스트 종말 시대에서 살고 있는 연구원 '아영'은 '모스바나'와 '더스트'가 얽혀진 이..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두 번째 소설집 역시, 김초엽이다. 사랑, 차별, 이별, 그리움을 담은 그녀의 책은 너무 아름다웠다. 포근하고 친절한 김초엽 작가의 이야기는 순간에 나를 잊게 만드는 것 같다. 7편의 글 중 마지막 편 '캐빈 방정식'은 '물음표'로 남겨놓은 생각이다. 이상하게 그녀가 말하는 초현실적인 이야기는 현실의 무언가를 연상시켜 마치 익숙한 상황인 듯 느껴진다.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글을 느끼는 것이라고 해야 하나. 이로써 그녀의 단편은 모두 마쳤다. # 최후의 라이오니 로몬들이 주형 복제 시스템을 통해 태어나는 것. 로몬들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각인되어 있지 않은 것. 그럼에도 내게는 두려움이라는 태생적 결함이 존재하는 것. 셀이 나를 라이오니라고 부르는 것. 시스템이 나에게 단독 의뢰를 맡긴 것. 깨달음이 나를 움직이게 한..
행성어 서점, 김초엽 짧은 소설 은 짧은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나는 웬만하면 모든 줄거리를 기억에 남기려고 이 블로그에 나름 내가 기억하고 싶은 부분들을 적곤 하는데, 전부 다 남겨버릴까..?도 생각했지만, 내가 기억에 남는 소설 Top5만 기록하기로 했다. 장편 소설의 좋은 점은 한 가지 내용만 기억하면 되는데, 단편은 여러 편의 내용을 기억해야 돼서 살짝 번거로움이 있다. 그래도 '기록'이라는 부담을 덜면 단편 소설은 정말 술술 재밌게 읽히는 것 같다. 나는 SF소설을 재밌게 읽었지만, 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장르가 SF소설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 계기는 아무래도 김초엽 작가 덕분이 아닐까 싶다. 나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SF소설을 아름답고, 따뜻하고 재미있게 쓸 거라는 생각을 왜 못 했을까? 지금 내 독후감 수준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소설 테드 창 소설에서 깊은 감동을 얻고 헤어나오기 힘들었던 만큼 한국의 테드 창이라는 '김초엽'작가의 책을 맞이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마음가짐이 필요했었는지 모르겠다. 혹시 내가 SF장르는 너무 매력적인 만큼 아직 내가 상상하기가 벅찬 부분이 많기 때문에 살짝 겁이 났던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초엽 작가의 , , , 를 장바구니에 담으며 나는 설렘을 멈출 수가 없었다. #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시작은 데이지가 소피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시작한다. 데이지가 살고 있는 마을은 매년 '이동선'을 타고 '시초지'로 순례를 간다. 순례자들이 이동선을 타고 시초지로 떠날 때, 마중을 가는 어린 아이들은 기념술을 마시면서 5~10분 가량 정신을 잃는다. 정신을 차려보면 이동선은 이미 떠나 있었다. 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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