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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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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 소설에서 깊은 감동을 얻고 헤어나오기 힘들었던 만큼 한국의 테드 창이라는 '김초엽'작가의 책을 맞이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마음가짐이 필요했었는지 모르겠다. 혹시 내가 SF장르는 너무 매력적인 만큼 아직 내가 상상하기가 벅찬 부분이 많기 때문에 살짝 겁이 났던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초엽 작가의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행성어 서점>, <지구 끝의 온실>, <방금 떠나온 세계>를 장바구니에 담으며 나는 설렘을 멈출 수가 없었다.

#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그림출처) https://www.google.com/url?sa=i&amp;amp;amp;amp;amp;amp;amp;amp;amp;amp;amp;amp;url=https%3A%2F%2Fwww.youtube.com%2Fwatch%3Fv%3DhxbzwyN1fAM&amp;amp;amp;amp;amp;amp;amp;amp;amp;amp;amp;amp;psig=AOvVaw1Fk46L_DAAl3jeNdjW3C2b&amp;amp;amp;amp;amp;amp;amp;amp;amp;amp;amp;amp;ust=1642476472807000&amp;amp;amp;amp;amp;amp;amp;amp;amp;amp;amp;amp;source=images&amp;amp;amp;amp;amp;amp;amp;amp;amp;amp;amp;amp;cd=vfe&amp;amp;amp;amp;amp;amp;amp;amp;amp;amp;amp;amp;ved=0CAsQjRxqFwoTCKjL8Nnrt_UCFQAAAAAdAAAAABAD


시작은 데이지가 소피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시작한다. 데이지가 살고 있는 마을은 매년 '이동선'을 타고 '시초지'로 순례를 간다. 순례자들이 이동선을 타고 시초지로 떠날 때, 마중을 가는 어린 아이들은 기념술을 마시면서 5~10분 가량 정신을 잃는다. 정신을 차려보면 이동선은 이미 떠나 있었다. 데이지는 늘 일기를 쓰고 순례자들의 명단을 쓰곤 했는데, 1년 뒤에 돌아오는 순례자들을 보면 일부만 돌아오고 일부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도 순례의 길을 떠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떠나고 돌아온 일부 순례자들 또한 알려주지 않았다. 데이지는 금서 구역의 서가를 들어가서 이 마을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릴리와 올리브'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펼쳤다.

릴리와 올리브는 이 마을의 만들고, 순례의 의식을 시작한 설립자들이다. 책은 올리브가 릴리를 찾으러 떠난 시점으로 시작된다. 올리브는 데이지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릴리를 찾기 위해 지구로 떠났다. 올리브의 얼굴엔 큰 점박이가 있었고, 지구에 있는 사람들은 올리브가 일명 '비개조인'이라고 생각해서 올리브를 차별했다. 올리브는 지구 말을 사용할 줄 모르고, 얼굴에 큰 점박이를 갖고 있는 비개조인이므로 차별을 받았다. 자신의 얼굴에 있는 점박이가 흠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는데, 지구에서의 차별은 지옥과도 같았다. 외모로 인한 차별로 인해 일하는 가게를 계속 옮기다 외곽에 있는 가게에서 일하다가 델피를 만나게 된다.

올리브는 릴리를 찾으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한다. 결국 자신의 출생의 비밀과 릴리의 정체를 알게 된다. 릴리는 천재 과학자였으며 올리브처럼 얼굴에 큰 점박이를 갖고 있었다. 릴리는 갑자기 프리랜서 바이오해커가 되더니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서 인간배아 디자인을 시도했다. 릴리가 후성유전적 변형을 완벽하게 통제하자 다른 해커들이 모방하기 시작했다. 결국 디엔은 연구 결과를 공개했고, 디자인에 만들어진 아름답고 유능하고 질병이 없고 수명이 긴 새로운 인류를 '신인류'라고 통칭했다.

릴리는 마흔 살에 자취를 감췄는데, 그녀는 문득 아이를 갖고 싶어졌다. 그래서 자신의 클론 배아를 만들고, 자신이 가장 주고 싶었던 좋은 특성들, 아름다움과 지성, 호기심과 매력 모두 유전자에 넣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올리브는 '결함'이 있었다. 릴리와 같은 점박이 흉터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릴리는 그것을 지우려고 하지 않았다. 릴리는 자신이 만든 인간배아 디자인으로 생긴 '신인류'의 탄생을 되돌릴 수는 없었지만, 어느 결험이 있더라도 불행하지 않는 세계를 올리브에게 만들어주고 싶어 지구 밖에 마을을 설립했다.

올리브는 릴리의 정체와 설립이유를 남기고 10년이 지난 후, 다시 지구로 돌아갔고 지구에서 생을 마쳤다. 올리브의 묘비엔 '델피의 올리브. 분리주의에 맞서는 삶을 살다. 그녀의 사랑은 여기에 잠들고 결실은 후에 올 것이다.'라고 남겨져 있다. 데이지는 이렇게 릴리와 올리브의 책을 읽고 '시초지'로 떠나고 있다.

처음 이야기부터 나는 심장이 뛰었다. 어쩜 이런 섬세한 SF소설이 있을 수 있는 것인지? 올리브는 지옥같은 지구일지라도 그 지구에서 살고 있는 델피를 사랑했다. 신인류와 비개조인을 차별하는 이 세상에 맞서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애초에 '마을'에서는 같은 자궁에서 태어난 자매처럼 어떤 낭만한 감정을 느낄 수 없다. 올리브가 순례자의 길을 떠나는 기회를 주는 것은 '불행이 없는 마을'에서 벗어나 '외로움, 불안, 슬픔, 아픔'을 느껴보고 그 안에서 자신의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테드 창 소설부터 느꼈지만, 철학과 과학은 한 끗 차이인 것일까?


# 스펙트럼

(왼쪽부터) 내용정리 필기, (사진 출처)https://www.google.com/url?sa=i&amp;amp;url=https%3A%2F%2Ftheconversation.com%2Frogue-planets-hunting-the-galaxys-most-mysterious-worlds-149588&amp;amp;psig=AOvVaw1_7GsWts6NVS-Ia1S8NOjW&amp;amp;ust=1642564543508000&amp;amp;source=images&amp;amp;cd=vfe&amp;amp;ved=0CAsQjRxqFwoTCNCV1eSzuvUCFQAAAAAdAAAAABAD


'스카이랩'에서 촉망받는 생물학자였던 할머니는 35살의 나이로 우주를 떠나 40년만에 구조되었다. 할머니는 영양실조에 인지능력이 저하된 상황이었다. 할머니는 40년동안 우주를 떠돌면서 2 개체의 외계지성체를 조우했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런 증빙자료가 없었고, 할머니는 구체적인 그 행성의 위치에 대한 정보는 함구하였다.
희진(할머니)은 처음 어느 행성에서 조난을 당했고, 조난 당한 지 열흘 뒤 어느 무리들을 보았다. 그들은 도구를 사용하고, 상징언어가 존재했으며,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는 '지성체'였던 것이다. 희진은 지구 최초로 외계지성체를 조우했던 것이다. 그 무리들은 이족보행을 했지만 팔이 서너개가 있고, 일반 지구인들보다 훨씬 키가 컸다. 그 무리들 중 한 개체가 희진을 공격하려고 했는데, 팔 2개를 가진 개체가 그 공격을 막고 희진을 보호해주었다. 그 것은 루이와의 첫 만남이었다.
루이의 집은 어느 동굴이었는데 희진은 루이와 함께 그 동굴에서 머물렀다. 희진이 루이와 그 무리를 관찰한 결과, 주로 식량은 수렵·채집으로 했고 루이는 항상 동굴에 있으면 그림을 그리는 것에 집중을 했다. 루이가 희진의 팔목에 뿔장신구를 달아주었는데 그 이후로 사람들은 더 이상 희진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리고 희진도 그들의 언어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처음 루이는 너무 힘이 세서 희진을 잡을 때 멍이 들 정도로 세게 잡았는데, 그는 힘조절을 하면서 희진을 잡기도 하고 희진과 가까워졌다. 그리고 3년 뒤 루이는 갑자기 죽어 있었다.
무리의 사람들은 한 개체가 죽으면 영혼이 다른 개체로 넘어간다고 믿는다. 일종의 환생인 셈인 것이다. 루이가 죽고, 동굴로 2번째 루이가 돌아왔다. 2번째 루이는 동굴 안에 그림을 보더니 희진에게 전보다 더 섬세하게 대해주었다. 그러고 2년 후 루이는 또 죽었다. 3번째 루이가 돌아 왔을때, 그는 희진에게 처음 봤을 때 낯선 대상을 마주한다는 눈빛이었지만 또 다시 1번째와 2번째 루이가 그린 그림들을 보고 희진과 더 가까워졌으며, 지구의 말을 배울 수도 있었다. 루이가 계속 그렸던 그림들은 무리가 사용하는 '색체언어'였고, 루이는 희진과 함께 하는 기간동안 희진에 대하여 끊임없이 기록했던 것이다.
5번째 루이를 만났을 때 쯤, 다른 무리와의 전쟁이 생겨서 피난을 하다가 영영 루이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할머니는 40년동안 우주에 헤매고 살았는데, 루이를 만난 기간은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할머니의 시공간이 다르다 하지만 할머니가 함구한 그 나머지의 시간들을 손녀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지구인들이 그들의 행성을 찾을 수 없게 멀리 멀리 오래 오래 떠돌다 구조신호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루이는 다시 태어나게 된다면 분명 다른 개체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도 좋았다. 하지만 루이는 자신이 남긴 그림들을 읽고, 자신의 지난 삶과 함께 지낸 무리들 그리고 희진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연속된 루이의 삶을 선택했다. 할머니는 자신을 지켜준 그 무리와 루이를 위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더라도 절대 그들을 찾을 수 없겠끔 우주를 떠돌다 구조신호를 보내고 지구로 돌아간다. 이게 사랑이 아니고 뭘까? 뭔데 이렇게 로맨틱하고 아름답지?


# 공생 가설
모스크바에 어느 보육원에 '류드밀라 마르코프'라는 아이가 한 번도 가보지도 못한 나라를 이야기하곤 했다. 그녀는 다섯살이 되었을 때, 사람들에게 '그 곳'에 대하여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은 그 것을 믿어주지 않았고, 그 때마다 그녀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에겐 그림을 잘 그리는 재능이 있었는데, 그녀는 항상 '그 곳'에 대한 그림을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그녀의 재능을 알려지자 그녀는 런던에 있는 아카데미를 다닐 수 있게 됐고, 그녀는 끊임없이 '그 곳'에 대한 연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나이가 들 수록 더 '그 곳'이 명확하고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실재로 존재하는 곳이라고 설명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고, 그녀는 '그 곳'을 '행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작품을 보고 열광한다.
그녀는 <행성> 외에도 다른 작품을 따로 연작하고 있었는데, 그 작품은 <나를 떠나지 말아요>라는 작품이었다. 그녀가 죽고 난 뒤, 그녀의 집에는 그 작품의 연작들이 많이 있었다. 한 편, 서울에 광진구에 있는 뇌 해석 연구소에선 아기들의 울음소리를 해석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세 살 이하 아이들이 울 때는 통역되는 소리가 '어떻게 하면 더 윤리성을 부여할 수 있을까?' 이런 식의 철학적인 질문이었다. 단순하게 '배고파', '불편해' 이런 소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뇌해석 연구소에서 세 살 이하 아이들에게 죽은 류드밀라의 작품을 보여줬는데, 그들의 울음소리에선 류드밀라를 더 찾고 있었다. 연구원인 수빈은 그 울음소리를 듣고, 어떠한 가설을 제시했다. 어쩌면 우리에게 지적인 생명체가 우리의 아기 시절의 뇌에 같이 공생하고 있다가 일곱살 쯔음에 그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가설이었다. 그러나 특이케이스로 류드밀라만 그들을 계속 기억하고 그리워하면서 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 지적인 생명체가 있다면 왜 류드밀라가 계속 기억될 수 있도록 해준 것일까? 그들 또한 사람들이 자신들을 잊지 않아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류드밀라를 통해 남아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인류를 같이 공생했던 파트너였으니까?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왼쪽부터) 사진1. 내가 쓴 내용정리 / 사진2. 우주정거장(사진출처)https://www.google.com/url?sa=i&amp;amp;url=https%3A%2F%2Fwww.korea.kr%2Fnews%2FpolicyNewsView.do%3FnewsId%3D148650570&amp;amp;psig=AOvVaw1EZQFZYnSRVbp8KzKbUJo7&amp;amp;ust=1642752573403000&amp;amp;source=images&amp;amp;cd=vfe&amp;amp;ved=0CAsQjRxqFwoTCIDF0aHwv_UCFQAAAAAdAAAAABAP


안나는 '슬렌포니아'로 떠나기 위해 우주정거장에서 대기하고 있다. 그녀는 지구에서 '딥프리징 기술'을 연구했었다. 우주의 항해를 하려면 수십 혹은 수백만 광년을 여행할 위험이 있다. 그래서 그 여행의 시간을 견디기 위해 냉동인간이 되어 수면을 통해 그 광년들을 멈춘 채로 지낼 수 있는 연구를 했던 것이다. 그녀가 '딥프리징 기술'을 연구할 당시, 지구는 과포화 상태여서 인간들은 우주 너머에 있는 새로운 행성을 찾아 이주하여 살기 시작했다. 그 시기에 그녀의 남편과 아들은 '슬렌포니아' 행성으로 떠났다. 그녀도 같이 이주하고 싶었지만 '딥프리징 기술'을 마무리하고 그 다음에 따라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의 연구가 진행되는 도중에 '고차원 웜홀 통로'라는 이론이 제기되었다. 고차원 웜홀 통로는 우주의 곳곳에 있는 공간과 공간 사이에 연결하는 고차원 웜홀이 존재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무리 수백만 광년이 떨어진 행성이더라도 우주의 지름길 구멍을 발견하면 단숨에 그 행성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고차원 웜홀통로'는 빠르고, 안전하고, 경제적이었다.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안나는 자신의 연구를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마무리지은 연구를 학회에 발표하는 날, 갑자기 '슬렌포니아'행 통로를 이제 마감할 것이니 떠날 거면 지금 떠나라는 통보가 내려왔다. 그녀는 두 번 다시 자신의 아들과 남편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평생을 바쳐왔던 발표를 마무리 짓고 바로 출발했다.
그녀는 우주정거장에서 이 이야기를 남자에게 해주고 있다. 남자는 위성관리업체에 파견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 우주정거장을 폐기하러 온 사람이었다. 그 우주정거장은 5년 전부터 폐기가 예약되었는데, 그녀가 폐기하러 온 사람들을 연거푸 쫓아냈던 것이다. 그녀가 어떤 심경의 변화를 겪었는지 남자는 그냥 이 우주정거장에 발을 들일 수 있도록 허가해준 것이다. 안나는 이미 150년의 시간동안 수면 상태로 우주를 헤매면서 '슬렌포니아'로 가는 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는 현실을 알려주었다. 당신의 가족들은 이미 죽은지 오래고, 당신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줄테니 자신을 따라오라고. 안나는 그를 따르는 척 하면서 저 멀리 별처럼 사라졌다.

"한번 생각해보게. 완벽해 보이는 딥프리징조차 실제로는 완벽한 게 아니었어. 나조차도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몰랐지. 우리는 심지어, 아직 빛의 속도에도 도달하지 못했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우리가 마치 이 우주를 정복하기라도 한 것마냥 군단 말일세. 한순간 웜홀 통로들이 나타나고 워프 항법이 폐기된 것처럼 또다시 웜홀이 사라진다면? 그러면 우리는 더 많은 인류를 우주 저 밖에 남기게 될까?"
"안나 씨."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끄셔도 소용은."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지구 안에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수백km 떨어져 지내는 것도 너무 그립고 슬프다. 하지만 적어도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고, 마음 먹고 떠난다면 그들을 만날 수라도 있다. 그런데 지구를 넘어 광활한 우주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지내는데, 마음 먹고 떠난다 하더라도 수십만, 아니 수백만 광년이 떨어진 곳에 간다는 것은 기약없는 만남인 것이다. 저기 저 멀리 있는 행성에 존재하는 나의 가족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 이미 150년의 시간이 흘렀다한들, 그녀는 그 행성에 적어도 도착해야만 한다. 그녀는 평생 해온 연구를 후회하지 않았지만 지금 떠도는 그녀의 삶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녀가 했던 말 중, 우주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언젠가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질테고, 그 사람들의 외로움을 누가 위로할 것인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가족을 따라가지 않고 연구에 집중했던 자신의 삶은 후회가 없을지언정 자신에 선택에 대한 사죄를 우주를 떠돌면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 감정의 물성


감정의 물성이란 '이모셔널 솔리드'에서 판매한 돌같은 물체이다. 감정의 물성은 '우울', '공포', '침착', '설렘' 등 많은 감정들이 담긴 아이템이었는데, 감정을 첨가한 아이템을 만지면 그 감정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일할 때 차분하게 일하고 싶다면 '침착'한 감정을 지닌 물체를 만지면 그렇게 차분해지는 것이다. '정하'는 감정의 물성이 마치 플라시보 효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감정의 물성을 믿지 않았다.
정하는 '보현'이라는 10년동안 연애한 애인이 있었는데, 요즘 그녀는 많이 힘들어한다. 정하와 보현은 결혼까지 생각했지만 가족들이 이해해 줄 것 같지 않고, 그들은 결혼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다. 보현은 우울함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면서도 '우울체'라는 감정의 물성을 지니고 다닌다. 정하는 그런 보현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우울하면 우울함에 빠져 나오기 위해서 긍정적인 감정의 물성을 지니면 될 것을, 왜 우울함을 계속 지니는가? 둘의 사이는 좁혀지지 않았고, 정하가 하는 말들은 보현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모셔널 솔리드'에서 판매하고 있는 감정의 물성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되었다. 정말 화학 작용이 일어나서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였던 것이다. 정하는 그 돌의 정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 그런 감정을 바꿀 수 있는 '화학 성분'이 들어있다면 도대체 왜 부정적인 감정들은 왜 판매가 되는 것이고, 왜 사람들은 그것을 구매를 하는 것인지 가장 큰 의문이었다. 어느날 '이모셔널 솔리드' 대표를 마주쳤는데, 그에게 왜 사람들이 '우울체'를 구매하는 것인지 물어봤다.

"소비가 항상 기쁜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는 행위라는 생각은 이상합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감정을 향유하는 가치를 지불하기도 해요. 이를테면, 한 편의 영화가 당신에게 늘 즐거움만을 주던가요? 공포, 외로움, 슬픔, 고독, 괴로움.... 그런 것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죠. 그러니까 이건 어차피 우리가 늘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까?"


정하는 끝까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울한데 왜 우울함을 지니고 있는가? 사람은 언제나 불안하고 위태롭다. 항상 행복하다면 그건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언제나 갑자기 소리없이 우울함은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내 손아귀에 우울이 있다면, 적어도 나는 "그래. 지금 우울을 만끽하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을 조절하는 것은 나의 몫이지 않을까?

'우울체'가 그녀의 슬픔을 어떻게 해결해주는가?
"물론 모르겠지, 정하야. 너는 이 속에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내 우울을 쓰다듬고 손 위에 두기를 원해. 그게 찍어 맛볼 수 있고 단단히 만져지는 것이었으면 좋겠어."
테이블 위의 휴대폰이 울렸다. 보현은 말을 이어갔다.
"어떤 문제들은 피할 수가 없어. 고체보다는 기체에 가깝지. 무정형의 공기 속에서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가 짓눌려. 나는 감정에 통제받는 존재일까? 아니면 지배하는 존재일까? 나는 허공중에 존재하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해. 그래. 네 말대로 이것들은 그냥 플라시보이거나, 집단 환각일거야. 나도 알아."
보현은 우울체를 손으로 한 번 쥐었다가 탁자에 놓았다. 우울체는 단단하고 푸르며 묘한 향기가 나는, 부드러운 질감을 가진, 동그랗고 작은 물체였다.
"하지만 고통의 입자들은 산산이 흩어져 내 폐 속으로 들어오겠지. 이 환각이 끝나면."
우울체 하나가 탁자 위를 굴러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게 더 나은 결론일까?"



# 관내분실


지민은 임신 8주다. 그녀는 문득 3년 전에 죽은 엄마를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데이터가 보관되어 있는 마인드 도서관으로 갔다. 마인드 도서관에서는 고인의 기억을 가지고 고인을 만들어내 도서관에 보관하는 것이다. 3년 전에 죽었던 엄마를 단 한 번도 보러 오지 않았는데, 지민은 갑자기 마인드 도서관에 가서 그녀의 엄마에게 무슨 할 말이 있었나보다. 근데 엄마의 데이터가 실종되었다.
지민은 엄마와 별로 친하지 않았다. 엄마는 딸을 구속하고, 집착했다. 지민은 그런 엄마에게 벗어나기 위해 엄마를 떠났고 지민의 남동생 유민 또한 엄마를 일찌감치 떠났다. 그녀의 아빠는 엄마 은하에게 관심 하나 주지 않았다. 그녀의 엄마는 누구에게도 관심 을 받지 못했고, 죽어서도 마인드 도서관에 버려져 있었다. 지민은 꼭 엄마를 찾아서 무슨 말을 전하고 싶은 것 같았다.
마인드 도서관에서 실종된 '김은하(엄마)'의 데이터를 다시 찾고 싶으면 고인이 평생 아꼈던 의미있는 물건을 갖고 오라고 했다. 지민은 집에 가서 물건을 뒤졌는데, 딱히 은하를 되찾을 수 있는 의미있는 물건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남동생 유민의 집으로 갔는데, 당연히 찾을 수 없었다. 오랜 시간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아빠의 집으로 갔는데, 아빠가 바로 지민의 엄마의 데이터를 없애버린 범인이었다. 아빠는 평생 엄마에게 관심을 못 줬는데, 엄마의 마지막 소원이 마인드 도서관에서 자신을 남기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들어주기 위해 지웠던 것이다. 지민은 엄마의 데이터가 소멸도 아니고 실종된 상태라 그 것 또한 엄마를 도서관에 혼자 내버려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엄마를 되찾아야만 했다.
아빠의 집에 엄마의 유품을 찾다가 엄마가 아끼는 종이책들이 발견됐다. 엄마는 지민을 낳기 전, 출판사에서 표지를 만드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 당시 종이책들은 없어지고 전자책으로 갈아타는 추세여서 출판사는 망하는 위기였다. 그래서 지민을 임신하고 있었던 은하는 가장 먼저 해고되는 최고 순위였다. 김은하가 아닌 지민엄마로 살았고, 집엔 그녀의 방 하나 없었으며, 그녀를 기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지민은 엄마가 아끼던 종이책 4권을 갖고 마인드 도서관으로 향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인드가 정말로 살아 있는 정신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이건 단지 재현된 프로그램일 뿐이라고 말한다. 어느 쪽이 진실일까? 그건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느 쪽을 믿고 싶은 걸까?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게 진짜로 엄마의 지난 삶을 위로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지민은 한 발짝 다가섰다. 시선을 비스듬히 피하던 은하가 마침내 지민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지민은 알 수 있었다.
"이제......"
단 한마디를 전하고 싶어서 그녀를 만나러 왔다.
"엄마를 이해해요."
정적이 흘렀다. 은하의 눈가에 물기가 고였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지민의 손끝을 잡았다.



은하가 죽기 전에 자신을 마인드 도서관에 보관하지 말라고 했던 부탁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살아있을 때에도 받지 않았던 관심을 죽었을 때, 가족들을 도서관 한 켠에서 기다리고 있을 자신이 얼마나 처량하게 느껴졌을까? 이 책에서 마인드 도서관은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를 넘어 그 가상의 인물에 영혼까지 갖고 있다고 믿고 있다. 만약 은하는 자신의 영혼이 도서관에 묶여 있다면, 그 것만큼 자유롭지 못한 것이 있을까? 그녀는 죽어서라도 지민엄마, 아내가 아닌 김은하로 살고 싶었을 것이다. 지민과 은하는 '나'를 업신여겨 희생시켜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가윤은 어릴적 자신의 우주 영웅이었던 재경을 따라 지구 밖에 있는 터널에 가보려고 한다. 터널엔 인간의 몸으로 통과할 수 없기에, 터널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야 했다. 재경은 인류 최초의 터널 우주비행사로 선발되었었다. 그녀는 터널에 들어갈 수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해 ‘사이보그 그라인딩 프로젝트’에 참여를 하게 된다. 그 프로젝트 참여하면서 재경은 일반인과는 다른 몸이 되었다. 재경은 당시 47세였고, 자식도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최초 터널 우주비행사라는 타이틀을 달기에 그녀는 여자고, 나이가 많다고 비난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를 응원하고, 그녀를 통해 위로받는 사람도 많았다. 가윤도 또한 재경이모를 보며 그 꿈을 키워왔다.

그렇게 존경과 혐오를 동시에 받았던 재경은 터널로 가는 날, 심해로 다이빙을 해버렸다. 가윤과 재경의 딸 서경은 그런 재경이 이해가지 않았다. 가윤은 재경처럼 사이보그 그라인딩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몸이 개조되기 시작했고, 그녀는 곧 터널로 향하게 될 것이다. 가윤은 왠지 알 것 같았다. 왜.. 재경이 심해로 사라지려고 했었는지. 그녀는 우주탐사가 목적이 아니라 인종, 성별, 나이를 초월한 자유의 몸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왜 김초엽 작가의 책 표지들이 대부분 핑크색인지 알 것 같다. 이 러블리한 이야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로맨스 소설의 대가다, 완전! 그녀가 쓴 책은 삶의 철학이 묻어 있고 그녀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존재들을 위주로 글을 쓴다. 아무래도 김초엽 작가는 그들을 그녀만의 방식으로 위로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녀만의 위로하는 방식을 몇 권 더 열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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