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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책

사랑이 스테이크라니, 고요한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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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달 전부터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구매하면서 같이 사놓은 책인 <사랑이 스테이크라니>를 드디어 읽었다. <7년의 밤>과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동시에 끝내버려 이 벅찬 감정을 주체할 수는 없고, 독서를 멈출 수는 없어서 다소 가벼워보이는 <사랑이 스테이크라니>를 펼쳐 보았다. 아니, 웬걸..? 내 사전에 가벼운 책은 없었다.

 

# 첫 번째 단편, 사랑이 스테이크라니 

 남자는 아이를 갖고 싶지만, 불임이라 아이를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제임스라는 남자의 정자를 빌려 아내를 임신하게 만들려는 계획이 있었다. 그래서 1회에 500만원을 지불하여 30분동안 아내와의 관계를 3번하는 계약을 맺었다. 제임스는 A급 남자였기 때문에 비용을 꽤 지불해야만 했다. 그렇게 계약을 하던 날, 제임스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스테이크를 주문했는데, 남자는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그게 역겨웠다. 

 자신만만하던 제임스는 3번만에 임신을 할 수 없게 되고, 1회를 더 계약하고 10분 더 관계를 할 수 있도록 합의를 봤다.  아내도 처음에는 외간 남자와 잠자리를 가지면서 임신을 하는 것이 이상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제임스에게 싫은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4번째 계약 날엔 제임스와 아내가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침대에 뒹굴어 누워 잠든 현장을 목격하고 화가 나서 제임스를 내쫓고 바로 아내와 관계를 맺었다. 왠지 모르게 남자는 그 날 너무 열이 받았고 아내와 했어야만 했다. 그 날 열이 받아 던져버린 스탠드에 고양이가 맞아 죽었고, 아내는 임신을 했다. 

 당연히 본인은 불임이라서 제임스의 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아내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것처럼 느껴졌다. 아내는 임신한 뒤에 스테이크를 찾았고, 피가 뚝뚝 흐르는 스테이크를 즐겨 먹었다. 남자는 자신이 스테이크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스테이크를 좋아하는 척을 하면 뱃속에 있는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자신이 일하는 백화점에 있는 스테이크집에 가서 아내에게 스테이크를 주문해 주었다. 그 때, 제임스가 그 레스토랑으로 들어와 같이 합석을 했고, 아내와 같은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아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스테이크를 안 먹는다고 하고, 밤에 몰래 혼자서 스테이크를 구워먹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제임스의 아이인데, 남편 앞에서 맛있게 스테이크를 먹을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그제서야 간절히 원했던 아이지만 그 전이 더 행복했다고 느끼면서 아내에게 아이를 지우자고 권유했다. 아내는 그 이후로 다른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고, 간간히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날 아내는 양수가 터졌고, 남자는 아내를 병원으로 데려가기 전에 아내의 핸드폰에서 전화벨이 울리는 것을 보았다. 핸드폰 액정엔 '제임스'가 전화하고 있다. 

 

진통이 오는지 아내는 괴성을 지르며 두 다리를 벌렸다. 바닥에 떨어진 아내의 휴대폰이 울린 건 그때였다. 아내가 휴대폰을 잡으려고 손을 뻗는 사이 나는 얼른 상체를 숙여 액정에 뜬 이름을 보았다. 제임스였다. 밤마다 아내가 통화를 한 사람은 제임스였다. 나는 발로 휴대폰을 밀어내고는 포크를 꽉 움켜쥐고 아내 앞으로 갔다. 놀랍게도 아내의 그곳이 조금씩 벌어지면서 스테이크처럼 생긴 검붉은 것이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남자는 아이를 갖고 싶다는 욕심때문에 돈도 아내도 아이도 모두 잃었다. 아이만 있으면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였는데 안타깝게도 그는 불임이었다. 아마도 남자는 아내가 불임이었다면 자신이 외간여자와 아이를 만들어 왔을 수도 있다.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그로테스크한 이 기분을 지울 수 없고, 새빨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스테이크에 대한 여운이 오래 남는 단편이다. 자신의 그릇으로 담을 수 없는 욕심이 파멸을 일으킨 것이 아닐까?

 

# 두 번째 단편, 몽중방황

 남자는 매일 밤 꿈에서 아버지를 찾는다.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갔던 절에 갔었다. 절 근처에 위치한 찻집에서 아버지와 찻집 주인이 안고 있는 것을 목격한 뒤, 그 날의 뒷 이야기는 영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고 어느 날 아버지는 스님이 되겠다면서 출가를 하고, 언제나 은당사에 있겠다고 주인공에게 말했다. 

 서른 세 살이 된 남자는 결혼을 했고, 아내는 임신을 했다. 그는 티비 속에 나오는 절을 보며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갔던 절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바로 그 절으로 향했다. 이 전에 아버지가 안고 있었던 찻집 주인은 아니었고 젊은 여자로 찻집 주인이 바껴있었다. 그녀는 예비 신랑과 이 절을 찾아 왔는데, 예비 신랑은 이 절에서 불상과 눈을 마주친 뒤 결혼을 포기하고 출가를 결심했다고 한다. 그를 설득하는 것을 실패해 찻집을 운영하면서 그의 곁을 맴돈다. 

 그는 출가했던 아버지가 작년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어머니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겉으론 그리워 하지 않았지만 항상 꿈에서 그리워했던 아버지의 발자취를 느끼며 은당사 옆의 찻집에서 견인차를 기다리고 있다. 

 

 "어릴 땐 좋은 꿈보단 안 좋은 꿈을 꾸는 거란다. 몽중방황이지. 밤새 너는 꿈을 꾸면서 눈 속을 헤매고 다닌 거야."
 나는 벽난로 앞으로 다가가 타다 남은 장작 불씨에 사진을 올려 놓았다. 불길이 솟아올라 아버지는 순식간에 재로 변했다. 여자의 말대로 상처 난 유년은 어른이 되어 한바탕 홍역을 치르는지도 몰랐다. 지금껏 아버지와 은당사에 간 기억을 잊었다고 했지만 결국 잊지 못한 것이다. 잊으려고 한 기억이 고스란히 꿈에 나왔기 때문이다. 아득문견득수지라고 했던가. 만나기 어려운 인연을 지금 듣고 보고 얻어 지녔다는 뜻을 가진 아금문견득수지. 비로소 오늘밤에야 나는 끊었던 아버지와의 인연을 다시 이은 것 같았다. 눈은 그칠 줄 모르고 달이 없는 천지에서 풍경 소리만 아득하게 들려왔다. 

 

 아버지와 찻집 주인의 예비 신랑은 확고한 의지로 출가를 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찻집 주인을 사랑했지만,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때문에 출가한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주인공이 견인차를 기다리면서 그토록 찾아헤맸던 은당사에 가지 않고 찻집에서 머물렀다. 만약 남자가 은당사에 가면 다른 사람들과 같이 출가를 해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이미 자신이 곧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큰 부담감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 세 번째 단편, 나뭇가지에 걸린 남자

 남자는 눈을 떠보니 아파트 4층 높이 정도되는 나무의 가지에 대롱 걸려있다. 그 나무는 터널 옆에 위치한 나무인데 그는 교통사고를 내서 몸이 붕 떠서 나뭇가지에 걸려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혼 후, 몇 달동안 데이트하던 여자를 만나러 가던 길이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구하러 와주길 간절히 기다렸다. 

 여러 대의 차가 터널을 지나가는 동안 자신을 한 번만 봐줬으면, 죽더라도 이 나뭇가지가 아닌 지상에서 죽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소리를 질렀지만 누구도 그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는 도대체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고난을 겪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매년 부모님을 모시고 해미로 성령강림대축일 미사를 데려다 드렸는데, 삼년 전 아내 서연은 결혼식에 가야한다며 남자랑 무조건 같이 가야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 해 서연과 함께 결혼식을 참여하느라 부모님을 모시고 해미를 못 갔는데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남자는 이 모든 잘못이 서연때문에 일어난 것이라 생각했고, 그 때부터 서연을 때리기 시작했다. 서연을 때린 죄책감을 고해성사으로 풀었다. 결국 때린 사실들이 소문이 나며 그들은 이혼을 했다. 그는 맞은 서연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고, 신에게 잘못을 빌었던 것이다. 그는 결국 그 죄때문에 이런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리고 있는 꼴이 되어버린걸까 생각을 한다. 

 마침 지나가는 택시가 보여서 제발 저 택시 사고 나게 해주세요! 라고 소원을 빌었다. 그러면 그를 발견할 수 있을테니. 택시는 남자가 먼저 낸 교통 사고 덕분에 차가 붕 떠서 멀리 날아가진 않았지만, 차 밖에 나온 택시기사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남자는 하염없이 자신을 발견해줄 누군가를 기다려야 한다. 

 

 그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라 신앙심없는 서연 때문에 이 모든 일들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서연에게 잘못을 구하지 않고, 결국엔 신에게 잘못을 구했다. 그는 끝까지 서연을 보살피지 못해놓고 서연이 모든 것의 원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엔 자신이 낸 사고 때문에 즉사한 택시기사를 보면서 왜 자신에게 죄책감을 더 얹혀 주냐며 신을 원망한다. 그는 그렇게 믿었던 신을 등에 지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다가 결국 그렇게 생을 마감할 것 같다.

 

# 네 번째 단편, 프랑스 영화처럼

 남자의 어머니는 프랑스 영화를 보다가 집을 나갔다. 남자의 아버지는 어머니를 찾아 모든 것을 처분한 뒤, 프랑스로 떠났다. 집에 혼자 남은 남자는 길에서 여자를 집으로 데려왔다. 어느 날 그 여자를 찾아온 남자가 문을 두드렸다. 그래서 셋은 함께 살게 됐다. 남자는 그 사내가 맘에 들지 않았다. 그 사내는 남자의 아버지 방에서 묵었고, 매일 프랑스 영화를 보았다. 

 프랑스 영화에선 여자 하나, 남자 둘이 같이 욕탕에 들어가서 서로를 즐겼다. 여자와 사내는 남자와 함께 그런 모양새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는 비로소 나중에 깨달았다. 자신의 어머니가 프랑스 영화를 보고 떠난 이유는 둘이 한 쌍이 아니라 셋이어야 비로소 진정한 한 쌍이 된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남자는 그 사내가 맘에 들었다면 같이 살아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남자는 그냥 외로웠을 뿐이다.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것은 유일하게 어디선가 데려온 여자였는데, 그 여자와 사내가 가까워지니 자신의 외로움은 충족이 되지 않아 괴로웠을 뿐이다. 그런데 남자는 오리가 쪼아대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치 고요한 작가의 세계관은 모든 것이 프랑스 영화같다. 어떤 결말 하나도 시원하지 않고, 결론이 정해져 있지 않은 기분이다. 물론, 내가 아는 프랑스 영화는 그런 느낌이라는 말이다.

 

# 다섯 번째 단편, 종이비행기

 마흔 살이 훌쩍 넘은 남자는 반지하 방 안에서 종이비행기를 연신 접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북해도로 떠난다며 갑자기 집을 나가고 1년 뒤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아내는 옆집 남자와 바람이 나서 달아났다. 그는 떠난 그의 어머니를 기다리다 이제는 떠난 아내를 기다리고 있다. 

 반지하에서 자꾸 눈이 가는 여자가 있다. 그는 그녀를 계속 지켜본다. 그녀는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다른 남자랑 잠자리를 한다. 그녀는 남자가 자신을 계속 지켜봐왔던 것을 알고 그 반지하에 들어간다. 둘은 그렇게 같이 밤을 보내고, 여자는 자신의 물건들을 챙겨와서 그의 작은 반지하 원룸에 채워 넣는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도 북해도로 떠날거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곁에 있던 여자들이 계속 떠났기에 그녀를 떠나 보내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그녀의 물건들을 모두 종이 비행기로 접었다. 그녀의 북해도 책도, 그녀의 카트도, 그녀의 가방도, 그녀의 옷 전부를. 그치만 그녀는 비행기 티켓을 끊고 곧 떠날 거라고 한다. 그는 그녀의 몸을 꺾어 비행기로 접었다. 그리고 그녀를 날려보냈다. 그녀를 따라가기 위해 그도 자신의 몸을 종이비행기로 접었다. 하지만 어느 바람도 불지 않았고, 그녀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 여섯 번째 단편, 나는 보스턴에서 왔습니다

 남자는 한국인이지만 미국 어느 가정에 입양되었다. 그는 자신을 미워하는 양아버지를 피해 보스턴에서 한국으로 도망쳐 왔다. 보스턴에서 그의 직업은 애완동물 장의사였다. 미국에서의 경력으로 한국에 와서도 애완동물 장의사로 일하고 있다. 몇 달 전에 도착했던 한국이지만 그는 도무지 시차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는 모든 체력을 다 써버리면 밤에 잠이 잘 올 것만 같아 어떤 여자를 만났다. 그 여자는 검은 색 긴 머리에 검정 가방에 검정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나이가 원래 더 많았지만 그녀는 나이가 많이 들어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와 밤을 보냈다. 

 어느 날 장례 의뢰를 받고 남자의 집 근처에 있는 어느 집에 가게 됐는데, 그 집은 바로 검정 옷을 입었던 여자의 집이었다. 그녀는 키우던 새의 장례를 의뢰했다. 새는 자연사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찔러서 죽임을 당한 것만 같았다. 그녀가 사실을 말해줬다. 그는 상하이에서 만난 중국남자와 불륜을 저질렀고, 함께 데이트를 했었다. 그 중국남자가 그녀에게 검정 원피스, 가방을 모두 사준 것이다. 그리고 중국남자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 남자는 키우던 새를 데려왔다. 그런데 갑자기 그 남자가 떠나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 중국남자를 기다리다 새를 죽여버린 것이다. 

 여자와 함께 인천공항으로 가서 비행기가 이륙하는 것을 보러가기로 했다. 버거킹에서 같이 주문한 버거를 먹고 있다 여자는 홀린 듯이 나간 채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 여자는 돌아와서 중국남자가 돌아왔다고 했다. 그녀는 그 남자에게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는 상하이보다 자신이 살던 보스턴이 더 좋으니 거기로 가자고 제안했다. 여자는 그렇게 좋은데 왜 한국으로 도망쳐 왔냐며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자는 시차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 일곱 번째 단편, 도마뱀과 라오커피

 남자는 여행상품을 기획하는 것이 직업인가 보다. 라오스에서 일주일동안 힐링 여행 상품을 기획하려고 라오스를 방문했는데, 프랑스 여자가 계속 눈에 띈다. 그 여자에게 다가가 이름이 뭐냐고 묻자, 프랑스 여자는 이름을 알려주려 하지 않는다. 나중에 그녀와 함께 왓 싸바이디 사원을 보러가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눈다. 

 남자는 박하라는 아내가 있다. 박하는 결혼 생활이 무의미해졌다며 기도원에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이 아이를 갖지 못 한 것은 자신의 업보라고 생각했는데, 결혼 생활 하는 동안 신혼 외에는 남편과 잠자리를 한 게 10년 동안 100번이 안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박하는 집에서 17살짜리 남자아이 과외를 했다. 그는 그 아이가 예뻐 어깨를 쓸어내리며 "예쁘게 생겼네."라고 하자 그 아이는 다음날부터 더 이상 과외를 하지 않았다. 남자는 아이를 볼 수 없음에 슬퍼졌다. 

 프랑스 여자는 사실 남장여자였고, 그는 프랑스에선 한 가정의 가장일 뿐이었지만, 이 곳에서는 자유롭고 자신다울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남자는 계속 부정해왔지만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정해보려고 한다. 

 

# 여덟 번째 단편, 오래된 크리스마스

 은석은 카타리나를 잊을 수가 없다. 3년 전 동창회가 있던 날, 친구 우영과 카타리나는 같이 붙어 있다가 둘은 은석이 보는 앞에서 모텔에 갔고, 그 뒤로 그들은 결혼을 했다. 그 날의 충격으로 은석은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제수씨의 소개로 은석은 맞선을 보게 됐는데, 여자는 은석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둘은 마이산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추픽추를 오르는 것보다 힘드네요."
 "설, 설마요."
 "정말인데."
 "왜 마추픽추에 갔는데요?"
 여자는 다시 하이힐을 툭툭 차고는 남의 이야기를 하듯 말했다.
 "남자를 사귀었는데 유부남이었어요. 진짜 사랑했는데...... 그 남자때문에 도저히 살 수가 없어 마추픽추에 갔는데 그곳에 가서도 남자를 떠올렸어요. 같이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요. 그 남자를 잊기 위해 떠났다가 그 남자만 떠올렸죠. 그런데 마추픽추에 올라 돌만 남은 황폐한 집터를 본 순간 깨달았어요. 우리는 결코 같이 살 집을 지을 수 없었다는 걸. 그 순간 돌 위에 남자를 내려놓았어요. 그 남자를 사랑했던 마음도 같이. 세상에 내려놓지 못할 건 없어요."

 

 그녀와 점심을 먹으려고 한 사이에 카타리나를 보았다. 그는 그녀에게 다음에 밥먹자고 하고 카타리나에게 달려갔다. 카타리나와 그는 마이산을 걸어갔다. 카타리나는 남자친구를 배신해서 결혼까지 하게 된 우영이랑 별거 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가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에 은석을 만나러 왔다. 그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면 우영이 돌아올까봐. 그 말을 들은 은석은 마이산에서 그녀를 내려놓으려 했다. 그 때, 맞선 봤던 여자에게 연락이 왔다. 그리고 고개를 드니 카타리나는 산에서 내려가는 중이었다. 

 

 은석이 내려놓기도 전에 카타리나가 은석을 내려놔 버리는 마지막 결말이 인상적이다. 나는 총 8편을 읽었을 때 <오래된 크리스마스>가 가장 기억에 남을 것만 같다. 세상에 내려놓지 못할 건 없다는 말. 세상이 무너지듯이 좋아했던 적이 있었을텐데, 나 또한 어찌저찌 내려두었겠지? 은석은 카타리나의 죄책감에서 내림당했겠지만, 나는 은석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카타리나에게 가장 큰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셈치자. 

 

 

 고요한 작가의 작품은 어느 유튜버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는데, 뭔가 기분이 나쁘면서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매력이 있는 작품같다.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더 젊은 왕가위 감독의 작품같은 느낌이 난다. 특히 5, 6번의 단편은 외롭고, 공허하고, 채움이 필요한 남자들의 이야기에서 더 왕가위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뭔가 단편 소설이 아니라 시같은 느낌이 들지만 표현들이 친절해서 신기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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