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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책

7년의 밤, 정유정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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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서원은 극악무도한 살인마 '최현수'의 아들로 낙인찍혀 평생을 자리잡지 못하고 친척 집들을 전전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친구들과 친해질 새도 없이 전학가자마자 그 날의 사건들이 교내로 퍼져 한 곳에도 자리잡지 못했다. 살인마 '최현수'는 세령댐의 수문을 열어 마을 사람들을 죽게 만드는 인명 피해를 주고, 어린 여자아이와 그 여자아이의 아버지, 자신의 부인까지 살해한 혐의로 수감중이다. 남겨진 서원은 7년 전 그 사건이 있었던 때에 같은 방을 썼던 아저씨 승환에게 연락을 했다. 

 서원은 친척들에게도 버림받아 승환이 자신의 형의 자식으로 입양해서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승환이 사라지고 서원은 배송된 택배를 열어보았는데, 7년 전에 사라졌던 자신의 운동화와 박스 안에 담긴 편지들과 7년 전 사고가 기록된 문서 그리고 USB가 있었다. 서원은 승환이 쓴 소설을 읽었다. 

 승환이 쓴 소설은 7년 전 그 날의 사건들을 다루기 시작했다. 승환, 현수, 영제(세령마을의 대부분의 땅의 주인이자, 세령의 아버지), 서원, 은주(서원의 엄마)의 시점으로 사건이 다뤄지기 시작한다. 왜 그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는지, 그 가해자의 시점과 피해자였지만 대응했던 모습들을 담아둔 것이다.  

 

# 승환의 소설 '세령호'의 의미

 먼저, 오영제에 대해 설명을 해보겠다. 영제는 치과의사이고, 세령마을의 지주이자 메디컬센터 건물을 갖고 있는 부자다. 그에겐 부인(하영)과 딸(세령)이 있었는데, 그에게 가족은 "교정"이 필요한 대상이었다. 영제 자신의 울타리에 어울리지 않는 것들은 어울릴 수 있게끔 그의 부인과 딸에게 폭력을 행사하면서 교정을 하려고 든다. 하영은 그런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이혼을 소송했고 해외로 도피했다. 집에 혼자 남겨진 딸 세령은 영제에게 교정을 당하던 도중 그에게서 도망가다 며칠 뒤에 세령호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영제는 자신이 소유한 것들이 사라지는 것을 용서할 수 없었고, 그의 것을 해친 사람을 찾아서 복수를 시작하려고 한다. 

 영제는 그 범인이 현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현수에게 자신이 빼앗긴 것에 대한 피의 복수를 계획했다. 하지만 승환의 방해로 그가 생각했었던 완전한 복수를 할 수 없었지만 한 가정을 파탄냈던 것은 맞다. 영제는 현수를 극악무도한 살인자로 만드는 작업에 성공했지만 그가 생각했던 완전한 복수가 아니었기에, 7년의 세월동안 또 다른 복수 준비하고 있었다. 승환과 현수는 또 다른 복수를 예견했기에 '세령호'라는 소설로 사건의 전말을 썼던 것이다. 

 먼저 이 소설을 제안한 것은 현수였다. 오영제가 자신이 수감되고 있는 교도소에 찾아와서 이를 치료해주었을 때 자신의 아들 서원이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그래서 원래 글을 써왔던 승환에게 대필을 부탁했던 것이다. '세령호'는 소설이지만 주인공의 이름은 전혀 가명이 아니고 실제 이름을 사용하며 자료 조사에 근거하여 쓴 소설이었다. 이 것은 서원이 읽고 오영제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7년동안 준비해온 것이다. 

 

# 등대마을의 우물과 세령호

 등대마을은 현수의 고향이다. 현수의 아버지는 매일 술을 먹고 자식들을 때리는 망나니였다. 현수는 밑에 있는 동생들과 학대하는 아버지와 미안해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화를 꾹 눌러담아왔다. 그는 매일 화를 누르기 위해 아무도 없는 우물가로 달려가 가족들의 신발을 던지면서 화를 삭혔다. 어느 날, 포수로서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계기가 있었던 날에 아버지는 그 꿈을 처참히 짓밟고 현수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현수는 또 다시 우물가로 향해서 아버지의 신발을 던졌는데, 자꾸만 아버지가 "현수야"라고 부르던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현수의 아버지는 우물가에 발가벗겨 떨어져 죽어 있었다. 현수는 자신이 아버지를 죽인 것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아버지는 술먹고 우물가에 떨어져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현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었고, 몽유병이 심해서 현수의 어머니가 등대마을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잘 살아가던 현수는 세령마을에 들어가서 '세령'이라는 아이를 죽이고 그의 삶은 180도 변했다. 그는 세령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아 또 다시 몽유병을 앓으며 세령호에 가서 신발을 던졌다. 결국 그가 헤어나올 수 있었던 길은 죗값을 치루고 수많은 희생이 뒤따른 후였다. 

 

 세령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은 서원의 인생에서 화를 쌓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살인사건 이후, 살인마의 아들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살고, 친척들 옆에 단 몇 달도 못 버티고 다른 친척들로 옮겨다녔다. 그래서 승환에게 연락해서 같이 살게 됐는데, 그 중 1년 가까이 자리 붙이고 살았던 곳이 등대마을이다. 아버지가 떠났던 그 곳에서 자리를 잡고 살 수 있었던 것이다. 현수는 그 것이 걱정됐던 걸 수도 있다. 자신이 화를 눌러 담고 살다가 이런 비극을 불러왔는데, 자신의 아들도 자신 때문에 화를 누르다 자신의 인생을 파멸시킬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결국 서원은 등대마을에서 현수와는 다르게 감정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저주에서 드디어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 <7년의 밤>에서 말하는 '악인'의 정의?

 현수는 '용팔이'라는 자신의 또 다른 자아 아래 살아간다. '용팔이'는 인내가 없고, 열정적이었지만 위험했다. 현수는 야구선수 시절 용팔이 덕분에 야구에 힘을 쏟을 수 있었는데, 야구선수를 은퇴한 뒤로는 용팔이를 소환할 일은 드물었다. 그 용팔이는 현수의 아버지를 죽이고, 세령을 죽였다. 세령댐의 수문을 열어 마을 사람들을 말살시킨 것은 용팔이가 한 짓이 아니라 서원을 살리려는 아버지의 마음이었지만 어쨌든 그는 사람들을 죽였다. 현수가 '용팔이'라는 또 다른 자아를 이용해서 살인을 저질렀지만 본질은 선하고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 했다고 책에서 보여준다. <7년의 밤>을 읽으면서 이 가해자의 서사를 듣지 않았다면 현수를 본질이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영제는 전형적인 소시오패스다. 모든 것이 자신이 맘먹은 대로 이루어져야 하고, 그게 되지 않는다면 폭력과 돈을 행사해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한다. 결국 딸 세령은 현수의 손에 죽었지만, 영제는 세령을 끊임없이 학대해왔다. 아내 하영은 자신을 떠나간 아내이지만, 떠나간 이유는 끊임없는 강간, 학대였다. 그는 사랑하는 딸을 죽인 복수를 위해 현수를 보복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빼앗은 사람에 대한 응징이었다. 그리고 한 가정과 마을을 파탄낸 것도 모자라 서원의 7년을 외롭고 힘들게 만들어서 서원까지 잔인하게 서원을 죽일 생각이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자신의 가정을 위해 복수하는 가장으로 보여지지만 디테일하게 응징하는 부분은 꽤나 잔인하다. 

 현수와 영제는 이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주역이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현수의 편에 서게 된다. 현수가 더 이상 위험에 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수가 우리에게 실망시킨 부분이 너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7년의 밤>이라는 영화를 보면 후기 중에 영제가 차라리 가족을 사랑했던 아버지였으면 서사가 맞았을거라고 하는 글들이 꽤 있었다. 나는 영제라는 캐릭터보다 선한 척하지만 어디까지 악할 수 있는지 모를 현수라는 캐릭터에 더 눈이 갔다. 

역시 정유정 작가... 혼자 뒷북으로 이제서야 읽고 있지만, 다음 작품 <28>, <종의 기원>도 너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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