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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책

로마법 수업, 흔들리지 않는 삶을 위한 천년의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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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법 수업>은 한동일 교수의 책으로 <라틴어 수업>과 비슷한 맥락으로 강의가 진행된다.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을 바탕으로 로마법이 어떻게 다뤄졌는지, 현대사회의 법과 얼마나 비슷한 지 알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다. 당시 사회에서 여성과 노예의 신분차이로 인해 엄격한 로마의 법이 상대적으로 적용된다는 것 조차도 알 수 있었다. 약 2주동안 아침마다 읽으면서 법얘기에 난독증이 생길 때도 있었다..ㅎㅎ <라틴어 수업>에서 로마의 문화와 법에 관련된 파트를 자세하게 다룬 것이 <로마법 수업>인 것 같고, 믿음 혹은 종교에 관한 파트를 자세하게 다룬 것이 <믿은 인간에 대하여>에 쓰여진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고 싶은 인문이 너무 많은 관계로 한동일 작가의 책 <믿은 인간에 대하여>는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문구 남겨야겠다. 

 

 로마에서 아기를 버리는 행위는 합법적이고 신중하게 생각해서 내리는 결정으로 어떤 원칙을 선언하는 행동이었습니다. 가령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는 남편은 아기가 자기의 씨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버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여기에는 핏줄보다는 가문이 더 중요했던 로마인의 가부장적인 모습이 자리잡고 있지요.
 로마에서 유산과 피임은 꽤 흔한 일이었습니다. 로마에서는 어떤 여인이 갖고 싶지 않은 자식을 떼어버리는 생물학적 순간을 별로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출생 전 태아는 모태의 일부"일 뿐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한편 트라야누스 황제 치세 중 에페수스의 저명한 의사였던 소라노는 당시까지 명확하지 않았던 피임법과 낙태법의 차이를 최초로 정의했습니다. 소라노는 부적과 같은 근거 없는 낭설을 거부하고 정액의 운동을 저지하기 위한 일종의 질내삽입약을 사용하려고 권고했답니다. 사실 배란주기를 정확히 몰랐던 대부분의 고대인들은 여성의 생명의 근원인 남자의 정액을 받는 그릇이라는 그야말로 그릇된 생각을 갖고 있었지요. 
 그럼 순수하게 법적 관점에서 로마법은 낙태를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낙태를 유발하는 행위를 직접적으로 실행했을 경우에는 범죄가 되었는데, 예를 들면 유산을 위해 '낙태약'을 사용했을 때입니다. 그러나 애당초 고전기에 낙태는 비윤리적인 행위이긴 했지만 위법한 행위로 간주하진 않았습니다. 

 

 왕이자 신관이었던 누마 폼필리우스는 종교의례를 제도화했으며, 의례가 정확한 때에 치러지도록 달력을 정비한 인물입니다. 그는 살인을 '고의적인 살인'과 '과실치사'로 구분했습니다.
 과실치사는 어떤 실수나 잘못으로 인해 사람을 사망이나 상해에 이르게 하는 행위로서, 살해 의도나 악의가 없이 벌어진 일종의 사고입니다. 과실치사로 사람이 죽은 경우, 가해자는 회합이 모인 사람들 앞에서 희생자의 종친회에 숫양 한 마리를 제공했습니다. 
 반면 고의적 살인인 경우 "어떤 이가 알면서 악의로 자유인을 살해했다면, 그는 살인자가 될 것이다"라고 분명하게 규정했습니다. '알면서 악의로'. 즉 '고의로' 살인을 저지른 자는 사형을 선고했지요.

 

 법전은 모든 항목에 동등한 '탈리오의 법칙', 즉 '동해보복형'을 적용했는데요. 흔히 현대인들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가해자가 저지른 죄만큼 정확히 똑같은 죗값을 치르게 한 법률로 인식하지만, 사실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법률적 신분'이 고려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자유민이 다른 자유민의 눈을 멀게 했으면 그의 눈을 뽑는 처벌을 내리지만, 신분이 한 단계 낮은 평민이 피해자라면 벌금만 내면 그만이었습니다. 또 노예가 노예를 해쳤다면 벌금액이 줄어들고 노예의 주인이 대신 돈을 냈습니다. 그러나 낮은 신분의 사람이 높은 신분의 사람을 해쳤다면 반대로 처벌이 갈수록 엄중해졌습니다. 사람의 신분에 따라 처벌이 다르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개인적 보복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인간으로서의 개인을 강조한 최초의 시도로 평가되는 함무라비 법전은, 손해나 신체손상에 대한 탈리오의 법칙을 보완하고 배상에 대한 경제적 형식인 금전적 배상의 필요성을 인정하여 개정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이어 등장한 로마의 12표법은 함무라비 법전을 포함한 이전의 법에서 받은 영향을 전격적으로 수용해 비로소 '제도와 절차로서의 법'이라는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로마법을 다시 살펴보는 것은 단지 현재 법의 원천을 찾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로마법을 통해 인간을 둘러싼 바뀌지 않는 환경과 존재의 태도를 돌아보고, 법을 통해 역사를 인식하고자 함이지요. 법을 공정하고 불편부당하게 집행하려는 로마인들의 노력이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기에는 다소 미흡한 점이 있겠지만, 그런 이상 자체를 서구 문명에 도입했다는 데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좀더 정의롭고 인간적인 법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

 

기억말살형 - 죄인의 작은 흔적마저 싹 지울 것
 로마법에서 주목할 만한 형벌로 '기억말살형 유죄판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전 정권의 흔적을 지우는 작업이 시행되곤 하지요. 로마시대에 실행된 기억말살형 유죄판결이란, 사형이 선고되어 처형된 자나 형사 소추가 종결되기 전 사망한 자에게 부과하는 불명예형입니다. 반역죄같은 반국가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만 이런 사후 불명예형을 선고받았는데요. 낙인찍은 죄인의 기억과 흔적을 지우는 작업의 일종이었습니다. 기억말살형을 선고받은 사람의 이름을 각종 문서와 건축물에서 삭제하고 기념비나 동상을 파괴했지요. 또한 그의 유언과 증여는 효력을 잃었습니다. 기억말살형 유죄판결은 부적절한 행위를 한 황제들의 사후에도 적용되었는데, 그 판결은 원로원에서 했습니다. 물론 기억말살형을 선고받은 옛 황제는 황제의 명예에 따른 장엄한 장례도 치를 수 없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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