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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책

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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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스트',  '모스바나'  그리고 '프림 빌리지'

(왼쪽) https://pixabay.com/illustrations/grim-red-black-mood-fog-the-shade-1517975/ (오른쪽) https://pxhere.com/ko/photo/1237637

 '더스트'는 붉은 안개로 인해 식물, 동물 가릴 것 없이 곧장 쓰러져 호흡을 멈추게 만들어 죽게 만든다. 미국 솔라리타 연구소에서 자가 증식 나노봇 입자 크기를 줄이는 실험을 하던 도중, 극도로 소형화된 입자는 통제를 벗어났고 증식 오류가 발생해 입자들이 그대로 풀려났다. 이 중에서도 더스트에 내성을 갖고 있는 내성종이 있는데, 내성종의 피로 연구를 하기 위해 사냥꾼들이 이 내성종들을 잡으러 다닌다. 내성종이라고 해도 더스트가 위험하긴 마찬가지라 모든 사람들이 방화복을 입고 다닌다. 더스트로 인해 인류가 반 이상 죽어 나갔던 시절을 '더스트 시대'라고 부른다. 훗날, 더스트 종말 시대에서 살고 있는 연구원 '아영'은 '모스바나'와 '더스트'가 얽혀진 이야기를 풀게 된다.

 '모스바나'는 가늘고 긴 갈색 줄기를 가진, 특별한 점이 없는 평범한 덩굴식물이다. 모스바나를 한 번 심게 되면 온 땅이 모스바나로 빠른 속도로 뒤덮인다. 그래서 모스바나가 있는 곳은 농작 재배를 할 수 없을 정도다. 더군다나 사람이 모스바나를 건들게 되면 빨갛게 부어 오르고 따갑다. 모스바나는 레이첼이 더스트로 부터 인류를 지키기 위해 만든 개량종으로써 '프림 빌리지'를 떠났던 사람들이 모스바나를 전세계에 심어 더스트로 인한 인류의 종말을 막았다. 가끔 모스바나는 푸른 빛을 띄곤 하는데, 레이첼은 그 빛을 돌연변이라고 말한다. 

 '프림 빌리지'는 말레이시아 국립 공원에 위치한 곳을 말한다. 레이첼은 온실을 이 곳에 세워두고 식물을 연구했는데, 지수와 레이첼은 많은 사람들을 거둬 들이면서 하나의 마을을 구성했다. 마을 구성원들은 함께 농작물을 재배하고, 기계들의 부품들을 같이 수집해오며 공격 드론을 제작해 마을을 지키고, 어린 아이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어느 날, 프림 빌리지의 존재가 알려지자 프림빌리지는 해체 되었고, 마을사람들은 모스바나의 종자를 들고 각기 다른 땅에서 심었다. 

 

# 지수 & 레이첼, 이 주식 제가 삽니다!

 

# 더스트 시대를 살아가던 지수와 레이첼의 이야기 

 내가 생각한 이지수(이희수)의 이미지는 '수현'이었다. 만능으로 고칠 수 있는 엔지니어 지수는 남일에 관심이 없고, 그냥 더스트 시대에 무언가를 고쳐주며 입에 풀칠하며 살아갔다. 과거 솔라리타 연구소에서 기계 팔을 몇 번이나 교체하거나 고쳐주었던 인연이 있던 레이첼을 말레이시아에서 재회하게 되었다. 지수가 레이첼에게 찾아 갔을 때, 레이첼은 자살 시도를 하고 있었다. 지수는 레이첼에게 '더스트 분해제(허브)'를 받고, 레이첼은 지수에게 자신의 몸을 치료받기로 거래했다. 

 왠지 레이첼은...  Lesley-Ann Brandt(루시퍼 시즌1에서 '메이즈'역)을 한 배우가 자꾸 떠오른다. 레이첼은 사이보그였고, 미국 솔라리타 연구소에서 식물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서 유기체인 부분은 거의 없고, 기계가 그녀의 몸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녀는 식물에게만큼은 애정이 남다르지만 인류의 생명에 대해서든 딱히 관심이 없다. 그녀는 자살시도를 하려고 했으나, 그 타이밍에 지수가 맞춰 들어와 자살에 실패하였다. 하지만 그녀가 옆에 있어주면서 식물 연구로 인해 고장나게 된 기계 부분들을 지수가 고쳐주는 것이 나쁘지 않다. 

 레이첼은 언제부턴가 지수를 바라보는 눈빛이 바뀌었고 그녀는 감정적으로 불안해 보엿다. 어느 날, 레이첼의 뇌를 정비하는 날 그녀의 기계 뇌의 패턴 안정화 기능을 켰다. 지수는 레이첼이 그녀에게 호의를 느끼고, 사람들을 돕는 일에 동참해 줬으면 했던 것이다. 그 때 이후로, 레이첼은 더 불안해지고 지수를 바라보는 눈이 더욱 그윽해졌다. 지수는 자신이 괜히 건드려서 그런 일을 만들게 됨에 죄책감을 느꼈지만 레이첼의 눈빛으로 지수는 가슴 부근의 묘한 울렁거림을 느꼈다.

 

 레이첼은 고개를 저었다. 마치 대화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여서 지수는 화가 치밀었다. 그냥 입을 다물고 레이첼의 기계 팔을 떼어냈다. 모스바나를 숲 밖에 가져가 심을 것도 아니면서 레이첼은 더스트 응집 실험을 지속하고 있었고, 그래서 팔에 들러붙는 고분자 응집체들이 기계 팔을 엉망으로 만드는 속도가 빨라졌다. 도대체 레이첼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레이첼은 지수가 팔을 분해하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다가, 한참 뒤에 짧게 덧붙엿다. 
 "달라진 것도 있어."
 "그래?"
 지수는 약간 긴장하며 물었다.
 "뭐가 달라졌는데?"
 "감정적 변화."
 "어떤 감정?"
 "너에게 끌림을 느껴."
 지수의 손동작이 잠시 멈췄다.
 "아."

 

 레이첼은 지수에게 강력한 끌림을 느끼고 있었다. 레이첼은 자신의 감정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지수는 레이첼이 좋았고, 끌렸지만 레이첼의 기계 뇌를 건드렸기 때문에 레이첼의 감정은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국 레이첼은 자신의 감정을 고작 스위치 하나로 부정당했음의 상처를 받고, 지수는 레이첼의 진심을 스위치 조작으로 치부해버렸음의 죄책을 갖고 서로 헤어진다. 하지만 그들은 더스트 종말 이후, 서로를 찾으러 다녔다. 결국 지수는 죽었고, 레이첼은 식물연구원 아영에 의해 지수의 마지막을 알게 되었으며 레이첼은 이게 죽여도 여한이 없다. 그래서 레이첼은 자신의 몸에 붙어 있는 기계를 분해할 예정이다. 

 나오미와 아영의 시점으로 모스바나의 정체를 밝혀 가는 이 과정에서 지수와 레이첼의 텐션을 느끼는 재미가 있었다. 둘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며, 서로에게 끌렸으며, 서로에게 궁금했고, 서로에 대해 잘 알 지 못했다. 지수는 솔라리타 연구소에서 레이첼이 식물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이미 레이첼에게 반한 것이 틀림없다. 더스트 시대가 시작되고 말레이시아 반도에서 레이첼을 다시 마주친 뒤 그녀와 쭉 함께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레이첼이 자신에게 호의를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레이첼의 스위치를 건든 의미는 레이첼을 이미 사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푸른빛이 상자 안에 가득차 있었다. 먼지처럼 흩날리기도 하고, 토양이 빛을 머금은 것처럼 빛나기도 했다. 어떤 상자에서는 아주 색이 짙었고, 또 어떤 상자에서는 색이 거의 없거나 옅었다. 지수는 그것을 보며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지수는 그 푸른빛이 뜻하는 의미를 생각했다. 
 "더스트를 제거할 때 생기는 빛이겠지?"
 레이첼은 상자들을 보더니 말했다.
 "아니, 그 빛에는 아무 기능이 없어."
 뜻밖의 대답이었다. 
 "여러 번 시험해봤지만 응집이나 제거 현상과는 무관하게 나타나. 개량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이었어. 중립적인, 불필요한 돌연변이. 아마도 비료에서 발생하는 이산화질소와 반응하는 것으로 추정하는데, 공기중의 특정 분자와 반응해서 발광성 부산물이 생성돼. 그게 흙이나 먼지 입자에 달라붙지. 간단한 유전자 조작으로 특성을 없앨 수 있어. 쓸데없이 시선을 끄는 특성이니까 제거할 생각이야."
 "그렇구나. 불필요한 돌연변이라니...."
 불을 켤 생각도 않고, 지수는 한참이나 상자 속의 푸른빛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아름답네."
 그렇게 말하는 지수를 레이첼이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레이첼의 '모스바나'의 푸른 빛은 돌연변이라고 하지만, 그 빛을 예쁘다고 말했던 지수를 위해 돌연변이를 굳이 없애지 않았다. 충분히 없앨 수도 있었지만 없애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지수를 위한 선물이 아니었을까? 지수가 떠나지 못하게 '프림 빌리지'에 함께 하고 싶어서 숲에 제한을 걸어두었던 레이첼은 거의 신이나 다름없었지만 지수 앞에선 사이보그도 아닌 한낱 사랑에 빠진 인간이었다. 

 

 

# 세상을 구한 것은 모스바나? 혹은 프림 빌리지 사람들의 소망?

 이 이야기의 메인 스토리를 '지수와 레이첼'이라고 생각하지만, 더스트 종말 시대 이후의 식물 연구원인 '아영'과 더스트 시대의 산증인 '나오미'의 시점으로 구성된다. 아영과 나오미의 공통점은 그들의 유년시절에 영감 혹은 도움을 받았던 인물이 있었다. 그녀는 바로 이지수(더스트 시대 이름; 이희수 - 더스트 종말 시대 이름)다. 

 나오미는 언니 아마라와 함께 내성종들이 모여 있는 마을을 찾아 다니다 '프림 빌리지'에 도착했다. 나오미는 지수가 연구하고 있는 곳에 자주 놀러가서 마을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날 지수는 나오미에게 더스트 분해제 만드는 방법을 알려 주게 되었다. 그 배움으로 나오미와 아마라 자매는 '랑가위의 마녀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에티오피아에 도착해 사람들에게 분해제를 만들어 주고, 모스바나를 심으며 에티오피아를 더스트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만들었다. 훗날, 솔라리타 연구소에서 그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더스트를 없애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고 더스트가 종말시대가 되었다. 나오미 자매는 더스트를 없앤 건 모스바나 덕분이라고 이야기 했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아영은 어릴 적 '온유'라는 곳에 살았는데, 그 때 만났던 할머니는 기계를 잘 다루고 다른 사람과 생각하는 차원이 다른 분이었다. 할머니는 아영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었는데, 할머니의 정원에서 보았던 푸른 빛이 있는 모스바나를 보고, 할머니가 말해주는 더스트 시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영은 식물학자로써의 꿈을 키워 갔다. 그러다 모스바나의 정체를 알고 싶어 연구를 하던 중, 에티오피아의 나오미 자매들을 인터뷰하게 되고, 모스바나가 더스트를 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근거 자료를 바탕으로 세상에 발표하였다. 

 모스바나를 심은 지역의 데이터를 모아둔 사람이 아영에게 자료를 보내왔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레이첼이었다. 나오미 자매는 고작 에티오피아에만 모스바나를 심었을 뿐인데, 어떻게 그 모스바나가 전 세계를 구할 수 있었는가? 바로 프림 빌리지에 있었던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면서 전 세계에 심었던 것이다. 왜, 프림 빌리지의 사람들은 다시 찾아서 모이지 않았을까? 분명 랑가위의 자매들은 유명했는데, 그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한 번이라도 연락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프림 빌리지 사람들은 모스바나가 더스트를 없앨 수 있다는 소망보다 그 마을에 있었던 추억을 기억하기 위해 심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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