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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책

내 심장을 쏴라, 정유정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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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이 작품에 대해 독후감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지만, 내가 읽은 시간이 있고, 정유정 작가의 책을 정복하겠다는 나의 목표가 있었기에 일단 살짝 끄적여 보겠다. 이 책이 영화화되고, 상도 받았다는 것에 놀라웠다. 아마도 정유정 작가의 탓이 아니다. 그냥 단순히 내 취향인 책이 아니었던 것 같다. <진이, 지니>를 읽었을 때, 나는 정유정 작가가 싸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와 같은 악인에 관한 내용을 잘 쓰는 스릴러 작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진이, 지니>에서 힐링물을 접했을 때, 와 단연코 <진이,지니>는 내 인생 작품이겠구나 했다. 근데.... <내 심장을 쏴라>는... 마지막에 제 5회 세계문학상 심사평을 읽다가 폭풍 공감했던 부분이 있었다. 

 도입부가 잘 읽히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발자크 소설처럼, 처음 60쪽 가량의 지루함만 참아내면, 그리하여 소설적 상황과 등장인물들과 친해지기만 하면 그다음부터는 몰입하여 읽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솔직히? 마력은 있다. 나는 ebook으로 읽어서 페이지는 모르겠고 "3부 광란자"부터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원래 정유정 작가의 소설은 단숨에 훅 읽어버리는 마력이 있다. 정말로. 솔직히 나에게 하루의 시간을 정유정 작가에게 쏟으라고 한다면 책도 읽고, 독후감도 쓸 수 있을 정도로 흡입력이 있다. 그치만... 이 작품은 나에게는 딱히 머리에 남는 작품이 아니다. 이 작품을 마치고 나서 바로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를 읽고 있는데, 이 작품은 역시 술술 읽힌다. 

 

그래도 읽은 것들을 저멀리 날려보낼 수는 없으니 줄거리라도 기록해보겠다. 

 

# 이수명

 그는 스키조(정신분열증)다. 그는 과거 자신이 사용하던 가위를 제자리에 치워놓지 않아서 자살중독에 빠진 어머니가 그것을 보고 자살을 시도한 뒤 죽었다. 자신의 잘못으로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아서, 아버지가 어머니를 가위로 찔러 죽였다고 망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수명은 가위만 보면 발작을 일으킬만큼 힘들어 한다. 그래서 그는 가위로 머리를 자를 수 없어서 항상 긴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머릿 속에 있는 다른 존재가 끊임없이 수명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 존재가 말을 걸어오지 않으면 수명은 못 견딜만큼 힘들어한다. 수명의 아버지는 그를 정신병원에 데려다 놓고, 정상인처럼 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그를 평생 병원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살 수 있게끔 처리하고 죽었다. 수명은 예전에도 정신병원에 들락날락 했던 적이 있었지만, 승민을 만난 후 그의 삶은 조금씩 변해 간다. 

 

# 류승민

 재벌 집 막내인 승민은 위의 형제들과 달리 뿌리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위치이다. 그는 어렸을 때, 자신의 엄마의 위치지만 유전적으로 친 엄마가 아닌 두번째 사모님 손에 키워졌다. 그는 장난으로 두번째 사모님의 개의 꼬리에 불장난을 했다. 어릴때부터 문제아였던 승민은 미국으로 보내졌는데, 그 때 만난 평촌 선배의 도움으로 하늘을 나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승민은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어서 곧 눈이 안 보이게 될 처지였다. 

 물론, 재벌 집 막내가 말도 안되는 금액의 유산을 상속받게 되어서 배다른 형제가 승민을 가둬놓았다는 것도 맞지만, 승민은 자신이 눈이 안 보여서 앞으로는 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 너무 견딜 수 없어 동네방네 불을 질렀다는 것이다. 승민은 교도소에 가거나 정신병원에 가거나 둘 중 하나였다. 승민은 눈이 아예 안 보이기 전에 빨리 한 번은 날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했다. 결국에 승민은 한 달 동안 실명인 척 연기를 하고 수명과 함께 탈출을 성공했다. 그렇게 승민은 평촌 선배가 숨겨놓은 장비들을 갖고 멀리 날아갔다. 

 

# 비정상과 정상의 차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심장을 쏴라>를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될 만한 주제가 있었다. 물론, 이 책에서 말하는 정신병원에 모인 사람들은 마음이 아파서 모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을 그렇게 비정상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과연 지금 살아가고 우리는 정상, 비정상으로 나눌 수 있을까? 모두 마음 속에서 게으름, 이기적임, 외면 등의 감정들에게 조종당하고 있지 않을까? 우리는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일 때보다 그 감정이 내가 될 때가 있다. 다만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규칙이라는 것을 지키고 살아가느냐, 혹은 내 맘이 조종하는 대로 살아가느냐로 판단하여 마음치료를 하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바로는 그렇다 . 

 과거 엄마의 자살로 인해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수명은 승민의 날개짓으로 자신의 시간을 찾아보려고 한다. 과거의 우리가 갖고 있었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승민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잘 날아갔으니, 부디 수명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세상을 향해 날아봤으면 한다. 

 승민은 손을 내밀었다. 머뭇머뭇 맞잡았다. 손을 떼자 손바닥에 승민의 시계가 놓여 있었다.
 "이제 빼앗기지 마."
 승민의 눈이 고글 속에서 웃고 있었다.
 "네 시간은 네 거야."
 시계를 쥐고 돌아섰다. 돌아서서 걸었다. 걷다가 뛰기 시작했다. 절벽 끝까지 단숨에 뛰었다. 숨을 턱 끝으로 몰아내며 조명탄 마개를 열었다. 점화 부분이 비에 젖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마개로 힘껏 쳤다. '훅' 소리와 함께 불꽃이 올라왔다. 나머지 하나에도 불을 붙인 뒤 양손에 나눠쥐고 승민을 향해 돌아섰다.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뿌연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오렌지빛 섬광이 나를 가뒀다. 가로등에 불이 들어온 것처럼 주변이 환해졌다. 나는 숨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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