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13. 05:15ㆍ그냥, 책
벌써 2025년이 작년이 되었다.
작년 한 해동안 59권의 책을 읽었네...?

더 열심히 읽을 수 있었겠지만, 당분간은 이 때만큼 열심히 읽을 순간은 없을 것 같다.
나는 미국으로 이민와서.. 아무래도 한국어보단 영어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ㅠㅠ
그래도 나름 독서 블로거인데, 한 달에 1-2권 정도는 읽어야 하지 않나..?
하여튼 사둔 책이 너무 많은 관계로.. 짬짬이 읽어보도록 하겠다.

거의 오랜만에 책을 읽은 것 같다..
책이 짧아서 그나마 읽을만했다.
비호감 시마무라
시마무라라는 캐릭터를 처음 접했을 때 일단 진부한 1930년대 남자 캐릭터일 뿐이었다. (물론 작가의 시선이겠지만)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물려받은 유산으로 여행 다니는 한량이지만, 나름 '외국 무용 비평'이라든지, '프랑스 문학 번역'같은 일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유산으로 먹고 사는 한량일 뿐...
시마무라는 도쿄에 본처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눈이 깊게 쌓인 온천 마을에 놀러가 게이샤인 고마코와 시간을 보낸다.
온천마을에서 가장 처음 만난 게이샤가 고마코였는데, 고마코가 제일 예뻤다.
다른 게이샤들도 고마코만큼 예쁠거라 생각하고, 다른 게이샤를 불러달라 고마코에게 요청한다..ㅋ
근데 고마코가 제일 미인이었단걸 알게 되고... 고마코랑만 시간을 보낸다.
도입부에서 온천마을까지 기차가 다다를 때쯤 시마무라는 요코를 처음 마주치게 된다.
요코의 눈빛과 목소리는 잊을 수가 없었다.
요코가 고마코와 같은 집에서 지낸다는 사실을 알고, 고마코를 통해 요코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어한다.
고마코랑 시간을 보내지만, 요코에게 계속 매력을 느끼고 있다.
고마코는 진심으로 시마무라를 사랑하는데, 그는 이것을 '헛수고'라며 조롱한다.
고마코의 일기쓰는 취미, 선생과 약혼자 유키오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 가장 노릇을 하는 모습, 본처가 있는 시마무라를 사랑하는 모습 전부를 헛수고로 치부한다. 하지만 늘 뒤따라오는 말은 그렇기에 순수하게 느껴진다 말한다.
고마코는 어쩌다 게이샤가 되었을까? 선생이라고 불리우는 여성은 게이샤였다.
기존에 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고마코를 양녀로 입양했다.
서로 약혼을 시키진 않았지만, 선생은 아들 유키오와 고마코를 결혼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내심 비췄나보다.
하지만 유키오와 고마코는 서로 남매처럼 자라왔고, 이성으로 보지 않았다.
유키오는 어릴때부터 몸이 안 좋았기 때문에, 병원비가 늘 필요했고 선생도 나이들어가며 몸이 안 좋아졌다.
고마코는 이 두사람을 돌보기 위해 가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게이샤가 되었고, 스폰도 받으며 집안의 생계를 유지해나갔다.
선생과 유키오가 죽고 나니, 요코가 남아있었다..
두 사람에게 해방되면 더 이상 게이샤를 안 하는게 목표였지만, 요코를 위해 그만 둘 수 없었다.
요코는 남동생이 하나 있고, 그 동생은 온천마을 기차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병든 유키오를 사랑했고, 그를 지고지순하게 간호했다.
하지만 유키오는 끝내 죽어버렸고, 그녀는 시마무라에게 도쿄로 데려달라는 부탁도 한다.
그녀는 고마코의 짐이 되고 싶지 않지만, 고마코 없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요코는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요코의 승천할 듯 멍한 얼굴이 늘어져 있었다. 고마코는 자신의 희생인지 형벌인지를 안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소리를 지르며 우르르 달려 나와, 두 사람을 에워쌌다.
"비텨요, 비켜 주세요!"
고마코의 외침이 시마무라에게 들렸다.
"이애가 미쳐요! 미쳐요!"
정신없이 울부짖는 고마코에게 다가가려다, 시마무라는 고마코로부터 요코를 받아 안으려는 사내들에 떼밀려 휘청거렸다. 발에 힘을 주며 올려다본 순간, 쏴아 하고 은하수가 시마무라 안으로 흘러드는 듯했다.
사랑이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새는 다양하다고 생각한다.
요코는 자신이 유키오를 돌봄으로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을 다 쏟아부었다고 생각한다고 느꼈다.
그런데 유키오의 죽음 이후, 더 이상 자신이 쏟아부을 대상을 잃었기 때문에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한게 아닐까?
고마코는 유키오와 선생이 죽고 나면, 게이샤를 그만 두고 자유롭게 훨훨 날아갈 예정이었는데,
그 자리에 남은 요코 때문에, 아예 그만두지도 못하고 또 보살펴야 했다.
'주는' 사랑에 익숙해진 요코였기 때문에, 자신이 스스로 쓸모없어졌다 느낀게 아니었을까?
더군다나 그 동네에서 일하고 있다는 남동생은 거의 만날 수가 없다...;;
양귀자의 <모순>이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쌍둥이인 엄마와 이모의 상반된 삶을 봤을 때, 더 살아가야 할 이유를 갖고 있는 사람은 엄마였다.
(물론, 요코가 부유한 것은 아니지만) <모순>의 이모처럼 자신의 쓸모를 느끼지 못했을 때 찾아오는 무력감을 버티지 못한게 아니었을까?
나는 요코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마무라의 태도가 너무 역겨웠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구경은 하고 싶고, 요코는 널부러져있고, 고마코는 울부짖도, 마을사람들은 소란스러운데..
시마무라는 이 모든걸 은하수의 아름다움과 하나의 배경으로 묶어 관조하고 있다.
우리는 헛수고를 하며 살아간다.
고마코가 아들의 약혼자, 요코가 아들의 새 애인, 그러나 아들이 얼마 못 가 죽는다면, 시마무라의 머리에는 또다시 헛수고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고마코가 약혼자로서의 약속을 끝까지 지킨 것도, 몸을 팔아서까지 요양시킨 것도 모두 헛수고가 아니고 무엇이랴.
고마코를 만나면 댓바람에 헛수고라고 한 방 먹일 생각을 하니, 새삼 시마무라에겐 어쩐지 그녀의 존재가 오히려 순수하게 느껴졌다.
시마무라가 말한게 사실은 헛수고가 맞다.
게이샤인 고마코는 매일 일기를 쓰는데 누가 봐주지도 않고, 책으로 출간되지도 못하는걸 뭐하러 열심히 쓰나...
그것 또한 헛수고라고 느낀다.
고마코는 시마무라를 진심으로 기다리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에게 열정을 다해 잘해준다.
하지만 시마무라는 본처와 이혼하고 고마코와 결혼할 생각은 없다.
이 열정이 헛수고라고 생각한다.
병이 들어 곧 죽을 유키오를 돌보는 요코를 보며, 이 또한 헛수고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 글에는 참 헛수고가 많다.
우리는 사랑을 하게 되면, 헛수고를 하게 된다. 나에게 되돌아오는 이득없이도 그냥 내가 좋자고 하는 마음.
오히려 시마무라는 헛수고를 경험하지 않는 살고 있어, 요코와 고마코가 더욱이 순수하게 보일 수 있다.
그는 작가로서 열정을 갖지 않아도 잘먹고 잘산다.
본처가 알아서 집을 돌봐주고 있으니, 본인은 여행다니면서 살아가면 된다.
헛수고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만큼 사랑이라는 것도 진심을 다해 해본 적이 없고, 그저 쉽게 쉽게 얻어가려고만 한다.
시마무라는 고마코와 오랜 시간을 보낸 어느 날, 자신이 고마코를 기다리고 있다는걸 알게됐다.
자신이 이 설국이라는 공간의 배경이 되어, 고마코를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내가 웬 헛수고 중일까?(내가 지금 고마코를 사랑하고 있었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그는 그 순간 어서 이 동네를 떠나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멀리서 봤을 땐 싸리꽃, 가까이 보니 억새
"억새라고요."하고 시마무라는 한 번 더 혼잣말하듯 중얼거리고는,
"그렇다면 산에 핀 건 억새군요. 싸리꽃인 줄 알았습니다."
시마무라가 기차에서 내리자 맨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이 산의 흰 꽃이었다. 경사가 가파른 산 중턱에서 정상 가까이 사방 가득 흐드러지게 피어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산 위에 쏟아져 내리는 가을 햇살을 방불케 해, 아아, 하고 감동에 젖었던 것이다. 그걸 흰싸리로 알았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는 억새의 거칠고 사나워 보이는 모습은 먼산을 우러르는 감상의 꽃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큼직한 다발은 그것을 지고 가는 여자들의 모습을 완전히 가린 채, 언덕길 양쪽 절벽 위에서 부스럭부스럭 소리를 냈다. 억센 이삭이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서 뽑은 문장을 가져왔다.
시마무라는 기차에서 바라본 설국의 풍경을 보고, 하얀 꽃이 싸리꽃인줄 알았다.
멀리서 봤을 땐,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배경의 일부로써 제 역할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싸리꽃이 아니었고 거칠고 사나운 억새였다.
요코와 고마코 역시 멀리서 봤을 때는 이 설국의 일부인 아름다운 여성들일 뿐이었다.
그들 삶 내면에는 억새와도 마찬가지로 거칠고 상처투성이인 내면의 고통이 존재한다.
그 내면을 면밀히 들여다보길 원하면서도, 그들과 같은 배경의 일부가 되길 꺼리는 시마무라의 태도가 낯설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관조하면서도, 내가 같이 엮이고 싶지 않은 마음 누구나 가져봤을테니.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일본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잘 묘사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배경만 봤을 때는 시마무라의 힐링 공간으로 비춰질 수 있을 법 하다.
하지만 그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를 바라보면 저마다의 드라마가 펼쳐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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