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안녕이라 그랬어> | 지금 내가 살아있는 것이 참 기쁘다

2025. 11. 6. 16:44그냥,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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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김애란 작가님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2년 전에, <비행운><바깥은 여름>을 읽었을 때만 하더라도 너무 현실을 리얼하게 보여줘서 그런지 너무 우울했다. 

그냥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일인데, 그냥 문학 작품에서 가난과 결핍을 마주하는게 그렇게 달갑지 않았던 것 같다. 

근데 참 사람 환경이라는게 신기하다.

내가 분명 2년 전까지만 해도, 결혼 생각이 없는 자유로운 30대 초반이었을 때는 이 책들이 우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2년 후, 결혼도 하고 나이도 2살이나 더 먹어서 그런지... 남일같지 않았다...ㅠㅠ

마치 내 미래같기도 하고, 앞으로 내가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할지, 이해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 

다 자신한테 맞는 책을 만나는 시기가 있는 것 같다.

 

처음 <안녕이라 그랬어>홈 파티를 읽은 후, 아... 김애란 작가 이런 사람이었어? 라는 의문을 품게 됐어.

홈파티에서 너무 세련되고 우아하게 사람들의 미묘한 감정선을 그려냈다. 

그래서 아, 안되겠다.. <바깥은 여름> 한 번 읽어보자. 

<바깥은 여름>의 첫 단편, 입동을 읽고 거의 오열을 했지 뭐람....

2년 전에 나는 살짝 소시오패스였을까?ㅋㅋㅋㅋ 

아이를 잃은 것에 대해 안타깝긴 했지만, 딱히 별 감흥이 없었던 것 같다. 

부부 둘이서 알콩달콩 잘 살면 되는게 아닐까? 라고 아주 심플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나랑 상관이 없는 얘기처럼 느껴져서 그랬겠지 뭐..

 

김애란 작가가 40대의 나이에서 바라본 리얼 40대들의 이야기를 담은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으면서,

슬슬 40대가 남일 같지 않은 내 나이가 보기에 아주 흥미진진했다고 볼 수 있다. 

 

총 7편의 단편 중, 나는 홈 파티, 숲속 작은 집, 이물감, 안녕이라 그랬어 이렇게 4편만 후기를 남기려 한다. 

 

홈 파티

 

유명하지만 부유하지는 않은 배우 이연이 최고경영자들이 모이는 홈 파티에 초대받았다. 오, 김, 박, 서는 한 회사의 최고경영자이며 부유한 삶을 살고 있다. 이연의 후배 성민이 이연을 데리고 홈 파티에 참여했다. 성민 또한 자신의 비즈니스를 갖추고 있지만 “하객 조문객 대행업체”를 하는 것은 이 모임의 격을 떨어뜨릴까 비밀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을 나타내는 것은 집안, 재산, 명예를 고루 갖추고 있느냐다. 이연은 이들을 바라보며 다음 오디션에 준비할 “화장품 제조업체, 오십대 여성 임원”의 캐릭터를 연구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지만, 홈 파티를 있는 그대로 즐기려고 노력을 했다. 

 

상대에게 직접 가하는 힘이라기보다 스스로를 향한 통제력이라 할까, 오랜 시간 ‘판단’과 ‘선택’이 몸에 밴 이들이 뿜어내는 단단하고 날렵한 기운이었다. 얼핏 사람 좋아 보이는 박도 마찬가지였다. 이연은 자신이 대상을 편견 없이 대하는 태도에 작은 만족을 느꼈다. 타고난 성정이라기보다 수양의 결과였다. ‘어렸을 땐 정말 타인을 시시콜콜 판정했는데……’ 지난 세월, 시간의 물살에 깎이고 깨지며 둥글어진 마음이 있었다. 실제로 이십여 년간 이연이 여러 인물에게 자신의 몸을 빌려주며 깨달은 사실은 단순했다. 그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라는 거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오해와 갈등이, 드라마가 생겼다. 최근 들어 배역 스펙트럼이 점점 좁아짐에도 불구하고 이연은 배우로서 지금 제 나이와 경험이 싫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이연은 인간을 더 연민하게 됐으니까. 이연은 그리스신화 속 영웅이나 현대의 범인 못지않게 ‘그 나머지’ 사람들을 애정하게 되었다. 자신을 이기지 못하는 이들을, 실수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는 자들을, 변명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나약한 이들을 깊이 응시하게 되었다. 우선 이연부터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연은 착한 사람보다 성숙한 사람에게 더 끌렸다.

 

이연은 다른 사람들에게 빙의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만큼 다른 사람을 분석하는 기만적인 생각을 하지만, 나름 편견없이 비라보고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게 꼭 그 아이들이 철없거나 허영심이 세거나 금융 문맹이어서가 아니라요, 제 생각에는…… 밥은 남이 안 보는 데서 혼자 먹거나 거를 수 있지만 옷은 그럴 수 없으니까, 그나마 그게 가장 잘 가릴 수 있는 가난이라 그런 것 같아요, 가방으로.

 

슬슬 술을 마시면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들 눈엔 배우치고 소탈한 이연이 돈과 빽도 없지만 우리가 같이 시간을 보내주는 것처럼 우위에 있는 양 말한다. 이연 뿐만 아니라 성민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새로운 관점을 봐야 한다며 젊고 가난한 친구들을 불러 앉혀 놓고 자신들의 우월함을 과시한다. 

 

이연은 성민에게 천만 원을 빌렸는데 오백도 겨우 갚고 나머지 오백은 아직 갚지 못했다. 근데 이 자리의 안주거리는 고아원에서 나온 아이들이 받은 오백이었다. 그 돈으로 주식을 하라는 둥, 생활비로 쓰라는 둥, 가르치려 든다. 명품백을 사는 아이들을 한심하게 여기고, 주식의 주 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주식을 들여다 보는걸 비웃는다. 

 

이연의 일침에 부끄러울 뻔 했지만, 이연이 오대표가 아끼는 컵을 깨뜨렸다. 오대표는 ‘내가 관대하게 너 용서해줄게~’, 돈 없는 이연을 구차하게 만들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김애란의 글은 <바깥은 여름>, <비행운>처럼 내가 외면해왔던 진짜 소외의 이야기들을 하이퍼리얼리즘으로 표현해 읽는 내내 불편하게 만들었다. 첫 번째 단편 <홈 파티>에서 여전히 자본 계급주의 사회에서 비위를 맞추려는 자와 우위에 서려는 자의 긴장감을 통해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마지막에 이연의 의연한 맞대응이 소박할지언정 승리같이 느껴졌다. 

 

이연은 이 상황을 고아원을 졸업한 아이들이 산 명품가방같은 연막을 썼다고 생각한다. 밥을 혼자 먹더라도 남들 눈에는 진짜 명품 가방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싶은 그 아이들을 대변하듯, 선민의식을 가진 오 대표의 관대함을 (속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아하게 맞대응한 결말이 좋아서 응원하게 됐다.

 

이번 파티 이후, 성민은 참여하게 될까? 이연은 오디션으로 성공한 여성임원의 역할을 따게 될까? , , , 대표들은 어떤 희생양을 데려와 자신의 우월감을 으스댈까?

 

 

 

숲속 작은 집

 

가난과 결핍으로 자란 어른은 매순간에도 불안함과 열등감을 갖게 된다. 주인공은 과부가 된 어머니 밑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자수성가한 케이스다. 하지만 남편은 꽤 부유한 집에서 자랐고, 현재도 부모 덕으로 살아가고 있다. 자수성가했던 주인공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직을 당해버렸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그동안 꿈꿔왔던 치앙마이 한 달 살기를 떠났다. 

 

지호에게는 뭐랄까, 어려서부터 몸에 밴 귀족적 천진함이 있었다. 남으면 버리고, 없으면 사고, 늦으면 택시 타는 식으로 오래 살아온 사람이 가진 무심한 순진함이. 학부 땐 그게 귀엽고 가끔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당당해 보여 끌렸는데, 결혼 후 같이 살다보니 결코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이번 여행 계획을 세우며 내가 예산을 맞추려 전전긍긍할 때도 지호는 “그냥 대충대충 해. 별 차이 없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별 차이’에 대한 감각이 지호와 나의 큰 차이였다

 

 사실 남들 하는거 다 해보고 싶었던 주인공이지만, 주인공은 한편으론 어린 시절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과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남편 또한 이해하기 어려웠다. 뭐든 심플한 남편을 보면서 "귀족적 천진함"이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주인공은 무엇 하나 선택할 때에도 다 "돈"이기 때문에 실행에 제한이 늘 있었다. 

 

 이렇게 치앙마이 한 달 살기(물론 작품에선 정확한 지명은 나오지 않았고, 나의 예상ㅋㅋ..)를 하는 동안에도 철저하게 예산을 맞추려고 노력했던 주인공과 달리 남편 지호는 대충대충 하라는게 답답했을 것이다. 한편으론 주인공이 이런 남편을 만났기에 그나마 남들에 비해 밸런스라도 맞추면서 살아갈 수 있던게 아닐까? 

 

 돈에 예민한 주인공에게 치앙마이 한 달 살기 중 난관에 봉착했다. 그것은 바로 룸 청소를 해주는 "메이드"에게 팁 주는 것이었다. 주인공의 마음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뭔가 지호가 메이드라고 부르는 것 자체를 엄청 불쾌하게 여긴다. 한 여성을 비하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어린 날의 어머니가 가정부 일을 하면서 자신을 입고 먹이셨기 때문에 감정이입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메이드가 팁을 안 주니 냉랭한 표정을 한게 마음에 걸려, 어떻게든 팁을 주려고 Thank you도 쓰고, 그 나라 언어로 "감사합니다"도 쓰고 안간힘을 쓴다. 그렇게 팁을 주다보니 팁의 양이 적으면 왠지 청소를 덜 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느 날, 자신이 나름 비싼 돈을 주고 산 기념품이 깨져있는 것을 보고 너무 괘씸해 동전들만 수북히 쌓은 팁을 주고 나온다. 떠나려는 찰나, 메이드의 어린 딸이 와서 기념품과 함께 편지를 남겼다. 그 내용은 본인이 깨뜨려서 너무 미안하고, 엄마를 탓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이었다. 

 

평소에도 여러 번 들은, 눈 깜짝할 사이 폭삭 늙어버린 엄마가 내게 보낸 ‘고맙다’는 문자를 보자, 이상하게 그 말을 받은 게 아니라 언젠가 내가 상대에게 준 무언가를, 아니 오랜 시간 상대가 내게 주었다 생각한 무언가를 도로 빼앗은 기분이 들었다.

 

 이 글에는 "고맙다"라는 말의 본질과 변질에 대해 다루고 있다. 우리는 분명 정말 "고마운 마음"인 본질으로부터 시작을 한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마음으로 시작하더라도 고마운 마음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그 보답의 행위가 계속 될 때, 상대방이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갑자기 머리가 차가워지면서 내가 왜 이런 대접을 하는거지?라면서 곱씹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은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는 고생을 많이 하시며 어린 딸을 키워냈다. 그렇게 다 키워내고 나니 몸이 안 좋아졌다. 딸은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을 갚기 위해 다달이 용돈을 보내드렸다. 하지만 꾸준히 들어오는 용돈에 익숙해진 엄마는 그 용돈 없이 생활이 안되는 지경이 이르렀다. 딸에게 아무리 미안해도 그 용돈을 계속 받아야 하는 엄마의 민망스러운 문자에 짜증이 난다. 심지어 주인공은 실업한지라 실업급여로 버티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이곳에서만 고맙다는 말을 세 번이나 들었는데 가슴이 왜 이렇게 휑한지 모르겠다고.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택시가 고속도로 위를 빠르게 빠져나갔다.

 

 그렇게 엄마에게 돈을 입금하고, 고맙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너무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한편으로는 '결핍'이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일회성인 감사는 주고받기 적절하지만, 우리 삶에 꼭 일회성으로 끝나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 주인공 남편인 "아주 심플한" 지호는 계속 되는 호의를 당연하게 여기는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거침없이 손절칠 것 같다.

ㅋㅋㅋㅋ 워낙 심플하니까 그럴 수도?

주인공은 그렇게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호의에 불편함을 느끼지만, 또 맘은 약해서 호의를 꾸준히 베풀게 된다. 

 

아, 그냥 내 얘기같고 막 그래...

그냥 나만 알고 싶은 내 마음을 너무 적나라하게 들켜버린 기분이었다. 

 

 

이물감

 

와, 나는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이 <안녕이라 그랬어>에서 2번째로 흥미롭게 읽었던 단편이었다. 1등은 단연 홈 파티지.

 

나이들어도 세상 소식에 귀를 열어두고,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으면 주변에 크게 폐 끼치는 존재는 되지 않으리라 과신했다. 실제로 기태의 젊은 시절 꿈은 훌륭한 어른은 못 돼도 산뜻한 중년은 되는 거였다. 청결한 옷을 입고, 타인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젊은 세대를 지지하고, 주변에 해가 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 긴 시간이 지나 기태가 진심으로 놀란 건 자신이 어쩌면 그렇게 자신할 수 있었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기태는 자신을 둘러싼 좌표는 그대로되 ‘나’라는 점만 이동하리라 착각했었다. 점과 더불어 좌표도 같이 움직이는데다 다른 그래프와 충돌하며 곡선과 직선이 찌그러지고 휠 거라 예상 못한 까닭이었다. 물론 나이들어 좋은 점도 있었다. 젊은 시절 여기저기 빵가루처럼 지저분하게 흘리고 다닌 말과 마음들, 담백하지 못한 처신들, 쉽게 흥분하거나 화를 낸 뒤 엄습한 부끄러움 같은 건 이제 많이 줄었으니까. 경험이 많다는 건 ‘경험을 해석했던 경험’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냄새는, 헛구역질이나 트림은 ‘해석’이나 ‘의지’로 잘 막아지지가 않았다. 문제는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거였다. 기태는 자신이 늙음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안다 믿었던 것조차 실은 아는 게 아니었음을 새삼 실감했다. 그러니 앞으로 남은 삶은 또 얼마나 혹독할까?

 

주인공 기태는 은행원이라는 타이틀 답게 남들이 만들어놓은 틀 안에서 나이먹고 싶은 중년이다.

뱃살 없는 젠틀한 중년을 꿈을 꿨는데, 이혼을 한 뒤 남들과는 다른 선상 위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나름 사내연애를 하다가, 한 은행에서 직급까지 달면서 일해온 평범하고 멋진 중년남성이 되고 싶었지만

이혼 이후, 평판이 완전히 무너졌을 것이다. 근데 중요한 것은 아무도 기태에 대해 깊게 생각 안 했을거다. 

그냥 스스로 느끼는 자격지심.

 

기태는 ‘아! 앞으로 나는 부하 직원들에게 존중받는 은따, 대우받는 꼰대가 되겠구나’ 자책했다. 그렇지만 그날 기태를 괴롭힌 건 자신이 실언했단 사실이 아니었다. 기태가 진정 후회하는 건 그 순간 자신이 굳이 ‘진심’을 말했다는 거였다. 

 

 

기태 진짜 미친거 아니야?ㅋㅋㅋㅋㅋㅋ

솔직히 나는 이 말에 공감이 가면서도 너무 심연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내 생각을 남들이 다 이해해줄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데, 굳이 '진심'을 말해버려 내 평판에 스크래치가 간게 얼마나 후회스러운지ㅋㅋㅋㅋ 다들 이런 경험 있지 않을까?

 

예전에 원더걸스 예은이 나갔던 어떤 예능에서, 일반인 남자가 "여기 페미 있나요?"

그래서 예은이 당당하게, "저 페미인데요?",

모든 여자들이 예은과 같은 선상에 서기 싫어서 "전 페미 아닌데요." 라고 손절쳤던게 생각난다. 

솔직히 예은도 이 여성들이 이렇게 배신 때릴 줄 모르고 저렇게 진심을 말해버린 것에 열받지 않았을까?

아 솔직히 말해서 "페미니즘"이 뭔데요... 그렇게 다들 무서워하시나요?!?!??

내가 거기 있었다면 예은 편 들어주고 싶다................. 

 

아무리 좋은 신발과 가방을 찍어도 은연중 드러나기 마련인 벽지와 장판, 싱크대, 이불 등 계급의 표지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생활에 얼룩이 있어도 잘 감추거나 애초에 숨길 게 별로 없는 사람 같았다. 

 

자신이 누군가의 도마 위에서 난도질 당하고 싶지 않은 맘이 강렬한 마음은, 

사실 본인에게서 오는 마음이라 볼 수 있다. 왜냐... 기태는 타인을 보면서 급을 나누고 계산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이지~ 라는 말이 어릴 때는 그냥 비유인줄 알았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이렇게 정확한 말도 없다. 

 

하여튼 얼마전에 유튜브로 <안녕이라 그랬어>의 해석을 보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왜 제목이 이물질일까? 기태는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위산이 올라와 계속 목에서 이물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 말은 기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계속 과거를 회상하며 이혼한 전처를 그리워하고 있다.

즉,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에서 역행하고 있는 기태의 모습을 역류성 식도염으로 표현했다고 본다. 

 

나는 참 이물감이라는 작품을 흥미롭게 읽었다.

우리 주변에서 이렇게 겉모습이 젠틀하지만 속에서는 선입견으로 가득차있는 40대의 심연을 알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다. 

알 만큼 아는 나이, 낄끼빠빠 좀 해야 하는 나이, 아직 청춘으로 남고 싶은 나이, 배울만큼 배운 나이, 하지만 체력은 안 따라주는 나이,... 

아 내 미래잖아ㅠ

 

하여튼 기태에게 할 말이 있다.

너 살짝.. 영 포티 같아...!

 

안녕이라 그랬어

 

이런게 바로 어른들의 사랑이지 않을까? (가난과 결핍을 곁들인..)

주인공 에이미는 화상으로 로버트라는 60대 남성에게 영어 수업을 듣는다. 

그녀는 어머니 병간호를 하기 위해 퇴사를 했고, 몇 년 동안의 병간호 이후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그녀의 나이와 경력을 감안할 정도로 세상은 따뜻하지 않았고, 그녀는 일자리를 구해야겠다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영어 수업을 듣게 된 것이다. 

로버트와 서로 화상 수업을 하는 동안 서로 미묘한 텐션을 주고 받기도 했다. 

어느 날 에이미는 로버트에게 더 이상 수업을 듣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 날 두 사람은 서로 숨겨왔던 진실을 말한다. 

 

‘하나 마나 한 말’을 최대한 진심어리게 하는 것도 어른의 화법일 텐데, 누군가의 부고와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가 가진 표현의 한계와 상투성에 어쩔 줄 몰라했다. 상투성이 뭐 어때서. 세상에 삶만큼 죽음만큼 상투적인 게 또 어디 있다고. 그 ‘반복’의 무게에 머리 숙이는 게 결국 예의 아니던가. 그런데 그날 로버트는 웬일인지 지나가듯 사적인 이야기를 내게 털어놨다.

 

수업 중 로버트의 아버지가 상을 당했는데, 에이미는 상투적인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에이미가 수 년동안 어머니 병간호를 했지만, 어머니를 정말 사랑해서 그런건 아니다. 그냥 그래야했기에 했던 것이다.

항상 드라마처럼 좋은 자식과 부모 관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로버트 또한 추후에 진실을 말할 때, 돌아가신 아버지는 친부도 아닐뿐더러 좋은 어른도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깊게 들어가면 사람들마다 사정이 각기 다르지만, 언제나 우리는 상투적으로 타인을 대한다. 

특히 죽음 앞에서는 더욱이나 상투적일 수밖에 없다. 탄생과 죽음, 과정이 어찌됐든 그 삶이 처음과 종착이나 마찬가지다.

에이미와 로버트는 아마 그런 부분에서 서로 통했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진부한 위로를 건네는 것은 너무 상투적일지언정, 그들은 끝내 예의를 지키고 존중했던 것이다. 

 

헌수는 내게 두서없는 말을 늘어놓다 엉뚱하게도 우리가 〈러브 허츠〉를 들은 날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사과했다. “만약 지금 너를 다시 만난다면 네가 틀렸다고, 이건 ‘안녕’이 아니라 ‘암 영’이라고 고쳐주는 대신 그래, 가만 들어보니 그렇게도 들리는 것 같다고, 콘크리트 보도에 핀 민들레마냥 팝송 안에 작게 박힌 한국어, 단순하고 오래된 ‘안녕’이란 말이 참 예쁘고 서글프다 해줄 텐데”라며 작게 훌쩍였다. 그러곤 그런 스스로가 창피했는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바로 전남친 헌수랑 같이 러브 허츠라는 노래를 듣고, 에이미가 분명 외국 노래인데 "안녕이라 그랬어"라며 흥분을 했다. 

알고보니 암 영(I'm young)이었던 것이다. 헌수는 그걸 콕 집어내 틀린 것을 지적했던 것이다.

헌수는 훗날 사랑하는 사람이 기분좋게, 잠시나마 상투적이었을지언정 그렇게 들린다며 공감해줄걸 후회했다.

사랑도 삶의 일부를 차지하기 때문에, 어찌보면 상투성을 띄는 것이다.

 

헌수는 그렇게 따뜻한 말 한마디 못 해줬지만, 로버트와 에이미는 서로 따뜻한 말로 위로를 해줄 수 있는 사이가 된 것 같다. 

 

 

잠시 후 노래가 끝나자 헌수는 ‘왠지 ‘가지 말라’는 청보다 ‘보고 싶다’는 말보다 ‘너한테 배웠어, 정말 많이 배웠어’라는 가사가 더 슬프게 다가온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 것 같다며. ‘삶은 대체로 진부하지만 그 진부함의 어쩔 수 없음, 그 빤함, 그 통속, 그 속수무책까지 부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인생의 어두운 시기에 생각나는 건 결국 그 어떤 세련도 첨단도 아닌 그런 말들인 듯하다’고 했다. ‘쉽고 오래된 말, 다 안다 여긴 말, 그래서 자주 무시하고 싫증냈던 말들이 몸에 붙는 것 같다’고. 아직 ‘인생’을 얘기하기엔 좀 젊다 싶은 세 살 연하 애인에게 나는 장난스레 물었다.

—너는 그걸 누구한테 배웠어?

헌수는 어깨를 으쓱하며 농담하듯 받아쳤다.

—어린 시절 가난에게?

 

 

우리는 지난 관계를 통해, 지난 사랑을 통해 많이 배울 때가 많다. 

이렇게 에이미는 전남친 헌수를 잊고 로버트를 맞이할 준비가 된 것만 같다.

사랑이라는 것은 참 진부하지만, 각기 다른 이유로 늘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이 시작할 수 있다. 

 

자, 그렇게 끊긴 로버트의 전화....

에이미는 다시 전화할까요?

 


 

김애란 작가가 남긴 메세지
그래도 살아

 

 

 

“인생은 즐거운 것이다.

아니요.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참 기쁘다.

예.”

- 레몬케이크 중

 

 

김애란 작가는 우리 삶의 애환을 핍진성있게 그려내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정말 살기 싫은 지긋지긋한 현실 벗어나고 싶다 생각하는 사람들도 참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럼에도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늘 조심스레 글을 쓰는 것 같다.

죽음에는 연쇄작용이 뒤따른다. 나만 없어지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슬퍼하는 사람들도 따라오는 것이다.

<레몬케이크>에서 엄마의 질의응답에서 알 수 있듯이 삶이 재미가 없더라도, 아직 우리는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빗방울처럼>을 읽다보면, 살고 싶은 희망이 없더라도 내 주변에 아무도 남은 것 같지 않더라도 말이다. 

모든 이웃들이 내 숨소리 하나 듣겠다고 일을 벌인다.

나는 김애란 작가가 괴로운 40대 삶의 애환을 깊게 그려내는 것도 모자라, 그 안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자꾸 전달하는 것 같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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