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16. 12:54ㆍ그냥, 책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라는 책들을 추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궁금하던 찰나,
비행기를 타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발견했다.
(물론 이때는 원작을 읽지 않았지만) 원작처돌이한테 너무 유혹적인 영화 아니야..?ㅋㅋㅋㅋ
하와이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영화 2번을 돌려 봤고, 집에 도착해 책을 2번 읽었다.
처음에 영화를 보면서 많은 대사를 담고 있지 않은 이 작품에서 감정선을 따라가는데 애를 먹었는데,
마지막에 "막달레나 세탁소"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고 언급해서 나는 갑자기...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뭔가 수상쩍은 수녀원이었는데, "막달레나 세탁소"의 실화를 담은 내용이었다니!
너무 궁금해서 기내 와이파이 2시간이나 구매해서 원작 책을 사고, 위키백과로 검색까지 열심히 했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리뷰
전혀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읽어서 그런지, 펄롱씨의 중년의 위기가 납득이 가지 않았다.
크리스마스는 매년 돌아올테고, 수녀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을텐데..
왜 갑자기 이번 크리스마스에서 유난히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아버지를 찾고 싶어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우리 가족 괜찮은지 물어보는 질문도 애매모호하고..
영화를 2번 돌려봤는데도 여전히 알 수 없는 감정선이 있었는데, 이건 분명히 원작을 읽어야 해소가 되는 부분이었다!
내가 킬리언 머피의 작품을 많이 안 봤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 사람 목소리 톤, 표정.. 등을 담은 연기 내공이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됐지 뭐람..
계속 고뇌에 빠져있고,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느껴지는 복잡하고 암담한 표정이 계속 되었는데,
마지막 수녀원에서 세라를 집으로 데려올 때, 극 중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그 표정이 너무 따스해서 더 잊을 수 없었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은 하나다.
원작을 읽고,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영화 자체만 따라가기엔 놓쳐버리는 서사들이 많았다.
원작 <이처럼 사소한 것들> 리뷰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고 미묘하게 암시한다. 두 번 읽어야 알 수 있는 것들, 아니 세 번, 네 번 읽었을 때야 눈에 들어온 것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번역을 하기 위해 이 책을 무수히 읽으면서 내가 알게 된 것을 번역에 설명하듯 담지는 않으려고 애썼다. 그랬다가는 클레어 키건이 의도한 대로 삼가고 억누름으로써 깊은 진동과 은근한 여운을 남기는 글이 되지 못할 터였다. 그래서 독자들도 이 책은 천천히, 가능하다면 두 번 읽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얼핏 보아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1130646382
이 책도 또한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는 책이었다.
명확하게 어떤 것들을 고발하고 싶은지, 이 과거가 이렇게 단순하게 묻히면 안된다던지 어떤 정의를 불타오르게 만드는 책은 아니었다.
빌 펄롱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 날의 역사를 간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작가가 천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빌 펄롱은 그저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만약 빌 펄롱이라는 인물이 정의에 불타오르는 캐릭터였다면, 진작에 그 동네에서 뭔 일을 저질렀어야 했다.
하지만 딸 자식 5명을 갖고 있는 중년의 사내가 갑자기 문득 지난 날을 회상하며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자신을 거둬준 미시즈 윌슨의 자비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고,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유난히 궁금해 한다.
수녀원에서의 악행은 오랜 시간동안 벌어졌는데, 그 동네 토박이였던 빌 펄롱이 그걸 모를리가 없었다.
근데 유난히 이번 크리스마스에서 이 수녀원에 있는 여자들이 눈에 밟혀 발이 안 떨어지는 것이다.
대가를 치르게 될 테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갓난 딸들을 처음 품에 안고 우렁차고 고집스러운 울음을 들었을 때조차도.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결국 그곳에 가고 말았을 것이다. 더 옛날이었다면, 펄롱이 구하고 있는 이가 자기 어머니였을 수도 있었다. 이걸 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펄롱이 어떻게 되었을지, 어떻게 살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1130646382
이런 빌 펄롱이 어떤 결심을 하는데엔 이웃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크리스마스의 힘이 큰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을까?
독자들 중에 그냥 평범하게 "오늘도 무사히"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오히려 대단한 선행보다는 그저 오늘 안전한 하루를 보내는 것을 더 선호할 수 있다.
빌 펄롱도 사실은 안정형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번에 세라를 데리고 집에 데려온 우발적인 선행은 누군가에겐 잊을 수 없는 친절로 기억되어 그 힘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도 이번 크리스마스엔 어떤 우발적인 선행으로 잊을 수 없는 기쁨을 누려보라는 그런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빌 펄롱의 친부는 누구?
거의 반 시간 정도, 어쩌면 더 오래 그렇게 앉아서 여자가 한 말, 닮았다는 말을 곱씹어 보며 생각 속에서 불을 지폈다. 생판 남을 통해서 알게 되다니.
(...)
펄롱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네드가 심히 힘들어했던 것, 어머니와 네드가 늘 같이 미사에 가고 같이 식사하고 밤늦은 시간까지 불가에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던 것을 생각하며 그게 무슨 의미일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펄롱으로 하여금 자기가 더 나은 혈통 출신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서, 그 세월 내내 펄롱의 곁에서 변함없이 지켜보았던 네드의 행동이, 바로 나날의 은총이 아니었나. 펄롱의 구두를 닦아주고 구두끈을 매주고 첫 면도기를 사주고 면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사람이다. 왜 가장 가까이 있는 게 가장 보기 어려운 걸까?
"이처럼 사소한 것들"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1130646382
네드와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새삼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네드였다니... 그렇게 평생 곁을 지켜준 이가 친부였다니...
네드는 왜 자신이 아버지가 되길 자처하지 않았을까?
내 생각이지만, 네드의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처럼 누군가의 일꾼이 아닌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길 바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고 하지만, 미시즈 윌슨 아래서 좋은 교육을 받으면서, 좋은 취향을 익히고 살아가길 바랐을 것이다.
미혼모의 자식으로 학교에서 친구들이 침을 뱉고 괴롭히기도 했지만, 결국 미시즈 윌슨 덕분에 좋은 학교에 가지 않았나.
미시즈 윌슨 덕분에 좋은 책들을 많이 읽을 수 있었고, 학업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만약 네드의 자식이었다면, 아버지를 따라 일손을 도와야 했을테고, 학교는 다닐 수 있었을라나 모르겠다.
생부가 누군지 찾으면서 동시에 이웃의 배려들이 느껴졌을 것이다.
윌슨 가에 살고 있는 여성은 빌 펄롱을 보자마자 네드의 조카라고 생각할 정도로 둘은 닮아있었다.
중년이 될 때까지 네드와 자신이 닮았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지만, 많은 이웃들은 이미 알았을 것이다.
그들은 끝내 네드가 지켜주고 싶었던 진실을 숨겨주었다.
이렇게 미시즈 윌슨 뿐만 아니라 많은 이웃들에게 받은 사랑을 베풀 때가 온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세라를 데리러 갔겠지.
다시 읽으니 보이는 것들 : 검은 색 그리고 계급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 북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가다가 부두를 따라 흩어졌고, 곧 흑맥주처럼 검은 배로Barrow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1130646382
먼저, 이 글에서는 참 검은색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검은 배로Barrow강, 까마귀, 석탄, ... 등 검은 것들이 계속 등장한다.
주인공 빌 펄롱은 석탄 사업을 하느라 매일같이 배달해서 손과 얼굴이 매일 까만 색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집에 오면 검댕을 지우기 위해 항상 손을 깨끗이 씻고, 세수를 한다.
훗날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내에게 줄 에나벨 구두를 사러 갔다. 상점 주인은 빌 펄롱의 손님이었지만, 이번엔 빌 펄롱이 손님으로 갔다.
상점 주인은 뭔가 불쾌한 듯한 뉘앙스를 풍기지만 그래도 꿋꿋이 구두 포장을 예쁘게 해줬다.
“원장님, 저희 때문에 바닥에 발자국이 남았습니다.” 펄롱은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수녀원장이 말했다. “더러움이 있는 곳에 복도 있다는 말도 있죠.”
(사실 많은 포스팅에서 막달레나 세탁소의 악행을 이야기했기 때문에 나는 굳이 언급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막달레나 수녀원은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군대, 병원, 호텔 등에 아주 깨끗하게 세탁한 침구, 의류, ...등을 납품하는 사업을 했다.
하지만 그 사업은 미혼모인 여자들, 까진 여자들, 가난한 여자들,... 등을 데려다 노예처럼 부려먹는 것이다.
그렇게 깨끗한 세탁소를 운영하는 수녀원이었지만, 결국 검댕이 묻은 빌 펄롱보다 더럽다.
뿐만 아니라, 이 글에서는 보이지 않는 계급 사회가 존재한다.
빌 펄롱도 어엿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사장님인데, 석탄을 다루는 지저분하게 보이는 일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아랫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수녀원들이 많은 부자들과 결탁해서 연결고리를 만들고 있는데, 빌 펄롱은 오히려 돈을 주면서 자선을 제공하는 격이다.
수녀원에서 세탁 노역을 하고 있는 소녀들을 보고 집에 돌아온 빌 펄롱.
따스한 집에서 하하호호 행복하게 웃는 딸들을 보며 여러가지 복잡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 친구들은 무슨 죄가 있어서 크리스마스를 즐기지 못하고, 청춘을 다 빼앗기고 있는지..
그리고 딸들도 자칫 수녀들의 눈에 띄게 된다면 막달레나 수녀원으로 끌려갈 수도 있다는 불안감.. 등의 감정이 겹칠 것이다.
특히 큰 딸에게 장난치는 남자애들을 보며 불안한 마음이 더 증폭됐을 수도 있다.
좋은 사람들이 있지, 펄롱은 차를 몰고 시내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주고받는 것을 적절하게 맞추어 균형 잡을 줄 알아야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사람들하고 잘 지낼 수 있단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특권임을 알았고 왜 어떤 집에서 받은 사탕 따위 선물을 다른 더 가난한 집 사람들에게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러듯 크리스마스는 사람들한테서 가장 좋은 면과 가장 나쁜 면 둘 다를 끌어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1130646382
크리스마스 때는 늘 자선을 하자면서 모금도 하고 사람들을 돕자는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 이 기념일은 즈그들끼리 즐기는 축제다.
더 가난한 집에 베풀지 않고, 같은 위치의 사람들끼리 서로 물건을 주고 받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런 균형 때문에, 막달레나 수녀원에서 노역을 하고 있는 소녀들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괜히 이런 균형을 깨뜨리면 자신들의 삶에 어떤 불편한 영향이 올까 두려웠던 것일 수 있다.
아, 이 책을 읽으면서 "위선도 선이다."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가식을 떨든, 모순을 보이든, 계속 위선적으로 보일지라도 그것이 누군가를 위한 선행이라면 계속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빌 펄롱은 건실한 가정과 회사를 만들고도 마음놓고 기쁨을 누릴 수 없었다.
우리가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기쁨은 서로를 돕느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크리스마스가 되면 한 번 더 읽어보아야 하는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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