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냥, 책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에리히 프롬,

반응형

독서기간 (23.1.2.~1.18.)

개인적인 평가

  • 몰입도는요?: ★
  • 다시 읽을 의향 있나요? ★
  • 주변사람에게 추천할만한가? ★
  • 작가의 다른 작품 찾아 읽을 의사? ★★

 에리히 프롬의 책은 지금까지 <사랑의 기술>,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자기를 위한 인간>, <자유로부터의 도피> 그리고 이 책인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를 읽어보았다. <사랑의 기술>이 쌓아올린 작은 공이 이렇게 에리히 프롬을 거의 6개월 내내 읽게 하다니... 전부 읽다 보니 에리히 프롬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현대인들이 갖게 되는 자유의 의미와 자아는 내가 의식하는 뿌리에서 시작한다는 말인 것 같다. 그리고 그것들을 의식하는 뿌리의 역할은 사랑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유난히 자유, 자아, 사랑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사실 이론적인 이야기를 할 때 굉장히 지루했고, <사랑의 기술> 외에 모든 책들이 같은 이론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사실 너무 내 상황과 동떨어진 이론들은 잘 와닿지 않았고, 심리학적으로 전문적으로 분석한 것은 지루했다. 하지만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본질은 알 수 있었다. 삶을 살아갈 때, 자신을 자각하면서 살아가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자유의 의미도 나의 상황, 관습, 문화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진정한 자유의 의미는 나의 의지로 찾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나의 자아 확립이 서 있고, 훈련이 잘 되어 있다면 삶을 사랑하는 것 또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당장 그렇게 살 순 없다. 늘 어제보다 나은 삶을 지향하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작가는 마지막 파트에서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 위해서 듣고, 보고, 명상하고 나를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말한다. 나는 일부의 나를 사랑하지만, 일부의 나는 사랑하지 않는다. 나의 모든 것들을 사랑하기 위해 오늘도 연습 중이다. 

 


1.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사람, 식물, 동물 또는 어떠한 객체를 사랑하든지 기본 원칙이 있다. 내 사랑이 적절하고 상대의 욕망과 본성에 맞을 때만 나는 사랑할 수 있다. 식물이, 동물이, 아이가, 남편이, 아내가 뭘 필요로 하는지 모르고 무엇이 상대에게 최선인지 정한 내 선입견과 상대를 통제하려는 욕망을 버릴 수 없다면 내 사랑은 파괴적이다. 나의 욕구의 크기를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폭력과 달리 사랑은 인내를 전제로 한다. 내적 노력을, 무엇보다 용기를 전제로 한다. 사랑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실망을 참고 견딜 용기, 일이 잘못되어도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겠다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요시하는 문화에서는 삶을 사랑하는 자세를 경험하기 힘들다. 우리가 삶을 사랑한다면 삶의 과정이, 다시 말해 변하고 성장하며 발전하고 더 자각하며 깨어나는 과정이 그 어떤 기계적 실행이나 성과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2.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 19세기의 악덕

  • 권위주의, 맹복적 복종의 요구
  • 야만적인 착취
  • 성과 인종차별
  • 탐욕과 축재
  • 자기중심적 개인주의

▶ 현대의 과제

  • 19세기 이후 심화되어온 우리의 자세를 깨닫고 극복하는 것이다. 그 자세란 인간을 지성과 감성으로 가르는 것, 즉 사고와 감정의 분리다.
  • 창조적 인간이 되어 소비와 수용의 태도를 극복하는 것이다. 창조성은 세계를 인식하고 그 세계에 대답하는 자세다.

 

3. 이기심과 자기애

  이기심은 자기애와 동일한가? 아니면 오히려 자기애가 부족해서 생긴 것은 아닐까?

  • 자기관계와 대상관계의 일치
    •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 
    • 자신의 온전함과 유일함에 대한 존중, 자기애와 자신의 이해는 타인에 대한 존중 및 사랑, 타인의 이해와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
    • 자기애의 발견은 이웃 사랑의 발견
    • 사랑도 증오도 마찬가지여서 자신에게 향하는 감정과 타인에게 향하는 감정은 원칙적으로 분리할 수 없다.
  • 증오와 자기 증오
    • 반응적 증오 : 나의 삶, 안전, 이상 혹은 내가 사랑하고 동일시하는 타인이 공격당할 때 나타나는 증오 반응
    • 성격으로 인한 증오 : 성격 구조에 뿌리내린 증오 역시 어린 시절에 겪은 특정 경험에 대한 반응으로 생겨난다.
    • 증오: 항상 자기 자아의 바깥에 있는 대상의 파괴를 목표
    • 질투: 내 결핍을 건드리는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 행복할 줄 모르는 나의 무능함으로 생긴 고통을 제거하는 것을 목표
  • 사랑은 열정적 긍정
    • 사랑에 대한 잘못된 정의: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해 자기 행복을 희생하라고 강요하고, 그 희생으로 덕을 볼 사람한테 자아를 완전히 줘버리라고 강요한다. 
    • 사랑의 조건: 자유와 평등
      • 혼자서도 제정신을 유지하며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자아의 강인함과 독립성, 온전함을 갖추는 것이다. 
      • 자아가 불안하고 나약하면 자기 안의 뿌리를 내릴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다. 
    • 사랑은 '격정'이 아니라 자기 '대상'의 행복과 발전, 자유를 위해 매진하는 능동적 노력
  • 자기애와 이기심
    • 모든 형태의 중독이 그러하듯 이기심은 채어지지 않는다. 채워지지 않는 것은 끝없는 불만의 결과다. 탐욕은 밑 빠진 독이다. 인간은 욕망을 충족시키려 무한히 노력하다 지쳐 쓰러지지만 결코 만족에 이르지 못한다. 
    • 이기적인 사람과 나르시시스트는 타인에 대한 과도한 관심 및 과잉보호와 비교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의식적으로는 특별히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바로 그 사람에 대해 적개심을 품고 있다. 

 자신을 사랑하기를 멈춘 인간은 살해당해도, 죽어도 좋다는 마음을 갖는다. 문화마저 파시즘에 장악되지 않으려면 이기심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애가 없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개인이 형식적인 의미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인성 전체를 펼칠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자유는 인성의 일부가 나머지를 지배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양심이 본성을, 초자아가 이드를 지배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유란 인성의 통합을 말한다. 이렇게 온전해진 모든 가능성을 실제로 표현한다는 의미다. 

 

4. 창의적인 삶

  • 창의성 이란? 보고(혹은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대답하는 능력
    • 내 안에 존재하는 실제 힘으로, 응답의 능력을 갖춘 온 힘으로 응답한다면 그 대상은 대상이기를 멈춘다. 나는 그것과 하나가 되며, 더 이상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다. 나는 그것의 재판관이기를 멈춘다. 이런 식의 응답을 보는 자와 보는 대상, 관찰자와 관찰 대상이 둘이면서 동시에 하나가 되는 완벽한 관계 맺음의 상황에서 가능하다. 
  • 창의적 자세의 전제조건
    • 감탄하는 능력
    • 집중력
    • 자기를 경험하는 능력 ('내'가 하고 느끼는 것과 관련해서는 내가 나의 '자아'를, 자기 자신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더 남아있다.)
    • 용기와 믿음

 현대에서 창의적인 삶은 갖는 것이란, 대상을 바라볼 때 늘 감탄하며, 감사하며,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표현할 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이 있었다. 나는 사람이 가득 있는 지하철을 서서 가는데,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다리를 쭉 뻗고 있어 난 그의 앞에 서 있기 불편했다. 그는 나에게 분노를 유발하는 대상이었는데, 갑자기 지하철이 끼익- 하고 급정거를 해서 나는 넘어질 뻔 했다. 그랬는데 그 앞에 발을 쭉 뻗고 앉았던 사람은 일어나서 넘어질 뻔한 나를 잡아주었다.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갑자기 바뀌던 순간이었고, 나도 이런식으로 훗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글쎄, 이게 뭐가 창의적인 시각이냐고 할테지만 에리히 프롬은 알 것이다. 

 

5. 죽음에 대한 태도

 '나한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자세  ==  "나 죽은 뒤에야 어찌 되건 무슨 상관이냐" (이기심)

 많은 사람들이 조기에 검진받지 않는 이유는 그저 죽음에 대한 공포가 너무 크다 보니 죽을병에 걸렸다는 말을 들을 가능성마저 터부시하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일깨울 만한 주제는 아예 건드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감정, 다시 말해 기쁨도 의미도 없는 삶을 살았다는 감정과 함께 자라난다. 진정으로 사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존재와 내면 활동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문화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가진 것(물질적 소유, 사회적 지위, 명성, 권력 등)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사람들은 '나는 내가 가진 것'이라는 모토를 지향한다. 그들의 자기는 가진 것의 총합이며 가장 값비싼 소유물은 자신의 자아, 자기 자신이다. 그들이 느끼는 죽음에 대한 공포는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아니라 가장 값진 것, 즉 자기 자신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다. 

 

6. 무력감에 대하여

 무력감이란? 나는 어떤 것에도 영향을 미칠 수 없고 어떤 일도 착수할 수 없으며 내 의지로는 외부 세계나 나 자신의 어떤 것도 변화시킬 수 없고, 아무도 나를 대우해주지 않으며 모두가 없는 사람 취급한다.

  • 무력감의 대상
    • 인간 - 자신은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확신이 존재한다. 다른 사람을 통제할 수도, 자신이 바라는 일을 그들이 하게끔 만들 수도 없다고 확신한다.
    • 사물 -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모른다.
    • 자신과의 관계 - 내면에서 일어나는 충동과 불안에 대처하지 못하는 무능력
  • 합리화 - 고통스러운 감정을 극복하려는 노력
    1. 자신이 무기력한 이유는 신체적 결함 탓 
    2. 트라우마로 인해 모든 활동성과 용기를 빼앗겼다는 확신
    3. 무력감의 억압 - 과도한 보상 행동과 은폐 목적의 합리화로 대체됨
  • 위로 성격의 합리화에 대한 2가지 특징 
    • 기적에 대한 믿음 : 외부의 사건으로 갑자기 모든 소망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상상
    • 시간에 대한 믿음 : '시간이 가면' 모든 것이 절로 해결되리라는 기대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자신과 사회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려면, 결정적인 힘과 상황을 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7. 기본 소득으로 자유를 얻으려면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인간 행동의 자유를 제약한 요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지배자들이 폭력을 사용했기 때문이며, 나머지 하나는 노동 및 사회생활과 관련해 자신에게 부과된 조건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굶어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만족을 모르고 수동적이며 날로 더해가는 끝없는 소비로 텅 빈 마음을 보상하려 한다. 과식, 구매, 음주가 우울증과 불안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메커니즘과 관련해서는 수많은 임상적 사례가 존재한다.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섹스하고 영화보고 여행하고 책이나 강연, 미술품 같은 교양 자산을 소비한다. 적극적이고 매우 활기차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깊은 곳은 불안으로 가득하고 외롭고 울적하고 따분하다. 
  • 해결책 : 무료 최소 서비스 방법
    • 산업 시설의 용도를 공공 소비용 재화 생산으로 바꾼다.
      • 극장, 도서관, 공원, 병원, 대중교통 시설, 주택 건설을 장려해야 한다.
    • 무료 소비 지원
      • 국가가 전 국민에게 무료로 빵을 공급하기
    • 철학적, 정치적, 심리적 문제 연구 필요
  • 위의 해결책이 수용되지 않는 이유?
    •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라는 원칙의 폐기에 반발하는 심리적 저항감
  • 전 국민 기본 소득 원칙의 효과가 나타나기 위해?
    • 소비 습관의 변화의 동반
    • 인문주의의 새로운 정신적 자세 형성
    • 진정한 민주주의 부활

 이번 편은 내가 유난히 공감이 안 갔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당연히 이해가 안 가는 독자가 대다수이란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바로 예측했지 뭐람... 인간이 이렇게 변하면 너무 좋겠지만, 이런 마음은 어떻게 보면 이상적이어서 아름다운 것 같다. 사람들은 이상적인 것들을 실현하게 되는 순간 지루함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일단 내가 여태까지 겪어왔던 세계는 그렇다. 

 

8. 소비하는 인간의 공허함

 이 글의 주제는 과잉 사회의 심리적·정신적 문제다. 현대 사회에 새로운 유형의 인간은 '소비하는 인간'이다. 이들의 특징은 무의식적으로 수동적이고 마음이 허전한 데다 불안에 떨고 고립된 인간이며,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소외감과 권태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내면의 공허, 내면의 불안은 강박적 소비를 통해 상징적으로 치유되는데, 대표적인 사례는 폭식증이다. 즉, 불안해지는 인간은 소비를 하고, 소비할수록 더 불안해지는 악순환을 경험한다.

 활동적 인간, 생산적 인간이란 분주한 사람이 아니다. 내면에서부터 활동적인 사람, 활동저긍로 세상과 관계 맺는 사람, 세상과의 관계 맺음과 연결이 내면의 필연성인 사람이다. 그는 삶의 과정에서 쉼 없이 변하고, 모든 행위에서 같은 사람이 아니며, 정반대로 모든 행위가 동시에 그의 인성 변화다. 당신이 사람과 어떻게 대화를 나누는지, 풍경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정적이고 이기적이며 고립된 인간과 세상 안에 존재하며 과정적이고 활동적인 인간의 차이를 결정하는 것이다. 

 소비하는 삶은 인간을 더 공허하게 만드는 악순환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모든 소비의 욕망들이 그릇되다고 볼 수는 없다. 좋은 욕망과 나쁜 욕망들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구분하려면 나 자신이 활동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 활동적인 인간의 정의는 말 그대로 active한 인간이 아닌, 세상을 '나'와 대상을 개별적으로 바라보는 수동적인 마인드가 아닌 '나'와 대상을 함께 보며 끊임없이 탐구하고 생각하는 존재다. 나는 나에 대해 계속 탐구하지만 가끔 나는 지곤 한다. 나에게 탐구해버리면 깊이 생각해져 피곤해질 때가 있어 가끔 놓아버릴 때도 있다. 그 순간이 아마 passive(수동적인) 순간이 아닐까 싶다. 

 

9. 활동적인 삶 

  • 활동성이란?(현대 이전 정의)
    • 아리스토텔레스: 관조적인 삶, 진리 추구
    •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사랑과 헌신의 정신으로 인간의 행복을 위해 행동하는 것
    • 스피노자: 하나의 행위가 온전히 나의 인간 본질에서 나오는 동시에 이성과 일치
  • 현대의 활동성이란? 
    • 돈을 벌 수 있는 모든 행위(business)
    • 분주함(to be busy)
  • 강제의 종류 
    • 자본 부족으로 인한 외부 강제
    • 불안

 분주함과 게으름은 같은 것으로, 사람들이 강박적으로 활동하고 나면 강박적으로 게으르고 싶다는 것과 같다는 갈망을 느낀다. 올바른 활동성을 키우기 위해 진정한 활동성의 연습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 시작은 아마도 가만히 앉아 바라보려는, 들어보려는, 명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억에 남는 구절 

삶은 항상 과정이다. 변화와 발전의 과정이며, 기존 구조와 태어난 환경이 주고받는 끝없는 상호작용 과정이기도 하다. 사과나무는 절대 벚나무가 될 수 없지만, 사과나무나 벚나무는 타고난 체질과 환경 조건에 따라 멋진 나무가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어떤 나무한테는 축복인 습기와 햇볕이 다른 나무를 죽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특정한 대상을 향하는 사랑은 무의식적 사랑이 특정한 사람을 목표로 활성화되고 집중화된 것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온 세상에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사람뿐이기에 그를 만나는 것이 인생의 큰 기회라고 믿는 낭만적 사랑관은 옳지 않다. 그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서 사랑의 감정을 거두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옳지 않다. 바로 이런 사실을 통해 한 사람하고만 나눌 수 있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공생적 집착임이 밝혀진다. 사랑에 포함된 근본적 긍정이 사랑받는 사람에게 향하는 것은 그가 본질적인 인간 특성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오고 사랑이 간다. 이 말은 사랑이 아니라 하나의 대상에 대한 공생적 집착이었던 것이라는 이야기. 가족과 친구에 대한 사랑과 무한한 서포트는 늘 같은데, 왜 항상 애인에게만 관대하지 못할까? 언젠가는 이 이론과 같은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