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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책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루시 바턴 시리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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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에 독후감을 쓰는 것은 어째 숙제같이 느껴졌었다. 나만의 소감이 맞지만, 가끔 소감보다는 내용 요약이 우선이 된 적이 많았기 때문이었을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반 년 정도는 노션에 따로 나만의 독후감을 기록하곤 했다. 글쎄, 아무도 보지 않는 나만의 공간에서 쓰는 글은 날 것, 그 자체이고 가끔은 너무 진지했으며 가끔은 너무 가벼웠다. 어느 날 다가온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작품은 나를 다시 글쓰게 만들었다. 인간은 외로움에 사무치지만, 아주 잠시나마라도 덜 외로웠으면 하는 마음이 나에게 전달되었다. 


01 내 이름은 루시 바턴(My Name is Lucy Barton)

 

내 마음이 갑자기 어둠에 대한 앎으로 가득차는 순간들이 -예기치 않게- 찾아오기도 한다. 그 앎이 너무 깊어 나도 모르게 소리가 터져나올 것 같고, 그러면 나는 가장 가까운 옷가게로 들어가 낯선 사람과 새로 들어온 스웨터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아마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도 이렇듯 반쯤은 알게 반쯤은 모르게, 사실일 리 없는 기억의 방문을 받으면서 세상을 이런 식으로 어찌어찌 통과해나갈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공포라는 감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보도를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이 어떤 마음인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삶은 아주 많은 부분이 추측으로 이루어진 듯하다. 

 

출처: 교보문고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은 2016년에 출간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로써, 주인공 루시 바턴의 삶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통렬하고 성찰적인 이야기다.

 이 소설은 성공한 작가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루시 바턴이 뉴욕에 있는 병원 침대의 관점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서술한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Lucy가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인해 장기간 병원에서 보낸 시간을 이야기하면서 시작한다. 입원 기간 동안 그녀는 수년 동안 연락이 없었던 소원해진 어머니로부터 예기치 않은 방문을 했고, 그녀의 어머니가 침대 옆에 앉아 있을 때 Lucy의 기억은 그녀를 일리노이 시골의 어려운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그녀는 가난하게 자랐고 가족은 정서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Lucy와 그녀의 부모, 특히 그녀의 어머니와의 관계는 복잡했고 감정적 거리와 어려움이 있었다. Lucy와 그녀의 어머니가 이야기하면서 그들은 과거의 사람과 장소를 회상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근본적인 긴장과 해결되지 않은 문제도 있다. 먼 관계에도 불구하고 Lucy는 어머니의 사랑과 승인을 갈망했다. 대화 중에 Lucy의 어머니는 가족 역사의 일부를 공개하고 둘 다 알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유한다. 이러한 기억은 가족의 어려움과 단절된 관계의 원인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소설 전체에서 Lucy는 어려운 양육의 영향과 그것이 성인 생활과 관계를 어떻게 형성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는 실패한 결혼 생활, 자녀에 대한 복잡한 감정, 작가로서의 여정을 반성했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은 가족, 사랑, 외로움, 인간 관계의 복잡성에 대한 이야기하고, 그것은 한 사람의 양육의 영향과 그것이 그들의 정체성과 삶의 선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이 소설은 수년간의 이별에도 불구하고 가족 역학의 복잡함과 정서적 연결의 지속적인 힘을 아름답게 묘사한다. 

 <내 이름을 루시 바턴>을 읽기 전에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작품 2권(<오 윌리엄!>, <올리브 키터리지>)을 이미 읽었지만, 이 작품이 어쩌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에게 푹 빠지게 됐던 최애 작품이 아닐까 싶다. 누구도 타인에 대해 완전한 이해를 할 수 없고, 심지어 나 자신 조차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듯, 그저 삶은 추측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루시와 엄마와의 관계성

 도시 전체에 불빛이 퍼지기 시작할 무렵 내가 불쑥 물었다. "엄마, 나를 사랑해요?"
 엄마는 고개를 젓더니 창밖의 불빛을 내다보았다. "위즐, 그만해."
 "엄마, 말해봐요, 어서요." 나는 웃기 시작했고, 엄마도 웃기 시작했다. 
 "위즐, 나 원 참."
 내가 일어나 앉아 아이처럼 손뼉을 쳤다. "엄마! 나를 사랑해요? 나를 사랑해요? 나를 사랑해요?"
 엄마는 여전히 창밖을 내다보며 내 쪽으로 손을 휙 내저었다. "계집애가 바보 같긴." 엄마가 말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바보 같긴. 계집애가 바보 같긴."
 나는 다시 누워 눈을 감았다. 내가 말했다. "엄마, 나, 눈 감았어요."
 "루시, 이제 그만해." 엄마의 목소리에 즐거움이 묻어 있었다. 
 "어서요, 엄마. 눈 감았다니까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나는 행복했다. "엄마?" 내가 말했다.
 "네가 눈을 감으면."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내가 눈을 감았을 때만 사랑해요?"
 "네가 눈을 감으면." 엄마가 말했다. 우리는 이 게임을 그만두었지만, 나는 매우 행복했다......

 루시의 엄마는 입체적인 캐릭터나 다름없었다. 루시의 아빠는 2차 세계 전쟁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갖고 있었고, 그는 정신적으로 감당이 어려울 때는 온 집안을 수음을 하면서 돌아다녔다. 루시 포함한 삼남매는 그 모습을 보면서 커왔고, 루시의 엄마는 그 모든 상황들을 컨트롤했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가난과 멸시를 받으며 아이 셋을 키우며 남편 곁을 지켜왔다. 물론, 그녀는 그렇게 가정을 지키는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끔찍한 기억을 심어줄만큼 학대도 했고, 청교도 집안이라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없어 아이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신기(작품에서는 비전이라고 말한다.)가 있어 다른 사람들의 상황들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결혼 생활의 끝이 좋지 않을 거라는걸 비전을 통해 느끼고 있었고, 병원에 방문했을 때 그녀에게 실패한 결혼 생활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루시의 엄마는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아이들에게 주었지만, 반대로 그녀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사랑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 또한 추측이다. 타인이 정의를 내린 사랑이 정답은 아니기에, 루시와 루시의 엄마만이 알겠지. 

# 우리는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고, 완전히 알지 못한다.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 그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절대 알지 못하며, 앞으로도 절대 알 수 없을 것임을. 단순한 생각 같지만,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그녀가 그 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점점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는 생각한다. 늘 생각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얕보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우리 자신을 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를. 

 ▲루시가 영감을 받았던 작가, 사라 페인이 한 말을 회상.

선생님이 이렇게 말한 것이 기억난다. 너희가 다른 누구보다 더 잘났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마라. 내 교실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곳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잘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방금 몇 명의 얼굴에서 다른 누구보다 더 잘났다고 생각하는 표정을 읽었는데, 내 쇼실에서는 절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루시가 6학년이었을 때, 모두에게 존경받았던 새로온 젊은 사회 선생님이었던 미스터 헤일리에 대한 회상.

AIDS 감염은 새로운 현상이었다. 비쩍 마르고 수척한 남자들이 길거리를 돌아다니느게 눈에 띄면 그들이 이 갑작스럽고 성경에 나올 법한 질병에 걸렸다고 보면 되었다. 어느 날 건물 앞 계단에 제러미와 함께 앉다가, 나는 내가 해놓고도 스스로 깜짝 놀란 말을 했다. 그런 남자 둘이 천천히 지나가는 걸 본 뒤 이렇게 말해 버린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정말 안 되는 줄은 알지만, 나는 저들이 거의 부러울 지경이에요. 저 두 사람은 서로를 가졌고, 진정한 공동체로 결속되어 있으니까요." 그러자 그가 나를 바라보았고, 그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다정함이 떠올라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내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내 겉은 풍족해 보여도 속은 외롭다는 것을 알아차렸던 것 같다. 외로움은 내가 맛본 인생의 첫맛이었고, 늘 그 자리에, 내 입안의 틈 속에 숨어 있다가 자신의 존재를 일깨워주었다. 그날 그는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친절했다. "그러네요." 그는 그렇게만 말했다. 쉽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제정신이에요? 저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다고요!" 하지만 그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나를 에워싼 외로움을 이해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루시가 사랑했던 친구 중 한 명인 제러미와의 일화 중 하나. 

 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다른 사람들을 100%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생각으로 타인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때로는 나도 누군가를 망신줄 때가 있고, 누군가에게 망신받을 때가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한마디를 전할 수 있고, 위로라고 생각했던 그 말이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생각했던 호의가 누군가에겐 오만이 될 수도 있다. 즉, 모든 일이 다 내 맘같지 않다는 말이다. 

 루시의 부모님의 죽음으로 인해, 가족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던 루시는 되돌아보니 자신이 가족을 버렸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신은 냉혹하지 않았다고 여겼지만, 그녀는 냉혹했었다. 그 누구의 선택이 희생이 될 수도, 이기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또한 우리의 삶이다. 우리의 삶은 대상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 진다. 나의 삶이 지쳐 있었을 때,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읽고, 많은 위로를 느꼈다. 우리는 다 이렇게 사는거야. 서로 상처주고, 위로하고, 사랑하면서.

 


02 무엇이든 가능하다(Anything is Possible)

출처 : 교보문고

 

그가 눈을 떴고, 그래, 바로 거기 있었다, 온전한 깨달음이.
누구에게나 무엇이든 가능하다.
 루시 바턴이라는 인물의 이전 소설인 <내 이름은 루시 바턴>과 연결된 9개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 소설은 루시의 고향인 일리노이 주 앰개시의 사람들이 루시의 회고록을 읽고 자신들의 일상적인 고통, 상실, 그리고 사랑을 다루면서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이야기다. 각 장은 서로 다른 인물을 중심으로 하지만 다른 인물들과 연결되어 있다. 각 장은 자체적인 짧은 이야기이면서도 더 큰, 일관된 이야기의 일부로서 다른 장들과 반복되거나 병행한다. 이 소설은 앰개시와 같은 마을에서 사람들이 모두의 일을 알고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광범위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10명의 인물들을 통해 회복력, 가족, 정체성 등의 주제를 탐구한다. 각 인물들은 다르게 트라우마를 경험하며 자신만의 자존감과 안전감을 향상시키는 여정에 있다.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서 인간의 연결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내 이름은 루시 바턴>에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의 연장선이다. 

  • 루시의 가족; 바턴 가족(피트 바턴, 비키 바턴), 루시의 사촌 남매(에이블 블레인, 도티)
  • 루시 유년시절 당시 경비아저씨(토미 거프틸)
  • 프리티 나이슬리 자매(패티 나이슬리, 린다 피터슨-코넬)
  • 매콜리 부부(찰리 매콜리;남편, 메릴린 매콜리;아내)
  • 멈퍼드 집안(메리 멈퍼드;엄마, 안젤리나;막내딸) 
  • 애니 애플비 

 

 오래전 그는 그것에 자기만의 이름을 붙였다. 엄지 치기 이론. 어린 시절 어느 여름에, 할아버지 집 지붕 위에서 망치로 타일을 세게 내려치다 알아낸 사실이었다. 실수로 엄지를 내려쳤을 때, 이것 봐, 그렇게 세게 쳤는데도 많이 아프진 않은데..... 하고 생각되는 찰나의 순간이 존재했다. 그리고 이어 -어리둥절한 채 다행이라고 느끼며 안도하는 착가의 순간이 지난 뒤 - 살을 짓이기는 진짜 아픔이 몰려왔다. 전쟁에서도 이런 일이 수시로, 여러 형태로 일어났기에 그는 이따금 자신이 아주 똑똑하다고 - 그의 이론은 그만큼 잘 들어맞았다 - 생각하곤 했다. 전쟁에서 그는 많은 것을 배웠지만, 메릴린이 지금 그가 참석중이라고 알고 있는 모임 시간에 그런 것을 언급하는 심리학자는 이제껏 한 명도 없었다. 
- <엄지치기 이론> 중

 

 어쩌면 루시의 집안과는 거의 접점이 없었던 찰리 매콜리는 어디에나 등장을 한다('도티의 민박집'에서 도티에게 위로를 받았던 순간을 제외하면). 찰리 매콜리는 루시의 아버지처럼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중년 남성이었다. 찰리 매콜리는 풍족한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에 가 메릴린이라는 참한 아내와 토끼같은 자식들을 얻었다. 그 자식들은 또 결혼하여 손주들까지 낳았다. 어쩌면 그는 존재감없이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는 평범한 중년 남성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들린다. 찰리 매콜리의 이야기를 담은 <엄지치기 이론>에서 그가 평상시에 느끼고 있는 살을 짓이기는 진짜 아픔이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의 아내 메릴린, 심리학자,.. 등 누구도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찰리 매콜리는 돈을 주고 트레이시에게 쾌락을 사서 위로를 받았고, 그는 도티의 민박집에서 호스트인 도티에게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그는 트레이시에게 만 달러를 준 것을 아내 메릴린에게 들키자마자, 평상시 그를 짝사랑했던 패티 나이슬리와 함께 살림을 차렸다. 그의 이야기를 사건 발생 위주로 전개해본다면 그의 삶은 그저 욕망에 가득찬 한 남자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의 내면을 가까이 들여다 본다면, 그는 아무도 공감해주지 않는 그의 세상 속에서 나홀로 외로이 세월을 보내고 있던 남자였다

 

 잠시 뒤 되돌아가는 도로를 달릴 때 비키가 말했다. "그러니까, 음, 내 결론은 이거야." 그녀가 운전하면서 피트를 흘끗 보았다. "루시는 또라이야."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걔는 완전히 또라이야. 계속 울면서 미안해, 미안해, 그 말만 하더라니까. 마침내 내가 말했어. 루시, 그만 좀 미안해해, 괜찮아, 그랬더니 아니, 내가 돌아온 게 잘못이었어, 내가 떠난 게 잘못이었어, 전부 내 잘못이야, 그러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루시, 이러는 거 당장 집어치워, 너는 지긋지긋한 이곳을 벗어나 성공했으니 그렇게 살아, 그래도 괜찮아. 루시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어, 피트. 난 좀 무섭더라. 내가, 남편한테 전화하지 그래? 했더니 남편이 리허설중이라나 뭐라나, 나중에 전화하겠대. 그래서 내가, 그럼 딸들 중에 아무한테나 전화해보지, 그랬더니 오, 안 된다고, 딸들이 이런 이야기를 듣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어."
 피트는 조수석 앞 서랍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래전에 커피가 엎질러졌던 것처럼 길게 흘러내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와우." 그가 말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아무 말 안 해도 돼." 비키가 차 한 대를 앞지른 다음 원래 차선으로 되돌아갔다. "아무튼 그애가 약을 한 알 먹었어. 그리고 공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뭐 그런 말을 했는데...... 그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좀 차분해지더니 차를 갓길에 대라고, 우리가 시카고로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했어. 하지만 피트, 슬프더라. 그 애는 너무 작아, 그 애는...... 그애를 인터넷으로 보면......" 비키는 그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허리를 더 펴고 한 손으로 운전했다. 다른쪽 팔꿈치는 바로 옆 팔걸이에 내려놓은채 손으로 턱을 만졌다. 그들은 한동안 그렇게 달렸다. 
- <동생> 중

 

 바턴 가족 중에서 가장 루시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질투 했던 언니 비키는 루시가 앰개시에 방문했을 때, 루시에게 공격적인 말투로 그녀의 어린 시절을 회상시켰다. 루시는 바턴 집안에서 유명세를 얻게된 성공한 작가였다. 루시의 어린 시절은 가난과 학대 속에서 성장해왔지만, 그녀는 좋은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고 대학을 갔고 첫 번째 남편 윌리엄을 만나 결혼을 했다. 첫 번째 남편 윌리엄은 독일인의 피를 가진 남자였고, 루시의 아버지는 2차 세계 전쟁 참전 당시, 무고한 독일인인 민간인 2명을 사살했던 죄책감을 껴안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인을 보면 정신적인 고통이 더 커졌었다. 그런 집안의 사정이 있었지만, 루시는 윌리엄과의 결혼을 끝내 했고, 바턴 가족들은 루시의 결혼식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앰개시에 더 이상 방문하지 않았고, 그녀가 앰개시에 간 것은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로 손에 꼽았다. 그녀는 작가로서 성공하여 서점 어디에나 그녀의 책들이 있었다.

 이런 결과론적인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루시는 참 무정하고 냉혹한 사람처럼 들린다. 자신의 가족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가족이 허락하지 않는 결혼 상대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녀는 고향에 자주 내려오지도 않았고, 가족들에게 전화하는 일도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읽어보면, 루시는 그렇게 냉혹하고 무정한 삶을 살지 않았다. 그녀는 오랫동안 외로웠고, 고독했다. 그녀는 <오 윌리엄!>에서 보면 결혼식 당일에도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었고, 가족들이 결혼식에 와주었으면 했다. 그녀가 공황장애를 얻게 된 이유는 자신의 존재, 뿌리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과 그렇게 하지 않아야 겠다는 그 마음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식사실 의자 등받이 위쪽에 손을 내려놓으며 침착하게 말했다. "나는 차연가아니에요, 닥터 스몰. 그것은 내 직업이 아닙니다, 아시겠지만." 
 놀라거나 당황했을 때 금세 얼굴이 빨개지느 아내와 달리 이 남자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도티는 -그년느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것이 훨씬 좋지 않은 신호라는 것을 알았다.
 "도대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그가 마침내 물었다. 그리고 이 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는 듯 덧붙였다. "이런 맙소사, 아주머니."
 도티는 자신이 서 있던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정확히 내가 말한 그대로예요. 나는 손님들에게 침대를 제공하고 아침 식사를 제공합니다. 손님들이 견딜 수 없어하는 인생에 대해 조언을 제공하지는 않아요." 그녀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말을 이었다. "아니면 산 죽음이나 다름없는 결혼생활에 대해 듣거나, 자신들의 집을 페니스라 칭하는 불쌍한 친구들 때문에 낙담한 일에 대해 듣고 조언을 제공하지는 않아요. 그건 내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 <도티의 민박집> 중

 

 찰리 매콜리 혹은 루시 바턴과는 달리 도티는 민박집을 운영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농락당하곤 했다. 도티는 책도 많이 읽고 철학적인 생각도 많이 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나온 내용 중, 한국전쟁에서 복무한 남편의 아내 이야기를 읽고 모두를 용서한 여자의 이야기를 읽었고 그 여자는 도티의 영웅이 됐다. 도티는 어떤 무례를 하더라도 용서를 하기로 했다. 그녀의 인생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함부로 그녀를 평가하고 농담삼아 자기들끼리 시시닥거린다. 

 

 우리는 상대를 100퍼센트 아니, 10퍼센트라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있는가? 부모도 제 배로 낳은 자식의 마음을 모른다. 그 속 안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모두 외롭고, 모두 아프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우리의 삶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데, 그 사람의 미세한 움직임이 나비효과처럼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줄지 모르는 것이다. <풍차>에서 패티는 루시 바턴의 집안을 무시해 혐오감을 갖고 있었지만 루시 바턴의 책을 읽고, 깊은 위로를 받았다. <도티의 민박집> 중, 찰리 매콜리를 비웃지 않고 따뜻하게 감싸주었던 도티의 배려 하나가 찰리 매콜리를 덜 외롭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계시>에서 진실을 알게 된 토미의 용서와 관용으로 그는 피트의 친구가 되어 주기도 한다. 우리의 관계들은 작지만 엄청난 파급력을 일으키기도 한다. 

 

 

 


03 오 윌리엄!(Oh William!)

 

그것이 삶이 흘러가는 방식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너무 늦을 때까지 모른다는 것.



출처: 교보문고

 이 소설은 2021년 10월 19일에 랜덤 하우스에서 출판되었으며, 2022년 북어상에 장편부문 후보작으로 선정되었다. 이 소설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이전 작품인 <내 이름은 루시 바턴>(2016)과 <무엇이든 가능하다>(2017)의 후속작으로, 미국 일리노이 주의 가상의 시골 마을 앰개시를 배경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루시 바턴이라는 작가로, 두 번째 남편 데이비드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피하고, 대신에 첫 번째 남편 윌리엄의 고난에 대해 이야기한다. 윌리엄은 기생충 연구자로, 세 번째 아내 에스텔이 딸과 함께 떠나고, 어머니 캐서린이 첫 번째 남편과 가진 딸 루이스를 버린 것을 알게 된다. 윌리엄은 루시를 메인 주로 데리고 가서 루이스를 만나 려고 한다. 루시는 윌리엄을 아직도 사랑하고 있고(이성보다는 친구같은 의미로), 데이비드에 대한 슬픔을 잊고 싶어서 동행한다. 메인 주에서 그들은 루이스와 만나기 전에 그녀가 자란 적막한 풍경을 돌아다니고, 윌리엄의 아버지 빌헬름이 전쟁 포로로 있었던 사진을 보게 된다. 루시는 자신의 불행하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메인 주의 풍경에 공포를 느낀.

 

# 루시와 윌리엄의 관계성

 윌리엄과 결혼해서 사는 내내 마음속에 지닌 이미지가 있었는데 -캐서린이 살아 있었을 때도 그랬지만, 죽은 뒤에는 더욱 그랬다- 나는 윌리엄과 내가 헨젤과 그레텔, 작은 두 꼬마가 되어 숲속에서 길을 잃고 우리를 집으로 데려다줄 빵 부스러기를 찾는 이미지를 종종 떠올렸다. 
 이것이 앞서 했던 말, 내가 유일하게 가져본 집이 윌리엄과 함께 살던 집이었다는 말과 모순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두 말이 모두 사실이고, 이상하게도 서로 상충되지 않는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이다. 헬젤과 함께 있으면 -우리가 숲속에서 길을 잃더라도- 안전하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인 것 같다. 

 윌리엄과 루시는 슬하에 2명의 자녀(크리시와 베카)가 있었는데, 그들의 결혼 생활은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끝이 났다. 윌리엄은 루시와의 결혼 생활 중 지독한 바람둥이였고, 윌리엄의 두번째 아내는 루시의 친구 중 한 명이었다. 그 두번째 아내는 임신을 할 수 없는 나이에 재혼을 하게 되어, 둘은 10년도 되지 않아 파경을 맞게 되었다. 그리고 윌리엄은 에스텔이라는 세번째 아내와 어린 자식을 갖게 된다. 이런 윌리엄과 오랜 우정을 갖고 있는 루시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세상물정 모르는 가난과 학대 속에서 성장해 온 루시는 윌리엄이 제공하는 이 세계들이 정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 세계를 인도하는 안내자였다. 그가 바람을 폈을 때도, 사랑을 했기에 마음이 아팠겠지만 그녀는 견딜 수없었던 지독한 외로움의 세계에 윌리엄마저 떠나갈까 두려웠던 마음이 더 컸을 수도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그와 함께였을 때, 권위를 잃어갔다. 

 나는 방금 깨달은 이 사실로부터 윌리엄을 보호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 자신 또한 그것으로부터 보호하고 싶었다. 그랬다. 그건 사실이겠지만, 최대한 솔직히 말하건대, 나는 윌리엄이 내게서 권위를 잃었다는 것을 그가 어느 수준에서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평생 마음속에 품고 다닌 헨젤과 그레텔의 모습, 그것은 사라졌다. 나는 헨젤을 안내자로 여기며 바라보는 꼬마가 아니었다. 윌리엄은 -아주 단순히- 더는 내게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윌리엄의 엄마인 캐서린의 과거를 찾아 메인 주로 루시와 함께 떠났을 때, 윌리엄은 이복 누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난감해 했다. 그는 이복 누나 루이스에게 자신이 많이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메인 주에서 루이스와 캐서린 그리고 빌헴름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루시에게 헨젤과도 같던 윌리엄도 결국엔 길을 잃었던 것이다. 윌리엄은 세 명의 아내가 모두 그를 떠났고, 그의 이복 누이조차 그를 만나기 꺼려하고, 그의 어머니의 과거는 상상도 못한 이야기였다. 그는 길을 잃었다. 

 

 매일 아침 데이비드는 아침 설거지를 마치면 창가에 놓인 흰색 카우치로 가서 앉은 다음 자기 옆자리를 톡톡 치곤 했다. 내가 옆에 가서 앉으면 그는 늘 내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 그는 매일 아침 이렇게 말했다. "루시 B, 루시 B, 우리가 어떻게 만났을까? 우리가 우리인 것에 하느님께 감사해."
 천년이 지나도 그가 나를 비웃을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결코. 어떤 일로도. 

 데이비드와의 결혼 생활이 행복했던 이유는 루시와 비슷한 가정환경 아래서 성장했던 데이비드를 통해 위로를 얻고, 서로에게 위안이 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루시는 평생 남들과는 다른 존재로 살아왔다. 흔한 TV 프로그램도 모르고, 남들이 말하는 노래 조차 모르는 문외한이었다. 그녀는 사람들 속에 어울려 있지만, 늘 동떨어진 것을 느끼고 외로워 했다. 윌리엄은 그런 그녀를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게 안내해주는 역할이었다면, 데이비드는 루시 있는 그대로를 공감하고 서로 위로를 해줄 수 있었다. 

 

# 캐서린의 과거

그녀는 나를 자기 친구들에게 소개하면서 조용히 내 팔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이쪽이 루시. 루시는 출신이랄게 없어."
그것에 대해서는 앞서 낸 책에서 썼다. 

 캐서린은 죽기 전까지, 루시와 윌리엄의 결혼생활에 많은 간섭을 했다. 신혼여행, 결혼식, 심지어 루시의 옷, 취미까지 바꾸고 싶어 했다. 캐서린은 알콜 중독 아버지 밑에서 학대를 당하다 감자 밭의 농부에게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가 '루이스'라는 아이를 낳았고, 빌헬름이라는 독일 포로와 눈이 맞아 도망을 갔다. 그녀는 자식을 두고 왔던 죄책감 때문에 결혼 생활은 물론, 윌리엄의 어린 시절에 많은 사랑을 줄 수 없었고, 심지어 루시의 자녀 또한 돌보기가 쉽지 않았다. 

 캐서린은 루시의 옷을 마음대로 버린 다음 자신이 원하는 옷을 사다주고, 루시는 생일 선물로 서점 상품권을 받고 싶었지만 루시가 전혀 관심이 없는 골프세트를 사주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루시를 소개하면서, 루시의 집안을 하찮게 여기며, "루시는 출신이랄게 없어."라며 표현했다. 루시는 윌리엄과의 메인 주 여행을 떠나면서 캐서린이 왜 자신에게 집착하면서 바꾸려고 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녀는 과거를 지우고 싶었고, 루시를 보면 그녀의 과거가 떠올랐던 것이다. 

 

 오 윌리엄! 오 캐서린! 오 루시! 우리는 상대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아마 내가 아는 진실이 맞는 것일까? 루시가 권위를 느꼈던 윌리엄은 열등감, 불안감, 외로움 등으로 똘똘 뭉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에게서 엿볼 수 있었던 완벽한 프레임은 허울과 다름 없었다는 것이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윌리엄의 이복 누이 루이스가 윌리엄의 아내들이 그를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자 마자, 윌리엄에게 문제가 있냐고 물어봤다. 몇 가지의 정보로 상대를 판단하는 것, 삶이 주는 위선.

 


2022년 9월에 출간된 '코로나' 발병 배경으로 전개되는 내용으로 발표되었다. 아직 국내에는 번역본이 없지만, 조만간 원서를 구매해서 읽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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