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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책

프랑수아즈 사강,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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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

 작가는 같은 작품을 쓰고 또 쓰는 것 같다. 다만 시선의 각도, 방법, 조명만이 다를 뿐.

프랑수아즈 사강(Françoise Sagan)은 1935년 6월 21일 프랑스의 카자르(Cajarc)에서 태어나 2004년 9월 24일 프랑스의 옹플르(Honfleur)에서 사망한 작가다. 그녀는 소설가, 극작가, 각본가로 활약했다.

사강은 프랑수아즈 쿼아레즈(Françoise Quoirez)라는 이름으로 태어났고, 그녀는 프랑스의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독립적인 사고와 열정적인 독서가였다. 소르본 대학교의 시험에 떨어진 후, 그녀는 작가가 되었고, 그녀는 가족이 있는 프랑스 남부로 가서 18살 때 첫 번째 소설인 'Bonjour Tristesse(슬픔이여 안녕)을 썼다. 사강은 부유하고 실망한 중산층 인물들이 등장하는 강한 로맨틱한 테마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슬픔이여 안녕>은 그녀가 십대였을 때 쓰여졌고. 이 작품은 국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녀는 인기가 많았던 만큼 돈도 많이 벌었고, 도박, 마약 등에도 많은 재산을 탕진하여 돈이 필요할 때마다 글을 쓰기도 했다. 그녀의 사생활과는 별개로 그녀의 인생은 늘 책과 함께 했다. 

 


01 슬픔이여 안녕(Bonjour Tristesse)


 사람은 뭔가 대단한 가치에 목표를 둘 수도 있지만 경박한 가치에 집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안은 나를 생각이 있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게 잘못임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갑자기 시급한 일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 기회가 그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그리고 내가 그 기회를 포착하게 될 줄은 그 당시에는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그때에도 나는 내가 그 문제에 대해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다른 견해를 가지라는 것, 지금은 신념처럼 보이는 그 생각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던가. 이런 내가 어떻게 대단한 인물이 될 수 있었겠는가?


출처: 교보문고

 

 과부가 된 아버지 레몽과 그의 최근 애인 엘자와 함께 프랑스 리비에라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는 세실이라는 이름의 젊고 교활한 17세 소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세실은 아버지와 함께 평온하고 관대한 생활 방식을 즐기며 즐거움을 우선시하고 책임이나 감정적 애착을 피했다. 그러나 그들의 목가적인 존재는 세실의 어머니의 절친한 친구였던 세련되고 지적인 여성 안이 예기치 않은 방문을 할 때 방해를 받았다. 안은 아버지와 함께하는 세실의 호화롭고 평온한 삶에 대한 잠재적 위협을 나타냈다. 세실은 그녀의 아버지가 안과 사랑에 빠지고 결국 그녀와 결혼하여 편안한 생활을 방해할까봐 점점 더 걱정하게 됐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세실은 교활하고 교활한 전술을 사용하여 아버지와 안 사이의 성장하는 관계를 방해했다. 그녀는 자신의 매력과 젊음을 이용하여 그녀에게 반한 청년 시릴을 사로잡아 그녀의 계획을 돕게 했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안에 대한 세실의 음모가 심화되어 다양한 감정적 갈등과 복잡성이 발생했다. 그녀의 행동은 시릴과 엘자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삶에 심오한 결과를 가져오고 그녀는 자신의 교활한 행동의 영향에 맞서야 했다. 이 소설은 사랑, 질투, 조작, 인간 관계의 복잡성이라는 주제를 탐구하며, 특히 자신의 행동과 감정의 결과와 씨름하는 세실의 성장 여정에 중점을 두었다. 

 

 이 책 제목을 듣고, 어떤 책일까 궁금했었는데, 페이지를 펴고 몇 문장을 읽자마자 깜짝 놀랐다. 왜 읽자마자 모든 장면들이 머릿속에 그려지는지... 심지어 책에 담겨 있던 삽화까지 기억이 났다. 책 제목도 기억 못했지만, 문장 사이의 기시감이 새롭게 다가 왔다. 

 

 나는 아버지가 가슴속 욕망에 쫓겨 실수를 저지르기를 바랐다. 안이 우리의 지난 삶을 겨멸하는 것을, 아버지와 내게는 행복했던 그 삶을 그토록 간단하게 경멸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를 모욕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인정하게 하고 싶었다. 안은 아버지가 바람을 피웟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그리고 그 사실은 그녀의 개인적인 가치나 품위를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일시적인 육체적 욕망이라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녀가 어떻든 자신이 옳기를 바란다면, 우리를 잘못된 사람들의 자리에 그대로 두어야 했다. 

 세실은 자신의 자유를 억압해올 것만 같은 안이 미웠지만, 그녀의 보호 아래 있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세실은 안을 사랑했지만,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고 싶었다. 세실과 레몽(세실의 아버지)는 진실한 사랑은 없고, 책임지지 않는 관계를 지향했다. 하지만 안의 등장으로 인해, 세실은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야 했고, 어느 모임에 가서도 우아한 태도를 지녀야 했고, 여러모로 세실은 불편했다. 그래서 모략을 꾸며 레몽의 애인 엘자와 세실의 남자친구를 이용해서 안에게 인간은 함부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세실은 정확했다. 그녀는 어린 나이였지만 아버지의 성향을 적절하게 파악했고, 그녀의 작전대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세실은 딱 아버지까지만 예측했지, 안의 반응을 예측하진 못했다. 안은 배신을 당해 그대로 자살을 했다. 작품 내에서는 차사고라고 언급되었지만, 책 마지막에 사강의 에세이를 읽으면 자살이라고 해서 안의 충격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었다. 

 

 안은 울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문득 깨달앗다. 내가 공격한 대상이 하나의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살아 있는 개체였음을. 그녀는 조금 내성적인 어린아이였다가 사춘기 소녀였다가 이윽고 여인이 되었을 터였다. 그녀는 마흔 살이었고 혼자였으며 한 남자를 사랑했고 그와 더불어 행복하게 살고자 했다. 10년, 어쩌면 20년을. 그런데 내가........ 그 얼굴, 지금 그녀의 그 얼굴, 그 얼굴은 내가 만든 것이었다. 

 세실은 어른이 필요했다. 어머니는 일찍 여의었지만 그나마 남은 아버지가 잘 챙겨주었어야 했다. 아버지도 안 챙겨준 것은 아니다. 나름 세실에게 최선을 다 했지만 아버지도 자유를 갈망하는 인물이었고, 세실에게 인생의 덧없음을 심어주어 올바른 내면 성장을 이끌어주진 못했다. 그런 부분을 잠시나마 안이 채워줄 수 있었기 때문에, 세실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몇달동안 안과 함께 있었을 때 어느정도 보호자가 있다는 안정감이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정도 머리가 크고 안을 다시 만나게 되니 보호자가 귀찮게만 느껴져 일시적인 분노로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남자친구 시릴과의 관계에서도 임신 걱정은 전혀 하지 않고, 혹시 임신을 하게 된다면 모든 것이 시릴의 책임으로 돌아갈거라는 생각으로 잠자리를 했다. 그저 책임에 대한 가르침을 받지 않은 어린 소녀였던 것이다. 

 그렇게 안을 허무하게 잃었지만, 그 아픔도 무뎌지고 그들은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세실도 다시 연애를 지작하고, 그녀의 아빠 레몽도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다. 하지만 갑자기 그녀와의 추억이 회상될 때면, 그녀는 인사를 한다. "슬픔이여 안녕". 나는 이 안녕이라는 의미가 "슬픔아 잘가! 이제 영원히 보지 말자!" 이런 느낌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글에서 쓰는 인사는 문득 찾아오는 과거의 슬픔을 맞이하는 인사였던 것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과거의 일을 덮을 수 있지만, 가끔 덮어둔 일들이 드러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 또한 내가 받아들이고 성장해나가야 하는 부분이다. 상처없는 성장은 없다. 

 

 


02 브람스를 좋아하세요...(Aimes-vous Brahm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 물론 그녀는 스탕달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고, 실제로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고 여겼다. 그것은 그저 하는 말이었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어쩌면 그녀는 로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뿐인지도 몰랐다. 아무튼 경험이란 좋은 것이다. 좋은 지표가 되어 준다. 스무 살 때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누구에겐가 속내를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출처: 교보문고

 

 39세의 파리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폴이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고통과 함께 살아가면서 그녀의 연인 로제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시몬이라는 남자와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소설입니다. 시몬은 폴에게 열렬한 사랑을 표현하지만 폴은 그녀의 전 남자친구 로제와의 관계를 더욱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이 소설은 1959년에 처음 출판되었으며 Goodbye Again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습니다.

 

# 삼각관계

왜냐하면 흐르는 시간이 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없애야 하는 것은 로제와의 추억이 아니라 폴 안에 있는 로제라는 그 무엇, 그녀가 집요하게 매달려 있는, 뽑아 버릴 수 없는 고통스러운 뿌리 같은 그것이었다. 

 어쩌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진부한 삼각관계에 대해 쓰고 있는 글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의 리뷰가 그렇듯, 사강의 이야기에는 디테일한 감정선이 담겨있다. 처음에 읽고 있을 때, 로제는 진부한 옛사랑이고, 새로운 사랑 시몬과 함께 시작을 할 줄 알았는데, 폴은 한결같이 로제바라기였다. 심지어 시몬은 14살이나 어린 Young and Rich 그 자체였는데 말이다. 다 읽고 생각해보니, 이런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시몬은 로제에 대한 익숙함을 그리워하고 있구나 싶었다. 만약 시몬이 비슷한 연령대의 남성이었다면, 폴이 다른 선택을 했었을지 의문이 든다. 아무래도 당시 시대적으로 보면, 남자가 연하의 여성을 만나는 것은 당연히 치부되었지만 여자가 연하의 남성을 만나는 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행동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에도 10살이 넘게 차이나는 커플(여자 쪽이 연상)은 많은 이슈가 되기도 한다. 

시몽은 어떤 치정 사건의 재판 과정 전체를 흉내 냈다. 그는 한참 변론을 흉내 내다가 어느 순간 몸을 일으키더니, 배꼽이 빠져라 웃고 있는 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그는 말을 멈추고는 포도주를 한 모금 길게 마셨다. 폴은 반박하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선고로군요."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시몬은 폴을 첫 눈에 본 순간 반했다. 폴도 그런 시몬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머릿속엔 로제만 가득했고, 결국 로제로 인해 외로워지게 되었을 때 대체로 시몬을 이용했다. 결국 시간이 지나고, 시몬과 함께 있으면 로제가 잊혀질거라 생각했지만 폴은 로제를 잊을 수가 없었다. 

 

# 브람스의 의미

로베르트 슈만, 클라라 슈만, 요하네스 브람스

요하네스 브람스는 슈만보다는 23세, 클라라보다는 14세 연하로 ‘연적’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어린 나이였다. 항구도시인 함부르크에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의 장남으로 태어난 브람스는 넉넉지 못한 집안 살림으로 일찍이 선술집이나 카페에서 연주와 편곡을 하면서 생계형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특유의 성실함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재능 덕분에 많은 이의 호감을 살 수 있었고, 바이올리니스트 요하임은 절친한 슈만에게 그를 소개했다. 슈만의 집을 찾았을 때 브람스의 손에 들린 추천장은 요하임이 써준 것이었다.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인 클라라가 자신이 작곡한 곡을 연주한다는 것만으로도 벅찬 마당에 슈만의 찬사까지 들은 브람스는 하늘을 걷는 기분이었다. ‘병아리 작곡가’는 슈만 내외가 베풀어주는 호의에 감사했고, 이들 3명은 독일낭만음악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교감하며 예술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었다.

- 클라라가 사랑한 슈만, 클라라를 사랑한 브람스, 신동아 2012년 6월호
https://shindonga.donga.com/Series/3/9905040004/13/111157/3

 

 작품 내 설정에서도 폴과 시몬은 14살 차이고, 브람스처럼 시몬은 14살 연상인 여성을 열렬히 연모하고 있다. 작품 내에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물었다는 것은 당시 프랑스에서 브람스는 그렇게 인기가 많은 음악가는 아니었다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모차르트와 같은 음악가에 대해 물어본다면 당연히 "호"였지만 브람스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음악가였다. 여기서 폴은 자신이 브람스를 좋아했었는지, 자신의 취향에 대해 고민한 적이 없었지만 곰곰이 생각했다. 사실 시몬은 폴이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청한 데이트에 응해줄 것인지가 중요했다. 폴에게 브람스란, 평소 접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통해 자신의 취향 혹은 진실을 파해치는 것을 뜻했다. 당연하게 로제에게 익숙해져 있던 자신의 삶이 시몬이 들어왔는데, 진정 시몬이 자신이 원했던 것인지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 사랑이란

 사강의 작품이 강조하는 것은 사랑의 영원성이 아니라 덧없음이다. 실제로 사랑을 믿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농담하세요? 제가 믿는 건 열정이에요. 그 이외엔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사랑은 이 년 이상 안 갑니다. 좋아요, 삼 년이라고 해두죠." 또한 그녀의 작품에는 심오한 철학도 참여 의식도 이데올로기도 참신한 소재도 없다. 
...
그녀가 집중하는 것은 다만 한 가지, 덧없고 변하기 쉬우며 불안정하고 미묘한 사람 사이의 감정이다. 그리고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엄정하고 깊숙하고 철저하다. 

- 작품 해설에서

 처음에 폴은 시작할 때, 스물 다섯살의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과거의 자신을 떠올린다. 그리고 집에 찾아온 로제를 맞이한다. 로제는 관계에 책임을 지기 싫어하며, 자유를 갈망하고, 다른 여자들과 잠자리를 종종 하곤 한다. 하지만 로제는 폴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진실했다. 폴은 로제가 자신의 집에 찾아올 때마다, "혼자 있어?"라고 묻는 말에 씁쓸하다. 언제나 로제가 오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로제와 함께 밤을 보내고 싶고 늘 옆에 있었으면 하는 갈망이 있다. 하지만 로제가 혼자 있었냐는 질문에, "네가 혼자 있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야."라고 들리기 때문이다. 

 폴은 로제가 다른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는 것을 알았지만, 로제와 함께 했던 관계가 익숙하기 때문에 그를 떠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익숙함을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로제와 헤어지게 되었을 때, 시몬은 폴을 배려했고, 시몬이 주는 무한한 사랑은 이질적으로 느껴졌으며 오히려 로제만 더 그리워졌다. 결국 시몬과 헤어지게 되고, 로제와 다시 재결합을 했다. 로제도 폴을 사랑했기 때문에 다시 재결합을 원했다. 그들은 재회하자마자, 원래 그 관계 그 상태로 되돌아갔다. 로제는 다시 자유를 찾아 떠나고, 폴은 그런 로제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 이런 말을 언급한다. 사랑이라는 것은 부모, 형제·자매·남매, 친구와 느끼는 사랑과 연인과의 사랑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연인과의 사랑에서 집착과 소유욕을 보이곤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스파크 튀기는 열정으로 똘똘 뭉친 감정들은 순간의 설레임일뿐, 진정한 사랑은 상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그 자체로 응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폴과 로제의 사랑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에리히 프롬도 누군가의 희생이 강요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말했다. 폴은 어느 정도 이 관계를 지키기 위해 상처를 받으면서 자신의 희생하곤 한다.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먼저 사랑할 줄 알아야한다고 했다. 폴은 시몬에게 주의를 주었다. 나를 만나게 되면 아주 힘들어질거라고. 자기 자신에 대해 확신도, 취향도, 고독함을 즐길 수 없음도.... 폴은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아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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