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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책

테트 창, 숨(Exhalation), 지독한 운명론자의 낭만적인 이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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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바그다드 출신, 직물 거래 상인인 압바스는 시장에서 가장 큰 점포 건물에 새로운 가게가 생긴 것을 발견하고 그 가게에 들어갔다. 신기하고 진귀한 물건으로 가득했던 가게의 주인은 바샤라트. 바샤라트는 압바스에게 '세월의 문'을 소개했다. 왼쪽 문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고, 오른쪽 문은 미래로 돌아갈 수 있었다. 바샤라트는 바그다드에 가게를 오픈하기 전에 카이로에서 가게를 운영했었는데, 당시 그 가게에서 '세월의 문'을 이용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행운을 만난 밧줄 직공의 이야기
카이로에서 밧줄 직공 하산은 '세월의 문'을 통해 20년 후의 미래로 갔다. 젊은 하산은 늙은 하산을 만났는데, 늙은 하산은 부자가 되어 있었다. 늙은 하산은 젊은 하산에게 불행을 피해갈 수 있는 약간의 힌트만 주었다. 어느 날 젊은 하산은 소매치기를 당했고, 끝내 소매치기범을 잡을 수 있었다. 늙은 하산에게 왜 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냐고 묻자, 소매치기범을 잡을 때 기분 좋았냐고 물었다. 젊은 하산은 희열과 쾌감을 느꼈기 때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늙은 하산은 젊은 하산에게 정해진 미래를 이야기 해줌으로써 일상의 행복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늙은 하산은 마지막으로 젊은 하산에게 보물의 위치가 있는 곳을 알려줬고, 젊은 하산은 그 보물을 통해 부자가 되었다.

# 자기 것을 훔친 직조공 이야기
아지브는 20년 후에 자신의 미래를 보았는데, 미래에도 똑같이 허름한 집에 살고 있었다. 아지브는 믿을 수 없어, 늙은 아지브가 살고 있는 집에 들어갔는데 금은보화가 널려있었다. 아지브는 이렇게 부자면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늙은 아지브를 이해할 수 없었고 그 보물들을 전부 훔쳐왔다. 그렇게 아지브는 흥청망청 플렉스를 하기 시작했고, 오래 전부터 짝사랑했던 타히라라는 여자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다.
아지브의 씀씀이를 지켜보았던 도적들은 아지브의 집에 있는 보물들을 훔쳐갔고, 타히라를 납치했다. 타히라를 돌려 받기 위해서 엄청난 돈을 지불해야 했다. 아지브는 돈보다 값진 것은 타히라라고 생각했기에, 전재산을 팔아 타히라와 교환했다. 아지브는 타히라에게 자신이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었는지 설명했고, 타히라는 훔친 돈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살 수 없다고 했다. 아지브와 타히라는 검소하게 살면서 자기 자신에게 빚을 갚기 위해 금화를 모으기 시작했다. 어느 날 집에 둔 금화가 젊은 아지브에게 도둑맞은 것을 확인하고, 아지브는 후련함을 느꼈다.
# 아내와 그녀의 연인에 관한 이야기
하산의 아내 라니야는 어떤 젊은이와 남편이 같이 식사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라니야는 그 젊은이가 젊은 하산이라는 것을 바로 느꼈다. 라니야는 젊은 하산을 보니 갑자기 피가 들끓어 그와 하룻밤을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젊은 하산의 뒤를 밟아 20년 전 세월의 문을 이용하는 것을 보고 젊은 하산을 따라 20년 전의 문을 이용했다. 젊은 하산과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근처에 며칠동안 방을 빌렸다. 그리고 젊은 하산을 미행하기 시작했다.
젊은 하산은 값비싼 목걸이를 전당포에게 팔으려고 했는데, 그 목걸이는 하산이 라니야에게 준 목걸이었다. 젊은 하산이 그 목걸이를 팔아 넘기려고 할 때, 도적들이 그 목걸이를 보고 자신들이 숨겨놓았던 보석을 하산이 가져갔다고 확신했다. 하산의 목숨과 재산이 위험할거라고 예상한 라니야는 다시 '세월의 문'을 이용해서 20년 후의 늙은 라니야와 함께 고심했다. 늙은 라니야와 라니야는 서로 갖고 있는 목걸이를 가져와 흔한 목걸이라는 것을 보여주면 목걸이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그렇게 늙은 라니야는 제자리로 돌아갔고, 라니야는 젊은 하산을 유혹해 잠자리를 가졌다. 라니야는 많은 기술을 알려주며 젊은 라니야에게 이 기술을 써먹으라고 했다.

"이미 정해진 운명은 절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압바스는 라니야의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 희망을 얻었다. 압바스는 미래는 궁금하지 않았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 바샤라트는 바그다드에 있는 문은 지난주에 만들었기 때문에,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선 바샤라트의 아들이 운영하고 있는 카이로에 있는 가게로 가기를 권유했다. 압바스는 미래의 자신에 대해 궁금하지 않았지만, 어떠한 이야기도 요구하지 않는 바샤라트를 보고 자신의 미래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짐작했다.
압바스는 오래전 나쟈라는 아내를 얻어 결혼했는데, 어떤 사고로 인해 나쟈를 잃고 말았다. 사고 전 압바스는 그의 사업으로 인해 나쟈와 심한 부부싸움을 했고, 압바스는 그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떠났다. 떠났을 때 나쟈를 잃었기 때문에, 압바스는 나쟈에게 대했던 행동들이 후회로 남았다. 운명을 바꿀 수는 없지만, 압바스는 조금의 기대를 하며 나쟈를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바그다그에서 카이로로 떠났다.
카이로에서 20년 전으로 갔고, 나쟈를 만나기 위해 바그다드로 갔다. 하지만 수많은 장애물 때문에 나쟈를 볼 수 없었고, 이미 그 사고가 발생해 나쟈를 또 잃게 되었다. 어느 날 나쟈를 잠깐이나마 간병했던 사람이 압바스에게 찾아와 나쟈는 압바스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말을 전해주러 왔다. 압바스는 그 말로도 충분했다. 압바스는 카이로로 돌아가지 못했고, 그렇게 20년의 세월이 흘러버렸다.

이제 제 이야기는 제 인생을 따라잡았습니다. 이 두 가지는 얼기설기 얽혀 있고, 이것들이 지금부터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갈지는 대교주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전느 향후 이십 년 동안 바그다드에서 일어날 많은 일들에 관해 알지만, 저 자신에게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이제 저에겐 카이로에 있는 '세월의 문'으로 되돌아갈 노자조차 없지만, 저는 저 자신이 상상 못할 행운을 맛보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잘못을 돌아볼 기회를 얻었고, 알라가 어떤 방식의 구제를 허락하시는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대교주님이 묻기로 결정하신다면, 저는 미래에 관해 제가 아는 모든 것을 기꺼이 말씀드릴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건대, 제가 가진 가장 값진 지식은 이것입니다.
그 무엇도 과거를 지울 수는 없습니다. 다만 회개가 있고, 속죄가 있고, 용서가 있습니다. 단지 그뿐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첫 시작이 좋다. 이 편은 압바스가 대교주에게 바치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회고록이다. 압바스는 20년 후의 미래로 가게 될 경우, 그 미래 또한 현재일 것이다. 왜냐면 현재의 몸으로 과거를 갔고, 그 몸으로 온전히 나이가 들어 20년을 더 살았기 때문이다. 압바스가 만약 미래를 알기 위해 바그다드에 있는 '세월의 문'을 이용한다면 40년 후의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정도 나이면 생사가 불문하긴 하지.
테드 창의 소설을 읽다 보면 운명을 바꿀 수 없지만, 운명을 향해 가는 여정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지독한 운명론자이며 로맨티스트.


그들은 공기는 생명의 원천으로 사람들은 공기 충전소에서 알루미늉으로 만든 매끈한 원통 허파를 서로 공유하며 살아간다. 허파가 파열될 경우가 아니라면 이들은 웬만해선 죽지 않는다. 새해가 될 때마다 포고꾼은 1시간 동안 연설을 하는 관습이 있다. 정확하게 1시간이 딱 되면 시계가 울린다. 어느 날부터인지 연설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시계가 정각 알람을 울렸다. 시계학자들은 시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죽으면 뇌도 같이 파열되기 때문에, 뇌는 금빛 연기를 분출하며 흩어져 버려 뇌에 대한 연구가 미약했다. 사람들은 기억을 각인하는 장치가 뇌에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공기를 다시 주입해서 사람을 되살려냈을 때 원래 기억대로 돌아오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각인설을 믿지 않았다. 해부학자인 나는 뒷모습을 볼 수 있게 프리즘 네 개를 이용하여 자신의 뇌를 해부해서 기억을 각인하는 장치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내고 싶었다.
그가 해부로 인해 알게 된 결과는 뇌 안에 금박 조각들이 공기의 흐름으로 기억 및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공기의 흐름과 양이 필요한 것이다. 엄청난 속도로 금박 조각들은 격자 안에서 움직였지만, 속도가 빠른 대가로 표현하는 패턴과 의식을 빨리 지워버리기도 한다. 이 뇌 안에 있는 금박 조각의 움직임을 통해 시계가 빨리 울린 이유를 알아냈다. 우주 안의 공기의 양은 일정하지만, 이들이 사는 우주는 보이지 않는 벽으로 감싸있어 공기는 한정되어있으므로 우주의 기압이 높아지고 있었다. 공기를 사용할 때 이 기압을 낮추는 밸런스 역할을 사람들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말은 즉슨 이 우주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음을 뜻했다.
어떻게서든 인류를 살려보겠다는 역전 지지자들은 노력을 했지만,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살려고 발버둥치고, 생각하고 행동할 수록 기압은 점점 높아져가고, 적정한 공기를 마시지 못하는 그들은 빨리 죽게 된다. 나는 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인류가 죽을 수도 있지만, 다른 우주에서 이들이 사는 우주의 공기를 빌려갈지도 모르고, 이들을 관광하러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역사를 기록한다. 숨이 우리를 죽였을지라도 숨이 우리를 창조했던 그 순간에 감사하고, 후대에 사람들이 우리의 생각과 이념들을 알아주길 기대하면서.

탐험자여, 당신이 이 글을 읽을 무렵 나느 죽은 지 오래겠지만, 나는 당신에게 고별의 말을 남긴다. 당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의 경이로움에 관해 묵상하고, 당신이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기뻐하라.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할 권리가 내게는 있다고 느낀다. 지금 이 글을 각인하면서, 내가 바로 그렇게 묵상하고, 기뻐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읽었을 때, 인공 허파를 교체한다던지 뇌를 해부했는데 우리가 알고있는 신체 이름이 아니어서 이번 편에 나온 인류는 로봇같은 존재구나 싶었다. 내가 생각하고 행동을 할 수록, 공기가 요구되며, 한정된 공기로는 나를 죽이게 만드는 숨이었지만 해부학자는 이 숨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감사함을 느낀다. 사실 감사함을 느끼는 것은 이 인류는 죽음이 흔치 않았을 정도로 불의의 사고가 있지 않는 한 거의 영생이나 다름이 없었다.
무한한 삶이었을 때 알지 못했던 유한한 삶을 가졌을 때의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한정적인 시간과 자원으로 누리고 왔던 것에 대한 감사와 기쁨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다.


우리가 해야 할 일

예측기는 나의 미래를 볼 수 있는 리모컨 처럼 생긴 장치이다. 처음 재밌게 예측기를 가지고 자랑도 하고, 재밌게 놀던 사람들도 당장 짧은 미래를 본 뒤, 몇 주가 흐르면 미래를 본 사람들은 무력화해진다. 사람들은 자유의지에 의해 매 순간의 선택을 해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주 뒤 나의 미래를 보면 그 선택은 이미 정해져있던 운명이었던 것이다. 나의 행동 하나하나는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나의 자유의지로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이 허탈감이 든다. 예측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나는 일 년 뒤의 미래에서 당신들에게 이 경고를 전송하고 있다. 이것은 백만 초 범위의 네거티브 딜레이 회로가 통신 장치에 장착된 이후 처음으로 도착한 장문의 메시지다. 다른 문제들을 다룬 다른 메시지들도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나의 메시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자유의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라. 설령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어도, 스스로 내리는 선택에 의미가 있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무엇이 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엇을 믿느냐이며, 이 것짓말을 믿는 것이야말로 깨어 있는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을 피하 ㄹ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문명의 존속은 이제 자기기만에 달려 있다. 어쩌면 줄곧 그래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자유의지가 환상인 이상, 누가 무동무언증에 빠지고 누가 빠지지 않을지 또한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이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 그 누구도 예측기가 당신에게 끼칠 영향을 선택할 수 없다. 누군가는 굴복할 것이고 누군가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보내는 이 경고는 그 비율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런 일을 한 것일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운명은 자유의지에 의해, 즉 내가 만들어가는 선택에 의해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선택은 이미 결정되어 왔다는 것이다. 테드 창은 지독하게 운명론자이다. 절대 바꿀 수 없는 내 운명, 그렇지만 삶이 다 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즐기고, 느끼는 것을 강조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에서 사람들이 느꼈던 무력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어차피 이렇게 끝나는 걸 왜 나는 열심히 살아가는가? 이런 마인드가 우리에게 행복을 앗아간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에서 경고한 내용을 바탕으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이 어느 영화 한 편, 어느 소설 한 편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면. 이미 나의 인생의 결말은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그래서 혹 내 운명이 새드엔딩이라면, 나는 새드엔딩으로 가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그 과정을 즐길 것이고, 내 운명이 해피엔딩이라면, 내가 무슨 고난과 역경을 겪더라도 해피한 결말을 위해 달려가 살아가면 되는것이다.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 내 인생의 목적이 되는 것이다. 테드 창의 MBTI가 궁금하다... 혹시 '_NF_'이지 않을까..? 짧지만 임팩트있는 작품이었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애나는 동물원에서 6년 동안 근무한 사육사였다. 하지만 동물원이 문을 닫고 난 뒤, 그녀는 같이 동고동락했던 동물들과 헤어지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이별이 없을 것 같은 직종으로 바꿨다. 그녀는 소프트웨어 업계 일자리로 직종을 바꿨지만, 안타깝게도 애나를 찾는 회사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친구 로빈이 디지털 어스*에서 만나자고 했다. 로빈이 다니는 회사 '블루감마'에서는 현실에 존재하는 동물들을 캐릭터처럼 디자인하여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그래서 소프트웨어 쪽도 잘 아는 사육사가 필요했는데 애나가 가장 적합했다. 그래서 애나는 블루감마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데릭은 블루감마에서 디지언트용 아바타를 디자인하고 있었다. 블루감마에서 원하는 목표는 디지언트가 학습 능력이 있어서 직접 가르칠 수 있는 인공지능을 판매하는 것이다. 데릭은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를 파는 것처럼 느껴져서 이 일에 흥미를 느끼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애나를 만난 후, 데릭은 자신의 일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블루감마가 디지털 어스에 디지언트를 배포하고, 많은 사람들이 디지언트를 키우기 시작했다. 디지언트를 스스로 교육시켜야 하기 때문에 중도 포기하는 사람도 많았다. 사루메크 토이 사는 디지언트를 연결시키면, 물리적인 몸을 갖게 하는 로봇 몸체를 개발했다. 디지언트들은 처음으로 자신들을 키우는 주인을 직접 만져볼 수 있게 되었다.

 블루감마 사의 수요가 떨어지자, 폐업을 하게 되었고 더 이상 디지언트를 생산해내지 않았다. 하지만 기존에 디지언트들을 키우고 있던 사람들은 계속 키울 수 있었다. 애나는 잭스를, 데릭은 마르코와 폴로를 키우게 되었다. 디지언트를 키우는 사람들의 모임은 결속력을 갖게 되었고, 데릭은 이미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었지만 애나와 디지언트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할 때 행복했다.
 
 디지언트의 모임은 디지언트들의 학습능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교육을 하고 숙제를 주었다. 그리고 디지언트,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재능을 찾고 있었다. 일반 사람들과 함께 잭스는 춤추는 모임을 가지면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고, 마르코와 폴로는 자신들의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법인을 만들고 싶어 했다. 한편 데릭은 이혼했고, 애나와 만나고 싶어했지만 애나는 카일이라는 남자와 동거를 시작하게 됐다.

 데이터 어스가 인기가 떨어지자, 황폐해지기 시작했다. 떠오르고 있는 뉴로블래스트에 디지언트들도 후견인과 함께라면 참여할 수 있었다. 디지언트들은 후견인 없이도 뉴로블래스트에 참여하고 싶었다. 그리고 보호자들 또한 자신의 디지언트들이 주체적으로 행복했으면 했다. 하지만 이식할 돈은 턱없이 부족했다.

 돈이 필요했던 애나는 플리토프 사에 높은 연봉의 사육사로 스카웃 제안을 받았고, 그 조건은 사육하면서 인스턴트 라포르 패치*를 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애나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돈이 필요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바이너리 디자이어 사에서 무성(無性)인 상태의 디지언트를 복제하여 교육시켜 섹스 파트너를 개발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학대를 당하는 섹스 파트너가 아닌, 상대와 디지언트 사이에서 진짜 즐길 수 있도록 개발할테니 복제를 허가해주면 뉴로블래스트 이식에 투자하겠다고 했다.

 항상 독립을 원하던 마르코는 자신의 선택으로 이 실험에 참여하겠다고 했고, 폴로는 따라가겠다고 했다. 데릭은 그들을 그렇게 보내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마르코와 폴로가 실험에 참여한다면, 애나는 직장을 옮겨 인스턴트 라포르 패치를 사용하지 않아도 됐다. 그렇게 마르코는 실험에 참여하게 됐고, 애나는 직장을 옮기지 않고 앞으로 잭스가 꿈을 펼치고 살아갈 날에 설렜다.
  • 디지털 어스: 현실 세계에서 하는 모임을 가상 세계에서 할 수 있는 공간. 
  • 디지언트: 데이터 어스 같은 환경에서 사는 디지털 유기체. 
  • 인스턴트 라포르 패치: 약물로 상대에게 애정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약물
 인적이 없는 중세 소도시의 광장을 걸어가며 잭스가 말한다.
"가끔 더 이상 기다리지 않도록 그냥 정지되고 싶을 때 있어. 리얼 스페이스 들어갈 수 있을 때 다시 가동되면 시간 안 흐른 것처럼 느낄거야."
이 말이 애나의 허를 찌른다. 어떤 디지언트도 유저 그룹 게시판에 액세스할 수는 없으므로 잭스 혼자 그런 생각을 해낸 것이 틀림없다.
"정말 그러고 싶어?"
애나가 묻는다.
"아니. 깨어 있는 채로 무슨 일 일어나는지 알고 싶어. 하지만 가끔 짜증이 나."
그러고는 잭스가 묻는다.
"가끔 나를 돌보고 싶지 않은 기분이야?"
 대답하기 전 애나는 잭스가 그녀의 얼굴을 보게 한다.
"너를 돌볼 필요가 없다면 내 인생은 좀 더 단순해질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만큼 행복하지는 않을거야. 사랑해, 잭스"
"나도 사랑해."


 디지언트를 키운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과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 책 내에선 다운증후군에 걸린 아이를 돌보는 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보호자인 나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주체를 만드는 과정이 상세하게 나와 있다. 애나가 약물을 복용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카일과 헤어졌을 수도 있고 그렇다면 데릭은 애나와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데릭은 애나를 정말 사랑했기 때문에, 마음 한켠 실재하지 않는 존재라고 여겼던 자신의 디지언트들을 실험에 참가하게 했다. 하지만 데릭이 그렇게 정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면 마르코와 폴로는 오래전부터 데릭에게서 독립해 법인을 차리고 싶어했다. 데릭은 그들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보내줄 수밖에 없는 선택이었다. 

 결국 애나는 약물을 투입하지 않는 회사에서 일하지 않아도 됐다. 그래서 잭스에게 더 많은 경험을 만들어줄 수 있게 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져 그들의 삶에 장애물이 생길지 모르지만, 그들은 또 한 번의 기회를 얻게된 것에 감사하며 앞으로의 미래를 기대하고 있다. 디지언트들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덜 감정이입이 됐을텐데... 디지언트 말하는 게 너무 귀여워서, 마음이 아팠던 것도 있었다. 어떻게보면 아바타인데, 내가 아바타를 키우게 됐다면, 나는 그냥 중도에 유기해버렸을지도 몰랐겠다는 생각을 했다. 애나의 친구 로빈이 롤리를 파양할 때, 현실을 살거라는 말을 남겼던 것과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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