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냥, 책

정세랑 소설 11권(2) : 무던하게 코믹한데 깊게 파고드는 이상한 매력

반응형

https://jamjamzo.tistory.com/128

 

정세랑 소설 11권(1) : 무던하게 코믹한데 깊게 파고드는 이상한 매력

재인, 재욱, 재훈 독서 : 2022.10.13 ~ 2022.10.26 평범한 삼남매에게 평범하지 않은 능력이 있다. 강력하고 단단한 손톱을 가진 첫째 재인, 위험한 장소를 감지할 수 있는 둘째 재욱, 엘리베이터를 조종

jamjamzo.tistory.com

https://jamjamzo.tistory.com/138

 

정세랑 소설 11권(3) : 무던하게 코믹한데 깊게 파고드는 이상한 매력

https://jamjamzo.tistory.com/128 정세랑 소설 11권(1) : 무던하게 코믹한데 깊게 파고드는 이상한 매력 재인, 재욱, 재훈 독서 : 2022.10.13 ~ 2022.10.26 평범한 삼남매에게 평범하지 않은 능력이 있다. 강력하고

jamjamzo.tistory.com

보건교사 안은영

독서 : 2022.05.23 ~ 2022.05.25
 친구들에게는 늘 '아는 형'이라고 놀림받는 소탈한 성격의 사립 M고 보건교사 은영은 어릴적부터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환영들이 보인다. 일종의 엑토플라즘, 죽고 산 것들이 뿜어내는 미세하고 아직 입증되지 않은 입자들의 응집체다. 미색 젤리 같은 응집체는 종류와 생성 시기에 따라 점성이 달랐다. 죽은 것들은 의외로 잘 뭉치지 않는다. 산 것들이 문제다. 2차 성징의 발현이란 짖궂고 지겨웠다. 
 사립 M고의 한문교사인 인표의 할아버지는 사립학교 재단뿐 아니라 규모 있는 사업을 몇 개 굴리는 큰 손이었고, 가장 사랑받는 손자였다. 하지만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보조개 같은 흉터와 한쪽 다리를 절게 되었다. 재단 집안이면 보통 다들 아니꼽게 생각하고 재수 없어 하기 마련이지만, 한적한 교과목을 맡은데다 다리를 저는 게 나이 든 선생님들의 모성애와 부성애를 이끌어 내서인지 교사 사회에 부드럽게 받아들여졌다. 
 환영들을 제거하기 위해 오래된절이나 명승지와 같은 곳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데, 은영은 왠지 인표의 손을 잡으면 힘이 커지는 것만 같았다. 에너지를 주는 인표와 에너지를 받아 싸우는 은영의 좌충우돌 이야기.

 

"그만두지 말아요. 다른 데 가지 말아요."
"안 그래도 몇 년 더 잇으려고요. 이 학교는 잠잠하다 싶으면 더 위험한게 꼬여서."
"그런 의미가 아니라 나랑 있어요."

 인표는 은영의 차가운 손을 잡았고, 곧 두 손으로 그 손을 감쌌다. 30년쯤 깎아 왔을 텐데도 여전히 어마어마하게 못 깎은 손톱에 입을 맞추고 은영을 끌어당겨 안았다. 엉킨 머리카락 속에 손을 넣었고 이마에도 입을 맞췄다. 
"엄청 차근차근 추근거리네."

 

 넷플릭스 <보건교사 안은영>을 먼저 봐서 그런지 원작이 너무 궁금했다. <보건교사 안은영>으로 쌓아올린 작은 공이 정세랑 작가의 작품 11권을 모두 읽게 되다니... 사실 이렇게 오랜만에 깔깔깔 웃으면서 읽었던 책은 처음이었다. 다양한 에피소드들 하나하나가 정말 넷플릭스 <보건교사 안은영>과 같이 역동감이 넘치게 재밌었지만, 내가 보기엔 정세랑 작가는 로맨스를 아주 잘 쓰는 작가같다. 너무 끈덕지고 애절하게 담지 않는데, 뭔가 간질거리는 로맨틱함이라면 적당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마지막에 작가의 말은 유쾌하게 쓰고 싶어서 썼던 작품이라 했는데, 작가의 진심이 정말 통해버렸다. 이렇게 재밌을 수가!! 솔직히 넷플릭스 시즌2 말고, 원작으로 시즌2를 기다리는 중이다!!!

 


피프티 피플

독서 : 2022.06.19 ~ 2022.06.28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주인공이 50명쯤 되는 소설. 사람 사는 이야기. 
하루에 단어 하나밖에 쓰지 못하는 건가.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잖아. 당신한테 반하는 바람에 이 병원에 남았다고, 당신 수술을 보는 게 가장 즐겁다고, 결혼하자고, 나는 요리도 잘하고 청소도 잘한다고, 경력 단절 같은거 절대 경험하지 않도록 육아든 뭐든 의학적 재능이 덜한 내가 하겠다고, 당신을 서포트하기 위해 내가 태어난 거나 다름 없다고, 그렇게 몇년이나 몇년이나 생각해왔다고, 아니 아니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고, 그건 내 망상일 뿐이라고, 당신의 그 기적 같은 손가락을 한번만 살짝 잡아볼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벌써 이 작품을 읽은지 4개월이 지나 이 후기를 적고 있는데, 그 땐 몰랐지만 지금은 뭔가 알겠다. 요즘 <이만큼 가까이>라는 작품을 읽고 있는데, 거의 의식의 흐름대로 주인공의 시선에 따라 흘려가듯 읽고 있다. 피프티 피플은 정말 이렇게 모두 다른 사람의 내용만 담은 것인까 싶다가도 가끔 아는 사람 등장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어? 나 이 사람 아는데! 

 [새로 쓴 작가의 말]에 싱크홀 발생으로 인해 지역 공동체 사고 피해자에 대한 애도가 이 소설의 시작점이라고 했다. 어느 한 사건이 중심이 되었지만 우리 모두가 우리의 삶의 주인공이다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시선으로부터

독서 : 2022.06.30 ~ 2022.07.11

 

 '시선'으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 젊은 시절 유명한 독일 아티스트 마티아스 마우어의 뮤즈 '시선'은 두 번의 결혼으로 명혜, 명은, 명준 그리고 경아를 얻었다. 시선의 자식들은 또 자식을 낳았고, 시선의 자손들은 그녀의 기일을 위해 시선이 죽은지 10년만에 하와이에서 모였다. 그렇게 '시선으로부터' 시작된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시선의 이야기.
질문자: 그럼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성공적인 결혼의 필수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심시선: 폭력성이나 비틀린 구석이 없는 상대와 좋은 섹스.
....
심시선: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구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에 간절히 필요로 하는 모든 요소를 한 사람이 가지고 있을 확률은 아주 낮지 않을까요? 그리고 규칙적인 근사한 섹스의 가치를 너무 박하게 평가하지 마세요. 스트레스 핸들링에 그만큼 도움되는 것도 잘 없습니다. 제법 괜찮은 섹스는 감은 눈에 존재하지 않는 색깔이 떠오르게 하니, 그림일기를 쓰고 싶어질지 몰라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법은 응당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 

 이 시기에 <사랑의 기술>을 읽어서 그런지 몰라도 마음을 울리는 구절이 많았다. 특히 폭력, 트라우마, 이혼... 등 여자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프레임에 깨고 나오라는 위로까지 선사해주는 아름다운 책이었다. 심시선 한마디 한마디가 어찌나 가슴에 콕콕 박히다니, 이런 책이 자기계발 도서가 왜 아닌거지? 내가 하는 사랑, 내가 만드는 이야기, 나의 삶은 모두 의미가 있습니다. 

 


이만큼 가까이

독서 : 2022.10.27. ~ 2022.11.13.
 허허벌판이었던 경기도 파주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친구들의 이야기이다. 나는 친구들을 가끔 캠코더로 기록하면서 성인이 된 친구들의 이야기와 학창시절 당시 친구들의 이야기를 마치 일기처럼 풀어 나간다. 

- 송이: 누구보다도 파주를 벗어나고 싶은 요괴의 얼굴을 한 송이. 송이는 어릴 적부터 자신만의 개성을 살려 옷을 입는 것을 좋아했다. 학교에서 복장 및 두발 단속시 항상 걸렸던 송이, 하지만 꿋꿋하게 입고 다닌다. 옷이 좋았던 송이는 유니폼을 입을 수 있는 승무원이 되었고, 파주를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을 갖고 멀리멀리 날아 다닐 수 있게 된다. 언니 간병을 하러 뉴욕에 갔다가 공원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었는데, 디자이너 눈에 띄어 불법 취업 후, 디자이너 공부를 시작하다 진로를 확 바꿔 버렸다. 

- 주연: 파주에서 가장 멋진 집으로 이사를 온 단발 머리 주연. 나는 주연이 웃지 않아도 될 때, 웃지 않아서 좋았다. 주연은 인도에서 학교를 다니고 전학을 왔는데, 주연은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정의로운 사회부적응자였다. 정당하지 못한 것을 참을 수 없고, 공정하지 못한 것에 폭발한다. 그 좋은 능력을 갖고도 주연은 자신의 성격을 유일하게 받아줄 수 있는 박봉의 출판업계에서 일하게 되었다. 주연은 어느 날 3개월 어학연수를 하고 싶어 회사에 휴가 신청을 했는데, 회사에선 거부했고 주연은 쿨하게 사표를 날렸다. 

- 찬겸: 분홍색 소세지 같은 똑똑이 찬겸. 찬겸은 늘 공부를 잘 했지만, 오동통하고 작은 분홍색 외모를 지녀 학급 아이들에게 은근한 괴롭힘을 당했다. 늘 나와 송이는 찬겸을 구해주었다. 찬겸은 특목고로 진학할 수 있었지만, 나와 송이와 같은 학교를 다니기 위해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하였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니 키도 크고, 몸도 날씬해져 예전 분홍 소세지 같은 이미지는 없어졌다. 찬겸은 무리 중 가장 모나지 않는 삶을 산다. 프랜차이즈 치과 의사로 활동하며, 전국 방방곳곳을 떠돌며 집들이를 열곤 한다. 

- 민웅: 얼굴과 피지컬 축복받은 과수원 집 아들. 학창시절 민웅이를 좋아하지 않은 여고생이 없을 정도로 잘생겼다. 민웅은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뛰어 다닌다. 그 뛰는 모습마저 멋있다. 민웅의 사촌 형들은 동네에서 알아주는 마을 지킴이였다. 민웅도 그런 사촌형들을 자랑스러워 했다. 민웅은 훗냥 조경회사에 취업해 자신의 삶에 만족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 수미: 수미의 삼촌은 동네에서 유명한 깡패다. 하지만 수미의 삼촌은 약한 사람에게만 폭력을 행사하는 비겁한 작자일 뿐이다. 수미는 늘 밝고, 가족을 사랑하려고 했다. "가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사랑할 필요는 없어. 하나도 안 사랑해도 돼."라는 민웅의 말을 듣고, 민웅을 사랑하기로 했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 수미는 친구들과 멀어졌고, 그녀는 피해를 받고 있는 여성들을 돕는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 주완: 맬펑션한 나의 첫사랑. 나를 맬펑션하게 만들었던 첫사랑. 주완은 강하게 키우려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인도에서 약물 중독에 빠져 한국으로 넘어왔다. 학교도 다니지 않은 채 요양하고 있었는데, 주완과 나는 서로에게 스며들어 갔다. 주완은 영화를 좋아했고, 동네 지나가는 강아지들을 좋아했다. 

 어느 날 총기를 들고 도주한 탈영병이 인근 모텔에서 자살한 채로 발견되었지만 총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 총은 수미의 동생 수호가 갖고 있었고, 수호는 매일 총 쏘는 연습을 했다. 그 총에 맞게 된 사람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주완이었다. 주완을 몰래 산에 묻기 위해 수미와 수미의 삼촌은 야산에 올라가다 동네 아티스트 찬용 오빠한테 들켜 수미, 수호, 수미의 삼촌은 법적 처리를 받게 되었다. 주완을 잃은 나는 맬펑션해졌고, 계속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살다 간 사람, 있다가 없어진 사람, 있어도 없어도 좋을 사람, 없어도 있는 것 같은 사람, 있다가 없다가 하는 사람, 있어줬으면 하는 사람, 없어져버렸으면 하는 사람, 없느니만도 못한 사람, 있을 땐 있는 사람, 오로지 있는 사람, 도무지 없는 사람,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사람, 없다는 걸 확인시켜주지 않는 사람, 있어야 할 데 없는 사람, 없어야 할 데 있는 사람…… 우리는 언제고 그중 한, 혹은 둘에 해당되었다. 

 가장 최근에 읽고 바로 쓰는 독후감이라서 그런지 줄거리가 길다. 처음 읽었을 때, 이 이야기는 어떤 주제를 말하고 싶은걸까? 하며 읽어 내려갔는데, 절정에 이를 수록 맞아 떨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주완은 미래에 왜 등장하지 않은거고, 혹시 자살 시도라도 한걸까 싶었는데, 주완은 초등학생의 총에 맞아 죽고 야산에 묻힐 뻔 했다. 민웅과 수미는 서로 사랑하지 않고, 상처만 주는 관계로 끝나버렸다. 상대적으로 민웅보다 상처가 깊을 수미의 곁을 더 지켜주고 싶었지만, 나는 수미의 곁을 지킬 수 없었다. 수미를 생각하면 주완의 죽음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사연없는 사람은 없었고, 이겨내지 못할 상처도 없다. 그 상처를 지닌 채 새로운 내일을 어떻게 살아가는 지가 중요한 것이다. 초반에 특유의 정세랑 작가의 유머스러운 필력으로 즐겁게 읽었는데, 마음이 너무 아픈 소설이 되어 여운이 오래 남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