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하기 전에 지극히 사적인 소감을 말하자면
최근 도파민 중독 이슈로 인해 책도 아주 자극적인 소재만 찾아다녔다... 이러다간 바보가 되고 말거라는 생각이 들어 머리에 자극을 좀 주어야 할 때인 것 같았다. 딱 두껍고, 어려운 단어 범벅인 책을 원했는데 외국인 작가의 글을 어렵게 꼬여 쓴 번역투는 싫었다(외국인 작가가 쓴 책은 쉽게 번역해주세여🥲). 마침 한국인이 쓴 책을 추천받았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인류학 재질ㅋㅋ 읽는 동안 3분을 집중하기가 참 어려웠지만(나의 문해력,어휘력 이슈..) 꾸역꾸역 매일 아침 1장씩 읽었다! 오예!
다양한 역사적, 문학적 예시를 두고 인류의 장소와 환대의 개념에 대해 설명한 책이다. 이 사회엔 슬프지만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존중받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따로 있는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한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동등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각자의 특정한 장소, 특정한 환대가 있는 사회에서는 여전히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다. 오래 전 역사와 비교하면 아주 많은 포용을 선사해주고 있어 보이지만, 여성, 외국인, 성 소수자, 장애인 등 많은 부류들은 동등하게 환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세계는 점점 하나가 되어가지만 여전히 쪼개어져 있는 우리는 아직 동등한 사회를 말하기에 완벽하지 않다.
📖 About this book
💡 Summary <프롤로그:그림자를 판 사나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에 들어오고, 사람이 되는가?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받아들여진 것인가 아니면 이 세상에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사람이 된 것인가? 다시 말해서 ‘사람’이라는 것은 지위인가 아니면 조건인가? (…) 이 책의 키워드는 사람, 장소, 그리고 환대이다.
(1~3장)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
(4~5장) 상호작용 질서 대 사회구조라는 고프먼의 이분법을 따르면서, 상호작용 질서에서의 형식적 평등과 구조 안에서의 실질적 불평등이 어떻게 현대 사회 특유의 긴장을 가져오는지 설명한다.
(6~7장) 절대적 환대 없이는 사회가 생겨날 수 없음을 보임으로써 - 절대적 환대의 필요성을 증명하려 하였다.
🗒️ Quotation
1장 사람의 개념 (태아, 노예, 군인, 사형수)
태아와 아기는 다르다. 특정 의식(돌잔치, 백일잔치 등)을 거치고 나서 사회에 등록해야 비로소 아기는 사회에 인정받는 하나의 사람으로 분류를 한다. 아기가 되기 전에 태아는 특수폐기물로 분류로 취급된다.
노예는 사람으로 보지 않고 물건으로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동등한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았다.
군인 또한 나라에 종속된 노예나 마찬가지다. 일부 전쟁을 치룬 나라는 물리적인 폭행이 메인이 아니었고, 쪽수로 기선제압을 하고 선두에 나와있는 병사들끼리만 싸웠다. 그렇기 때문에 인명 피해가 덜 있었는데, 유럽 국가들은 실제로 대포와 같은 무기를 활용해 실제로 많은 인명피해, 즉 학살을 벌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형수는 동등한 사람 자격,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가치를 부여받지 않았기 때문에 사형을 집행할 수 있었다. 사람 대 사람으로 살인을 저지른 살인자는 그 문화의 법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형수는 동등한 사람이라고 보지 않았기에, 모두를 대표하여 범죄자를 처형할 수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 노예는 거의 사라진 제도고, 군인의 인권을 보장해주기 위해 국가에서 나름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형수는 아직까지도 소외받은 존재나 다름이 없다.
내가 가진 사회에서 사람의 개념을 갖기 위해,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사람의 영역에 들어오지 못하는 부류도 있다. 그 부류의 희생이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장 성원권과 인정투쟁 (주인과 노예, 외국인의 문제, 오염의 메타포)
📌 사람이라는 것은 사람으로 인정된다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사회적 성원권을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말해서 사회는 하나의 장소이기 때문에, 사람의 개념은 또한 장소의존적이다. 실종자의 예에서 보았듯이 특정한 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사람의 지위를 상실할 수 있다.
하지만 장소라는 것은 하나의 물리적인 공간을 나타내는 것보다 ‘소속감’, ‘연대’를 나타내는 특정 정체성을 고루 갖춘 집단을 나타낸다. (하지만, 소속감과 성원권은 다르다.) 그런 정체성의 기준이 애매모호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인정 투쟁’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성원권’을 얻으려고 한다.
- ‘주인과 노예’ : 인간은 타자의 인정을 욕구한다. 노예들은 주인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인정 투쟁’을 벌인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사회 외부에서 존재하는 투명인간이다. 그래서 노예가 된다는 것은 큰 굴욕이기에,자유인들은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데 힘을 쓴다.
- ‘외국인의 문제’ : 환대를 받을 수 있지만, 수틀리면 환대가 철회될 수도 있다. 충분히 사회적 성원권을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깊게 들어가면 그들은 늘 철저하게 분리되고 있다. 외국인으로서의 환대와 사회적 성원권 부여는 구별되고 있다. 즉, 외국인으로서만 살아야 하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 ‘오염의 메타포’ : 신분, 흑인, 남녀차별을 통해 ‘더럽다’라는 말이 어떻게 쓰이는지 짐작할 수 있다.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놓여 있지 않은 것을 볼 때, 불쾌함을 느낀다. 식모 흑인은 눈에 띄지 않게 뒷문으로 다녀야 하거나, 여자는 자고로 남자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면 안된다는 인식을 갖게 한다.
- 결국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매우 신성하다고 느끼거나, 해당 객체가 지배계급의 통제를 벗어남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3장 사람의 연기/수행 (가면과 얼굴, 명예와 존엄)
사람다움은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연기(수행)을 통해 사람들 앞에 드러내는 것이며, 서로 그렇다고 믿어주는 것이다.
📌 인격과 성격을 구별하듯이 우리는 이 둘을 구별해야 한다. 가면이 우리가 연기하고자 하는 성격과 관련된다면, 얼굴은 그 가면의 배후에 있다고 여겨지는, 연기자로서의 우리의 주체성과 관련된다. 나는 지금 가면의 뒤에 연기되지 않은 진짜 자기가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기를 연기하며, 심지어 일기를 쓸 때도 그러기 때문에, 진정한 우리 자신이 어떠한지 결코 알 수 없다. 가면의 뒤에-즉 얼굴의 자리에-있는 것은 어떤 종류의 내면성이 아니라, 신성한 것 또는 명예이다.
- ‘가면과 얼굴’ : 가면은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성격, 인품이고 얼굴은 체면이다. 즉, 둘 다 진정한 ‘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보여지는 ‘나’를 대변해주는 역할이다. 서로의 체면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며, 가면이 벗겨지더라도 이해해주는 것이 이 사회의 상호작용하는 방식이다.
📌 버거는 우리가 명예의 세계를 떠나 존엄의 세계로 옮겨왔다고 말한다. (…) 명예는 그것을 가질 자격이 있는 자에게만 주어지지만, 존엄은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 ‘명예와 존엄’ : 명예는 어떤 한 가치에 대한 평가나 마찬가지라,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면 나 자신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존엄은 나 자체로써 존중받는 것을 뜻한다. 모욕받는다는 것은 명예에만 해당하는 내용으로 생각하지만, 존엄성 또한 모욕받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동성애자들은 그들 자체로써 인정받지 못하고 모욕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4장 모욕의 의미 (인격에 대한 의례, 배제와 낙인, 신분과 모욕, 사회의 발견 , “사람이 되어라”, 굴욕에 대하여)
- ‘인격에 대한 의례’ : 사람들은 특정한 인간이 아닌 보편적인 인간에게 의례가 행해진다. 나와 같은 집단으로써 행하지 않는 사람에게 굳이 인격에 대한 경의를 표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 ‘배제와 낙인’ : ‘스티그마’란, 그리스어로 낙인을 나타낸다. 감옥에 수감 중인 사람들과 특정 낙인을 찍힌 사람들은 사람들의 무리에서 환대를 받기 어렵다. 그나마 끼워주는 척 하지만, 선을 넘는 모습을 보이면 소위 정상인이라고 말하는 집단에서 그들을 철저하게 배제한다.
📌 우리는 이렇게 해서 모욕의 역설을 이해하게 된다. 모욕은 타인의 인격을 부정할 뿐 아니라, 그러한 부정에 대해서 부정당하는 사람의 동의를 강요한다. 하지만 모욕 당하는 자가 모욕에 동의하는 순간, 모욕은 더 이상 모욕이 아니다. 그것으 의례의 일부이며, 질서의 일부이다. 결국 모욕은 자신의 본질을 부적하는 것을 최종적인 목표로 삼는 폭력이다.
- ‘신분과 모욕’ : 신분제가 사라진 현대사회에서도 여성, 외국인, 장애인, 재소자 등은 오를 수 없는 계급에 한정되어 있다. 그들은 동급 대우를 받지 않음에도 ‘모욕의 역설’을 갖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회’의 존재를 깨닫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 ‘사회의 발견’ : 신분 질서의 해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 ‘사람이 되어라’ : 신분 질서가 해체되었더니, 교육과 재산 등으로 또 다른 계급이 생겨났다. 조금 더 많이 배우고, 가진 사람만이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어쨌든 사람들은 나누고 싶어한다.
- ‘굴욕에 대하여’ : 모욕은 가해자가 있는 반면, 굴욕은 스스로 느끼는 감정이므로 대처하는 방식에 따라 ‘쿨하다’, ‘찌질하다’로 나눠진다. 보이지 않는 신분 사회로 인해 자연스럽게 모욕을 당하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굴욕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5장 우정의 조건 (순수한 우정과 순수한 조건, 가부장제를 보완하는 국가, 증여와 환대, 공동체에 관한 두 개의 상상)
📌 자선은 순수한 선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자선의 숨겨진 동기에 대해서는 굳이 따지지 말기로 하자. 비록 동기의 순수함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언제나 있었지만 말이다. 우리가 정작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은 자선의 일방적인 성격이다.
자선이라 부르지만 우리는 은연 중에 ‘기브 앤 테이크’를 생각하고 있다. 또 다른 예로, 누군가에게 순수하게 자선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자선을 받은 사람이 나에게 돌려주는 선의를 베푼다면 더 이상 그에게 자선을 베풀기가 민망스럽다. 왜냐? 우리는 은연 중에 동급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순수한 우정과 순수한 선물’ : 환대는 시민의 의무지만 우정은 거부할 수도 있고 의무도 아니다. 우정이라는 것은 서로의 상호작용 안에서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고받는 선물에도 비용의 가치를 매겨선 안된다. 하지만 인생살이가 이렇게 순수하기 쉽지 않다.
- ‘가부장제를 보완하는 국가’ : 전통적인 가부장제가 아니더라도 부모가 자식에게 어떠한 재산을 양도하거나,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끔 투자를 해주기도 한다. 이런 통제로 인해 그 ‘감정’이 순수하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이런 부모-자식과의 관계에서 또한 ‘환대’의 관계를 느낄 수 있다.
📌 증여는 인정의 문제이다. 소유가 사람과 물건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점을 앞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내가 어떤 물건을 소유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그 물건의 소유자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 ‘증여와 환대’ : ‘환대’라는 것은 같은 테두리 안에 사람들을 존중하는 태도이다. ‘증여’를 한다는 것은 선의로 보일 수 있지만 동등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나의 재산을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만약 내가 갖고 있는 물건이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면, 가치가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 ‘공동체에 관한 두 개의 상상’ : 공동체냐, 개인이냐 이분법으로 나누곤 하는데, 사실은 공공성이 강화될 수록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의 힘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규범을 만들어 지켜주어야 한다.
6장 절대적 환대 (신원을 묻지 않는 환대,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 환대, 복수하지 않는 환대)
📌 신원을 묻지 않는 환대는 현대 사회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이다. 우리는 이것을 세 가지 층위에서 확인한다. 첫째, 모든 인간 생명은 출생과 더불어 사람이 된다. 둘째, 공적 공간에서 모든 사람은 의례적으로 평등하다. 셋째, 자기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다.
📌 “네가 레즈비언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네가 오늘은 레즈비언이라고 고백하고 내일은 그것을 부인해도 상관없다. 나는 너에 대해서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너 자신임을 인정한다.”
- ‘신원을 묻지 않는 환대’ : 계급사회가 만연했던 시대엔 신원을 묻고, 환대 여부를 결정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다르다. 일단 그 자체로서 존중한다.
-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 환대’ : 절대적 환대의 가장 기본적인 예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절대적인 관계가 항상 절대적인 환대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동등하지 못하다고 생각한 관계에서 내가 ‘증여’해준 선의는 빚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응당 되갚지 못하면 배신자의 낙인이 찍힐 수도 있다. 이렇게 의무와 빚으로 이루어진 관계는 사회로 볼 수 없다.
- ‘복수하지 않는 환대’ : 적에게는 절대적 환대를 제공할 수 없다? 사회에서는 개인의 복수를 하지 않고, 사회에서 부여한 처벌을 주려고 한다. 개인의 복수를 위해, 사람다움의 대접을 해주지 않는다면 이것은 나치즘과 다름없다. 폭력으로 대응하게 된다면, 우리는 동등한 자격이 될 수 없다.
7장 신성한 것 (죽은 자의 자리, 서바이벌 로터리)
📌 신성함이 사회로부터 온다는 말은 결코 사회가 마음대로 그 구성원에게서 존엄을 박탈할 수 있음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구성원들을 절대적으로 환대하는 것, 그들 모두에게 자리를 주고, 그 자리의 불가침성을 선언하는 것이야말로 사회가 성립하기 위한 조건이다. 조건부의 환대는 어떤 식으로든 사회 안에 전쟁을 다시 끌어들이고, 그리하여 사회의 개념을 토대에서부터 무너뜨린다.
- ‘죽은 자의 자리’ : 죽은 자를 존중하는 것 또한 환대에 속한다. 모든 생명은 가치가 있다고 보며, 적어도 그들의 남은 자리를 기리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령, 태아는 사회에서 받아들여진 존재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 환대 여부는 어머니에 달려있다.
‘서바이벌 로터리’ : 두 사람의 생명을 위해 무고한 사람의 장기를 적출해도 되는지?…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고, 이 사회에 이바지하기 위해 장기 적출을 자원할 사람을 랜덤으로 뽑는다는 것을 주장한 해리스. 자발여부를 떠나 이러한 생명을 담보로 거래하는 것은 더 많은 차별을 낳아내는 수단밖에 되지 않는다.
부록) 장소에 대한 두 개의 메모
📌 장소를 위한 투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단지 지구가 너무 좁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한 번 의미를 부여한 장소를 쉽게 잊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장소는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 여성에 대한 사회적 환대는 여전히 조건적이다. (…) 여성은 자리를 위한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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