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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n Prisa, Sin Pausa
그냥, 책

노벨문학상 한강 <소년이 온다> 44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은 5.18 광주 민주 항쟁

by 조잼 2024.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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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교보문고

 

 2년 전, 유명한 소설들을 다 읽고 싶은 마음에 한강 소설도 응당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 시도했던 책은 <작별하지 않는다>였는데, 특유의 우울하고 어두운 문체와 시같은 표현들이 당시 나에겐 크게 와닿지가 않았다. 

https://event.kyobobook.co.kr/detail/225983

 

2024 노벨문학상: 한강 작가 수상! – 교보문고

한국 작가 최초 수상! 2024 노벨문학상 한강

event.kyobobook.co.kr

 

 그리고 2024년 10월, 한강 작가는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셨다! 심지어 한국인 최초라는 타이틀과 더불어 여성 문학인이 받으셨다는 것에 감격, 또 감격이었다. 과거에는 읽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노벨수상작은 거의 뭐 나같은 책 리뷰어한테 응당 써야하는 필독서 아닌가?! 한강 작가님께선 본인의 작품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하지 않는다>부터 추천하셨지만, 나는 <소년이 온다>부터 시작해봤다. 

 

출처: 한강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울컥 “5·18 세계에 알려줘 고마워”

https://www.khan.co.kr/culture/book/article/202410111001001

 

한강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울컥 “5·18 세계에 알려줘 고마워”

“사람들이 다 알아야지 우리만 알면 쓴대요. 이제는 세계가 다 5·18을 알겠지요.” 김길자씨(85)는 11일 소설가 한강(54)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마음이 울컥하고 ...

www.khan.co.kr

 

 <소년이 온다>는 실제 인물 문재학 열사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 사실 한강 작가는 광주 출신 작가였고, 광주에서 서울로 이사가고 몇 개월 뒤에 5.18 광주 민주 항쟁이 벌어졌다. 잔인한 인간과 선한 인간이 공존하는 이 사건에 의구심을 갖게 되었고, 한강 작가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작가는 이 작품을 쓴 이후, 본인 스스로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총 6장과 에필로그로 구성된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다. '동호'라는 소년은 문재학 열사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다. 이야기의 중심은 동호라는 소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동호만을 위한 헌정소설이 아닌 것 같았다. 

 

1장 어린 새

 (...) 달아났을 거다, 라고 이를 악물며 너는 생각한다. 그때 쓰러진게 정대가 아니라 이 여자였다 해도 너는 달아났을 거다. 형들이었다 해도, 아버지였다 해도, 엄마였다 해도 달아났을 거다.
 체머리 떠는 노인의 얼굴을 너느 돌아본다. 손녀따님인가요, 묻지 않고 참을성 있게 그의 말을 기다린다.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적거리는 노인의 두 눈을 너느 ㄴ마주 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동호네 사랑채에 세들어 사는 동갑내기 정대와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정미 남매는 실종되었다. 사실 동호는 정대가 어디있는지 알 수 있었다. 정대는 계엄군의 총알에 옆구리를 맞았고, 동호는 그 장면을 목격했지만 도망쳤다. 동호네 식구들은 없어진 정대를 찾아 헤맸는데, 누나 정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동호는 그 죄책감 때문인지, 도청에서 사람들을 돕고 있었다. 

 

저건 아주 흔한 물방울무늬 치마가 아닌가? 저런 치마를 입고 일요일에 나가는 걸 확실히 본 것도 아니지 않나. 정미 누나의 머리카락이 저렇게 짧았던가? 저런 단발은 진짜 여중생만 하는 거 아닌가. 절약이 몸에 밴 정미 누나가, 여름도 아닌데 뭣하러 발톱에 매니큐어를 발랐을까. 하지만 너는 그녀의 맨발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검푸른 팥알만 한 점이 그녀의 무릎 위쪽에 있었는지는 정대가 알 것이다. 정대가 있어야 저 사람이 정미 누나가 아니란 걸 확인해줄 수 있다. 

 

 정미는 방직공장에 다니면서 동생 정대를 위해 학비를 마련했고, 심지어 자신의 꿈은 의사라며 야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저 시체가 정미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하지만 정미는 2장에서 알 수 있듯 어디엔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죽었다. 정미는 꿈이 있었던 소녀였다. 가족을 위해 철들기엔 너무 어렸다. 동호가 바라보는 정미(정미라고 확신할 순 없지만) 시체를 보면서 많은 꿈이 많던 어린 소년 소녀들이 이 학살로 인해 죽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동호는 정대를 놓고 온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정미 누나의 시체라고 할 지라도 감히 다가갈 수 없었다. 극악무도한 짓을 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이 사람들이 죄책감을 가져야 했을까?

 

2장 검은 숨

 초파일이 마침 일요일이었을 때였지. 엄마를 모신 절에 당일치기로 다녀오려고 누나와 함께 강진에 내려갔지. 시외버스 창밖으로 봄날의 논배미들이 보였지. 누나, 온 세상이 어항이야. 모를 내기 직전의 맑은 논물에 하늘이 끝없이 비쳐 있었지. 아카시아 냄새가 창틈으로 새어들어와, 나도 모르게 코가 벌름거렸지. 
 
 누나가 햇감자를 쪄줬지, 혀를 데어가며 그걸 후후 불어 먹었지.

 설탕같이 부스러지는 수박을 먹었지, 새까만 보석 같은 씨앗들까지 꼭꼭 씹어 먹었지.

 국화빵 봉지를 스웨터 속 왼쪽 가슴에 품고 누나가 기다리는 집으로 달렸지, 두 발은 얼어서 아무 감각이 없었지, 심장만 활활 타는 것 같았지.

 키가 자라고 싶었지.

 팔굽혀펴기를 마흔번 연달아 하고 싶었지.

 언젠가 여자를 안아보고 싶었지. 나에게 처음으로 허락될 여자, 얼굴을 모르는 그 여자의 심장 언저리에 떨리는 손을 얹고 싶었지. 

 

 2장 검은 숨은 다른 장과는 다르게 살아있는 인물이 아니라, 죽은 혼의 독백으로 이뤄졌다. 나는 특히 2장이 제일 기억에 남았고,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그 몸들은 힘없이 여기저기 산처럼 쌓여져 있고, 몸에서 빠져나온 수많은 혼들은 그 주변을 멤돌고 있다. 한강 작가는 한 때 시인이었다고 했는데, 정말 2장은 마치 시같았다. 그 혼들 중 하나인 정대의 나레이션으로 이야기한다. 정대는 황망하게 죽었고, 정미 누나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정대 또한 꿈이 있었다. 남들에겐 시시한 이야기라도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키 작은 중학생 소녀였다. 

 저 검은 혼들은 한이 맺혀 있었고, 이승을 떠돌고 있다. 정대는 동호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동호도 또한 죽어버렸다. 정대는 어디로도 움직일 수 없었고 그 자리에 꼼짝 없이 머물 수밖에 없었다. 

 

3장 일곱 개의 뺨

 

일곱대의 뺨을 그녀는 이제부터 잊을 것이다.
하루에 한대씩, 일주일 만에 잊을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이 그 첫날이다.

 

1980년 5월 18일이 지난 지 5년 후, 은숙의 이야기다. 은숙은 1장에서 동호와 함께 도청에서 시민군을 도왔던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그녀는 도청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살아남아 서울에 있는 학교를 갔고, 전두환은 여전히 독재 정치를 하고 있었기에 시위는 계속 되었다. 그렇게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 조그마한 출판사에 취직을 하게 된다. 은숙은 편집자로써 일을 하고 있었고, 5월 민주 항쟁에 관한 이야기를 맡았다. 그 내용을 번역한 사람을 정부에서 찾고 있었는데, 은숙은 끌려가서 조사를 받았다. 조사를 받은 과정에서 그녀는 일곱 대의 뺨을 맞았다. 

 5년 뒤에도 전두환의 횡포는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1980년 5월 18일부터 시작한 열흘 간의 대학살은 역사의 일부로 남았을 뿐, 독재 정치로 인해 외면받았다. 은숙과 같이 일하는 출판사는 어떻게서든 그 사건을 잊히지 않게 세상에 드러내려 애를 썼다.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은숙이 검열을 받은 책의 일부다. 나는 이 부분은 아마 한강 작가의 생각이지 않을까 했다. 작가는 어릴 적에 아버지의 서재에서 광주 민주 항쟁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본 적이 있는데, 사진 두 장을 봤다고 했다. 한 장은 계엄군이 광주를 장악하는 사진, 한 장은 부상당한 시민들이 피가 모자랄까봐 그들끼리 헌혈을 하려고 줄서는 사진을 보았다. 같은 인간끼리 이런 극악무도한 일을 하는 것도 끔찍하지만, 이런 세상에도 불구하고 서로 도우려는 태도를 지녔다는 것에 의구심을 품었다고 했다. 

 

오늘은 여섯번째 따귀를 잊어야 하는 날이지만, 이미 뺨은 아물어 거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 내일이 되어 일곱번째 따귀를 잊을 필요는 없었다.
일곱번째 뺨을 잊을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은숙이 조사받으면서 맞았던 일곱대의 뺨 중 첫번째 뺨에 대한 충격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이후 그녀가 맞았던 나머지의 뺨은 그녀 얼굴을 퉁퉁 불게 만들었고, 그 충격을 잊으려 일주일을 꼬박 노력하려 했다. 하지만 결국 6일만에 얼굴의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고, 불거진 뺨은 가라앉은지 오래였다. 하지만 마음 속 깊게 패인 상처는 아물지 않았고 평생 잊을 수 없었다. 

 

4장 쇠와 피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1980년 5월 18일이 지난 지 10년 후,  1장에서 사람들을 진두지휘했던 진수를 기억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화자는 10년 뒤, 광주 민주 항쟁에 관해 논문을 쓰고 있는 학자가 찾아와 인터뷰를 하면서 옛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진수와 화자는 그 날 이후 감옥으로 끌려가 함께 수감생활을 했다. 진수와 그는 그 날 이후 한 번도 자유로운 적이 없었고, 알 수 없는 두통과 공포로 인해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려왔다. 그렇게 진수는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하게 되었고, 화자는 살아남아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힘겹게 남기고 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런데 사는게 죽는 것만 못 할 정도로 괴롭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면서, 잊고 싶은 순간은 영원히 각인이 되고 다른 기억들만 사라진다. 화자는 처음부터 그렇게 계엄군에 맞서 싸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양심'이라는 것이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 잔인하고 무자비했던 폭력이 옳지 않다는, 우리는 이런 취급을 당해선 안된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이렇게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진수는 아이들은 죽이지 않을거라 예상했다. 그래서 동호를 포함한 다섯명의 청소년들이 한 줄로 나와 그들에게 항복을 선언했다. 하지만 계엄군은 총을 난사했고, 아이들은 그저 맥아리없이 죽어갔다. 총을 난사한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이상하게 같이 맞서 싸우던 사람들은 죄책감을 짊어지고 산다. 아이들을 끝까지 못 나오게 했으면 어땠을까?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을까? 아니, 그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며 스스로를 질타하고 합리화하며 반복했을 것이다. 여전히 10년이 지나도 그들의 아픔은 지워지지 않았다. 

 

5장 밤의 눈동자

저는 그 폭력의 경험을, 열흘이란 짧은 항쟁 기간으로 국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체르노빌의 피폭이 지나간 것이 아니라 몇십년에 걸쳐 계속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허락된다면 앞으로 십년 후에도 후속 논문을 쓰려고 합니다. 부디 저를 도와주십시오. 기억을 더듬어 증언을 보태주십시오. 

 1980년 5월 18일이 지난 지 20년 후, 선주는 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10년 전, 논문을 쓸 때 10명의 피해자 중 2명이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했다. 그래서 선주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선주는 방직공장에 들어가 성희 언니 밑에서 노동법에 대해 배우고, 노조에 가입해 맞서 싸우기까지 했다. 하지만 허망하게 선주는 내장 파열이 돼서 병원에 실려 가고, 미싱 공장 사이에서 블랙리스트가 되어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5.18 사건에 대항하다 빨갱이라며 고문을 받게 되었고, 그 고문으로 인해 선주는 임신을 못 하는 몸이 되었다. 

 그 당시 선주가 가졌던 상처들은 기억을 더듬지 않아도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때의 기억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어느 만남도 지속될 수 없고, 가정을 만드는 것조차도, 사랑을 하는 것 조차도 모두 어려웠다. 이 모든 일을 알려야 하며 가만히 두고 보면 안된다는 성희의 말에 분노를 느꼈다.

 4장에서 보이듯, 당시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은 더 이상 동지, 동포, 우리 편이 아니다. 잊고 싶은 나의 기억들을 자꾸 끄집어내는 괴로운 존재들이었다. 최대한 마주치지 않아야 한다. 근데 그 일을 겪지 않은 성희는 맞서 싸우라고 한다. 성희가 미웠지만, 성희가 죽지 않길 바란다. 어쩌면 자신이 원망해야 하는 상대는 따로 있는데, 그녀가 정말 세상을 떠나게 되면 원망할 사람이 사라질까 두려울 수도 있었다. 아마 선주는 선주를 원망하면서 그나마 버텨낸 것일 수도 있다. 

 

오래전 동호와 은숙이 조그만 소리로 나누던 대화를당신은 기억한다.
왜 태극기로 시신을 감싸느냐고, 애국가는 왜 부르는 거냐고 동호는 물었다.
은숙이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까.
태극기로, 고작 그걸로 감싸보려던 거야. 
우린 도륙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어야 하니까, 필사적으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거야.

 

그들을 희생자라고 부르기 싫었다. 단순 희생자라고 부르기엔 그들은 그 시대에 맞서 싸웠던 전사들이었다. 정부가 시민들을 저렇게 학대하는데 그래도 시민들은 태극기를 감싸고 애국가를 부른다. 갑자기 스스로를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독재는 대한민국이 아니다. 그 시민들은 저 나름대로 대한민국을 지켰던 것이었다. 

 

6장 꽃 핀 쪽으로

 1980년 5월 18일이 지난 지 30년 후, 동호의 어머니는 아직도 동호가 아득하다. 동호의 시신을 직접 닦아 장례까지 치뤘지만 여전히 동호가 언젠가 살아돌아올 것만 같다. 여전히 어머니는 전두환에게 분노하고, 그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6장이 어찌나 슬펐는지 모르겠다. 1장부터 5장까지 슬픈 역사의 한자락을 철저한 고증으로 읽는 내내 괴로웠다면, 6장은 내가 마치 동호가 된 듯이 내가 떠난 자리를 그리워하며 평생 울고 계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팠다. 

 


 30년이 지나도 사람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청춘, 시간, 재산, 가족, 친구, 열정, .... 등 인생에 주어진 수없이 많은 선택을 여전히 찾을 수 없다. 자신의 목구멍이 음식이 넘어가는 것조차 수치스럽지만 배가 고프니 먹어야 한다. 한강 작가님이 이 이야기를 담으면서 역사가 실수를 반복하지 못하도록 경고를 주는 것 같았다. 근현대사 역사책에 고작 몇줄로 써있는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다. 

 아마 한강 작가가 현재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은데, 노벨상 수상으로 들떠있고 싶지 않다는 기사를 보았을 때 뭔가 머리를 맞는 기분이 들었다. 꼭 인류의 평화를 위해 살아갈 필요는 없지만, 각기 다른 고통을 지니고 있기에 우리는 서로를 가여워해야한다. 현자처럼, 성인처럼 굴 필요는 없지만 공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출처: ‘5·18 성폭력 피해’ 44년 만에 모인 10명…“잊을 수도, 말할 수도 없던” 상처를 기록하다

https://www.khan.co.kr/national/gender/article/202405021630011

 

[단독] ‘5·18 성폭력 피해’ 44년 만에 모인 10명…“잊을 수도, 말할 수도 없던” 상처를 기록하

“목포에 나같은 피해를 입은 사람이 산다고 해서 만나게 해달라고 했어요.” 김민숙씨(가명)는 1980년 당시 쌍둥이 아기 엄마였고 임신 3개월의 임신부였다. 당시 회사를 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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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로, 당시 성폭력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어 44년만에 그 때의 일을 털어놓았다. 먼 것 같이 느껴지는 역사는 아직도 가까운 곳에서 고통으로 몸부림 치는 잔재들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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