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에서 한국으로 귀국해야 했던 어느 비행기 안, 식사를 위한 영화를 어김없이 고르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 진지한건 싫고, 메시지가 있는 액션이 아닌 "무의미한" 액션이 난무하는건 킬링 타임이 아니라 킬링 미가 될 것만 같았다. 나는 늘 언론플레이나 마케팅에 잘 놀아난다고 생각하고 살지만, 솔직히 이번 영화는 진짜 마케팅으로 선택한 것 같았다.
딱히 영화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던 나에게, 포스터에 "젠다야" 얼굴이 딱 박혀있는데 그냥 딱 봐도 쿨내 진동할 것만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ㅋㅋㅋ 그래도 예의상 줄거리 정도는 읊어주는게 인지상정. 인생의 기로에 놓인 테니스 경기를 치루는 아트와 패트릭에 대한 얘기처럼 보이길래, 오~ 뭔가 장르도 "드라마"겠다, 테니스 같은 스포츠 소재로 쓴 영화니까 신선바리 하겠다는 기대감을 품었다.(솔직히 그냥 젠다야 믿고 틀었다는게 학계의 정설)
얽히고 설킨 삼각 관계 로맨스
타시(젠다야)가 쏘아올린 테니스공
영화 <챌린저스>는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 전개하는 구성으로 인물들의 서사를 연결하곤 한다. 아트(마이크 파이스트)와 패트릭(조시 오코너)의 경기가 진행되면서, 서로의 기세에 따라 과거의 서사가 하나씩 풀리곤 한다. 나는 시간의 흐름대로 한 번 써내려가 보겠다.
(좌)아트와 (우)패트릭은 테니스 학교를 같이 다니고 있는 절친이다. 작품상 테니스 기숙학교 자체가 부잣집 도련님들이 다니는 학교이기 때문에 그냥 이 영화에서 부내가 폴폴 난다.(실제로도 그렇지 않을까?) 패트릭은 학교 뿐만 아니라 대회에 참가해서도 꽤나 잘 나가는 테니스 선수였고 재능이 있었다. 패트릭 만큼은 아니었지만, 아트도 실력이 좋았다. 아트는 패트릭의 실력을 인정했기에 할머니에게 보여주고 싶으니 다음 경기엔 본인이 이기게 해달라고 부탁까지 할 정도였다. 패트릭은 딱히 승부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며 "콜!"을 외쳤다.
하지만 두 소년들의 마음을 뺏은 소녀가 있었다. 타시(젠다야)는 청소년 테니스 대회에서 상을 휩쓴 스타 중의 스타였다. 그녀는 다른 참가자들처럼 정통적인 테니스 학교 코스를 밟지 않았지만, 대회의 상을 휩쓸었으니 협찬이란 협찬은 다 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했으니 인기도 정말 많았다. 그나마 여자 꽤나 홀려본 패트릭이 타시에게 말을 걸면서 어떻게든 셋이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냈다.
타시도 그 둘과 함께 있는 긴장감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타시는 제안을 했다. 둘 중 다음 날 대회에 이기는 우승자와 사귀겠다고 했다. 아트도 패트릭도 서로 절친이었지만, 양보란 없었다. 둘은 최선을 다해 경기를 했고, 패트릭이 우승을 했다.
타시는 테니스 대회 우승 경력으로 내노라하는 대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아트도 타시와 같은 대학교로 가게 되지만, 바로 선수로 뛰고 싶었던 패트릭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선수생활을 하려고 개인경기를 뛰러 다닌다. 그렇게 타시와 패트릭은 서로 좋아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던 순간들이 많았다. 처음 본 순간부터 타시를 사랑했던 아트는 마치 "질투의 화신"처럼 둘 사이를 이간질 했다. 둘은 그 이간질이 통하지 않는 척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왠지 정말 아트의 말이 맞는 것만 같았다.
결국 일은 터졌다. 타시와 패트릭은 서로의 자아가 너무 강해 양보가 없었고, 아트의 이간질로 인해 크게 싸움을 했다. 이런 싸움에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 기세였던 타시는 순간 삐끗해서 무릎이 훽 돌아가버렸다... 그 이후로 무릎이 전만큼 돌아오지 않았고, 그녀는 테니스계의 절대 강자이자 대스타였지만 그렇게 선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패트릭은 너무 미안해 그녀 앞에 보이지 않으려고 했고, 아트는 그녀의 옆을 계속 지켜줬다.
그 사건 이후 타시는 동료 선수들의 연습상대 역할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코치와 함께 연습하고 있는 아트를 만나게 되었고, 그녀는 아트에게 테니스 관련 조언을 했다. 아트는 자신의 코치를 부탁하면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 아트는 어떻게나마 타시를 자신의 옆에 붙여놓고 싶었던 것 같다.
근데... 타시가 선수로써 능력자인줄만 알았는데 코치로써도 뛰어난 능력자였던 것이다. 듣보선수였던 아트를 단번에 프로에 입단시킨 것이다. 그리고 아트를 프로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선수로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트와 결혼하고 아이도 가진 타시였다.
아트는 이제 슬슬 테니스가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우승을 해야하는 동기도 생기지 않고, 그저 해설이나 하면서 편안하게 쉬고 싶었다. 하지만 타시는 아트가 테니스를 그만 둔다는 것은 본인의 테니스도 이제 끝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트는 타시의 꿈이었다. (거의 아트 숙주 수준) 아트가 테니스를 그만 두면 타시는 그대로 떠나버릴 것만 같아 억지로 테니스를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타시는 아트의 성취감을 위해 아마추어 경기를 벌여놨는데, 거의 아트를 위한 판이라고 보면 된다.
아마추어 경기에 참여하게 된 패트릭이 등장했다. 그렇게 재야의 고수처럼 개인 경기를 떠도는가 싶더니 돈이 없어서 호텔 1박을 묵지를 못했다. 그나마 할 수 있는건 데이팅 앱으로 여자들 꼬셔서 하룻밤 묵어가는 나그네가 된 것이다. 그는 이 아마추어 경기가 중요했다. 이 경기에 이기면 이기는 대로 프로입단과 상금을 받을 수 있었고, 이 경기에서 져도 참가 상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살이 테니스 선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내 폴폴 나는 테니스 선수 타이틀과 섹시한 그를 보면 여자들은 꼬임에 넘어가 자신의 집을 내주거나, 호텔을 예약해주었다.
패트릭은 타시를 만나 거래를 시도했다. 어차피 의욕떨어진 남편 버리고 자신의 코치가 되어달라고 했다. 타시는 개무시하듯 말했지만, 패트릭은 밀어낼 수 없는 매력을 가진 남자였다. 그래서 본능에 못 이겨 패트릭과 밀회했다. 하지만 이런 바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몇 년 전에도 한 번 이런 일이 있었다. 둘은 어설프게 마무리가 되어버린 관계이기 때문에 아직 매듭짓지 못한 감정들이 그들을 요동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다시 재회하고 끌리는 타시와 패트릭은 서로에게서 자신의 전성기를 바라볼 수 있었다. 영광스러운 과거를 볼 수 있어 미련이 남았고, 되돌릴 수 없는 끝나버린 과거기에 혐오스러웠다. 서로의 열정의 불꽃을 다시 되살아나게 해줄 것만 같았지만, 다시 현실을 되돌아보면 뚝배기 맞을 일이다.
타시는 아트의 실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아트는 분명 실력이 좋은 선수였다. 하지만 아트는 이겨야할 동기부여가 없었고, 그저 쉬고 싶었다. 그에게서 불꽃을 다시 튀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패트릭 뿐이었다. 패트릭을 오랜 절친이지만 라이벌이었고, 심지어 자신의 아내와 사겼던 사이(심지어 둘이 중간에 몰래 만나 뒤통수친 것도 알고 있음)였기 때문에 열정을 갖기에 충분한 존재였다. 타시는 그래서 패트릭에게 아트에게 져달라고 부탁을 한다. 하지만 시시하게 지면 안되고, 꼭 불꽃 튀기는 경기를 하면서 아쉽게 져주라고 한다.
결말엔 패트릭이 져줬는지, 이겼는지 나오지 않는다. 다만 둘은 그들의 사인을 주고 받으며 분노, 증오, 쾌감, 열정 등의 감정 폭발되면서 경기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아트의 숙주인 타시도 또한 그들의 경기를 바라보며 과거의 영광이 다시 되살아나듯이 함께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끝이 난다.
음악과 장면 연출의 힘
부족한 연기력을 연출로 채우다?!
영화의 장면 전환 연출이라던지, 테니스 공에 마치 카메라를 달아놓고 인물들의 랠리를 보여주는 연출이라던지, 마치 물 밑에서 그들의 경기를 바라보고 있는 등의 연출은 눈을 즐겁게 했다. 더군다나 젠다야가 매력있는건 알았지만, 젠다야 뿐만 아니라 저 두 남성(마이크 파이스트, 조시 오코너)마저도 너무 섹시하게 잘 그려낸 것 같았다.
그리고 음악연출은 아주 보는 사람의 마음을 두근두근거리게 만들 정도로 긴박하게 썼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음악이 너무 힙해서 좋았다. 근데 아주 많이 많이 남발하는 느낌?
솔직히 말해서 저 배우들이 연기파 배우라고 생각이 들만큼 디테일한 감정 연기를 했다고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연기를 못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막 심금을 울리는 느낌이 없다고 해야할까? 하지만 그 심금을 음악 연출이 거의 대체로 울려줬던 것 같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음악이 없었다면, 저 캐릭터들의 마음이 공감이나 갔을까? 대충 서로 좋아하는건 알겠다. 근데 왜 서로를 못 놓아주고 끈덕지게 붙어있는건지 서사가 딱히 와닿지가 않았다. 그나마 음악연출 덕분에 흥나게 봤던 것 같다. 중간에 끄고 싶었던 충동이!
누군가가 감사하게도 이렇게 믹스를 만들어줬다. 영화 말고, 브금 듣는 걸 추천!
어거지로 서사 만드는 느낌?
젠다야쇼에 초대된 남자 배우들
솔직히 말해서 내용이 좀 구린데 젠다야 멋진데 미워할 수 없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나올까? 했는데, 젠다야씨가 연출에 이바지를 했다.ㅋㅋㅋㅋㅋㅋ 젠다야 캐릭터는 완전 파워 TJ 같았다. 감정이 동요되더라도 내 할일은 해야지! 난 최고야! 난 성공의 아이콘이야! 초반에 그녀는 진짜 완벽주의자 같았다. 그리고 한 번의 실패를 겪었지만, 어떻게서든 (본인의) 성공신화를 만들기 위해 아트를 북돋아주려는 노력! 부상과 결혼으로 인해 나 자신을 잃어버린 비참한 여자, 그래서 강인해보여도 한번쯤 실수 정도는 할 수 있는 인간미를 보여줄게! 이러면서 패트릭과 바람피우기.
그렇다. 장르가 "드라마"인건 알았지만, 이렇게 드라마틱한 전개일줄이야.
그래도 아트까지는 어떻게 잘 캐릭터를 잡은 것 같은데, 패트릭은 너무 설명이 부족하지 않나? 시나리오 작가는 패트릭을 좋아했는데, 연출자 중 누군가가 아트를 더 좋아해서 패트릭의 서사를 빼버린걸까? 패트릭이 아주 잘 나가는 선수였는데, 훗날 프로에 입단하지도 못하고 돈이 없어서 빌빌거리는 캐릭터가 됐다면 적어도 왜 이렇게 됐는지 설명이 필요했다! 심지어 타시가 한 말 중, 부잣집 도련님이면서 가식떨면서 가난한 척 하지말라고 말했던 것도 있었다. 왜 부잣집 도련님이 무엇을 증명하려고 이런 생활을 자처하는건지에 대한 서사가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마무리로 영화 <챌린저스>는 테니스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볼만한 영화인 것 같았다. 나는 테니스에 대해 문외한이라 볼까말까 했다. 어느 정도 규칙을 알면 오...! 나 저거 알아! 하는 정도?... 막 테니스의 본질과 심연이 닿는 그런 연출은 아니었다. 한없이 얕디 얕은 이야기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맘에 안 드는 영화가 있을수록, 비판하고 싶은 영화를 발견할수록 엄청 짜릿하다. 평상시 비판의식이라곤 없는 나로써는 이런 발견을 할 때면 괜히 성장한 느낌이 든달까?ㅋㅋㅋㅋㅋㅋ
이미지 출처: IMDB
https://www.imdb.com/title/tt16426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