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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니치의 삶을 담은 대하사극 <파친코(2022)> 시즌1 애플티비(Apple TV+) 시리즈와 원작 비교 및 캐릭터 분석

by 조잼 2024.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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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images.app.goo.gl/JYdAcVVzsAfdYp6v6

 

 2022년 3월, 애플티비가 OTT서비스를 론칭하면서 공개했던 대하사극 <파친코> 시즌1. 시즌1을 보다가 원작에 입덕해버렸다. 어느 누구도 입체적이지 않은 인물이 없다. 누구도 완전히 나쁘지 않고, 누구도 완전히 좋지 않다. (물론, 악의 축에 서있는 인물은 '고한수(이민호)'가 공식적으로 자리잡았지만, 원작과 시리즈를 접한 사람들은 '고한수' 또한 입체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할거라 단언할 수 있다.)

 평상시 영화나 드라마의 원작이 있다하면 무조건 찾아 읽어보는 편인데, 파친코만큼은 시리즈와 원작을 분리해서 써야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시즌 1과 시즌2도 따로 포스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어본 사람들은 알다시피 파친코를 한 번 톺아보려면 포스팅 하나로 끝낼 수 있는 분량은 절대 아니다! 이미 어떻게 쓸지 다 생각해놨지만, 어쩔 수 없다. 나도 <파친코>의 이민진 작가처럼 다 뒤집어 엎고 3개의 포스트로 나눠 쓰기로 결심했다.

 이번 포스팅은 시즌1 시리즈 위주로 이야기하고, 원작과의 짧은 비교를 해보려 한다. 나는 요즘 이민자의 삶을 담은 이야기가 많이 와닿는 편인데, 파친코를 읽고 보면서 어찌나 설레고 두근대던지... 일단 시작해보겠다. 

 

시즌1 : 이민의 시작 

 선자의 일생을 중심으로 4대에 걸친 이민자 가족의 수난사를 다룬 대서사시 <파친코> 시즌1의 전개는 다소 역동적이었다. 원작 <파친코>의 시간의 흐름대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반면, 애플티비 시리즈의 <파친코>는 과거와 미래를 교차하여 보여준다. 교차된 연출 방식을 통해 젊은 선자가 처음 일본을 떠난 1세대 이민자의 삶과 이미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닌 애매한 3세대 재일교포인 솔로몬과 늙은 선자의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경희와 하루키

 애플티비 시리즈 <파친코>에서 원작과 비교했을 때, 2명의 캐릭터가 조금 아쉬웠다. 그것은 경희하루키. 먼저 '경희'부터 이야기해보자면, 그녀는 이 모든 세월을 선자와 함께 견뎌온 인물이다. 친자매는 아니지만, 거의 친자매보다도 가까운 사이며 그 누구보다도 전우애를 느낀 동지나 마찬가지다. 경희는 원작에서 끝까지 살았는데, 시리즈에서는 죽어버렸지 뭐람... 시즌2를 보면 늙은 선자가 데이트를 하는데, 이런 전개를 위해 경희를 죽인걸까..? 순간의 설렘이 담긴 사랑이 아니라 선자와 경희의 끈끈한 세월이 담긴 진정한 사랑을 보여줬어야지! 그 부분이 너무 아쉽다. 경희는 파친코에 선자의 자식들만큼이나 중요한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선자만큼이나 강인한 여성이었다. 남편 요셉만 아니었더라면 이미 원작에서는 장사하고 싶어 드릉드릉 했던 인물이었다. 다만, 평양의 이름있는 가문에서 자란 귀한집 아기씨였기 때문에 가부장제에 길들여져 망설이던 것도 당연히 있었지만 시리즈에서는 경희가 아주 수동적인 여자로 표현되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쉬웠다. 

 다음은 하루키! 그는 원작에서 미혼모 가정에서 지적장애 동생을 둔 장남으로 나온다. 워낙에 가난하기 때문에, (조선인들의 설움과 핍박이 담긴 작품이므로 굳이 일본인으로 분류)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다. 하루키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민 친구는 모자수였다. 그 때부터 그들의 우정은 시작된다. 내 생각으로 원작에서 하루키는 '모든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혐오하지 않는다'는 선량한 캐릭터를 맡고 있고, 재일교포인 중학생이 이지메를 당하고 자살하는 사건을 고발하는 정도의 충격을 주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그에게는 말못할 비밀이 있는데 그는 동성애자였다. 근데 애플티비 시리즈에서 '하루키' 캐릭터는 뜬금없게 묘사됐다... 에피소드4에서 경희와 선자는 피붙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함께하게 된 끈끈한 가족으로 나오면서, 하루키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가족을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자수의 어릴 적 일화를 들면서 하루키가 다음 시즌에 계속 등장할텐데, 이렇게 하루키를 쓴 걸로 봐서 당시 동성애자들에 대한 혐오로 인해 고립된 삶을 보여주려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일단 앞으로 시즌4까지 만든다고 하니 지켜봐야지 별 수 있나?


파친코는 모성애를 다룬 작품?!

출처: <'파친코' 코고나다 감독/수 휴 쇼러너(각본 및 총괄 제작), 마이클 엘렌버그·테레사 강 로우 총괄 제작> 중 발췌

 

 원작을 읽은 독자로써 시즌1부터 죽은 경희의 캐릭터와 다소 충격적인 소외계층의 삶을 보여준 하루키의 캐릭터가 아쉽긴 하지만, 총괄 각본을 맡은 '수 휴'의 인터뷰를 보면, 이 시리즈 자체를 사랑과 모성애에 중점을 둔 것같다. 4대에 걸친 대서사시를 시즌4까지 표현하기 위해서, 극을 이끌어갈 충분한 명분이 필요했을 것 같다. 극의 흐름상 방해가 될 것 같은 인물들은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면서 넘어간 것 같다. 그래서 '하나'를 에피소드 내내 중요한 캐릭터인 것처럼 밀어붙였을까? 하나는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가정에서 삐딱선을 제대로 타버린 캐릭터다. 그래서 에이즈에 걸려 죽기 일보 직전일 때 에쓰코의 모성애를 보여주는 장면을 많이 넣었다. 어떤 삶을 살아도 엄마에게 언제나 자식은 귀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걸까?


하나와 솔로몬

 원작에서 하나 중심으로 감정이입을 해보자면, 그녀는 끊어낼 수 없는 부모와의 연대를 가져보지 못해 영원한 사랑을 믿지 않는다. 하나의 엄마 에쓰코는 남편과의 관계에 만족을 하지 못해 불륜을 저지른다. 일단 부모에서부터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보지 못했다. 에쓰코가 모자수와 함께할 때, 하나도 따라왔는데 그녀는 이미 여기저기서 버림받은 인물이다. 그래서 온전히 자신을 믿고 사랑해준 어린 솔로몬의 과분한 애정에 상처받고 싶지 않아 떠났던 것 같다. 시리즈에서는 선자가 내뱉은 자신에 대한 한탄을 오해하여 하나가 가출한 것으로 나온다. 뭐가 됐든, 자신이 온전한 사랑을 받았던 기억이 있었다면, 가출을 하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한다. 변치 않는 사랑을 받으며, 안정적인 관계가 두려웠던 하나는 오히려 일회성인 관계로 남을 수 있는 직업(창부)를 택했던 것 같다. 하나는 자신이 이런 삶을 살아도 그 누구도 슬퍼하지 않을 것만 같았지만, 사실 모두가 그로 인해 걱정하고 아파했다. 

 원작에서 솔로몬은 피비라는 재미교포 3세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애플티비 시리즈에선 피비의 역할은 사라지고, 나오미와 어떤 묘한 긴장감을 준다. 시리즈에서는 솔로몬은 하나가 자신의 첫사랑이고, 여전히 잊을 수 없는 정인으로 기억하는 듯 하다. 솔로몬의 세상에선 묘한 차별이 있었다.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중간에 미국으로 가서 학교를 마쳤으니 거시적인 관점에선 나쁘지 않은 삶은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부모가 기대하는 만큼, 자신이 성공하고 싶은 만큼 성장하기 위해 목표를 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은근한 차별이 존재해왔다. 그 모든 것들을 알면서도 외면해왔을 것이다. 자신이 조선인 출신인 것을 외면한 채로 일본인으로 봐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취하면서 앞만 달려왔다. 하나는 솔로몬의 정체성과도 같은 존재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를 오랫동안 사랑해왔지만, 그녀를 얘기할 땐 행실이 좋지 않기에 주변 사람들이 업신여긴 채 말하는데도 솔로몬은 크게 화를 내지 않는다. 마치 그가 자이니치로 살아왔지만, 많은 사람들이 조선인들을 멸시해온다는 것을 느꼈지만 대수롭지 않게 느낀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솔로몬은 진심으로 하나를 사랑했듯이 자신이 조선인임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솔로몬이 마쓰다 상(조선인 땅주인)의 과거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분노로 자신이 진정으로 찾아야 하는 길이 무엇인지 알았을 것이다. 


한수와 선자

 여러 캐릭터들에 대해 언급하고 싶은게 많은 정도로, 원작에서는 많은 인물들이 나왔다. 하지만 어느정도 선자와 솔로몬 중심으로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한수와 선자가 처음 만났을 때, 한수는 선자의 강인하고 곧은 심지에 반했다고 생각한다. 원작에서는 그 둘의 첫만남을 포함한 간략한 에피소드로 표현되는데, 오히려 이렇게 드라마로 자세히 그들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볼 수 있어 즐거웠다. 한수는 본질을 꿰뚫어보기 때문에 통찰력을 갖고 있는 명석한 캐릭터로 나온다. 그렇게 좋은 머리로 생선중개상부터 다양한 사업까지 줄줄이 성공하는 사업가의 면모를 볼 수 있고, 그는 거의 다 가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콤플렉스가 하나 있었는데, 그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정통 코스를 밟아와 교육을 받고, 그들에게는 족보가 분명했다. 하지만 조선에서도 일본에서도 어디 하나 내세울 수 없는 신분과 족보를 갖고 있었다. 다행히도 좋은 머리로 언어도 빨리 깨우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돈도 벌 수 있었다. 그의 학력 컴플렉스는 자신의 아들을 교육시키려는데 아주 많이 드러난다. 그리고 백이삭이 교육과정을 다 밟아온 엘리트라는 것에 많이 컴플렉스를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이 든다. 

 유난히 한수가 선자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에, 그리고 선자와 함께 조선에 살림을 차리는 것에 대해 매우 설레고 기뻐했다. 원작에서 한수는 3명의 딸들을 갖고 있었는데,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잘 구축되어있음에도 딸들은 마음만큼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 본처는 더 이상 아이를 갖길 원치 않았고, 한수는 외간 여자들과 관계를 맺어도 그들은 좀처럼 임신이 되지 않았다. 그토록 애증이 섞인 조선이 애정으로 바뀔 것만 같았던 어쩌면 강인한 여성 선자와 그 사이에 낳은 아들은 그에게 어쩌면 큰 의미였을 수도 있다. 야쿠자의 사위로써 더러운 일들을 하고 있는 자신이지만, 자신의 아이만큼은 좋은 교육과 환경을 만들어주면 자신의 자식이 잘 나가는 조선인이 되었으면 했겠지? 세상에는 돈보다 가치있는 일이 존재한다는 것은 선자는 알고 있었다. 돈이면 다 될 줄 알았던 한수의 오만한 행동이 불러일으킨 파장은 컸고, 그는 그 대가를 사는 내내 평생 치뤄야 했다. 선자가 한수의 시계를 전당포에 300엔을 받고 맡겼을 때, 한수는 전당포 주인에게 310엔을 주며 다시 가져왔다. 그러면서 한수는 "(선자는) 몽상가와 결혼했거든. (...) 앞으로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거야."라고 말하면서 본인이 선자보다 더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사실(한수는 똑똑하니 더 잘 알았을 듯)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에피소드7편에서 광동대지진을 통해 어떤 삶을 겪어왔는지 알 수 있다. 원작에는 한수의 과거는 간략하게 아버지와 함께 일본으로 떠난 제주인으로 표현됐는데, 한수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볼 수 있어 좋았다. 안 좋은 일을 겪었을 때, 사람들마다 대처하는 방식은 다 다르다. 같은 차별을 겪어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는 사람들마다 전부 다 다르다는 말이다. 그렇게 따졌을 때, 한수가 처음부터 돈바라기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막 애정이 가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미워할 수는 없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애정의 표현이 달랐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인의 힘에 대항하는 독립열사들이 있는 반면, 그 힘에 순응하는 사람들이 있고, 한수처럼 그 힘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한수를 보면 '백마 탄 왕자님'이 된 자신에게 취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선중개상 시절, 조선의 앞잡이처럼 보이지만 나름 사람들에게 적절한 가격을 받아 시장의 평화를 유지시켰다. 막 선하지도 않지만, 오히려 정확한 태도 덕분에 당시 영도 시장은 나름 태평했던 시절을 맛봤다. 그에게 선자와 노아는 자신의 정체성이고, 그들은 자신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되고 싶었던 모습의 실체였다. 

 선자를 주목해야 할 점은, 절대 한수의 달콤한 말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불구의 몸이고 언청이였는데 선자는 비장애인으로 태어났다. 선자 위의 형제들은 일찍이 죽었고, 살아남은 것도 선자였다. 아버지는 귀한 딸을 아주 예뻐했고,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사랑을 선자에게 주었다. 그런 온전한 사랑을 받았던 선자는 한수가 말하는 달콤한 말이 우습게 들렸다. 자신은 누군가의 첩으로 사랑을 나눠서 받을 정도로 허접한 인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온전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고, 자신의 자식 또한 아버지가 주신 사랑처럼 온전한 사랑을 줘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받은 것에 대한 가치를 안 다는 것은 학교에서 배우는 교육이 아니라, 부모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앞으로의 이야기에서 선자는 계속 살아남아 수많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렇게 살아남아 온전한 사랑을 자녀들에게 줄 것이다. 

 그렇게 선자의 인생에 주어진 수많은 선택 중, 인생을 뒤집어 놓았던 것은 다름 아닌 백이삭과 결혼을 한 것이다. 백이삭을 만난 이후로 그를 사랑했고, 사랑하는 이의 자식을 낳았고, 신앙을 알았으며, 홀로 서는 법을 알았다. 선자가 이렇게 작품 내내 살아 남아, 조선인 혹은 재일교포, 이민자 등의 타이틀이 아닌 '백선자'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도 이삭 덕분이었다. 선자는 일본에서 지내는 조선인들이 핍박받는 삶에 자신을 빗대며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았다. 그녀가 신경썼던 것은 오로지 가족들이었다. 교육을 떠나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 내용은 시즌2에서 언급해야 하는데 말하다보니 너무 많이 말했다. 그 정도로 백이삭은 선자의 인생에서 한수를 만난 이후 가장 중요한 선택이었다. 


 대부분 일제강점기를 다뤘던 영화나 드라마들은 특성 사건에 대한 이슈를 구체화하곤 한다. 하지만 <파친코>는 시즌1에서 광동대지진에 대한 조선인 차별, 일본으로 이동한 조선인 광부들 이야기, 일본군 위안부, 일본에서 받았던 조선인들의 차별 등 아주 많은 이슈들을 통해 그 당시 사람들의 아픔을 이야기했다. 원작도 정말 명작이었는데, 그 원작을 통해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전했던 애플티비 시리즈를 참 마음 아프게 봤었던 것 같다. 

 시즌1에서 인상깊었던 것은 솔로몬과 마쓰다(조선인 땅주인)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1980년대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원작에서는 솔로몬이 조선인 땅주인인 마쓰다의 땅을 아버지의 오랜 스승인 고로상을 통해 매입했다. 그리고 이용만 당한 채, 솔로몬은 회사에서 쫓겨났다. 아주 짧은 에피소드를 통해서 솔로몬은 급하게 아버지가 몸담고있는 파친코에 들어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자이니치에 대한 차별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것 같았다.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것을 이용해서 할머니에게 땅을 팔라고 했다. 할머니는 계약 당일 자신의 아버지가 광부로 일본에 와서 바퀴벌레 취급을 당했던 이야기를 해줬다. 솔로몬이 외면해왔던 내면의 분노를 일으키는 역사였다. 그리고 솔로몬도 그 역사의 일부였다. 결국 할머니는 땅 계약을 하지 않은 채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원작에서는 일본이 하라는 대로 사는 리얼리티를 담은 삶을 반영했지만, 시리즈에서는 "그래도 한 번 우리도 엿먹여 보자!"라는 희망을 품게 해주는 것 같았다. 원작의 이야기를 잘 해석한 연출은 언제나 맛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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