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베이비 레인디어>가 핫한지는 꽤 됐지만, 너무 일상이 바빠 미루고 미뤘다. 나는 영화나 드라마를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쇼츠나 요약본에 절여진 현대인이므로... 시도하는게 여간 쉽지 않았다. 인간미 호소하는 중이다... <베이비 레인디어>는 스코틀랜드 출신 배우이자 감독인 "리처드 개드"에 관한 이야기다. 사실 많은 사람들의 리뷰를 읽고 싶었고, 해석한 이야기들을 참고하고 싶었지만 뭔가 내 마음 속에 남아있는 잔재부터 써내려가고 싶었기에 먼저 나의 블로그로 들어왔다.
<베이비 레인디어> 실화라는게 너무 큰 충격!
실제로 리처드 가드가 20대에 했던 스탠딩 코미디쇼다. <베이비 레인디어>에서 도니가 정말 재미없는 코미디언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 모습이 스스로 얼마나 자기객관화를 하고 있었던건지 알 수 있다....ㅋㅋㅋ 많은 사람들이 "정말 재미없다"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사람은 자신이 잘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구분 짓는 때가 다 있는 듯 싶다.
실제 마사가 나타났다. 사실 리처드 가드와 제작진들은 최대한 마사의 신원을 드러나지 않게 아주 조심스럽게 각본을 썼다고 한다. 어쩌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다가올 수도 있는 일이니 조심스러웠을수도... 근데 실제 마사는 더욱 또라이였다. 고작 저 토크쇼를 나가면서 20만원 받았다고 했나? 토크쇼에서 그녀의 허언증은 입증됐고, 사람들은 그녀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ㅋㅋㅋ)
마사와 도니의 만남
스토킹 멈춰, 아니 멈추지마
도니는 스탠딩 코미디언으로 간간히 공연을 얻어 하고 있지만 사실 돈벌이는 잘 안 되기 때문에 바텐더가 본업이나 마찬가지다. (원래 돈을 더 많이 버는 쪽이 본업이니..) 어느 날, 어느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우울해보인다. 그것은 <베이비 레인디어>의 주인공 마사. 근데 지갑까지 두고 왔다고 한다. 뭔가 안쓰러웠던 도니는 마사에게 콜라 한 잔을 무료로 준다. 그 때부터였을거다. 처음에 건네었던 그 연민이 이 파장을 불러올 줄이야!
그렇게 매일같이 찾아왔던 마사. 돈이 없어서 매일 도니한테 무료 콜라를 얻어 마시면서, 자신이 잘 나가는 변호사라고 너무 바쁘다며 우쭐거린다. 그런 허언증을 도니는 당연 알아채지만 마사를 거부할 수 없다. 마사는 도니가 무슨 말을 하면 자지러지게 웃는다. 리액션 혜자.
마사와 다른 손님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다 도니는 본인의 개그본능을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마사에게 성적인 농담을 해버렸던 것이다. 아... 그게 바로 스토킹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마사는 본격적으로 그의 페이스북을 염탐했고, 도니가 참여하는 스탠딩 코미디쇼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도니의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서 메일을 미친듯이 보내곤 했다. 그 메일의 마지막은 항상 'sent from my iPhone'으로 끝났다. 이상하게 쉬운 단어의 맞춤법은 다 틀리면서, 어려운 단어는 맞춤법이 정확하다. 심지어 마사가 페이스북을 염탐하다 전여친을 괴롭힐 것 같아 사태가 심각하다고 느낀 도니는 그녀를 경찰에 신고할까 했다. 하지만 자신의 스탠딩 코미디쇼를 찾아 보러온 마사덕분에 사람들이 자신의 개그에 웃는걸 보니 이 관계를 멈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마사를 멈춰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마사를 피해 데이팅 어플에서 '도니'를 '토니'로 속여 만난 트렌스젠더 테리를 만났던 것이다. 그녀는 매력적이었고, 도니가 그녀에게 빠질만한 이유는 충분했다. 근데 마사가 점점 조여오고 있어 도니는 테리가 위험에 처할 것만 같았다. 결국 일은 터졌다. 마사가 테리와 도니가 함께 있는 것을 봤고, 마사는 테리를 미친듯이 폭행하더니 그녀더러 "남자같이 생긴게." 하면서 모욕을 줬다.
도니는 정말 더 이상 신고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경찰이 왜 스토킹을 6개월동안 당했으면서 미리 신고 안 했냐고 하자, 그는 그 관계를 놓을 수 없었다고 말을 할 수 없었다.
도니의 과거
마약, 가스라이팅, 성폭행, 성 정체성 혼란
스코틀랜드 촌뜨기인 도니는 스탠딩 코미디언이 되려고 어느 바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당시 어느 파티에 초대받아 이미 대형 프로그램의 유명한 작가 대리언을 만났다. 도니는 겨우 자리를 얻어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그 누구도 그의 공연을 재밌게 봐주지 않았다. 하지만 대리언이 몇가지를 손을 대자 갑자기 도니의 공연은 날개가 돋힌 것처럼 인기가 많아졌다. 도니는 대리언과 함께 있다면 유명인사가 되는건 일도 아닐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대리언은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연락은 뚝 끊겼다. 도니는 대리언 없는 자신은 빛을 낼 수 없다고 느꼈고, 옥스퍼드에 있는 연기 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다 대리언에게 연락이 왔다. 도니와 함께 각본 작업을 하고 싶다고 한 것이었다. 도니는 설레는 마음에 <행맨 해리>라는 각본을 써왔다. 대리언은 그 각본을 보고 타박을 줬고, 갑자기 약을 하자고 한다. 도니는 약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리언이 내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 성공했는데, 그 이유는 자신의 말을 잘 들었기 때문이라고 가스라이팅을 해왔다. 약을 한 뒤 정신을 잃게 된다. 그리고 정신이 살짝 들면 이상하게 대리언은 자신의 몸에 손을 대고 있거나, 자신의 몸에 체액이 잔뜩 묻어있었다.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도니는 한마디도 말할 수가 없었다. 대리언은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성공한 사람이었고, 자신을 성공으로 이끌어줄 사람이니까.
결국 일은 터졌다. 대리언은 도니가 약에 취해 정신을 잃은 사이 그의 몸을 범했던 것이다. 도니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며칠동안 대리언의 집에서 나올 수 없었고, 대리언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 집을 나오고, 대리언에게 연락을 끊었다.
그는 그 날 이후로 여자친구와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고, 사랑없는 잠자리를 해오면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 과정은 도니를 더 혼란하게 만들 뿐이었다. 오히려 잠자리보다 다른 사람과 정서적인 교감을 하면서 관계를 유지하는게 더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도니의 고백
마사의 스토킹을 절정으로 끌어올리다
마사는 끈덕지게 도니를 괴롭혔다. 어쩌면 마사덕분에 올라간 스탠딩 코미디 대회의 부결승전에 진출했다. 도니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이 공연을 마사가 망칠까 너무 두려웠다. 도니는 공연에 아무도 웃지 않았고, 도니는 자신의 과거를 그 자리에서 고백하게 되었다. 누군가가 찍은 이 영상은 유튜브로 널리 퍼지기 시작했고, 도니는 갑자기 인기가 생겼다. 자신의 번호를 계속 모르고 있었던 마사가 이 유명세로 인해 도니의 번호를 알게 됐던 것이다. 도니는 이메일 뿐만이 아니라 문자와 음성메일까지 휴대폰으로 받게 되었다.
마사는 너의 추악한 과거를 부모님께 말한다고 하자, 도니는 부모님께 가서 이 사실을 고백했다. 그리고 마사를 함정에 빠뜨려 자신에게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마사는 스토커 경력직이었기 때문에, 법도 살살 잘 피해갔다. 오히려 본인이 파놓은 함정에 본인이 빠져 경찰도 도니를 더 이상 돕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마사를 음성메일을 미친듯이 듣기 시작했고, 그녀의 음성메일을 감정별로 라벨링해서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접근 제한하게 만들 수 있는 결정적인 메일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도니는 협박성 음성메일을 받게 되었고, 마사는 접근 금지 + 징역까지 얻게 되었다.
도니의 심리
마사를 역스토킹하다
자기 혐오에 빠진 도니는 자신이 남자에게 강간 당했다는 것이 아주 수치스럽고 치욕스러웠을 것이다. 사실 그가 대리언과 만날 때마다 자신을 성공하게 이끌어줄 거라는 믿음은 조금씩 소멸됐을 것이다. 약에서 깨어날 때마다 수치스러웠던 일들이 쌓일 때마다 다 성공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하지만 아예 끝을 보고 나니, 대리언은 정말 젊은 남자를 범하고 싶은 늙은 남자일 뿐이라는 것, 자신은 그 성공을 위해 몸을 내주었던 청년이라는 사실이 아주 끔찍했을 것이다.
그 끔찍한 사실을 잊기 위한, 아니 무뎌지기 위한 방법이 있다. 그건 자신은 대리언에게 당한 것이 아니라 원래 이런 취향이고, 쿨하게 원나잇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에게 입히는 것이다. 그리고 감정없는 섹스를 하다보면 분명 무뎌질거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쌓여진 그런 상처들이 두껍고 험악하게 변할 수록 진지한 관계를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완전히 망가진 나를 있는 그대로 봐줄 사람이 있을지 확신이 안 서는 것이다. 진지한 관계가 된다는 것, 정서적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정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이었다. 겉은 멀쩡해보이지만 이미 병들고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어주려면 아주 많은 시간이 들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을 설명해야 하고, 이해받아야 하고, 본인 스스로가 자신을 사랑해야하는 이 모든 것들은 벅차다.
어느 날, 도니는 마사를 만났고 그녀는 그에게 미쳤었다. 마치 그가 자신을 혐오하는 것 이상을 받아들여 주는 존재같았다. 자신의 쓰레기같은 개그에도 웃어주고, 그녀는 그가 우스운 환경에 처했을지라도 그를 감싸고 돌았다. 도니는 그게 비정상적인 것을 알면서도 어차피 본인 스스로도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여 그저 감내해온 것이다. 마사는 둘째 치고, 테리와 사랑을 나누려고 하니 정서적인 교감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있었다. 마사를 상상하면서 자위를 시작했고, 마사를 상상하면서 테리와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이미 도니는 마사를 신고했음에도 그녀의 집착과 광기에 중독된 상태였다. 자신이 마사를 생각하면서 사랑을 나누는 것은 엄청 수치스럽고, 추악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본질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그녀를 계속 찾아냈다. 그리고 훗날 마사의 음성메일을 감정 라벨링을 통해 분석하면서 오히려 그녀를 공감하려고 했다. 그녀가 그랬던데엔 다 이유가 있었겠지. 내가 그렇게 쓰레기같은 인간한테 엮였던건 아니었을거야.
도니는 마사를 보내고, 용기내러 대리언에게 찾아갔다. 과거의 두려움을 마주하기 위해 갔는데, 그는 또 성공시켜주겠다고 꼬드기기 시작했다. 도니는 잠시나마 흔들린 자신에게 역겨웠을 수도 있다. 그는 또 마사의 음성메일을 톺아보며, 자기 위로를 한다. 그리고 어느새 마사와 닮아있는 자신을 느끼며 극이 끝난다.
지금이야 도니, 즉 리처드 가드는 여러가지로 핫이슈를 타며 유명세와 영광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이 시리즈를 본 뒤, 그가 겪었을 고통과 트라우마를 보니 너무 끔찍했다. 오히려 마사는 그를 과거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지독한 매개체였다고 생각이 든다. 그가 겉으로는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내면으로도 성공을 맘껏 누리면서 평안했으면 좋겠다. 가해자가 나쁜거지, 피해자가 당한 것은 멍청한 게 아니다.
출처: https://www.netflix.com/tudum/galleries/baby-reindeer-photo-gallery?mediaIndex=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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