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Sin Prisa, Sin Pausa
그냥, 책

구병모, 위저드 베이커리, 선택의 결과는 나의 몫

by 조잼 2024. 8. 1.
반응형

 

| 줄거리

 나는 열 여섯 청소년, 어릴적 어머니는 병으로 돌아가셨고 새엄마 배 선생과 그녀의 딸 무희가 가족이 되었다.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배 선생 그리고 무희는 나와 가족이 될 수 없었다. 무신경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함께 재혼한 배 선생은 외롭기만 하고, 괜스레 남편의 자식이 밉기만 하다. 나는 겉으로 나지 않는 상처는 없었지만, 배 선생의 차가운 태도와 혐오로 인해 마음 속에 외로움, 두려움, 고독함만 쌓여 간다. 함께 모여 저녁먹는 시간이 너무 끔찍해서 나는 늘 동네에 있는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다양한 빵을 사먹는다. 나는 배 선생에게 곁을 내어 주지도 않았지만, 곁을 받지도 않았다. 그래서 계속되는 은밀한 혐오에 말을 잃었고 결국 말을 더듬게 된다. 

 어느 날 사건은 터졌다. 이복 동생 무희가 학원에서 선생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배 선생은 변호사를 알아보며 소송을 준비하고 있었다. 검찰청이 8살 난 아이에게 취조하는 것은 잔혹했고, 결국 수십번의 같은 질문으로 무희는 선생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배 선생은 집으로 돌아왔고, 무희를 누가 너에게 함부로 대했냐며 쥐잡듯이 잡았다. 무희는 살기 위해 바로 앞에 보이는 나를 지목했다. 배 선생은 날을 잡았고, 나를 쥐잡듯이 팼으며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다. 분풀이 대상은 되어 줄 수 있었으나, 진짜 오해를 하면 어쩌지 걱정이 되었는데 제일 괘씸했던 것은 방관하고 있는 아버지였다.

 그렇게 뛰쳐 도망나온 곳은 바로 위저드 베이커리. 나의 단골 빵집이었다. 나는 그의 오븐 안으로 들어가 숨게 되었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말 그대로 마법사가 운영하는 베이커리인데,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메뉴는 저주와 마법이 섞인 빵들로 가득했다. 당분간 배 선생을 피해 잠시 위저드 베이커리에 숨어 지내게 되었는데 공짜로 숙식,숙박을 할 수 없으니 그 곳에서 온라인 주문을 관리해주는 역할을 하기로 했다. 

 

| 위저드 베이커리 메뉴 : 관심있는 쿠키가 있을까요?

  • 마인드 커스터드 푸딩 :  시험이나 출장 등 중요한 일을 앞둔 당일에 마인드 컨트롤이 잘 되지 않을 때 부정이 타지 않도록 몸속에 부적을 섭취해 주세요. 
  • 메이킹 피스 건포도 스콘 : 사과하고 싶은 사람에게 주세요, 100퍼센트 화해합니다. 그러나 미안하다는 마음보다 어쩔 수 없이 사과한다는 마음이 앞서면 효력을 내지 못할 것입니다.
  • 브로큰 하트 파인애플 마들렌: 실연의 상처를 빨리 잊을 수 있게 도와줍니다. 하지만 주인장으로선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상처를 빨리 잊는 데에 집착하는 사람은 그만큼 새로운 사랑도 무성의하게 시작하기가 쉽답니다.
  • 노 땡큐 사블레 쇼콜라: 정말 사귀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고백받았다면? 이걸 대답으로 주세요. 한마디로 '먹고 떨어질'겁니다.
  • 비즈니스 에그 머핀 : 새 사업이나 장사를 시작하는 집에 선물 세트로 갖다 안기세요. 엄청난 성공이나 부귀를 안겨 주진 못하지만 장사를 꾸준히 지속하고 싶다면... 이게 행운을 가져다줄 거에요. 최소한 말아먹을 일은 없을 거랍니다. 그러나 자신의 역량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는 사람은 효과를 보기 어려울 거예요.
  • 메모리얼 아몬드 스틱: 이걸 먹고 명상에 잠기면 잊어버렸던, 또는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과거의 일이 머릿속에 또렷이 떠오릅니다. 나의 잠재의식 속에는 뭐가 있을까? 내가 모른 척 덮어 둔 기억은 무엇일까? 모험심과 호기심이 넘치는 분들이라면 시도해 볼 만하네요. 
  • 에버 앤 에버 모카 만주: 전학이나 유학, 이민 등으로 멀리 떠나는 벗에게 선물하세요. 당신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 사람의 힘든 순간, 기쁜 순간마다 당신이 떠올라 당신을 찾지 않고는 못 견딜거에요. 
  • 도플갱어 피낭시에 : 이걸 먹고 잠들면 다음 날 내가 가기 싫었던 학교나 회사에 또 하나의 내가 대신 가 줍니다. 맘 편히 때땡이를 치세요. 단, 정말로 도플갱어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가 보면 절대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둘을 동시에 발견하거나 둘의 눈이 마주치면 둘 중 하나가 영원히 사라져 버릴 수 있습니다. 어느쪽이겠어요?

위에 내용은 '나'가 설명했던 메뉴의 내용이고, 이 밖에도 주목해야 하는 쿠키가 두 가지가 있다.

  • 악마의 시나몬 쿠키: 가장 인기가 많은 제품. 어떤 사람을 보복하고 싶을 때 그의 이름 석자를 적으면 어떤 저주에 걸린다는 것이다. 
  • 타임 리와인더: 주문 상담 이후 가격이 달라질 수 있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있으나, 기억은 가지고 가기 어렵다. 즉 복권 번호 외우고 갈 순 없단 말씀. 하지만 어떠한 간절한 희망이 있었다면 기시감을 이용해 그 직감으로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혹은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한다던지?

 

모든 마법은 자기에게 그 대가가 돌아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자신의 행위로 인한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 분만 가입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이 쿠키를 사서 저주나 마법을 원해 사용하는 것은 온전히 사용자의 선택이고, 그에 따른 대가는 톡톡히 치뤄야 한다는 점이다. 어떤 불가사의한 힘을 이용해서 누군가에게 마법 혹은 저주를 걸었다면, 작은 변화가 나비효과처럼 퍼질 것이고 내가 어떤 영향을 받을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이 중에서 그나마 흥미 있었던 쿠키가 있었다. "메모리얼 아몬드 스틱"이다. 내가 그동안 잊고 있었지만, 중요한 기억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그게 끔찍한 기억일지언정 어느 한 기억 조각만큼은 내가 죽을 때까지 간직했으면 좋겠다. 망각이라는 것은 좋은 선물이지만, 나는 내가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이 있다면 꼭 간직하고 싶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한 건... 내가 어떠한 큰 시련과 상실을 겪지 않아서 그런게 아닐까....? 아니야... 흥미가 있었던거지, 쿠키 안 먹을래! 내 선택에 책임지고 싶지 않아!)

 

|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관심과 애정

 나는 배선생이 '나'에게 그렇게 구박했던 이유는 남편의 사랑을 온전히 느끼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 선생은 꽤나 의리있는 여성이었다. 전 남편이 빚을 2억이나 져서 이혼했지만 그 집안의 시부모 제사까지 지내주고 있었다. 빚 때문에 이혼했지만 어쩌면 그 가족 안에서 어느 가족 구성원에 걸맞는 대우를 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집에 왔더니, 자신의 커리어는 좋은 명패로 삼으면서 집에서는 그저 밥순이, NPC 취급이나 당했다. 이 집안 남자들은 나의 존재를 그저 투명한 로봇 그 이상, 그 이하로 보지 않는 듯 했다. 남편한테는 큰 소리치고 싶으나, 어찌보면 실세나 다름없으니 약자를 골라 히스테리를 부린 것은 굉장히 고약한 심보긴 하다. 한 여자로써 바라봤을 때는 안타깝지만, 한 인간 혹은 누군가의 보호자의 입장으로 바라봤을 때는 악역이나 마찬가지다. 중요한건 뭐...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 뉠 자리 봐가면서 행동하니까. 

 친어머니는 병에 걸려 죽고, 친아버지라는 작자는 일주일동안 실종됐는데 경찰으로부터 연락오기 전까지 찾지도 않고, 새어머니가 들어왔는데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혐오한다.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오자 말은 더듬기 시작하고, 친구들도 또한 곁을 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꼭 사랑을 받은 만큼 되갚고 싶어한다. 자신을 숨겨준 점장, 그리고 옆에서 챙겨준 파랑새. '나'는 은혜갚는 까치이므로 점장을 위해 '나'는 몽마(악몽)의 방문을 점장 대신 받았다. 점장이 툴툴댔지만, 그저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이다. 자신이 배 선생에게 무희를 성폭행했다고 오해를 받았을 때도 아버지가 조금 편들어줬다면, 이렇게까지 도망치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점장이 준 타임 리와인더(포춘쿠키)와 자신의 얼굴을 꼭 빼다 박은 봉제인형을 계속 보관을 한다. 아무리 아까워서, 자신의 얼굴이 담겨 있어 그냥 버리기 아까울지언정. 그 남은 쿠키들은 그에게 잠깐이나마 받았던 사랑이었다. 

 

| 시간을 돌리는 쿠키: 타임 리와인더 그리고 구원서사

 시간을 돌리는 쿠키는 말 그대로 내 기억은 가져갈 수 없다. 그저 내가 끔찍이 현재가 싫기 때문에, 어떠한 기시감 때문에 거부감이 들게 하는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선택을 다시 할 수도 있고. 

 작가는 꽤 재미있게 풀어냈다. <Y의 경우>에서 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배 선생을 만나기 직전으로 시간을 돌린다. '나'는 배 선생이 너무 너무 거부감이 크게 들었다. 그래서 미친듯이 반대를 했다. 저 사람만큼은 안 된다고. 사실 아버지에겐 어떤 여자를 선택하는데 있어 명확한 취향이 있었던 사람인데, 배 선생이 좋지도 싫지도 않았다. 그런데 아들이 이렇게까지 거부를 하니, 배 선생은 예선 탈락이었다. 결국 아버지는 본인이 가야할 운명을 가게 되었고, '나'는 그저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게 이상하게 싫지가 않았다. 

<N의 경우>는 결국 배 선생과 몸싸움하느라 타임 리와인더 쿠키는 산산조각이 났고, 먹지 못했다. 어찌됐든, 아버지는 <Y의 경우>와 같게 본인이 가야할 운명을 가게 되었고, 배 선생과 아버지는 이혼을 했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일을 딛고 본인의 삶을 다시 살아간다. 


여기서부터는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실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소재는 굉장히 신선했지만, 소재는 소재일 뿐. 나는 '나'의 인생의 흐름이 어떻게 전개가 될 지가 가장 궁금했다. 마법사의 힘을 통해 그의 힘이 구원받는 전개인 <Y의 경우>, 마법사의 힘이 없어도 스스로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N의 경우>가 있었다. 사실 나는 전자는 그저 '나'의 찰나의 상상이지 않았을까 싶다. 진짜 인생은 <N의 경우>지. 

 나는 이상하게 누군가로부터 구원받는 서사가 요즘따라 흥미가 없다. 누군가로부터 구원받는 서사라... <나의 해방일지>에서 나와 상대의 결핍이 채워짐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구원받는 서사는 괜찮다. 하지만 어떤 위대한 사람의 힘을 통해, 혹은 잘 나가는 남편, 남친을 통해, 혹은 부모를 통해, 혹은 초능력 또는 마법을 통해 누군가가 벌을 받고, 복수하고, 구원받는 서사는 재미가 없다. 삶은 그저 흘러갈 뿐이다. 내가 행복할 일만 생각하면 행복할 것이고, 슬플 일만 생각하면 슬플 것이다. 내가 뜻하지 않는 기회 혹은 위기를 통해 우리는 행운, 불행 이렇게 표현하곤 한다. 그저... 내게 주어진 길을 내가 묵묵히 걸어나가면서 이겨내는 삶이 멋지지 않은가? 어찌됐던간에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내 행동 하나하나에는 책임과 대가가 뒤따른다고 생각한다.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점장은 마법사의 본분으로 인해, 열심히 빚어내지만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준다(많은 사람들이 듣지 않지만). 그저 우리는 늘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과 대가가 뒤따를 뿐이고, 우리는 그 선택대로 삶이 흘러가는 것. 

 잘 선택해야겠지. <굿 플레이스>의 치디가 생각이 난다. 철학교수면서 어쩜 저렇게 생각이 많을까? 했는데, 자신의 선택에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 무서워 그랬던 것이다. 이래서.... 많이 알면 다쳐!

 아버지는 여아 성폭행범이었고, 결혼을 하든 안 하든 그는 철창행으로 갈 운명이었다. 불쌍한 아이들..ㅠㅠ 그저 텍스트고 허구임에도 이런 놈들이 세상에 너무 많아 읽는 내내 충격을 금치 못했다. 이미 많은 독자들은 예상했을 수도 있지만, 난 아직 이런 반전에도 놀랄 정도로 순진하다고요. 친 어머니가 그 남편이랑 살면서 받았을 고통도 너무 짧게 묘사되었다. 근데 그것도 나쁘지 않다. 한 사람의 인생을 고통으로만 표현한다는 게 얼마나 불친절한 서사인가? 부디 친어머니는 좋은 기억만 안고 하늘로 가셨길. RIP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