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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n Prisa, Sin Pa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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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짧은 단편] 알맹이가 없는 이야기(2) 사랑으로 시작했다 분노로 끝나다 우리는 이탈리아 친퀘테레에 도착했다. H는 구불한 길을 따라 운전을 했고, 나는 처음 보는 광경에 입이 떡 벌어진 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친퀘테라는 '다섯개의 땅'이라는 의미인데, 그 유명한 다섯개의 땅 중 가장 중간에 위치한 '코르닐리아'라는 곳에 묵었다. 성인이 된지가 오삼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부모로부터 독립되지 않은 미성숙한 인간이었고, 외국 영화에서나 보는 연인들의 유럽 여행을 H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벌써 이렇게 컸나?  일단 H는 동네 식료품점으로 향했다. 능숙하게 빵, 햄, 치즈 그리고 와인을 샀다. 아, 그리고 야채와 올리브유까지 샀다. 올리브유는 한 번 쓰고 버리는게 아니라 남은 여행 내내 쓸거라는 계획까지 세워두었다. 나는 그저 그렇게 야무지게 장.. 2024. 8. 2.
[아주 짧은 단편] 알맹이가 없는 이야기(1) 버스 안 출근길 오전 6시 50분, 버스가 4 정거장 전에 출발했다고 한다. 지금 나가면 버스를 탈 수 있다. 도보 거리와 신호등 타이밍까지 고려한 철두 철미한 예측이다. 경기 남부에 사는 나는 사당역을 향한 좌석버스를 탄다. 내가 타는 곳은 버스의 첫 정류장에서 그리 멀지 않아 버스를 타게 되면 좌석에는 2-3명 정도 앉아 있다. 사당역까지 40분 정도 걸리는데, 가는 내내 버스의 빈자리가 꽉꽉 채워진다. 제발 내 옆자리는 앉지 말길 바라면서, 가방을 살포시 올려두지만 역시나 나의 눈치싸움은 늘 완패. '나 여기 앉을건데?'라고 말하는 시선을 쏘아 받으면 냉큼 치워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 평상시 창가 자리보다 복도가 좋지만, 아무래도 출근길은 창가 자리가 좋다. 첫 정류장에 가까운 정류장 근처에 사는 사람의 특권이란,.. 2024. 8. 2.
구병모, 위저드 베이커리, 선택의 결과는 나의 몫 | 줄거리 나는 열 여섯 청소년, 어릴적 어머니는 병으로 돌아가셨고 새엄마 배 선생과 그녀의 딸 무희가 가족이 되었다.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배 선생 그리고 무희는 나와 가족이 될 수 없었다. 무신경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함께 재혼한 배 선생은 외롭기만 하고, 괜스레 남편의 자식이 밉기만 하다. 나는 겉으로 나지 않는 상처는 없었지만, 배 선생의 차가운 태도와 혐오로 인해 마음 속에 외로움, 두려움, 고독함만 쌓여 간다. 함께 모여 저녁먹는 시간이 너무 끔찍해서 나는 늘 동네에 있는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다양한 빵을 사먹는다. 나는 배 선생에게 곁을 내어 주지도 않았지만, 곁을 받지도 않았다. 그래서 계속되는 은밀한 혐오에 말을 잃었고 결국 말을 더듬게 된다.  어느 날 사건은 터졌다. 이복 동.. 2024. 8. 1.
윤이형, 작은 마음 동호회, 독특한 시각으로 풀어낸 작은 우리들의 모습 생각했던 것보다 길어질 것 같아서 1,2편을 나눠서 작성하게 됐다..;;https://jamjamzo.tistory.com/182#google_vignette 작은마음동호회, 윤이형, 아무도 몰라주는 2등 시민 이야기독서 모임에서 추천받았던 단편 소설 모음집이다.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고 들어 궁금해서 냉큼 사보았지 뭐람.  ▶️ 작은 마음 동호회(...) 증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 일기를jamjamzo.tistory.com  ▶️ 의심하는 용 - 하줄라프1 & 용기사의 자격 - 하줄라프2 정말 집중이 안되는 소재다. 나는 약간 세계관을 상상하는 일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듯하다. 아무래도 급한 내 성격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래 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를 읽었을 때가 생각이 난다. 나는 이런 종.. 2024. 7. 30.
무언가를 사랑하는 방법 무언가를 내 열정을 다해 사랑해본 적이 있는가?내 인생의 소명은 "이 것"으로 만들어지고, "이 것"으로 끝낼 거라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는가?나는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 부럽다.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되돌려 받지 않아도 사랑하는 느낌만이 날 살아있게 만든 적이 있는가? 혹은 어떤 물건에 대한 애착이 오랫동안 지속된 적이 있는가? 혹은 어떤 일을 할 때 내가 살아 숨쉬는 것을 느낀 적이 있는가?...사랑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에 어디에나 존재한다. 하지만 내 사랑은 늘 짧았다. 내 열정은 끝에 달하지 못했고, 늘 내 마음과 상대의 마음(인간, 물건, 취미, 일 모두 포함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이 다를까 온전히 쏟아붓지 못했다. 온전히 사랑해본 적이 있을까? 이 것을 위해 내 몸을 던져도 아깝지 .. 2024. 7. 28.
작은마음동호회, 윤이형, 아무도 몰라주는 2등 시민 이야기 독서 모임에서 추천받았던 단편 소설 모음집이다.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고 들어 궁금해서 냉큼 사보았지 뭐람.  ▶️ 작은 마음 동호회(...) 증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 일기를 쓰고 과일청을 만들다가 시계를 보고 쫓기듯 자러 가는 사람들, 방안에서만 서성거리는 사랑스러운 지식인들이다. '현명한 엄마' '효부'라는 말에는 온몸을 긁으며 염증을 내지만,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보면 자궁에 통증을 느끼는, 그 통증을 속으로 삭이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바이링궐이다. 우리의 말들은 반쯤은 자신의 것이지만 반쯤은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의 것이다. 우리는 종종 싸우려다 싸울 대상을 변호하며 주저앉는다. 그러고 나서는 성나고 괴로운 마음이 되어, 자신을 때려 기어이 피를 내곤 한다. .. 2024. 7. 26.
헤르만 헤세, 데미안,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그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 없어.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면, 그건 그 사람에게 자신을 지배할 힘을 내준 데서 비롯해. (...) 나방은 자기에게 뜻과 가치가 있는 것,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 자기가 꼭 가져야만 하는 것, 그것만 찾는거야.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일도 이루어지지. (...) 그걸 수행하거나 충분히 강하게 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소망이 나 자신의 마음속에 온전히 들어 있을 때, 내 본질이 정말로 완전히 그것으로 채워져 있을 때 뿐이야. (...) 내 의지가 준비되어 있었기 떄문에 즉시 기회를 포착한거야.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이 있다. 나의 인생이 담긴 퍼즐에 그에 걸맞는 퍼즐조각을 채워나가야 하는데, 그 퍼즐 조각들이 하나같이 딱 맞지 않고 대충 들어 맞는 기분이 든다. .. 2024. 7. 23.
노멀 피플, 샐리 루니, 불안하고 흔들리는 젊은 연인들 우연히 보게 됐던 유튜브 영화 요약본. 웨이브에서 이라는 시리즈를 독점했다고 하는데, 나는 웨이브를 구독하지 않는 관계로 요약본을 보다가 빠져들었다. 고등학교 때는 아싸였던 여주인공이 대학교에 들어가자 퀸카가 되는 하이틴 소재스러운 이야기지만, 똥꼬발랄한 이야기는 아니고 오히려 진솔하다. https://youtu.be/C-d2I6ojS1s?si=4XE9CIA5iX4Gajqb | 고등학생이었던 매리앤과 코넬 매리앤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수재였고, 돈 잘 버는 변호사 엄마를 둬서 집안에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학창시절에 그녀는 다른 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녀는 집안에서 오빠로부터 폭력을 당하고 있었고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는데, 그녀는 똑똑해서 아는 것이 많아 유머러스한 면모가 없었다. 그녀는.. 2024. 7. 17.
두 번째 산, 데이비드 브룩스, 인생은 두 번째 산을 오른다는 것 '두 번째 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 첫 번째 산이 자아ego를 세우고 자기self를 규정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자아를 버리고 자기를 내려놓는 것이다. 첫 번째 산이 무언가를 획득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무언가를 남에게 주는 것이다. 첫 번째 산이 계층 상승의 엘리트적인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무언가 부족한 사람들 사이에 자기 자신을 단단히 뿌리내리고 그들과 손잡고 나란히 걷는 평등주의적인 것이다. 두 번째 산을 오르는 방식은 첫 번째 산을 오르는 방식과 전혀 다르다. 첫 번째 산은 정복한다. '나'가 이 산을 정복하는 것이다. 정상이 어디인지 멀리서 확인하고는 그곳을 향해 기를 쓰고 올라간다. 그런데 두 번째 산은 다르다. 두 번째 산이 '나'를 정복한다. 나는 어떤 소명에 굴복한다. 그리고.. 2024. 6.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