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냥, 책

테드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1) 바빌론의 탑

반응형

반응형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내 머리에 있는 온갖 잡동사니 상식들을 꺼내는 것과 같았다. 상식이 없을 경우는 검색을 해야했고, 이해가 안 가는 경우는 다른 사람의 리뷰를 한 번씩 읽거나 듣고 오거나 읽었던 단편을 다시 읽는 과정들을 반복했었다. 정유정, 장류진, 무라카미 하루키 등.. 나름 술술 납득이 되는 작품을 읽었기 때문에 술술 읽을 수 있었는데,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결코 단순한 작품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시 읽고 반복해서 읽고 하나 하나 체크할 수록 이 책을 알게 돼서, 그리고 이 책을 시도하게 돼서 난 참 행운이다 라는 것을 알게 됐다. 

 보통 1~2권을 1주에 끝낸다. 그렇지만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1~2편을 1주에 끝냈다. 그 정도로 이해를 못 하면 활자만 읽고 지나치는 것과 다름없었다. 총 8편의 단편소설이 있는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아직 총 3편 정도 읽고, 또 복기까지 마친 상태인데 한동안 테드 창 앓이에 헤어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잘 나오겠지. 무라카미 하루키앓이에도 장류진으로 치유되었으니...ㅎㅎ 테드 창 이후엔 김초엽 작가로 바로 넘어갈 생각이다. SF의 늪에서 한동안 갇혀있을듯...? 

 이 책은 마치 영국의 '블랙 미러' 시리즈를 읽는 것만 같다. 나는 그런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인 그런 세계를 좋아한다고 생각한 적 없었는데, 나... 그런거 좋아하더라...?

 

 

 이 책의 배경을 찾아보니 성경의 창세기 내용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었다. 대홍수 이후, 사람들은 하늘에 닿고 싶어 바빌론의 탑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노하셔서 바빌론의 탑을 무너뜨리고, 온 세상 사람들의 언어를 다르게 만들어 서로 소통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테드 창은 바빌론의 탑이 하늘에 닿았다는 가정하에 이 책을 써 나갔다. 힐라룸은 엘람(이란)인인데, 시나르(이라크)에 바빌론 탑을 짓기 위해 광부로써 왔다. 

 

 만약 그 탑을 시나르(수메르, 메소포타미아 남부를 가리키며 현재는 이라크의 일부.)의 평원에 눕히고 한쪽 끄트머리에서 다른 끄트머리까지 걸어간다면 족히 이틀은 걸릴 것이다. 그러나 탑은 곧추서 있기 때문에 밑동에서 꼭대기까지 올라가려면 짐이 없더라도 한 달 반이나 걸린다. 

 몇 세기 전부터 만들어 진 이 탑 자체에서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탑 꼭대기까지 올라가기 위해 몇 세기동안 희망을 품고 탑을 만들어 왔고, 탑 중간에 이미 마을과 농경지까지 만들어 놓고 있었다. 마지막 부분이 화강암으로 되어 있는데, 이집트인들이 화강암 다루는데 전문이라 그들만 기다리면 하늘을 뚫을 수 있었다.

 하늘 위에는 야훼(이 소설에서 말하는 신, 여호와를 말하는 듯 하다)의 저수지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그 저수지에 도달함이란 야훼의 주거를 볼 수 있고, 야훼의 모든 피조물을 볼 수 있을거라 믿어 끊임없이 탑을 쌓고 있는 것이다. 몇 달 동안 탑을 해와 달의 움직임을 더 가까이 지켜보기도 했고, 탑 중간에 있는 마을에서 머물기도 했다.

 

 힐라룸은 탑의 이 부분이 등반용 경사로와 하강용 강사로로 이뤄진 두 개의 거리 사이에서 일종의 조그만 마을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축제 때 의식을 거행하는 신전이 있었고, 사람들 사이에 분쟁을 해결하는 판관들도 있었고, 아래에서 올라오는 대상들에게 물품을 보급받는 상점들도 있었다. 이 마을은 당연히 대상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서로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상이란 필연적으로 여정이며, 한 장소에서 시작돼 다른 장소에 끝나는 법. 이 마을은 결코 항구적인 거주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고, 몇 세기나 걸리는 긴 여행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힐라룸은 쿠다와 그의 가족들에게 물엇다. "이중에 혹시 바빌론에 가본 사람이 있습니까?"
 쿠다의 아내인 알리툼이 대답했다. "아뇨. 그럴 필요가 뭐 있겠어요? 다시 올라오려면 한참이 걸리고 필요한 건 여기 모두 있어요."
 "그럼 정말로 지상을 걷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겁니까?"
 쿠다는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는 하늘로 가는 길가에 살고 있다네. 우리가 여기서 하는 모든 일은 그 길을 더 연장시키기 위한 거지. 우리가 이 탑으 ㄹ떠날 때면 위로 가는 경사로를 오르지, 아래로 내려가지는 않을 거야."

 높은 곳에 오를 수록 인간의 욕망은 짙어져 간다. 이미 위로 오른 순간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궁금하지도 않고, 가고 싶지도 않다. 높게 올라가고 싶은 인간의 욕망만 남아있을 뿐이다. 삶의 안정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면 삶의 욕망을 의미하는 것인가? 말하는 이는 안정이겠지만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이미 높이 있는 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느 날, 힐라룸은 야훼가 이 탑을 몇 세기동안 지켜본 것에 대해 두렵기 시작했다. 만약 신이 이 탑을 짓는 것을 환영했다면 왜 올라올 계단을 주지 않았는지, 만약 이 탑을 짓는 것이 싫었다면 탑을 무너뜨리지 않았는지... 사람들은 야훼를 향한 사랑으로 그에게 도달하려 하는거라 생각하며 계속 오르고 있다. 

 몇 년동안 하늘의 천장을 뚫는 작업이 지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수지를 뚫은 것이다. 저수지의 물이 천장에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세 사람은 점점 높아만 가는 물속에 서서 필사적으로 기도했지만, 힐라룸은 이것이 헛된 노력임을 알고 있었다. 드디어 운명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야훼는 탑을 짓거나 천장을 뚫으라고 인간에게 부탁하지 않았다. 탑을 건설한다는 선택은 전적으로 인간의 몫이었고, 그들은 다른 인간들이 지상에서 일하다가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서 일을 하다가 죽어가는 것뿐이었다. 아무리 정당한 선택이었다고 해도 그들의 행위의 결과로부터 그들을 구원해줄 수는 없었다.

 힐라룸은 헤엄을 쳐 계속 위로 향했다. 한참 후에 그는 수원(水源)을 찾았고, 거대한 동굴을 발견했다. 그 기나긴 터널을 기어 끝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빛을 보았다. 도착한 곳에 어느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보니, 그는 시나르에 있었다. 원래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왜 야훼가 탑을 무너뜨리지 않았는지, 정해진 경게 너머로 손을 뻗치고 싶어하는 인간들에게 왜 벌을 내리지 않았는지 뚜렷이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오랫동안 여행을 해도 인간은 결국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몇십 세기에 걸쳐 역사한다고 해도 인간은 천지창조에 관해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 이상의 것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노력을 통해, 인간은 야훼의 업적에 깃든 상상을 초월한 예술성을 일별하고, 이 세계가 얼마나 절묘하게 건설되었는지 깨달을 수 있다. 이 세계를 통해 야훼의 업적은 밝혀지고, 그와 동시에 숨겨지는 것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세상은 하늘과 땅은 같은 이치였고, 힐라룸이 걸었던 그 동굴은 땅으로 가는 웜홀과도 같았다. 야훼는 모든 것을 직접적으로 벌을 주지 않아도 인간 스스로가 일을 벌이고, 모든 것을 알아서 깨닫도록 만든 것이다. 인간은 역사적으로 야훼가 만들어놓은 아름다운 설계에 도전하기 위해, 다가가기 위해 수학, 과학적 이론들을 만들고 있었다. 인간의 도전을 야훼는 그냥 지켜만 보았다. 스스로 깨우치길 기다렸다는 듯이. 

 

 인간의 욕망 - 신을 사랑해서 다가가고 싶다. 하지만 신과 같은 위치에 있고 싶은 욕망으로 바빌론 아래에는 내려가고 싶지 않고 오로지 위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보였다. 결국 하늘과 땅이 같음으로 인간의 욕망은 하늘을 치솟고 올라가지만 결국 제자리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