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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책

옷소매 붉은 끝동, 로맨티스트 정조 혹은 비운의 여인 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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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소매 붉은 끝동>이란 작품은 알게된 지는 꽤 됐지만, 당시에는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어 미루고 미루었다. 하지만 2019년에 이 책이 드라마화된다는 소식에 허겁지겁 원작을 사서 ebook으로 사서 읽기 시작했다. 본디 사극로맨스에 환장하고, 정조 덕후인 내가 이 책을 미룰 이유가 전혀 없었다. 다만, 당시에 활자를 읽기가 어찌나 피곤하던지ㅎㅎ

 리디북스에 총 5권으로 나뉘어 있었고, 맨 처음 1권은 무료로 볼 수 있었다. 5권의 ebook은 뭐... 3일만에 끝냈다. 한 시도 책을 놓을 수 없었고, 덕임앓이, 산이앓이.. 미쳤었지. 근데 이번에 MBC에서 <옷소매 붉은 끝동>을 드라마화한걸 보니, 다시 원작을 정주행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투피엠 이준호...? 헐... 이랬다. 사실, 아직도 원작을 볼 때, 내가 생각하는 산은 준호가 아니지만, 준호 연기에 나는 서서히 스며드는 중이다. 

 과연, <옷소매 붉은 끝동>은 궁중 로맨스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덕임은 궁녀가 되고 싶어 된 것은 아니지만, 궁녀가 된 삶 안에서라도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길 바랄 뿐이었다. 덕임은 죽을 때까지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없었다. 그 밖에도 궁녀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보여주는 대목이 많은 책이었다. 궁중로맨스라 함은 왕의 사모를 받으면 전부일텐데, <옷소매 붉은 끝동>은 왕의 정인이 뭐가 대수냐? 내가 왕말고 다른 이를 사랑할 수는 없는 것이냐? 내 인생에 대한 선택은 어디 있는지?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할 포인트가 많은 것 같았다. 

 

# 여성 캐릭터 활용

 

 사실, '정조'가 중심인 역사 드라마를 보면, 정순왕후는 항상 정조와 대립하는데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는 그녀의 권력 안 외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내명부 최고 권력을 가진 정순왕후지만, 그녀는 함부로 궐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그녀는 남편을 선택할 수도 없고, 치매걸린 80세 노인의 남편을 갖고 있고, 일찍 승하하여 과부지만, 큰 어른으로써 궐의 중심을 이끌어 가야한다. 내 삶을 내가 휘두를 수 없는데, 권력이 대수일까. 나는 정순왕후의 평가가 좋지 못하더라도 이 책에서만큼은 당시 비참한 여인내의 삶을 볼 수 있어 찡했다. 

 "임금님은 날 좋아해도, 난 임금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과연 의열궁도 왕을 사랑했을까?
 후궁들을 한 줄로 세워놓고 누가 더 예쁨받았나를 따지는 사람은 많아도, 그 후궁들은 과연 왕을 사랑했을까 의문을 품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왕의 손짓 하나면 주저 없이 옷고름을 풀어야 하는 시절이 과연 계집은 반드시 왕을 사랑해야 한다는 전제를 정당케 할 수 있을까? 임금이 내린 향기로운 옥석 첩지는 후궁의 머리를 짓누르던 한낱 돌덩이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서글픈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이다.

 

# 성덕임과 이산

 이산은 성덕임을 보고 첫 눈에 반한게 틀림없다. 실제로 이산은 덕임을 첩으로 들이고 싶다고 했는데, 덕임이 세손빈에게 아기씨가 없는데, 어찌 본인이 첩이 되겠냐며 거절했다. 이산은 또 그걸 받아들였다. 그러고 15년 뒤, 다시 덕임을 불러 거의 반강제로 후궁을 만들었다. 

 작가는 이 모든 로맨스를 이산은 섹시하게, 덕임은 똑부러지게, 내 마음 뭉그러지게 잘 쓰셨다.... 이산은 덕임을 후궁으로 들인 후에 누구보다도 엄격하게 그녀를 대했다. 그녀에게 화려한 옷, 큰 재물 혹은 그녀의 가족에게 어떠한 재산도 주지 않았고, 대외적으로 그녀를 아이를 낳는 하나의 후궁으로 대했다. 아무런 힘이 없는 집안이었던 덕임을 지켜주기 위함이었고, 적어도 그녀는 정치적으로 엮이지 않는 단 하나의 자신의 사람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덕임과 단 둘이 있을 때만큼은 그녀에게 최선을 다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덕임은 산을 사랑했다고 믿고 싶었지만 실제로 그녀가 정말 사랑했을까 라는 의문을 품었다. 그녀는 어려운 책을 필사할 정도로 글을 알았고, 읽었던 것으로 보인다. 많이 읽는 만큼 세상이 보일텐데, 그녀는 저 넓디 넓은 세상을 반도 보지 못한 채, 왕궁에서 한 남자의 첩실로 끝내야 하는 삶이 비참하게 느껴졌을 지도 모른다. 후궁이 된 이후로 덕임은 책도 많이 읽지 못하고, 아이들을 자신의 자식이라 부르지도 못하고, 어린 자식들이 병들어 일찍 떠나버리는 아픔까지도 겪었다.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원했지만, 결국 그녀는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녀가 어떤 배후에 의해 갑자기 죽었다는 후문이 있지만, 진실일지는 모르는 일이다. 다만 나는 그녀는 어떤 배후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 않았더라도 그녀의 자유를 옭아매는 삶을 견디지 못해 마음의 병이 났을 수도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내 사람이 되고 싶으냐?"
전혀 통하지 않았다. 원점으로 돌아왔다.
"소인은 그저 스스로의 사람으로 살고 싶사옵니다."
섣불리 뱉은 말을 어찌 받아들일지는 순전히 그의 몫이었다.
"맹랑한 것."

 

# 원작 vs 드라마 비교

 이번에 MBC에서 방영하고 있는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이세영과 이준호의 열연에 한 편 한 편 소중히 보고 있다. 물론 여느 드라마와 같이 원작과 똑같이 만들지는 않았다. <유미의 세포들>은 완전 원작이랑 존똑이었긴 했지만..ㅎㅎ 아직 이산이 임금이 되기 전 세손시절의 이야기의 서사를 단단히 만들어가는 중인데, 원작에서는 없던 이야기들이 나오긴 한다. 처음엔, 이런 내용 아니었는데..? 이 대사는 딴 사람한테 말하던건데...? 이런 의문이 많았지만, 워낙에 아끼고 사랑한 작품이어서 그런지, 세손시절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화완옹주나 제조상궁은 책에 나오지 않았고, 혜경궁 홍씨의 역할은 미미했지만 드라마에선 역시 긴장감 조성으로 좋은 것 같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능구렁이, 뇌섹남 홍국영이.... 마치 '소시오패스'같이 보이는 기분은 뭐지..? 약간 방향 잘못 잡은 것 같은데...ㅎㅎ 내가 생각했던 홍국영의 이미지는 <성균관 유생들>의 '여림 구용하'같은 이미지였는데... 오히려 MBC <이산>에 나온 홍국영 역할이 더 좋다... 

 요즘 드라마를 거의 안 보고 있지만, 한 편 한 편 소중하게 보고 있는 <옷소매 붉은 끝동>을 응원하며, 원작도 또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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