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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n Prisa, Sin Pausa
그냥, 책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 당신들이 믿는 존재가 얼마나 허상인지 낱낱이 증명해낼게

by 조잼 2025.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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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극히 사적인 소감을 말하자면

와우… 정말 길고도 길었다. 하루는 몰입해서 읽었고, 또 하루는 텍스트만 휘리릭 넘기며 대충 읽었다. 그런데도 리처드 도킨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게 전달됐다. 리처드씨… 당신 혹시 T야?

그는 과학자답게 ‘신이 없다는 이유’를 철저하게 논증해 나간다. 정말 반박할 틈이 없을 정도였다. 나 역시 기독교나 이슬람교 같은 대형 종교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도킨스의 주장을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평소에 믿는 미신이나 운명론조차도 그의 시선에서는 종교에 포함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개인적인 믿음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도킨스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계승해 <이기적 유전자>를 쓴 인물로, 특정 종교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아왔다. 그래서였을까, 이 책에서는 종교가 세상을 얼마나 타락시키고, 폐해를 끼치며, 도태시키는지를 낱낱이 파헤친다. 하지만 그가 말하고 싶은 핵심은 단순히 “신이 없다”는 선언이 아니다. 그는 종교라는 시스템이 차별과 폭력, 소외, 형벌, 그리고 비합리적인 용서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음을 조목조목 증명해 나간다.

결국, 그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믿을 거면 혼자 믿어라.”

이처럼 종교가 만연한 사회에서 “나는 무신론자야.”라고 당당히 말하는 것 자체가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런데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무신론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단순한 신념을 넘어선, 엄청난 고독과 싸워야 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어떠한 미신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이성과 논리, 그리고 과학적 근거만을 기준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태도는 정말 외롭지 않을까?

오랜만에 강렬한 책을 읽었는데, 너무 논리적인 담론에 빠져 도파민이 부족해진 기분이다. 당분간은 아주 자극적인 소설을 읽으며 균형을 맞춰야겠다.

📖 About this book

💡 Summary

신이 존재를 믿는가?

저자는 4가지를 일깨워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

1. 무신론자가 되고 싶다는 소명이 현실적인 열망이고, 용감한 행위다.
2. 생명 출현의 기원을 나타내는 자연선택설과 같은 이론들이 가진 힘이다.
3. 사람의 존재를 종교에 의해 정의될 수 없다.
4. 무신론자로서 자긍심을 가져도 된다.

종교로 인해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세습적으로 면죄를 누리고 끊임없는 차별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기 위해 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 Quotation

1. 대단히 종교적인 불신자

아인슈타인이 한 말을 하나 더 인용함으로써 아인슈타인식의 종교를 종합해보자. “
경험할 수 있는 무언가의 배후에 우리 마음이 파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으며, 그 아름다움과 숭고함이 오직 간접적으로만 그리고 희미하게만 우리에게 도달한다고 느낄 때, 그것이 바로 종교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종교적이다.
”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 종교적이다. “파악할 수 없는”이라는 말이 “영구히 파악이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조건을 달아야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종교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까. 그 오해는 파괴적이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종교는 초자연적인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세이건은 그런 상황을 멋지게 표현했다. “
신이라는 말이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 법칙들을 의미한다면, 그런 의미의 신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 신은 정서적인 만족을 주지 않는다……. 중력 법칙을 향해 기도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 밀리의 서재
그렇다고 누군가를 격분시키거나 상처 주는 것을 지지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다른 면에서는 지극히 세속적인 우리 사회에서 종교가 걸맞지 않은 특권을 누린다는 점이 의아스럽다 (…)

나는 이 책에서 종교에 대한 존중이 비할 바 없이 지나치다는 관점에서 내 견해를 펼치고자 한다. 나는 일부러 분노를 자극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것들을 다룰 때보다 더 부드럽게 종교를 다룬답시고 미적지근하게 글을 전개해 나가지도 않을 것이다.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 밀리의 서재

 

신이 있다고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강력한 위험을 품고 있다. 종교가 종교로 끝나는 것이 아닌, 우리 삶에 많은 영역에 뻗어 있어 면죄와 이해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질타를 받을 때가 있다. 신을 믿는 영역들은 점차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만연하게 퍼져 있는 것은 위험하다.

2. 신 가설

《구약성서》의 신은 모든 소설을 통틀어 가장 불쾌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시기하고 거만한 존재, 좀스럽고 불공평하고 용납을 모르는 지배욕을 지닌 존재, 복수심에 불타고 피에 굶주린 인종 청소자, 여성을 혐오하고 동성애를 증오하고 인종을 차별하고 유아를 살해하고 대량 학살을 자행하고 자식을 죽이고 전염병을 퍼뜨리고 과대망상증에 가학피학성 변태성욕에 변덕스럽고 심술궂은 난폭자로 나온다. 유아 때부터 그의 행동 방식을 주입받은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런 행위들이 빚어내는 공포에 둔감해졌을 수 있다. 때 묻지 않은 관점을 지닌 천진무구한 사람은 이 사실을 더 명확히 인식할 수 있다.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 밀리의 서재
나는 어느 특정한 형태의 유일신이나 여러 신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어디에선가 날조되었거나 언젠가 날조될 초자연적인 모든 것, 모든 신들을 공격한다.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 밀리의 서재

일신교나 다신교나 종교마다 갖고 있는 신은 각자 이야기가 있다. 우리 신이 진짜라며 싸우기도 하고, 어떤 신은 하나의 뿌리에서 파생되어 다른 신처럼 섬겨지기도 한다. 신께 기도를 하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신에게 잘 보이는 것은 나의 인생의 평안함을 가져오는 것이나 다름없다. 심각한 것은 무신론자에 대한 차별이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신을 믿지 않더라도 이해를 하지만 무신론자는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불가지론 : 의식에 주어지는 감각적 경험만이 인식되고, 그 배후에 있는 사물의 본질이나 실재 그 자체는 인식할 수 없다는 설. 종교적으론, 인간은 신을 인식할 수 없다고 주장.

리처드 도킨스의 불가지론 구분

  • 실질상의 일시적 불가지론(TAP;Temporary Agnosticism in Practice) : 이쪽 아니면 저쪽이라는 명확한 답이 실제로 있지만 아직 거기에 도달한 증거가 부족할 때
  • 원리상의 영구적 불가지론(PAP;Permanent Agnosticism in Priciple) : 우리가 아무리 증거를 모은다 해도 증거라는 개념 자체를 적용할 수 없기에 답을 결코 얻을 수 없는 질문들

신이 있다고 믿는 가설은 불가지론에서 발생된 것이다. 현재까지 과학으로 밝힌 영역들은 완전히 진실이 아니고, 계속 더 맞는 진실을 위해 연구되곤 한다. 이렇게 물질적인 것도 계속 변화되는데, 비물질적인 신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믿는다. 사람들은 신의 존재가 PAP 범주에 속한다고 열정적으로 확신한다.

 

신학자 앨리스터 맥그레이스의 저서 《도킨스의 신:유전자, 밈, 생명의 기원》의 요점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그가 내 과학적 연구 성과들을 탄복할 만큼 공정하게 요약한 뒤에 내놓은 유일한 반박은 이것인 듯하다. “당신이 신의 존재를 반증할 수 없다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수치스러운 약점이 아니냐”고 말이다.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 밀리의 서재

<이기적 유전자>에서 도킨스가 모든 생명은 유전자를 지니고 있으며, 유전자를 퍼뜨리는 본능으로 생명의 진화가 된거라며 쓴 책이 있다. 어쩌다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을 썼을까, 이 책에는 그의 차가운 분노가 서려있을까 했는데 많은 종교인들이 <이기적 유전자> 발행 이후 리처드 도킨스를 비난했을거라 생각한다. 마치 많은 종교인들이 <종의 기원>을 읽고 분노했던 것처럼 리처드 도킨스를 공격했겠지. 불가지론설을 믿는 신학자들에 대해 도킨스는 의문을 품는다. 도대체 너네들은 신학에서 뭘 배우는거니? (나는 신학에서 군중들을 지배하는 심리학을 배우는 것 같다ㅋㅋㅋ)

3. 신의 존재를 옹호하는 논증들

우리가 그 존재를 생각할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에 우리 사유 외부에 그 무엇인가가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모든 철학자는 그렇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철학자의 일이 관찰보다는 생각을 통해 진리를 찾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가 정답이라면, 순수한 사유와 그것들을 연결하는 다리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다리도 없다.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 밀리의 서재

 

많은 신학자 혹은 철학자들이 말하는 신의 존재란, 보이지 않지만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내고 있다. 신을 증명하라니, 예시를 기적으로 들었다는 것은 과학자인 도킨스로서는 도무지 납득이 안 가는 논증이다.

인간의 뇌는 모형 구축에 탁월하다. 잠을 잘 때에는 그것을 꿈이라고 부른다. 깨어 있을 때에는 그것을 상상이라 하고 유독 생생할 때는 환각이라고 한다. 10장에서 말하겠지만, ‘상상의 친구’를 지닌 아이들은 마치 실재하는 인물인 듯이 그들을 선명하게 보곤 한다. 우리가 잘 속는 존재라면, 우리는 환각이나 생생한 꿈의 실상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유령을 보았거나 유령의 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 밀리의 서재

그렇다면 귀신을 경험한 사람들은? ‘미친’, ‘정신병적’, ‘망상적’,… 환각, 우리 뇌의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은 환시와 강림을 구성할 능력이 있다. (종교적인 신의 존재만 설명하는 줄 알았는데, 현실세계에서 많이 이야기 하는 귀신이나 망령의 목격담까지 논증하는 도킨스… 이런 사람이 과학을 하고, 책을 쓰는거란걸 새삼 느낀다. 디테일이 엄청나네)

가장 유명한 오역은 〈이사야서〉에서 젊은 여성을 가리키는 헤브루어(almah)를 처녀라는 뜻의 그리스어(parthenos)로 번역한 것이다. 번역자가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실수(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알고 싶다면 영어의 ‘maid’와 ‘maiden’을 생각해보라) 때문에
예수의 어머니가 처녀라는 터무니없는 전설을 낳는다!
역사를 통틀어 오역의 최고봉을 두고 그것과 다툴 만한 유일한 경쟁자도 처녀와 관련이 있다.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 밀리의 서재

 

동정녀 마리아가 오역으로 빚어낸 전설이었다니… 너무 충격적이다. 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삶에서 보여지는 기적, 망령의 목격담, 성서의 기원, 종교를 갖고 있는 과학자, 권선징악 등에서 논증했다. 하지만 도킨스는 그 모든 논증에 힘이 없다는 것을 반증했다. 결국, 다 돌아와 하는 말? 누가 신을 만들었나?

4. 신이 없는 것이 거의 확실한 이유

페미니즘은 우리에게 각성의 힘을 보여주었고, 나는 자연선택을 옹호하기 위해 그 기법을 빌리고 싶다. 자연선택은 생명 전체를 설명할 뿐 아니라, 과학이 그 어떤 계획의 인도도 받지 않은 채 단순한 것에서 출발하여 고도로 조직화된 복잡한 것이 출현하는 과정을 설명할 힘을 지니고 있음을 우리에게 일깨우는 역할도 한다. 자연선택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나면 대담하게 다른 분야들로 진출하고 싶은 의욕이 생긴다. 그것은 다른 분야들에도 다윈 이전 시대의 생물학을 현혹시켰던 잘못된 대안들이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 밀리의 서재

 

자연스럽게 ‘남성’위주로 자리잡은 이 세계를 바로잡기 위해 페미니즘이 생겨나 여성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단순 성별에서부터 차별이 있었고, 태초의 XX,XY 유전자로 나누기 전부터 인간은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자연적 진화를 한 것임을 ‘페미니즘’의 힘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맥락과 지난 번에 읽은 <사람, 장소, 환대>와 비슷하다. 아직 인간은 서로를 이해하려면 한참 멀었다.

자연선택이 어떻게 비개연성의 해답이 된다는 것일까? 우연과 설계는 둘 다 출발점에서부터 실패했는데 말이다. 답은 자연선택이 누적적인 과정이며, 그 과정이 비개연성이라는 문제를 작은 조각들로 나눈다는 사실이다. 각 조각은 약간 비개연적이긴 해도 심한 정도는 아니다. 이 약간 비개연적인 사건들이 연속해서 쌓이면 그 최종산물들은 아주 비개연적 즉, 우연이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비개연적이 된다. 창조론자들이 지겨울 정도로 재활용하는 논증의 대상이 되는 것들이 바로 이 최종산물들이다. 창조론자는 요점을 완전히 놓치고 있다. 그는(여기서는 ‘그’라는 대명사가 여성을 배제한다는 점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통계상 비개연적인 것의 출현을 단번에 이루어진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누적의 힘을 이해하지 못한다.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 밀리의 서재

도킨스는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이라는 이론을 통해 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생명이 신의 창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든 생명체의 복잡한 조직 기관들이 쓰임에 완벽한 것은 분명 신의 창조물이기 때문이라 말한다. 하지만 다윈은 수없이 많은 진화를 거쳐 형성된 조직들이기 때문에 복잡한 것이라고 말한다. 즉, 수많은 변형과 진화 없이 완전하고 복잡한 조직은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유신론자들은 진화가 아닌 생명의 기원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그 틈새에 인본 원리를 넣곤 한다. 생명의 기원이나 진화나 수많은 우연과 행운으로 이루어진 산물인데, 이는 신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리처드 도킨스의 말은 정말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이 얼마나 허무하고 괴로웠으면, 신의 설계라는 이론이 위로가 됐던 것인지 지난 역사들을 떠올리며 느끼게 됐다. 나만 하더라도 특정 신을 믿는다고 볼 순 없지만, 많은 미신과 운명을 믿고 있다. 그 존재가 부정 당하면 나의 인생 또한 부정당하는 것 같이 느껴 끝까지 밝히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 종교의 뿌리

종교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무신론자보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오래 생존과 번식을 할 수 있었을까? 종교는 플라세보 효과로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부족한 큰 이론이 필요하다고 한다. ‘신 중추(god centre)’라는 신경학적 개념도 있고, 다윈주의자들은 통치 계급이 하위 계급을 복종시키기 위한 도구라는 주장도 한다.

“다윈은 이타적으로 협력하는 구성원들을 지닌 부족이 더 널리 퍼지고 개체 수도 더 늘어난다고 보았다.”

종교적 행동은 빗나간 것 즉, 다른 상황에서는 유용한 혹은 과거에는 유용했던 심리적 성향의 불운한 부산물일지 모른다.

종교의 뿌리는 ‘아이’에게 있다고 봤다. 아이는 부모의 훈육과 교육을 통해 세상을 알게 된다. 이미 종교를 가진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믿음’이 기본값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런 대물림이 이어져 종교를 오래토록 갖고 있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몇몇은 대물림을 끊기도 하겠지. 나도 모태신앙으로 어릴 적부터 교회를 나가, 기독교에 어긋나는 이론인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왠지 모를 적대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교회 나가는 것을 잠깐 멈추고 많은 세상을 돌아보며 어릴 적 나의 세계가 얼마나 작았는지, 주입식 교육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지닌 종교는 내가 마음 먹지 않는 한 바꾸기 쉽지 않다.

종교 신앙이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위험한 세계에서 사랑과 보호를 받는다는 따스하고 편아한 느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상실, 어려운 시기에 기도에 응답하느 높은 곳에 있는 자의 도움 등이 그렇다. 마찬가지로 실제 인물(대개 이성)에 대한 낭만적인 사랑은 똑같이 강렬하면서도 긍정적인 강화를 보여준다.

종교의 시작은 다양한 이유로 설명해준다. 딱 3가지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일단 영유아시절부터 자연스레 자리잡은 종교 교육,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은 감정, 그리고 밈에 빗대어 설명한다. 이러한 이유로 리처드 도킨스가 무신론자가 대단하며,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말하는게 더 이해가 갔다. 세상이 나를 종교를 갖게 만들지만, 세상을 거부하는 자세가 쉬운게 아니다. 나는 종교가 없어서 나 또한 무신론자라고 생각했으나, 나는 자잘구리한 미신을 많이 믿고 있다ㅋㅋ 그러므로 나 또한 리처드 도킨스가 말하는 진정한 무신론자는 아닌 듯 하다…

 

6. 도덕의 뿌리: 우리는 왜 선한가?

신은 선한 존재일까? 신도들도 또한 선할까? 그들은 자신이 믿는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이 저자에게 허구헌날 악담과 저주를 퍼부었다.

현재 우리는 개체들이 서로에게 이타적이고 관대하고 ‘도덕적’이 되려는 타당한 다윈주의적 이유를 네 가지 알고 있다. 첫째, 유전적 친족 관계라는 특수한 경우가 있다. 둘째, 호혜성이 있다. 받은 호의에 보답을 하고, 보답을 ‘예견’하면서 호의를 베푸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 셋째, 관대하고 친절하다는 평판을 얻음으로써 누리게 되는 다윈주의적 혜택이다. 넷째, 자하비가 옳다면 과시적 관대함은 속일 수 없는 진정한 광고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하다는 것을 전작 <이기적 유전자>에 비친 이론을 토대로 설명하고 있다. 이기적인 유전자는 자신의 유전자를 계속 살아남을 수 있도록 세대에 거쳐 보존하는 것인데, 이런 과정에 친족 이타주의와 호혜적 이타주의(공생)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류는 2가지가 더 추가된다. 이러한 이타성을 드러낼 때, 따라오는 친절하고 관대하다는 평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선하게 행동한다. 그리고 과시적인 우월감을 드러내기 위해 선하게 행동한다. 추가로, 인간은 성적 충동, 굶주림 충동, 이방인 혐오 충동 등과 함께 이타적 충동도 프로그래밍되어있다.

“당신이 선하고자 애쓰는 이유가 오로지 신의 인정과 보답을 얻거나 신의 불만과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말인가요? 그것은 당신의 모든 움직임, 심지어 온갖 속된 생각까지 감시하는 하늘의 거대한 감시 카메라를 돌아보면서 혹은 당신의 머리에 든 아주 작은 도청 장치에 대고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는 것이지 도덕이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오로지 처벌이 겁나서 그리고 보상을 바라기 때문에 사람들이 선한 것이라면 우리는 정말로 딱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선하기 위해 신이 필요할까? 반대로, 신이 없다면 나에게 벌을 주는 존재가 없기에 선하게 굴지 않아도 될까? 정말 대형종교가 얼마나 사회와 정치에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반적으로 종교에서 말하는 선을 기준으로 법을 만들었다. 우리는 이미 선한 사람들인데, 그 선한 프로그래밍을 종교가 옳다고 증명하는데 쓰고 있는 것이다. 하… 생각이 많아진다.

7. '선한'책과 변화하는 시대정신

‘선’을 뜻했던 구약성서는 현대에서 다시 보면, 신의 이름 하에 맘놓고 저지르는 범죄 집단 소굴이었다. 당시엔 그것이 진리였고, 선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렇게 변할 수 있는 가치라면, 전지전능한 신이 맞긴 한 것일까?

저자가 누구든, 그 복음서는 유다의 관점에서 쓰였고 유다가 예수를 배반한 것은 오로지 예수가 그 역할을 맡으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부 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리게 함으로써 인류가 대속할 수 있게 하려는 계획의 일부였다

신약성서에서도 시대적 영웅의 희생을 앞세워 집단 조종하려고 했다. 진짜 예수의 마음은 예수만 알겠지.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과는 무관하다는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 신을 안 믿는 너희들이 우리 땅을 가질 자격이 없어.” 21세기 논리와 이성이 난무하는 이 세대에 걸맞지 않는 전쟁이다.

그래서, 히틀러와 스탈린은 무신론자였기 때문에 악했을까? 스탈린은 무신론자였고, 히틀러는 무신론자라고 입증할만한 확실한 증거는 없다. 아무리 그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못된 행동을 했다할지라도 유신론자들을 향한 공격이 아니었고, 무신론자를 향한 옹호 또한 없었다. 고로, 저 명제는 성립되지 않는다.

8. 내가 종교에 적대적인 이유

결투하는 듯한 논쟁을 싫어함에도, 어쩐지 내가 종교에 호전적이라는 평판이 붙은 듯하다. 신이 없다는 데 동의하고, 우리가 도덕적이 되기 위해 종교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데 동의하고, 비종교적인 방식으로 종교와 도덕의 뿌리를 설명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하는 동료들도 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돌아본다. 왜 그렇게 적대적이지? 종교에 정말로 잘못된 것이 있나? 우리가 적극적으로 싸워야 할 정도로 종교가 정말 해를 끼치는가? 황소자리와 전갈자리, 수정 에너지, 레이선을 믿는 사람들은 그냥 그대로 살라고 놔두면 안 되나? 그저 다 무해한 헛소리에 불과하지 않나?
나는 나 자신이나 다른 무신론자들이 이따금 종교를 향해 적의를 드러낼 때 오로지 말을 무기로 할 뿐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리처드 도킨스가 근본주의 종교에 대해 적대적인 이유는 과학적 탐구심을 적극적으로 꺾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종교에 의한 개인의 자유를 침해를 당연시 여기는 태도도 이유 중 하나이다. 동성애 혐오, 중절 수술에 대한 개입, 종교가 낳은 광기 등에 환멸을 느끼는 듯하다.

9. 종교로부터의 도피 

5장 종교의 뿌리에서 알 수 있다시피 아이들은 부모의 종교를 자연스레 따르게 된다. 하지만 아이가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종교를 강요하는 것은 학대가 될 수 있다. 결국 믿음은 아이가 직접 결정해야 한다.

10. 신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

 

나는 사람들을 믿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신을 믿지요.

상상의 친구든, 신으로 인해 영감과 위로를 받든 신이 없으면 또 없는대로 우리는 그 자리를 채워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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