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09] 만들어진 신 - 리처드 도킨스 | 5장 종교의 뿌리

2026. 2. 10. 11:58그냥, 독서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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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종교의 뿌리

종교 다윈주의를 비켜가다

종교적 행동은 이성애와 똑같은 방식으로 인간의 보편적인 행동이라고 부를 수 있다. 물론 개인적인 예외 사례들이 있지만, 예외적인 개인 모두 그들이 결별한 일반적인 규칙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 한 종의 보편적인 특징은 다윈주의의 설명을 요구한다.

성적 행동의 다윈주의적 이점을 설명하는 데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그것은 아기를 만드는 행동이며, 설령 피임이나 동성애처럼 거기에 어긋난 듯이 보이는 사례들이 있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렇다면 종교적 행동은 어떨까? 왜 사람들은 벽이나 성전을 향해 재빨리 한쪽이나 양쪽 무릎을 꿇고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며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삶을 소모하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삶이 끝장날 수도 있는 희생이 큰 행위들에 몰입하는 것일까?

"만들어진 신"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D160303320

 

저자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느껴지는 성적 행동까지는 이해를 하겠는데, 종교적 행동에 대해 받아들이고 삶을 소모할 수 있는지에 대해 파헤쳐 보기로 했다. 사실 이건 '밈, 문화' 때문인 것이다. 

종교의 직접적인 이점들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이렇게 말했다. “신자가 회의주의자보다 더 행복하다는 말은 술 취한 사람이 멀쩡한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는 말과 별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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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거의 뼈때리는 말 아닌가?

사실 나는 신이 있다고 가끔씩은 믿고 싶은 사람이었다. 

왜냐면 어느정도 위안을 받을 수 있고, 남탓을 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필요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신자가 회의주의자보다 더 행복하다는 말은 술 취한 사람이 멀쩡한 사람보다 더 행복핟가는 말과 별다를 바 없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너무 팩폭아닌가?

 

다윈주의자는 “종교는 통치 계급이 하위 계급을 복종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다” 같은 정치적 설명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미국의 흑인 노예들이 내세의 약속에서 위안을 얻었고, 그것이 현세에서 느끼는 그들의 불만을 경감함으로써 노예 주인들에게 혜택을 준 것은 분명하다. 종교가 냉소적인 사제나 통치자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것인가 하는 질문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역사가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 질문은 다윈주의의 질문이 아니다. 다윈주의자는 사람들이 왜 종교의 매력에 쉽게 넘어가는지, 그럼으로써 왜 사제와 정치가와 왕에게 쉽게 이용당하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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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믿으면 인간은 그 안에서 보호를 받고, 세상을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신도를 모은다. 

하지만 결국, 피지배 세력을 하나의 집단의 결속을 위해 모으기 위한 수단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근데 어떻게 지배 세력들의 꼬임에 어떻게 잘 넘어가고, 종교를 위해 헌신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집단 선택

다윈은 이타적으로 협력하는 구성원들을 지닌 부족이 더 널리 퍼지고 개체 수도 더 늘어난다고 보았다. 다윈의 모형은 영국에서 회색 다람쥐가 붉은 다람쥐를 몰아내고 늘어난 사례와 더 유사하다. 즉 진정한 집단 선택이 아니라 생태적 대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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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부족들은 서로 하나의 목표를 갖고 다른 부족과 투쟁하려 한다. 

하지만 그 목표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몇몇의 구성원들이 배신을 때린다? 

그럼 그 부족은 쪽수에 밀리니 다른 부족에게 처참하게 패배를 당할 수밖에 없다. 

 

하나의 부족이 서로 빠르게 결속할 수 있는 방법은 무언가를 향한 믿음이다.

종교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신의 존재를 통해 승리, 영생, 풍요, 번영이라는 목표를 갖고 똘똘 뭉치게 만들 수 있는 매개체이다. 

이런 매개체는 이타적인 마음으로 나의 소속을 위한 희생을 불사지르게 되며, 그 집단이 승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집단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 

어떻게? 더 똘똘 뭉친 집단의 크기가 더 클 경우엔 또 잡아먹힐 수 있는 것이다.

즉, 신앙심으로 선택받은 집단이 아닌, 생태적으로 대체 되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부산물로서의 종교

그리고 자신이 믿었든 믿지 않았든, 그 설교자는 우리 아이들이 아무리 터무니없더라도 권위자의 명령에 노예처럼 의심 없이 복종하는 병사들을 동경하고 역할 모델로 삼기를 바랐다. 나는 우리가 그들에게 감탄했다고 생각한다. 내 어릴 적 자아는 나 자신이 열차 앞으로 행군함으로써 내 의무를 다할 용기를 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었지만, 어른이 된 지금 돌이켜보면 실제로 그런 감정을 품었다고 믿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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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물로서의 종교라는 것은 생존에 유리한 다른 형질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딸려온 결과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 인간이 보이지 않는 의도적 존재를 반들어 자연현상에 대해 과잉 반응한다는 것.

- 어린이들은 어른의 말을 믿고 들으면서 자란다는 것.

- 인간은 사건을 이야기 구조로 엮는 스토리텔링을 좋아한다는 것. 

- 집단을 형성하는게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공통의 신념과 의례, 금기를 만든다는 것.

 

종교라는 것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진화시킨 인지 능력들의 부산물이며, 그 자체로 진화적 목적이나 진리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종교"라는 자체로만 보면 부산물의 진화일지라도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저 인간의 심리, 인지 발달?

다만 종교로 인해 지배 세력만 웃을 수 있고, 피지배 세력은 믿음을 강요받으며 핍박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안정적인 바운더리에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웃을 수 있지만, 어딜가나 외톨이들은 존재한다.

일부 부족 중엔 여전히 할례를 받고 고통스러워 하는 어린 소녀들이 있다.

그 나라 종교이자 문화니까 존중해야한다지만, 무신론자인 저자의 입장에서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데 왜 불쌍한 아이들이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에 대해 원통한 마음이 느껴진다. 



화물 숭배 의식

도덕을 논의할 때에도 우리는 그것을 다른 무언가의 부산물로 보는 편이 낫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선악에 대해 논하는 것 같다. 

사실 유신론자들은 선하고, 올바르고 곧은 사람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져 있다.

과연 그럴까? 

그리고 선악을 왜 종교가 정하지?

하여튼 지켜보겠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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