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05]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 22 예수 콤플렉스, 23 생략

2026. 2. 6. 13:45그냥, 독서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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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예수 콤플렉스

7. "어떤 사람이 만인으로부터 이해를 받는다면 그 사람을 위대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신의 아들의 운명을 생각하며 자문해보았다. 클로이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서 계속 나만 탓할 수 있는 것일까? 그녀가 나를 찬 것은 나에게 결함이 많다는 증거라기보다는 그녀가 근시안적이라는 표시였다. 내가 꼭 해충이고 그녀가 천사일 필요는 없었다. 그녀가 캘리포니아의 삼류 르 코르뷔지에에게 가기 위해서 나를 버렸다는 것은 그녀가 너무 천박해서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증거일 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성격을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9.  중요한 것은 예수가 착하고 완전히 의로운 존재이면서 동시에 배반당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신약성서가 비애감을 주는 것은 그것이 내 사랑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모든 덕을 갖추었지만 그럼에도 오해받는 존재의 슬픈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인물은 모든 사람에게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쳤지만, 사람들은 그 관대한 메시지를 그의 면전에 내던져버렸다. 

 

예수는 모두를 품어주려고 하는데, 그를 배신한 세력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그 세력들을 모두 가여워했고, 여전히 모두를 사랑하려고 노력했다. 처음 주인공은 자신을 버리고 간 클로이 때문에 죽을 생각까지 할 정도로 자기 혐오에 빠져 괴로워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에 가엽게 여겨주기로 했다. 주인공 자신은 대야같은 마음씨인데, 마음의 그릇이 간장종지인 클로이가 뭘 알겠나 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하지만 여전히 이 감정도 스쳐갈 뿐이고, 여전히 쓰리고 아프다.

 

23 생략

5. 물리적 세계는 내가 잊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인생은 예술보다 잔인하다. 예술에서는 보통 물리적 환경이 등장인물의 정신적 상태를 반영한다. 가르시아 로르카(García Lorca, 1898-1936, 스페인의 시인, 극작가/역주)의 연극에서 누군가가 하늘이 흐리고 어둡고 잿빛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순수한 기상학적 관찰이 아니라 심리적 상태의 상징이다. 인생은 우리에게 그런 손쉬운 표지들을 제공하지 않는다. 폭풍이 다가온다. 그러나 이것은 죽음과 붕괴의 전조와는 거리가 멀다. 비가 창문을 때려대는 동안에도 어떤 사람은 사랑과 진실, 아름다움과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따뜻하고 아름다운 여름날에도 구불구불한 길에서 자동차가 순간적으로 통제력을 잃어서 나무를 들이박고 승객들은 치명적인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

 

8. 그러다가, 불가피하게, 나는 잊기 시작했다.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몇 달 뒤, 나는 런던의 그녀가 살던 동네에 갔다가, 그녀에 대한 생각이 전처럼 괴롭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내가 그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바로 그녀가 살던 동네였음에도], 근처 레스토랑에 잡아놓은 약속을 먼저 생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클로이의 기억이 중화되면서 역사의 일부가 되어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런 망각에는 죄책감이 뒤따랐다. 이제 나를 괴롭히는 것은 그녀의 부재가 아니라, 내가 그녀의 부재에 무관심해진다는 것이었다. 망각은 내가 한때 그렇게 귀중하게 여겼던 것의 죽음, 상실, 그것에 대한 배신을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사랑은 도대체 무엇인가..? 

한 대상이 나의 우주가 되었고, 그 우주가 무너진 상실감 때문에 고통에 사무치다, 결국 무뎌져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

나는 괜히 이 대상이 사람이라 사랑의 생애가 그토록 강렬하면서도 가볍게 여겨지는 것만 같다. 

하지만 이 대상이 만약 사람이 아니라, 스포츠, 미술, 연주, 공부, 반려동물,.. 등의 다양한 영역이었다면?

우리는 그 사랑을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았을 것 같다. 

이래서 사랑이란 위대한 것일까?

어떠한 대상이든 나의 우주가 되는 그 과정을 겪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한층 더 성장해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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