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2. 2. 13:37ㆍ그냥, 독서로그

17장 수축
6. 어느 날 거리에서 불행한 여자 옆을 지나다가 클로이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내가 저 여자처럼 얼굴에 커다란 점이 있었어도 나를 사랑했을 것 같아?" 그 질문에는 "그렇다"는 대답에 대한 갈망이 숨어 있다. 몸이라는 세속적인 표면,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비참하게도 어떻게 바꾸어볼 수 없는 표면보다 높은 곳에 사랑을 놓아달라는 요구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재치나 재능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네가 너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눈 색깔이나 다리의 길이나 수표책의 두께 때문이 아니라 네 영혼의 깊은 곳의 너 자신 때문이다. 연인이 외적 자산을 벗어버린 나를 좋아하고, 무엇을 이루었느냐에 관계없이 우리 존재의 본질을 평가해주고, 흔히 부모와 자식 사이에 존재한다고 말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되풀이해주기를 바라는 갈망이다. 진정한 자아는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다. 그 외에 우리의 이마에 점이 생긴다든가, 나이 때문에 몸이 시든다든가, 불황때문에 파산을 한다는가 하는 식으로 우리의 표면에 불과한 것에 손상을 주는 사고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면제해주어야 한다. 설사 우리가 아름답고 부유하다고 해도, 이런 것들 때문에 사랑받고 싶어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서 그것이 사라지면 사랑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이 내 얼굴보다는 내 머리를 칭찬해주기 바란다. 그러나 꼭 얼굴을 칭찬해야겠다면, [정적이고 피부조직에 기초에 둔] 코보다는 [운동신경과 근육이 통제하는] 미소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해주기 바란다. 내 소망은 내가 모든 것을 잃고 "나"만 남았다고 해도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다. 이 신비한 "나"는 가장 약한, 가장 상처받기 쉬운 지점에 자리잡은 자아로 간주된다. 내가 너한테 약해 보여도 될 만큼 나를 사랑하니? 모두가 힘을 사랑한다. 하지만 너는 내 약한 것 때문에 나를 사랑하니? 이것이 진짜 시험이다. 너는 내가 잃어버릴 수도 있는 모든 것을 벗어버린 나를 사랑하는가? 내가 영원히 가지고 있을 것들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가?
"내가 저 여자처럼 얼굴에 커다란 점이 있었어도 나를 사랑했을 것 같아?"라는 질문은 기시감이 든다...ㅋㅋㅋ 나도 꽤 최근쯤 이런 질문을 남편과 서로 주고 받았던 것 같다. 당사자들은 우리가 일컫는 단점이 그들 스스로에겐 단점이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른 이의 흠을 찾아, 우리의 사랑놀이로 바꾸곤 한다. "만약 내가 ~~한다해도 날 사랑할거야?" 이 말에는 알랭 드 보통이 위에서 이미 말했듯이, 나의 직업, 외모, 성격, 재산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내 영혼 자체를 사랑해줄거야? 라는 말을 의미한다. 근데 솔직히 말해서 나는 상대를 그 영혼 자체로 사랑할 수 있을까? 아마 이건 두 사람 사이의 축적된 시간과 의리가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주인공은 클로이와 직장 동료 윌 사이의 대화에서 불안감을 느꼈다. 윌은 주인공보다 커미션을 더 받는 능력있는 건축가다. 윌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클로이는 윌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내가 윌만큼 능력있지 않아도 나를 계속 사랑해줄거야....? 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윌과 클로이가 둘이 저녁식사를 하러가자 주인공은 둘이 뭔 일이 있지 않았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한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길 바라길 갈망한다.
18장 낭만적 테러리즘
15. 삐친 사람은 복잡한 존재로서, 아주 깊은 양면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도움과 관심을 달라고 울지만, 막상 그것을 주면 거부해버린다. 말없이 이해받기를 원한다. 클로이는 자기를 용서해줄 수 있겠느냐고, 말다툼을 미해결로 놓아둔 채 지내기는 싫다고, 즐겁게 1주년을 기념하며 저녁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 대한 나의 분노[열쇠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분노]를 전부 다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비합리적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말하는 것이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그것은 내 진짜 불만을 말했을 때 생길 위험 때문이었다. 클로이가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내 상처는 표현하기가 무척 힘든 것이었다. 열쇠하고는 관계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 그 문제를 꺼내면 바보처럼 보일 것 같았다. 결국 나의 분노는 지하로 밀어넣어야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의미를 상징화하는 방법을 택하게 되었다. 그 상징이 해독되는 것을 반은 기대하고 반은 두려워하면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70만 부 기념 리커버)"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8986836837
클로이가 약간 정이 떨어진 것 같다. 솔직히 이건 너무 주인공의 입장만 듣는거지만, 주인공의 입장에서 들어만 봐도 클로이가 얼마나 이 관계에 권태로움을 느낄지 알 것만 같다. 주인공은 사랑에는 솔직해야한다는 것을 전제로 클로이에게 자신의 사랑을 강요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이 클로이에게 받는 사랑에 비해, 자신이 주는 사랑에 심히 취해 있는 편이다. 클로이에게서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원해 낭만적 테러리즘인 삐침을 택했다. 이런 것도 참 많이 해봤지..ㅋㅋㅋ 쉽사리 삐침이 풀리지가 않았는데, 그 이유가 내가 너를 사랑하는 만큼 그 사랑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느껴서였다. 그걸 삐치면서 해소시키려고 하는거지.
이 테러는 성공으로 끝나겠지만, 끝은 공허하다는 말이 너무 공감이 된다. 내가 사랑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면 삐칠 일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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