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1.31]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 15 마음의 동요, 16 행복에 대한 두려움

2026. 2. 1. 13:23그냥, 독서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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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 마음의 동요 

6. 나는 앨리스가 말을 하고, 꺼진 촛불을 켜고, 접시를 들고 부엌으로 달려가고, 얼굴에 흘러내린 금발 한 가닥을 손으로 빗어넘기는 것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낭만적인 노스탤지어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나의 연인이 될 수도 있었지만 운이 닿지 않아 우리가 제대로 알 기회도 얻지 못했던 사람과 마주치면 우리는 낭만적인 노스탤지어에 젖는다. 다른 사랑의 이야기의 가능성과 마주치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삶은 가능한 수많은 삶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쩌면 우리가 슬픔에 빠지는 것은 그 삶들을 다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택을 할 필요가 없는 시간, 모든 선택[아무리 멋진 선택이라고 해도]에 따르는 불가피한 상실로 인한 아쉬움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갈망이 생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70만 부 기념 리커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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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안정적인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늘 설렘을 갈망한다. 누군가의 갓 시작한 연애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대리 설렘을 느끼기도 한다. 어떤 이는 결혼이 두려운 이유 중 하나가 더 나은 선택이 있을 때 후회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혹은 결혼 후에 이미 느끼고 있을 지도 모르고. 수많은 기회들이 우리 인생에서 지나갈텐데 그게 최고의 선택이라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굴 가지든지 내가 못 가진 인연에 대한 아쉬움이 당연히 남을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고 있는 대상에게 설렘을 매순간 느끼지 않는다. 매일 설레면 아픈거라는 말이 있지 않나?ㅋㅋ 나는 사랑을 해보니, 정말 정이 팍 떨어지는 순간도 있고, 갑자기 불타오르듯 미치게 강렬한 순간도 있다. 어떤 때는 그저 잔잔한 순간들도 있다. 내가 갖지 못할 인연에 대해 아쉬워하는건 사실 스쳐가는 순간일 뿐이다. 사실 이 안정적인 사랑 자체에 매료되어 있을 뿐이고,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16장 행복에 대한 두려움

15. 통제할 수 있는 일들을 통하여 얻은 행복, 이성적으로 노력해서 어떤 일들을 성취한 뒤에 찾아오는 행복은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내가 클로이와 함께 얻은 행복은 깊은 철학적 숙고 뒤에 나온 것도 아니고 개인적 성취의 결과도 아니었다. 단지 신의 기적적 개입에 의하여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귀중한 사람을 찾아냈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 그런 행복은 위험했다. 자족적인 지속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몇 달 동안 꾸준히 연구한 끝에 원자생물학계를 뒤흔들 과학 공식을 발견했다면, 나는 그 발견에 뒤따르는 행복을 받아들이는 데에 전혀 가책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클로이가 대표하는 행복을 받아들이는 어려움은 거기에 이르는 인과 과정이 없다는 것, 따라서 내 삶에서 그 행복을 빚어낸 요소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에서 온다. 클로이와 나의 관계는 마치 신들이 만들어놓은 것처럼 보이며, 따라서 신의 보복에 대한 원시적인 두려움이 따르는 것이다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70만 부 기념 리커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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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건, 신의 기적적 개입에 의해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귀중한 사람을 찾아냈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니... 너무 멋진 말이 아닌가? 왜 사랑의 끝은 결혼이어야 하는가? 왜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서야 사랑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 사랑의 끝은 무엇일까? 이 커플의 끝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너무 궁금하다. 진정한 사랑은 계약서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유럽에는 파트너 비자라는 제도가 자리잡고 있다. 굳이 결혼하지 않고도, 파트너로서 아이를 갖고 부양하며 같은 집에서 살아갈 수 있는 제도다. 이는 외국인 배우자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내가 만약 사랑한 사람이 유럽인이었다면, 나는 파트너비자를 선택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내 현재 위치에 따라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스스로 그 나라에서 자립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언제든지 파트너 비자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1인분의 한계를 느낀다면 결혼이 내 생존에 더 유리한 조건으로 남지 않았을까 싶다. 

 

참, 사랑이라는 단어가 야속할 때가 있다. 정말 사랑해서 만난 사람이지만 국경 앞에서는 무력해질 때가 있다. 어느 관계든 희생이 필요하겠지만 특히 이 관계는 누군가의 비약된 희생이 요구된다. 그럼 나는 정말 사랑을 위해 이 곳을 선택한건지, 사랑은 그저 징검다리일 뿐이었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이번 16장은 사랑의 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이 상태라면 결혼을 해도 무방할 정도인데, 서로가 서로에 대해 너무 의지를 해버린 나머지 자신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는 마음도 갖고 있는게 느껴진다. 이들은 자신의 일들을 사랑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또한 사랑한다. 그리고 서로를 사랑한다. 그냥 서로 만족한 다면 이대로 이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도, 이런 생활에 권태로움을 느낄 때도 있다. 

 

사랑의 끝은 무엇일까? 내 생각엔 사랑의 끝은 없는 것 같다. 희미해져갈 수 있지만 그 사랑은 내가 죽는 날까지 계속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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