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3. 12:30ㆍ그냥, 책

한창 비문학만 줄창 읽어 내 머리는 뜨겁고 마음이 차가워질 무렵,
한 달 전에 샀던 책 한 권이 생각났다.
#하말넘많 의 서솔님이 추천해준 예소연 작가의 <사랑과 결함>!
읽는 내내 너무 공감이 가서 아플 때가 있었고,
나도 느꼈던 감정들을 고스란히 솔직하게 담아 피식피식할 때가 있었다.
그 중 <아주 사소한 시절>의 도입부 중, 핑크색 뿔테를 쓴 언니가 더블 비얀코의 정수라고 볼 수 있는 사과 셔벗을 한 입 달라고 한다.
근데 숟가락에 침이 끈적하게 늘어난 모습을 보자 확 밥맛이 떨어지는 주인공 희조.
나는 더러운 침이 묻은 그 숟가락을 신성한 물로 닦으면서 내 안 깊은 곳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느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간 살면서 줄곧 느껴온 감정의 실체를 깨달은 순간이었다.
이전에는 단지 그 감정의 실체를 몰랐을 뿐이었다.
나는 누가 들을까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씨발
"사랑과 결함"중에서
나는 이런 유머를 좋아하나보다ㅋㅋㅋㅋ
한 때 내 웃음 코드를 담당했던 정세랑 작가는 가고, 예소연 작가가 왔다ㅋㅋㅋㅋ
사랑에 목 매여 안달난 적이 있거나, 지독한 외로움이 나를 잡아먹을 것 같다거나,
스스로를 업신여기고 있다거나,
일상에서 볼 법한 보편적인 소재로, 보편적인 감정을 쓰면서, 독자가 스스로 특별함을 만들어가게 하는 작품이라 생각했다.
슬픔에 빠지고 나서야 타인의 슬픔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걸…… 후회하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또다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고 선언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급작스럽지만 한번 해보겠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모난 마음을 주워 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얼마나 슬프고 괴로운지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작가의 말대로, <사랑과 결함>은 모난 마음을 잘 주워 담았던 것 같다.
근데 이 마음들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단편들 중 여러 인물에서부터 나온 모난 마음들을 내가 흡수해서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 마음이 넓어서가 아니라,
이 사회에서 여자이고 소녀였다면 겪을 법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철봉하자 우리
나를 돌보려면 나를 돌아보아야 하는데, 나는 나를 돌아보는 데 미숙했다.
일은 졸렬하게 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할 때는 손쓸 수 없을 만큼 좋아했다.
사랑에 있어서는 늘 나를 함부로 대하고 선을 넘어버렸다.
"사랑과 결함"중에서
오래 전 관계 중독에 빠졌던 때가 있었다.
특별한 감정이 들지 않아도 나의 빈 자리에 우겨넣어서 내 짝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내가 남미새라는걸 인정하지 않으면서, 다른 남미새들을 바라보면 난 저 정도는 아니라면서 자기 위로를 했다.
맹지와 석주는 서로 닮아서 안아주고 싶었고, 너무 닮아서 부정하고 싶었다.
<철봉하자 우리>를 첫 시작으로 피식 웃으면서 가볍게 시작했는데, 아프게 끝이 났다.
지금이야 과거를 회상하며 말할 수 있는거지만, 나는 나를 왜 함부로 대했을까...?
수 년 전, 갈피를 못 잡고 외로웠던 나를 꼬옥 안아주고 싶었다.
아주 사소한 시절 & 우리는 계절마다 & 그 얼굴을 마주하고
왜 사람들은 자꾸 자기가 사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드는 걸까.
마치 내가 잘못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위의 3편은 이어지는 이야기다.
희조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에게도 소녀였던 시절을 떠올렸다.
미디어에서 나오는 소녀에 대한 이미지는 별 시덥지도 않은 일에 꺄르르 거리고, 귀여운 일탈에 희열을 느끼는 정도였겠지만..
사실 진짜 소녀들의 삶은 치열하다.
거기에 가난과 부모의 방치까지 곁들인다면, 거기서부터 급이 나뉜다.
희조의 입장에서 글을 읽는데, 나는 너무 어른이었다.
아이를 보듬어 주고 싶고, 바른 길로 가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니...;;
위에 인용문을 읽자마자 갑자기 머리를 맞은 것만 같았다.
"왜 사람들은 자꾸 자기가 사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드는 걸까. 마치 내가 잘못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러게... 내가 뭔데 희조를 개조하려고 했을까....
스스로 외부인이라고 생각했던 희조, 그치만 사실 자신은 사건의 내부인이었다는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
희조 자신은 잘못한게 없었는데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한다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미정의 아픈 가정사를 순수악으로 물어봤다던지,
가장 만만한 상대를 골라 미정의 아버지의 죽음을 묻지도 않았는데 알려준다던지,
마음이 약한 영성이를 업신여겨 죽음까지 내몰았던 일 등등 조악했던 나날이 많았다.
근데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게 된다면 아무리 시작할 수 있다할지라도
청소년기로 절.대. 돌아가지 않고 싶다.
지금이야 외로움과 고독에 익숙한 어른이 되었지만,
'친구'가 내 세계이자, '약육강식'인 계급사회에서 버텼던 그 치열했던 나날들이 너무 기가 빠진다ㅋㅋㅋㅋ
사랑과 결함
"정신병은 모계유전이라던데."
(...)
그날 나도 그럭저럭 수가 한 말을 넘겨냈다. 하지만 그 말이 두고두고 나를 괴롭혔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수는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고, 수는 나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외부인처럼 말해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모계유전’이라는 말이 나에게 주는 비관적 함의는 대단했다. 내가 정말 정신적으로 큰 문제를 겪게 되었는데 그 원인이 모계유전이라고 말한다면 내가 겪어온 모든 고통이 엄마의 유전자적 결함으로 치환되고 고모의 인생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조울증은 할머니의 유전자적 결함으로 치환되는 거겠지.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고모나 엄마가 그저 나에게 끔찍한 사랑을 흠뻑 물려주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아직도 그 사랑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 사랑과 결함이 나를 어떻게 구성했는지도. 나는 실제로 고등학교 때 정신병이 유전되었을까봐 몹시 두려워했으며 내가 이상한 상태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 친구들의 상태에 대해 끊임없이 물었다. 그러면서도 정신과는 절대 가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고모의 영향으로 향정신성 약물에 대한 크나큰 불신을 안고 있었으니까
순정은 주인공 성혜의 고모다. 고모는 아버지 상남보다 15살 많은 누나지만, 부모님을 일찍이 여의었기 때문에 남동생의 뒷바라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상남이 자리를 잡아 경제력이 생기고, 가정이 생겼다. 하지만 이미 순정은 혼인 적령기가 지나도 한참 지났다. 하지만 어느 날 애 딸린 상훈과 결혼을 하게 됐는데, 일 년 만에 순정은 소박맞고 쫓겨났다. 그리고 남동생의 집에서 살게 되었고, 방 두 칸 중 한 칸은 주인공과 고모의 방이었다. 순정은 소박 맞은 이후 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그리고 성혜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고, 성혜의 엄마인 신애를 못살게 굴었다. 그리고 순정은 죽기 전에 이천 만원이란 거금을 현금으로 받아둔게 있었는데, 이걸 고스란히 상훈의 자식에게 남기기로 했다.
나는 <사랑과 결함>이 참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작품이 될 것만 같다.
사랑이라는 것을 무어라고 딱 정의할 수 있을까?
순정이 참 사랑하고 싶었고, 사랑받고 싶었다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
사랑을 쏟아부으며 키워냈던 남동생 상남, 사랑을 쏟아부으면 또 키워낸 조카 성혜가 모두 사랑한 사람은 신애였다.
신애에게 어떻게 질투가 나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하지만, 결코 소유할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었고, 충분히 사랑을 돌려받지도 못했다.
순정이 신애를 괴롭혔어도, 신애 말고 누가 순정을 욕할 수 있을까?
그 시대의 남자들이라면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었을 것이고, 결혼이란 제도의 주체가 되니 선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시대의 여자들이 일을 그만두고, 결혼 적령기를 놓치면 그냥 사회에서 소외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표제작이라서 그런가? 더 맘이 가는 작품이었다.
팜 & 그 개와 혁명
이 두 단편은 서로 다른 주제지만, 대학 운동을 했던 아버지를 다룬 이야기이므로 그냥 한 세트로 묶었다.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작가의 유머코드가 참 맘에 든다ㅋㅋㅋㅋ
이 작품들에 나오는 아버지의 존재는 참 이상하다.
딸을 사랑하는 것 같지만, 조금은 무심한 것 같기도 하다.
애틋한 마음이 엄마보다는 덜 한 것 같지만, 다른 마음으로 딸을 아끼고 있다.
<팜>을 읽다보면 느긋하던 아버지가 비혼을 선언하는 딸에게 버럭 화를 내곤 한다.
<그 개와 혁명>에선 아버지는 페미니즘 커뮤니티의 대표 이름인 메갈에 대해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진보적인 제도를 꿈꾸고, 모두가 공평한 제도 아래 복지를 누리기 바라는 마음으로 대학 운동을 했던 젊은 취지와는 반대로, 나이가 들면서 어느새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고 과거에 고착화된 아버지들을 볼 수 있다.
어쩌면 한 사람의 역사를 알면 그 사람을 쉬이 미워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 <그 개와 혁명> 중
사람이란게, 제도 아래에서 보는 것과 지붕 아래에서 보는 게 참 다르다.
제도 아래에서 보면 그냥 꼰대 아저씨에 불과한데, 지붕 아래에서 보면 그냥 그 사람의 삶 자체로 보인다.
복잡하다... <그 개와 혁명>에서 수민이가 아무 이유없이 태수(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도 나의 아버지를 그저 사랑한다.
아버지가 보낸 수많은 세월이 담긴 그 역사 자체 모두 사랑한다.
분재
그렇게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 마음대로 살게 좀 내버려두었으면. 성실하게 납세하고 애들도 기르고 시집도 보냈으니까. 그래도 누가 그런 말을 해주면 좋을 텐데. 열심히 살았구나, 그런 말. 그러다보니 남편이 그리워졌다.
코로나가 한창이었을 때가 배경으로 할머니 차연은 마지막 접종을 맞고 집에서 홀로 생을 마감한다.
할머니의 빈 집을 정리하러온 손녀 윤재의 시점과 죽기 직전 할머니 차연의 시점을 교차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유튜브 쇼츠를 정처없이 내리다 우연히 발견한 댓글이 있었다.
이동진 작가가 한 말 중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밤은 책이다' 중에서)"을 누군가 인용했다.
차연이 회상한 과거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저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후회되는 일도, 슬펐던 일도, 기뻤던 일도 아주 다양하게 있었을 것이다.
차연은 홀로 저층 아파트의 베란다에 쓰러져 발견되었지만, 차연의 인생은 결코 고독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누가 차연의 인생을 동정하고 연민할 수 있을까?
(이런 의미로 쓴 책은 아닐테지만)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 떠오른다. 주인공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왜 슬퍼하지 않느냐고 사람들이 지룰했던거ㅋㅋㅋㅋ 근데 주인공은 왜 어머니가 슬프게 생을 마감했을거라 생각하냐고 도리어 되물어봤다.
아 우리 외할머니 보고싶네. 할머니한테 말씀드리고 싶다. 할머니 참 열심히 사셨고, 할머니가 있어서 참 내 어린 시절이 행복했다고.
도블
침략을 대비하기 위해 갈린 수많은 삶을 떠올려보았다. 무언가를 대비하기 위해 삶을 갈아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잔인한 일이었다. 혹시 내가 삶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하는 일들이, 사실은 정말 내 삶을 망가뜨리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무서워졌다.
3명의 여인들은 어느 한 커뮤니티에서 창업 아이템을 서로 공유하기 위해 모였다. 생산적인 결과물이 나오기 보단 헛물만 켤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런대로 그들은 친하게 지냈다. 진경은 사랑에 진심이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애인에게 열성을 다해 바쳤다. 그것을 아니꼽게 여긴 카일리와 승혜 언니. "우리가 멋대로 자신의 삶을 망치게 내버려둬서는 안된다는 확신"을 가졌던 승혜 언니도 별반 다를게 없었다. 로펌에 들어간 애인이 결혼하자고 프로포즈를 하니 자신의 꿈을 접고 가정을 먼저 보살피게 되었다.
사랑이라는 것은 참 이상하다. 분명 사랑을 하는데, 결함이 발생한다. 너무나도 제목과 일맥상통하잖아?
나는 나 자신을 잃고 싶지 않은데, 사랑을 하게 되면 나 자신은 우선 순위에 밀려나게 된다.
승혜 언니와 진경은 우선 순위에 밀려나 결함으로 둘러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다.
근데 그 결함이라는 것은, 결국 타인의 눈이 아닐까?
카일리는 두 사람을 보며 자기 자신을 잃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두 사람은 자신들이 주는 사랑으로 인해 다양한 색채를 경험하고 있을지도.
결국 카일리는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대비하고 살아가는데, 그 방어들이 쌓여 무채색으로 뒤덮여지고 있는게 아닐까?
참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단편이었다.
내가 머물던 자리
마지막 단편, <내가 머물던 자리>는 주옥같은 명문장들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너무 혼자 있고 싶지만, 너무 같이 있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
왜 꼭 결혼을 해야할까? 왜 꼭 계약으로 묶여 있어야 할까? 왜 꼭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야 할까?
그 틀을 깨버린 이야기였다.
그저 너무 잘 먹어서 배가 나와버린 정선처럼 틀에서 나와 훨훨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이 작품은 내가 기억하고 싶은 명문장만 적어보려 한다.
나는 왜 이렇게 살면서 쉽게 버림받는가. 사람들은 왜 이렇게 쉽게 나를 버리는가. 내가 못돼서?
정선이가 배를 퉁퉁 두드렸을 때, 정말 그저 뱃살이 나왔을 뿐이란 걸 믿게 되었을 때, 나는 내가 은근히 정선이의 삶이 내 생각대로 나아가길 바라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누구보다 남의 불행을 소비하면서 스스로를 멸시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왜냐하면, 나는 그런 식으로 멋대로 남을 판단하고 그 사람의 최악을 상상하며 내가 사회에서 받은 온갖 모욕을 감수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불행 포르노를 즐겨 보았고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이 잘못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또 실제로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이 잘못되는 광경을 보고 싶어하진 않았다. 왜냐고? 그건 나의 마음에 해가 되는 일이니까. 그러니까 남의 불행을 소비하는 건 상대방을 멸시하는 것만큼이나 내 마음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이었다.
“제가 태어났을 때 손가락이 여섯 개였대요. 그래서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제거 수술을 받았어요. 그런데도 제 오빠는 늘 저를 육손이라고 불렀어요. 사람들은 가끔 무슨 짓을 해도 우리의 형태가 바뀌지 않는 것처럼 굴어요. 언니, 그거 알죠?”
나는 충분히 너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인데, 너는 왜 어떠한 말도 해주지 않았니. 혹시 너는 나를 오해하고 있던 게 아니니. 나는 그런 나 자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화가 치밀었고 분에 못 이겨 뭐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졌다.
“설명할수록 내가 깎이는 기분이라 그랬어.”
내 마음 같지 않은 인간 관계에서 내 마음 같지 않은 대화가 이어나갈 때가 있다.
상처받지 않으려 방어했던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될 때가 있고, 내가 내뱉은 나에 대한 이야기가 되려 상처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정선과 시연을 보며 나를 자꾸 투영시켰던 것 같다.
지난 일들을 인정한다는건 어려운 일인데, 이 단편이 나의 지난 날들을 무릎꿇게 만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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