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8. 27. 10:30ㆍ그냥, 책


레이먼드 챈들러... 이 책을 알기 전에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ㅋㅋㅋ
근데 완전 유명했던 미국 범죄추리 소설 작가였잖아..?
내가 참.. 책을 많이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나름 3년 독서 블로그 하면서 짬이 찼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모르는 작가와 책이 허다하게 많이 있다...ㅠㅠ
레이먼드 챈들러 하면, 필립 말로 시리즈가 유명한데 그 중 첫 작품의 이름이 바로 <빅 슬립>이었다.
참고로, <밀리의 서재>에 필립 말로 시리즈(출판사: 북하우스)가 모두 있다!
독서 블로그는 한 달에 책 지출이 너무 많이 드니 밀리에서 만날 수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아니, 근데.. 북하우스의 <빅 슬립>을 읽는데 너~~~~무 집중이 안되는 것이었다.
만연체로 쓰여져 있고, 뭔가 직독직해 같은 분위기? 그리고 너무 옛날 말투..?
사실 좀만 집중하면 괜찮을 정도의 번역이었는데.. 도파민에 절여진 나는 북하우스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교보문고에서 문학동네의 <빅 슬립>을 구매했다..
미리보기로 첫 장을 읽어보니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밀리의 서재를 이미 구독한 사람들이라면 북하우스의<빅 슬립>을 읽는 것도 추천한다.
번역 분위기는 아무래도 상대적인걸수도 있으니까!
필립 말로는 솔직히 비호감ㅋㅋ
사실 읽다보면 필립 말로는 꽤 위트도 있고, 능글맞기도 하고, 정의롭기도 하고, 자신의 철학도 분명한 사람같다.
그냥 말 그대로 이 작품 내에서 알파메일 그 자체로 볼 수 있다.
전직 경찰이었는데 경찰들이 뒷돈, 뒷줄 잡아서 권력 행사하는걸 눈 뜨고 못 지나가는 성격이다.
그래서 사표내고 프리랜서 탐정이 됐는데... 웰컴 투 쌔비지!
필립 말로는 사실 여기 나오는 남자들이 함부로 못하는 캐릭터다.
거의 그 동네 꽉 잡고 있는 범죄 조직의 두목인 에디 마스도 그냥 필립 말로 죽여버리면 알아서 잘 사고처리해줄텐데, 아주 끝까지 필립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어쨌든 간은 콩알만하지만 맘 먹으면 죽일 수 있는 상황에 놓인 조 브로디도 마찬가지ㅋㅋㅋㅋ
그들이 함부로 죽이지 못한 이유? 일단 멀끔한 행색, 키크고 잘생김.
그냥 거렁뱅이 같았으면 죽이고 어딘가에 유기해 버렸을텐데, 딱 봐도 알파 메일 그 자체니까 괜히 건드렸다가 귀찮은 일에 휘말리게 될까봐 멈칫한게 느껴진다.
하여튼 왜 이 알파메일인 필립 말로가 비호감이냐구?
흠.. 하드보일체 소설이라서 그런걸 수 있지만 아주 건방진 태도가 맘에 들지 않는다ㅋㅋㅋㅋ
일단 존경하는 스턴우드 장군님께는 아주 젠틀맨처럼 구는데, 자매들은 아주 멍청이, 한심한 부자로 취급한다.
(사실 그 자매들은 그런 캐릭터가 맞긴 하다.)
사실 필립 말로가 비호감인 것보다 이 소설의 작가인 레이먼드 챈들러가 이런 사상을 갖고 글을 썼다는게 비호감이다.
여자들은 멍청이, 백치미, 팜므파탈, 조신녀,.. 등 뭔가 치밀함이라던지 짜여진 계획이란게 없는 남자만 바라보는 한심한 족속처럼 표현해 뒀다.
“그 여자를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다시 봤을 때 못 알아볼 리가 없다니까요. 잘 있어요, 탐정 씨, 행운을 빌어주고. 고생만 하면서 살았거든요.”
“고생은 개뿔.” 나는 그렇게 내뱉고 길을 건너 내 차로 돌아갔다.
회색 플리머스가 출발하여 속력을 높이더니 쏜살같이 모퉁이를 돌아 선셋 플레이스 쪽으로 사라졌다. 엔진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금발의 애그니스는 그렇게 영원히 자취를 감추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가이거, 브로디, 해리 존스, 그렇게 세 남자가 목숨을 잃었건만 그 여자는 상처 하나 없이 핸드백에 내 돈 이백 달러까지 챙겨 빗속으로 유유히 떠나가버렸다. 나는 시동을 걸고 시내로 식사하러 갔다. 저녁을 든든하게 먹었다. 이제부터 빗길을 65킬로미터나 달려가야 했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빅 슬립"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8954674973
일단 애그니스가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근데 솔직히 말해서 애그니스가 공범이 될 순 있지만 결과적으로 가이거, 브로디 이 남자들은 진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라 그에 맞는 대가를 치룬 셈이다. 1920-30년대 당시 여자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어? 애그니스도 뭔가 나서고 싶을 때마다 조 브로디가 아주 그냥 개무시를 했다. 동네 뒷북이었던 애그니스는 나는 불쌍하게 생각하지만 필립 말로는 당신은 상처 하나 없이 잘도 도망간다며 조롱했다. (해리 존스는 진짜 불쌍하긴 함...ㅠㅠ)
뿐만 아니라, 알파메일인 필립 말로는 좀 묘한 기류가 흐르면 키스를 퍼붓는다. 스턴우드 가의 장녀 비비안과 에디 마스의 부인 모나 마스와 갑분 키스... 아, 근데 이건 할리우드의 유구한 역사니까 인정해줘야 하나? 사람 감정에 맥락을 따질 수는 없지만, 나는 필립 말로가 조신한 여자들, 멍청한 여자들로 분류하면서 또 키스는 마음대로 하는 모습들이 혐오스러웠다.
“그래. 아주 똑똑한 개새끼지. 감정도 없고 양심도 없어. 원하는 건 오로지 돈이니까. 돈 욕심이 하도 많아서 겨우 일당 이십오 달러에 경비만 추가로 요구하는데 주로 휘발유나 위스키를 사는 돈이오. 고작 그 돈을 받으면서 생각할 일이 있으면 혼자 고민하고, 내 미래를 통째로 위험에 내맡기고, 경찰이나 에디 마스 패거리 같은 놈들한테 미움받는 일도 불사하고, 총알세례를 받거나 주먹다짐을 당하고, 그러면서도 기껏 한다는 소리가 이런 거지. 감사합니다, 혹시 또 문제가 생기면 이 몸을 기억해주세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명함 한 장 놓고 갑니다. 나는 일당 이십오 달러 받으면서 그런 일을 다 감수하는 놈이고, 가능하다면 병들고 낙심한 노인의 핏줄 속에 얼마 안 남은 자존심이나마 조금은 지켜주고 싶었소."
"빅 슬립"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8954674973
그래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필립 말로를 미워할 수 없을 것 같긴 하다. 나름 인간미가 있거덩.
나만 비호감인걸로^^
<빅 슬립>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다 살렸다(스포 주의)
이 작품에선 크게 두 가지 사건을 다룬다.
- 카멘 스턴우드의 누드 사진 협박 사건(아서 가이거, 조 브로디, 오웬 테일러, 캐롤 런드르렌 등이 얽힘)
- 비비안 스턴우드의 세 번째 남편인 러스티 리건의 실종사건 (애디 마스, 모나 마스, 캐니노, 해리 존스 등이 얽힘)
다양한 캐릭터를 활용해 한 번에 두 가지 사건을 교차시키며 서사를 만들어 나간 점이 진짜 흥미로웠다.
아무래도 레이먼드 챈들러가 펄프 매거진에서 독자들의 흥미를 끌 만한 소재로 글을 써왔던 짬바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당시 펄프 매거진은… 굳이 비교하자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핫한 웹소설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진입 장벽이 낮아 언제든지 쉽게 볼 수 있고, 자극적인 소재 위주라 장르가 한정될 수밖에 없는 점에서 비슷하다.
어쨌든 레이먼드 챈들러는 이런 대중적인 펄프 매거진에 자극적인 단편 소설들을 집필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본격적인 ‘문학 작가’로의 시작은 바로 <빅 슬립>이었다.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개인적으로 맘에 안 드는게 두 가지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여성에 대한 인식이 불만이었고, 다른 하나는 오웬 테일러의 죽음을 밝히지 않은 것이다.
아 일단 나는 떡밥을 제공해놓고 회수하지 않으면 김이 훅 빠진다....
떡밥 회수하는 재미로 범죄소설 읽는거 아니야...?
이 작품을 영화화한 하워드 혹스 감독이 원작자 챈들러에게 전보를 보내 ‘스턴우드 집안의 운전사를 살해한 범인은 대체 누굽니까?’라고 물었다는 일화가 너무나 유명한데(‘나도 모르죠’가 저자가 보내온 답이었다), 이 책에는 이렇게 무심코 저자에게 진상을 캐묻고 싶어지는 부분이 몇 군데쯤 있다
"빅 슬립"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8954674973
진짜 너무 무책임한거 아니십니까???? 갑자기 정이 훅 떨어진다.
그래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서평을 읽고 마음이 누그러졌다.
나무위키를 뒤지고, ChatGPT로 레이먼드 챈들러를 검색해봤지만, 이상하게 하루키가 표현한 챈들러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서평 자체가 흥미로웠다. 이 서평으로 인해 왠지 무라카미 하루키가 더 호감이 되었다....
레이먼드 챈들러가 첫 단편소설을 잡지에 판 게 45세라고 한다. 늦깎이 작가로 데뷔한 셈이다. (나는 늘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만 해왔는데, 내 나이가 아직 늦지 않았다는 사실에 큰 위로를 받았다. 왠지 챈들러를 통해 ‘아직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은 것 같다.)
그가 글을 실었던 펄프 매거진은 독자의 눈길을 단번에 끌만한 자극적인 소재가 필요했고, 글을 쓰는 데도 자유로운 듯 보이지만 사실은 철저히 잡지의 틀에 맞춰야 했다. 챈들러는 그 형식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액션, 범죄, 추리를 마음껏 펼쳤다.
챈들러는 원래 석유회사 임원이었지만, 대공황 때 직장을 잃으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문장에는 비즈니스 세계의 냉정함과, 대도시의 부패와 허무가 함께 묻어난다. 그는 문학적 실험보다도 ‘독자의 눈을 붙잡는 힘’을 중요하게 여겼고, 그래서 대중 잡지에서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드보일드 장르를 문학적 수준까지 끌어올린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빅 슬립>을 비롯한 그의 작품들은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타락한 사회에서 홀로 기사도를 지키는 고독한 인간의 초상을 그렸다는 점에서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히고 있다.
(다만... 남자들만의 연대, 낭만이라 나는 공감을 못할 뿐^^)
무라카미 하루키가 필립 말로 시리즈의 시작인 <빅 슬립>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기나긴 이별』이라고 언급했다. 사실 하루키뿐만 아니라 <기나긴 이별>은 1953년에 에드거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고, 걸작으로 널리 알려져 많은 독자들의 호평을 받은 책이다. 하루키 상이 쏘아올린 작은 공 덕분에 나도 <기나긴 이별>을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워낙 권위에 약해서, 상 받은 작품이라고 하면 믿고 보는 경향이 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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