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인>, 이혁진 | 질투에 눈이 멀면 이렇게 됩니다....

2025. 6. 7. 15:41그냥,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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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YES24

 

 

<광인>은 어떤 이야기인가?

 

 나는 처음에 마흔살 넘도록 장가를 가지 않은 두 남자의 동성연애 소설인줄 알았다. 초반에 해원과 준연의 케미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해원이 결혼을 원하지 않으면서 준연과 함께 보내는 시간에 푹 빠져버렸기에 어느 정도 동성연애를 예상했다. 하지만 준연의 오랜 친구 하진의 등장으로 동성애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해원은 하진에게 첫 눈에 반해버렸다. 알고보니 준연도 오랜 시간동안 하진을 사랑하고 있었다. 친한 친구의 짝사랑하는 여자를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오랜 시간 마음을 숨겨 왔지만, 하진 또한 해원에게 마음을 열었기 때문에 둘은 그렇게 연인이 되었다. 

 

 연인이 된 하진과 해원에게는 꽃길만이 펼칠 줄 알았다. 40대가 다 되도록 진짜 결혼하고 싶을 정도의 여자를 만나지 못했던 해원에게 하진은 정말 특별했다. 결혼하고 싶었고, 하진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도 상상했다. 하지만 하진의 생각은 달랐다. 하진은 하고 싶은 일이 분명했다. 하진은 해원과의 미래보다 자신의 가고자 하는 길이 우선이었고, 해원이 이해해주길 바랐다. 해원은 그래도 하진의 뒷바라지를 해줄 정도로 굉장히 헌신적이었다. 심지어 하진은 시골에서 증류소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시에 사는 해원은 늘 장거리 연애를 감당해야 했다. 해원은 주식, 투자 이런 쪽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라 굉장히 냉철하고 계산적이고 숫자에 움직이는 사람이었지만, 하진만큼은 늘 약했다.

 

 하진은 해원을 사랑했지만 자신의 꿈을 담은 위스키를 만드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혼자 해적왕 원피스를 찍고 있는 하진에게도 딱 한 명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위에 말한 준연이었다. 준연은 뮤지션을 꿈꾸는 친구였다. 유명해지기는 커녕 늘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나마 플룻 교습소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근근히 벌어먹고 살지만 그래도 그 생활이 나쁘지 않았다. 준연은 위독하신 어머니를 끝까지 돌보지 않고 방치했는데, 준연의 엄마는 아들에게 더 이상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처방약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몸이 안 좋아져 돌아가셨다. 하진은 아무리 증류소 투자 관련 업무로 바빴어도, 해원을 자주 못 봤어도, 준연을 늘 최우선으로 챙겼다.

 

 해원은 이 두 사람 사이에 낀 이 기분을 참을 수 없었고, 자신이 포기하자니 너무 하진을 사랑했다. 질투에 눈이 먼 해원은 어떤 위험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내가 원래 미친놈인건지, 사람들이 나를 미치게 만드는건지?

 

 일단 나는 해원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읽기 때문에 해원의 입장이 정말 이해가 갔다. 사랑 때문에 자꾸 마음이 가는 일이 있다. 어느 선택으로 인해 내 손해만 가득할 것을 예상한다 해도, "사랑" 하나면 그냥 무조건 직진하게 되는 그런 마음이 있다. 그래서 나는 해원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해원의 가정환경을 떠올리며, 해원이 그냥 폭력성이 다분한 미친놈 DNA를 가졌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사람들은 위험한 상상을 많이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 입으로 뱉지 않고, 실행이 옮기지 않은 끔찍한 상상들이 너무 많을 뿐이지. 그 속엔 어떤 사이코패스가 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인간은 항상 잠재적으로 위험한 상상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모두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고 현실에서 그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많을까? 그저 상상에서 그칠 수 있었다. 해원을 움직이게 만들었던 것은 아버지의 조언이 트리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일단 해원이 딱히 호감있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과 가부장제로 인해 상처를 받았고, 그런 아버지 옆에 계속 살고 있는 어머니를 보면서 결혼이 하기 싫었다. 그런 환경이 있다는 설정은 그럴 법 했지만, 해원은 좀 나르시즘이 강한 캐릭터였다. 돈 좀 꽤나 벌고, 나름 부자집 아들래미지만 아버지 도움 하나 없이 자수성가했다고 믿고, 외모 좀 괜찮은 알파메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자신과 함께 할 자격이 있는 여자가 있을리도 만무했고, 웬만한 여자는 성에도 안 찼던 것이다.

 

 해원의 내레이션을 통해 본 하진과 준연도 또한 비호감이었다. 준연은 멋드러진 말로 철학과 사색을 하지만 결국 알맹이는 없었고, 하진은 혼자서 세상을 제패할 것처럼 영웅놀이에 취해있었던 것도 별로였다. 근데 사실 이게 해원의 입장에서 봐서 그렇지, 준연과 하진은 나름대로 자기 자신에 취해서 정말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해원이 계산하는 대로 착착 진행이 안 되는 예술가들인지라 받아들이기 어려운거지, 준연과 하진은 그저 자신들이 믿고 있는대로 세상을 받아들이며 살고 있었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시각을 가진 해원과 꿈나무를 키우고 있는 새싹같은 준연, 하진이랑 애초에 결이 안 맞는다. 애초에 다른 결을 지니고 있었던 두 사람이지만, 해원은 반대에 끌리는지 준연에게 먼저 마음이 가고, 여자 버전 준연(하진)에게 또 마음이 가는거였다. 근데 두 사람이 나만 냅두고 꽁냥꽁냥 거리는걸 지켜봐야 하고, 해원은 아직도 하진을 사랑하고.... 사람 미치는거지.

 

Keywords: #위스키

 

 위스키는 거의 이 소설의 중심이 되는 키워드라고 볼 수 있다. 하진은 위스키 증류소를 운영하는 사람이고, 준연과 해원을 연결해준 매개체 또한 위스키였다. 해원이 위스키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버지가 비싼 위스키를 모아왔기 때문이다.

 

#위스키

  • 하진: 아버지와 자신의 꿈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 너무 사랑했던 음악을 그만 두고 시작한 위스키였기에, 누구보다도 의미가 있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기 때문에 함부로 투자를 받을 수 없었고, 아버지가 주신 땅에서 선뜻 이사를 갈 수도 없었다. 모든 가족들을 잃었지만, 아버지가 물려주신 땅에서 계속 위스키 증류소를 이어나간다면 가족의 끈은 끊어지지 않을 거라 믿은 것 같았다.
  • 해원: 아버지에 대한 증오로 시작했던 위스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에게 젠틀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책과 위스키를 서재에 전시해둔게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해원은 그 위스키를 다 마셔가며 증오를 점점 키웠다. 그래서 위스키를 증오하면서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하진을 사랑하게 되면서, 아버지와의 오해(?!)를 풀고 위스키 증류소 자체를 갖고 싶다는 소유욕까지 갖게 된다.(하진의 재산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위스키를 가지면, 하진을 가질 수 있다는 광적인 집착인거지.)
  • 준연: 위스키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어릴 적부터 아주 가난했다. 하지만 예술가의 꿈을 키워오면서 취향이 고급지게 된 것뿐.... 돈이 없어 고급 위스키는 못 사마시기 때문에, 저렴한 위스키라도 꼭 챙겨먹었다. 나는 준연이 저렴한 위스키라도 자주 찾는 것 자체가 자신을 포장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준연은 항상 있어보이는 말만 해왔지만, 속에는 알맹이가 없었다. 이미 남들을 간파했다는 듯이 말하지만 전혀 단단하지 않고, 내면은 약하디 약한 존재였다. 그러니까 해원이 준연을 그렇게 못 믿었지. 

 

소감을 말해보자면....

 

 나는 하진이 정말 별로였다. 약간 거울효과랄까? 하진이가 생각하는 열정 가득, 독기 가득한 그 삶을 살아가느라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것도, 본질을 꿰뚫어보듯이 말하지만 그저 남들 눈에 입만 동동 떠다니는 청산유수인 캐릭터... 너무 나다. 다른 한편으론 정말 나와 다른 점도 있었다. 진짜 나였다면 나는 분명 위스키 만드는 일보다 해원의 말을 더 믿고 따랐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하진에게 질투가 생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자신의 생각을 끝내 밀어붙이는 그 추진력이 정말 멋있었다. (가끔 해원 시점으로 읽을 때는 살짝 한심하기도 했지만....) 해원때문에 모든 것들을 다 잃게 된 하진을 보게될 때는 얼마나 하진이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쏟아왔는지 알기 때문에 더 읽기 힘들었다. 

 

 결말로 가면 갈수록 3명의 주인공들은 점차 빛을 잃어간다. 준연은 막다른 길에 다달았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일을 추진했고, 하진은 죽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살아갔다. 여기서 가장 맘에 안 드는 인물은 해원이었다. 비겁하기 그지없었다. 끝까지 이기적이었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하진에게 고백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비겁하게 도망갔다. 결국 이 책에서 최악의 상황은 죽어야 끝나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하진이 너무 안타까웠다. 다른 이들이 비겁하게 도망갔던 최악의 상황들을 모두 짊어진 채 또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해원은 자신이 하진과 그의 자식에게 충분한 경제적 보상을 했으니 할 일은 다 했다고 안심했을지도 모른다. 생각할수록 열받는다..... 미친놈

 

 이 글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두고 이야기를 많이 한다. 도대체 나는 무엇이 최악일까? 나는 뭐가 그렇게 최악일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는 무슨 상황에서도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힘을 믿고 있다. 어차피 인간은 죽는데, 사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고 싶다. 그렇기에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다시 움직이고 싶어지는 책이랄까? 

 

 하여튼 이 책을 읽고 싶은 사람들은 17장까지는 어떻게서든 꾹 참고 읽으시길!!!!! 나는 진짜 수도없이 이 책 그만 읽을지말지 오래토록 고민을 했다. 그냥 해원이의 답답한 모습도, 해원과 하진의 꽁냥거리는 모습도, 준연의 세상 다 산 것 같은 사색을 들어주는 일도... 나는 너무 괴로웠다. 근데 17장부터 슬슬 내가 원했던 도파민이 슬슬 돌기 시작했다. 평온했던 해원이 질투를 하기 시작한 순간ㅋㅋㅋㅋㅋㅋ 

 

 

맘에 들었던 인용구

 

 600페이지가 넘는다던 장편소설 <광인>에서 참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문구들도 있어 아래에 적어본다.

좋은 사람이란 그 한 사람만 있어도 살 만하다 생각이 드는 사람이죠. 싫은 사람이란 그냥 생각하기도 싫은, 결국엔 우리와 무관한 사람들일 뿐이고요. 제 생각에, 분명한 건 이거예요.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살 수는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 잘, 열심히 살 수는 없어요. 그게 우리가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이유고 그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싫은 사람에게도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낼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렇게 밑진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싫은 사람을 만나고 겪어 봐야 좋은 사람이 왜 좋고 어떻게 좋은지 알 수 있으니까요. 또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싫은 사람은 대가고 좋은 사람은 목표죠. 좋은 사람, 싫은 사람이란 글자 수만 같을 뿐 사실 그렇게나 다른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광인"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8937454677

 

 나는 이 말이 참 좋았다. 인생에서 행복을 찾는 과정과 비슷한 말이지 않을까? 위기가 있어야 행복이 빛이 나는 것처럼, 싫은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대가'라는 것이. 평탄한 인간관계가 되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얻을 수 있는게 인생이니까. 

 

나도 힘들 테고 지금도 이미 힘들지만, 처음으로 결혼이라는 게 해 보고 싶었다. 아이마저도 이제는 예전 같지 않았다. 하진이 원한다면 가져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예전엔 왜 그렇게 부정적인 이야기들만 솔직하고 진실하다고 여겼을까. 생각해 보면 그냥 마음이 없던 거였다. 하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 그 점에서도 마음이란 역시 자기 편향의 기계였다. 늘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성실히 작동하는. 나는 결혼이 하고 싶었다. 하진이, 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니까. 내가 보고 겪었던 끔찍한 결혼 생활을 더는 생각조차 하지 않을 만큼 하진을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아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지, 내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진 않을지는 여전히 두렵고 몰랐다. 하지만, 결혼에 대해 뭘 더 알고 잘할 자신이 생겨서 하고 싶어진 것이 아니듯 아이 역시, 그냥 아이가 보고 싶었다. 하진과 내가 만든 아이가 어떻게 생겼을지, 얼마나 작고 예쁠지. 나머지는 단지 그다음의 문제, 그 위로 쌓아 올려 갈 것들이었다. 보고 싶어서, 사랑해서 낳았으니까. 애초에 나도 하진도 그래서 시작했으니까. 하진을 온전히 믿은 것도, 사랑을 온전히 믿은 것도 아니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하진의 매력은 지금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그래도 멈추고 싶지 않았다. 뭔가를 또 시작하고 싶었다. 사랑은 그랬고 사랑만이 그럴 수 있었다. 사랑은 늘 시작을 만드니까, 사랑한다면 시작할 수밖에 없으니까. 연애도, 결혼도, 아이도, 그렇게 계속 시작하는 것이고 그게 살아 있다는 상태, 뜻인지도 몰랐다.
"광인"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8937454677

 

 사랑, 결혼, 아이,...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안 하는게 인생을 편하게 사는걸수도 있다. 사랑, 결혼, 육아를 하면 가득 채워진 기쁨만 있을거란 보장은 없다. 엄청 힘든 일들도 많을거고, 예상치 못한 크고 작은 불행들이 많이 다가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고, 소유하고 싶고, 같이 미래를 그려나가고 싶은 이 욕구는 사랑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해원은 차갑고 계산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었지만 사랑 앞에서는 불꽃같은 남자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방화까지 저질렀다는 후문이...;;;ㅋㅋㅋ 하여튼 사랑이라는 것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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