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Sin Prisa, Sin Pausa
그냥, 단편

[아주 짧은 단편] 알맹이가 없는 이야기(1) 버스 안 출근길

by 조잼 2024. 8. 2.
반응형

 

photo by jamjamzo

 

 오전 6시 50분, 버스가 4 정거장 전에 출발했다고 한다. 지금 나가면 버스를 탈 수 있다. 도보 거리와 신호등 타이밍까지 고려한 철두 철미한 예측이다. 경기 남부에 사는 나는 사당역을 향한 좌석버스를 탄다. 내가 타는 곳은 버스의 첫 정류장에서 그리 멀지 않아 버스를 타게 되면 좌석에는 2-3명 정도 앉아 있다. 사당역까지 40분 정도 걸리는데, 가는 내내 버스의 빈자리가 꽉꽉 채워진다. 제발 내 옆자리는 앉지 말길 바라면서, 가방을 살포시 올려두지만 역시나 나의 눈치싸움은 늘 완패. '나 여기 앉을건데?'라고 말하는 시선을 쏘아 받으면 냉큼 치워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 평상시 창가 자리보다 복도가 좋지만, 아무래도 출근길은 창가 자리가 좋다. 첫 정류장에 가까운 정류장 근처에 사는 사람의 특권이란, 내가 앉고 싶은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점. 그저 머리 한 쪽을 창가로 살포시 기대준다. 가끔 머리가 눌릴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쏟아지는 잠을 멈출 수 없다. 머리카락과 유리창이 만나면 한 곳에 밀착 고정이 안되니 거의 5분에 한 번씩 달콤한 잠에서 깬다. 

 드르륵 진동이 울린다. 나름 경제, 정치, ...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요약본이라도 봐야겠다는 마음에 여러 신문들을 구독했더니 정기적으로 날아온다. 한 번 읽으려다가 버스 안에서 휴대폰 보려는 순간 멀미가 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힐끔 확인만 하고 다시 눈을 감는다. 버스 안에서 책도 읽고 싶었다. 책은 개뿔, 멀미나 죽을 지경이다. 좌석버스 아저씨는 화끈하게 운전한다. 움직여야 할 때 악셀을 꾸욱 밟고, 멈춰야 할 때, 브레이크를 꾸욱 밟는다. 고양이 꾹꾹이도 그렇게 세게 밟지는 않을 것이다. 제발 부드럽게 밟아주길 바라지만 말해 뭐하나. 그냥 눈을 감는다. 

 누구냐, 진짜. 사실 누구인지 알고 싶지도 않고, 누구인지 안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왜 밀폐된 공간에서 방귀 로켓을 쏘는거냐... 참으려 했지만 새어져 나왔을런지, 소리가 안 나는 방귀라고 생각해서 그저 뿜은건지 알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방귀 냄새들을 내 코로 있는 힘껏 들이 마시는 작업일 뿐이다.  냄새는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내 몸 안에 저 똥방귀가 스며드는 것은 불쾌하지만,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이 것 뿐이다. 고통은 고통으로 잊자. 아, 근데 뭘 먹은거냐. 아무리 마셔도 마셔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내 이론이 틀린건가 의심을 하는 사이 곧이어 그 똥방귀 냄새에 익숙해진다. 

 또 다시 드르륵 진동이 울린다. 뒤집어 두었던 휴대폰을 다시 뒤집어 본다. 내 얼굴을 인식하자 인스타그램에서 친구 여러 명이 스토리를 올렸다는 알림 팝업이 뜬다. 평상시엔 무슨 스토리를 올리건 말건 관심 없다. 그 중에 내가 유난히 궁금했던 친구가 스토리를 올릴 때면, 한 번 들어가 본다. 아... 13시간 전에 올린 스토리다. 어제 저녁에 올렸나 보다. 어제는 일요일이다. 나는 침대에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딱히 피곤하지도 않고, 딱히 기운이 넘치지도 않았다. 어딘가로 놀러가고 싶은데 마땅한 장소는 생각이 나지 않았고, 나가면 돈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저 유튜브나 랜덤으로 시청하면서 하루종일 시간을 때웠다. 저녁 8시에서 9시가 지나가면, 어릴 적 개그콘서트의 엔딩 곡을 들을 때 드는 왠지 모를 슬픈 기분처럼 우울해진다. 그런 일요일을 보내고 온 월요일 아침, 친구의 화려한 저녁을 보니 나도 이번 주말은 화려해지고 싶다. 근데, 얘는 어디 간거지? 힙한데 다녀온 듯? 아.... 너무 자세하게 봤다. 멀미...

 아직 아침잠을 제대로 못 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벌써 남태령에 다가왔다. 한 정거장 뒤면 사당이다. 요즘 좌석버스는 자리가 꽉 차면 다음 버스를 타야 한다. 그래서 서 있는 사람들은 없다. 하지만 사당이 다가올 때쯤 다들 서로 먼저 내릴 준비를 하느라 어수선해진다. 앉았던 엉덩이를 한 번 고치는 사람들도 있고, 듣고 있던 이어폰을 빼서 정리하는 사람도 있고, 버스카드를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냥 가장 마지막에 내리려고 한다. 선입후출 방식을 따를 뿐이다. 먼저 들어와 있다면, 내릴 때는 늦게 내리는 여유를 부려준다. 

 그렇게 7시 45분. 예상 시간보다 5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근데 항상 예상시간을 내가 늘 5분 빨리 계산하나보다. 늘 이 때쯤 도착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알게 뭐람? 나의 출근 시간은 9시이고, 내가 커피숍을 들른 뒤에 사무실에 도착하면 8시 10분이다. 5분 빨리 계산하나, 5분 늦게 도착하나 내가 가장 일찍 출근한 사람이다. 퀘퀘했던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몸을 살짝 비틀어 작은 기지개를 켠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너무 마시고 싶지만 아직 나는 지하철을 마저 타야 한다. 예전엔 커피들고 지하철 자주 탔는데, 코로나 이후엔 커피 들고 탈 수 없게 된 것 같다. 뭐, 텀블러에 넣으면 들고 탈 수 있지만 오늘은 텀블러 놓고왔다. 쩝...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