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 5. 02:04ㆍ그냥, 독서로그

8장 발달을 가로막는 장벽
인쇄 금지
인쇄술에 대한 저항은 문맹률, 교육, 경제적 성공에 분명한 영향을 미쳤다. 1800년도에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던 오스만제국 시민은 고작 2~3퍼센트에 불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잉글랜드에서는 성인 남성 60퍼센트, 성인 여성 40퍼센트가 읽고 쓸 줄 알았다. 네덜란드와 독일의 문자해득률은 이보다 한참 높았다. 고작 20퍼센트가량의 성인만 읽고 쓸 줄 알았던 폴란드처럼, 오스만제국 땅은 교육수준이 가장 낮은 유럽 나라와 비교해서도 크게 뒤떨어져 있었다. -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애쓰모글루,제임스A.로빈슨 지음, 최완규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7fdb02e9c5f44b0
이래서 배움이 무섭다는 것일까?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에게 글을 못 읽게 만든 이유가 너무 많이 알게 되면 말을 안 듣는다는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들이 읽는 책에 이렇게 써있었던걸까? '너네들만 알고 있어. 이건 특급 비밀이야.'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처음 한글 창제되었을 때, 양반들이 기겁을 하면서 한글을 천하게 여기자는 운동이라도 벌였던건가보다.
이 얘기는 <WEIRD;위어드>라는 책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는데, 성경의 효과가 유럽 내 문맹율을 감소시킨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가만 생각해보면 기독교는 정말 머리가 좋은 방식으로 그들만의 리그를 평정했던 것 같다. 글을 읽을 줄 알게 되면 분명 사람들은 생각을 다양하게 할 수 있게 될텐데, '성경'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종교르르 더 강화시키고, 더 하나도 묶었던걸 보면 말이다. 오히려 이 마케팅은, '너 이거 한 번 읽어보면 하나님 믿게될걸?'이라는 생각을 들게 만든 것 같다.
작지만 중요한 차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에스파냐는 순식간에 금은보화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부자 of 부자가 되었다. 하지만 더 부자가 되고 싶은 욕심은 끝도 없었고, 기득권층끼리 다 해먹으려고 했다. 그러다보다 사유재산을 인정하기는 커녕, 갑자기 재산 다 놓고 나가라고 유대인들을 쫓아내질 않나, 국내/해외할 것 없이 착취적인 경제제도를 수용했다.
어쩌면 잉글랜드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다해도 척박한 땅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시작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포용적인 경제제도를 취했던 덕에,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보다는 내가 잘 살려면 열심히 일을 해야겠다는 국민의식이 자리잡았던 것 같다.
산업화에 대한 우려
혁신에 대한 반대는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났다. 첫째, 프란츠 1세는 산업 발달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산업이 발달하면 공장이 늘어나고, 공장이 늘면 가난한 노동자가 도시로 몰려들기 마련이었다. 특히 수도 빈에 노동자가 몰려드는 것을 우려했다. 그런 노동자는 절대주의 체제를 반대하는 자들을 추종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애쓰모글루,제임스A.로빈슨 지음, 최완규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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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프란츠 1세는 산업혁명에 수반된 핵심 신기술 중 하나인 철도의 건설도 반대했다. 북부 철도 건설 계획을 제시하자 이렇게 대꾸했을 정도다. “아니, 절대 안 돼. 혁명이 짐의 땅에까지 번지면 어쩌려고.” -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애쓰모글루,제임스A.로빈슨 지음, 최완규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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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제국의 프란츠 1세가 얼마나 민중봉기를 두려워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전인류의 평안과 행복을 위해서라면, 프란츠 1세가 용기가 없던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냥 혁신과 도전이라는 것이 맞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프란츠 1세는 현재 이 자리를 안전하게 보존하고, 다음 내 후세에게 잘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확고하지 않았을까? 아마 모든 지배계층들은 가진게 많으니까 이런 혁신들을 두려워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쩌면, 후세에 물려주지 않아도 되는 국민투표로 차세대 지도자를 선출해야한다는 생각이 더더욱 들었고, 계속되는 물갈이와 국민들의 꾸준한 감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란츠 1세를 한 인간으로서 바라볼 때 충분히 그 고뇌를 이해할 수 있지만, 한 국가의 책임자로서 좋은 리더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 저자들이 이 책을 쓰면서 말하고 싶은건, 좋은 리더를 보는 안목을 길러야한다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선적 금지
명·청왕조가 해외무역을 반대한 이유도 쉽사리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역시 창조적 파괴를 두려워했던 것이다. 지도층의 주된 관심사는 정치적 안정이었다. 대서양 무역 팽창기에 잉글랜드에서 그랬던 것처럼 해외무역은 상인들이 배를 불려 딴생각을 품게 하므로 정치 불안을 가져올 위험이 있다고 여겼다. 명·청왕조 지배자만 그렇게 믿은 것이 아니었다. 송왕조 지배층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송왕조는 기술혁신을 후원하고 한층 더 자유로운 상업 활동을 장려했지만,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애쓰모글루,제임스A.로빈슨 지음, 최완규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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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까 신라, 고려 때까지만 해도 여기저기 해외무역도 많이 나가서 실크로드를 배웠던 것 같다. 근데 언제부턴가 해외무역은 청나라를 통해서만 들어왔던 것 같다. 중국이 지네 나라만 해외무역 금지하면 되는데, 우리나라까지 꼽사리로 못 나가게 길을 막았던거 아니야?.. 쩝스.. 그렇다고 일본한테 얻을건 더더욱 없었으니 굳이 일본한테 가진 않았을거고.
근데 꼭 중국때문에 못 나갔던건 아니고, 당시 조선시대는 성리학 기반 국가였기 때문에 상업을 지향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해상무역을 하려고 해도 왜놈들이 항상 진을 쳤다고 한다...
프레스터 존의 절대주의
에티오피아가 오늘날 이런 형편인 이유는 잉글랜드와 달리 최근까지도 절대주의 체제가 존속했기 때문이다. 절대주의 체제는 착취적 경제제도를 불러왔고 에티오피아 인민 대다수를 가난에 찌들게 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배를 불린 것은 황제와 귀족뿐이다. 하지만 절대주의 체제가 갖는 가장 큰 시사점은 에티오피아 사회가 19세기와 20세기 초 산업화의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고, 그에 따라 오늘날 찢어질 듯한 가난을 초래했다는 사실이다. -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애쓰모글루,제임스A.로빈슨 지음, 최완규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7fdb02e9c5f44b0
아프리카대륙에서 형편이 좋은 나라가 있기는 할까? 나는 사실 부자 국가, 가난한 국가 이런 말이 너무 차갑게 느껴진다. 왜냐면 '부자'라는 말은 희소가치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가난한 국가들을 노예처럼 거느리고 있어야 가능하다. 꼭 국민의식이 뛰어나고, 좋은 자질의 리더가 있어야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책에서는 남한과 북한을 비교하면서 어떤 제도와 어떤 리더 덕분에 같은 언어와 문화를 가진 나라가 분리된 상태에서 극과 극의 발전과 퇴보를 보여주는지 예시를 들곤 한다.
나는 한국사람으로서 우리나라의 성장이 감사하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이 다 부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외받으며 아둥바둥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물론, 좋은 나라일수록 복지도 점점 괜찮아지는건 인정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세상은 피라미드 구조라고 생각한다. 내가 부자라면, 나로 인해 누군가가 가난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고. 우리 나라가 부자라면, 그로 인해 착취받는 세력이 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나는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유럽 국가처럼 문자를 만들고, 책을 만들어 배포할 이유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어떤 제도를 통해 국가를 이어나가든지, 이 특징을 이용해서 착취를 했던 대다수의 서유럽 국가들 때문에 지금의 사태가 벌어졌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들이 민주주의 제도를 통해 국가를 이뤄나갔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부분이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의 이론과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소말리아 사회의 특수성
일단 문자를 통해 문서를 만들지 않았던 이유는, 피지배층과 지배층 모두의 입장이 있었다. 피지배층은 복잡한 문서를 통해 지배층이 악용해서 더 많은 조세를 거둘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꺼려했다. 지배층은 문서로 입장을 정확하게 명시해두면, 훗날 말을 바꿀 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피차 두 세력 모두 구두계약을 선호했던 것이다.
근데 어떻게 보면, 씨족사회로 이루어진 집단에서 각자 해결하는건 구두계약이 편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신 씨족사회의 유대가 강할수록 중앙집권화가 어려워지는건 맞다. 내 부족이 다른 부족 밑으로 들어가는건 추호도 용납할 수 없을테니. 어쨌든 이런 특수성 때문에 경제적 낙후성은 점점 심해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