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18] 만들어진 신 - 리처드 도킨스 | 6장 도덕의 뿌리 : 우리는 왜 선한가?

2026. 2. 19. 11:50그냥, 독서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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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선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장차 폭력이 초래되어도 그건 너희가 자초한 것임을 기억해두라고. 내 총은 장전되어 있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는데, 왜 신이 그런 난폭한 방어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신에게 자신을 돌볼 능력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일까?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계속 명심해야 할 것은 그토록 지독하게 욕을 먹고 위협을 받는 편집장이 부드럽고 매력적인 젊은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만들어진 신"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D160303320

 

<이기적 유전자> 이후, 수많은 유신론자들이 리처드 도킨스를 향해 온갖 욕설, 저주, 협박 등이 담긴 편지를 보냈다. 근데 신을 믿는 사람들이 선하다고 착각을 하는데, 이 편지들을 잠깐이라도 읽어본다면 정말 선하긴 한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그들이 신의 보호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이렇게 과격하게 저주할 수 있는걸까? 

 

다윈주의와 도덕의 기원

일반적으로 동물들은 가까운 친족을 돌보고, 지키고, 자원을 나누고, 위험을 경고하는 즉, 이타주의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친족이 같은 유전자의 사본을 공유할 가능성이 통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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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미 언급한 부분이라 그런지 왠지 반가웠다. 사실 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어쩌면,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유전자(동・식물)들은 본능적으로 서로를 계속 보존하기 위해 서로를 보호한다. 그게 다른 관계에선 이기적으로 보일지라도. 하여튼 결론은, 우리는 꼭 종교라는 틀이 없이도 이타주의를 토대로 진화해왔다. 

현재 우리는 개체들이 서로에게 이타적이고 관대하고 ‘도덕적’이 되려는 타당한 다윈주의적 이유를 네 가지 알고 있다. 첫째, 유전적 친족 관계라는 특수한 경우가 있다. 둘째, 호혜성이 있다. 받은 호의에 보답을 하고, 보답을 ‘예견’하면서 호의를 베푸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 셋째, 관대하고 친절하다는 평판을 얻음으로써 누리게 되는 다윈주의적 혜택이다. 넷째, 자하비가 옳다면 과시적 관대함은 속일 수 없는 진정한 광고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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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능으로 성욕과 식욕 등은 이런 것들은 자연스럽게 기본값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도덕과 선을 행하는 자세도 본능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서로를 돕는 이 행위들은 유전자의 탄생 이래 계속 진화해왔던 것이다. 흠.. 오히려 이기적인 부분으로 따지자면, 종교를 만든거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서로의 더 나은 결속을 위해 '종교'라는 틀을 만들어 하나가 되는 과정? 

 

사례연구로 살펴본 도덕의 뿌리

그들은 실험 대상자들에게 가상의 행동을 제시한 후 그것이 도덕적으로 ‘의무적인’ 것인지, ‘용납되는’ 것인지, ‘금지된’ 것인지를 택하게 했다. 세 가지 궁지는 다음과 같다.  

1. 더니즈의 궁지. 90퍼센트가 화차를 우회시켜서 한 명을 희생시키는 대신 다섯 명을 구하는 것이 용납된다고 말했다.
2. 연못에 아이가 빠졌는데 주위에 달리 도와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당신이 아이를 구한다면 당신의 바지가 젖을 것이다. 97퍼센트가 아이를 구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놀랍게도 3퍼센트는 바지를 지키는 쪽을 택했다).
3. 앞서 말한 장기 이식과 관련된 궁지. 97퍼센트는 대기실에 있는 건강한 사람을 희생시켜서 그의 장기로 다섯 명을 구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금지된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하우저와 싱어의 결론은 무신론자와 종교인의 판단에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선하거나 악하기 위해서 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지닌 견해와 들어맞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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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를 통해 사람들은 무엇을 선택하는지 살펴봤다. 유신론자든 무신론자든 상관없이 대다수의 사람들은 생명의 가치를 높이 여기고, 다른 사람의 위치를 헤아릴 수 있는 사고를 갖고 있다. 나는 성경에서 별로 안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다. 아브라함이 늦둥이로 낳은 이삭을 너무 아끼고 사랑했는데, 하나님은 이삭을 재물로 바치라고 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울며 겨자먹기로 아들을 재물로 바치려고 했다. 거의 불을 지피려는 순간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 하나님은 재물을 거둬도 된다고 했고, 결국 시험을 통과했다며 흐뭇해했다. 자신에게 믿음과 복종을 강요하는 신이란 선한 것일까? 그렇게 신에게 재물을 바치기 위해 아들을 살해하는 아버지는 선한 것일까? 

 

 

신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선하려 애쓰겠는가?

모든 절대론이 종교에서 유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종교가 아닌 다른 것을 토대로 절대론적 도덕을 방어하기는 아주 어렵다. 내 생각에 유일한 경쟁자는 애국심, 특히 전시의 애국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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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없어도 우리는 사실 선할 수 있다. 이 책에선 교도소에 간 죄수들이 대부분 유신론자라고 한다. 이 사람들은 신이 있어도 이렇게 죄를 짓는다. 반대로 신이 없어도 선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말 아닌가? 사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나는 이해하는 편이다. 하지만 종교라는 것은 지도자의 권력을 강력하게 휘두르며, 피지도자가 믿음과 복종을 강요받아야 하는 이런 상황들이 싫은 것이다. 신의 이름을 앞세워, 지도자가 대신 벌을 내리기도 하고, 추방을 해 '현실의 지옥'을 보여주는 것들이 너무 악의적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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