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7. 15. 15:40ㆍ그냥, 책

우리 나라의 SF의 대가가 김보영 작가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독서의 세계에 빠진지 나름 4년차가 되었는데, 이제서야 알다니...
아직 나는 멀었군.
그리고 동시에 내가 모르는게 많다는 것은 날 설레게 만들기도 한다!!!!

김보영 작가의 책을 4권이나 샀다. <종의 기원담>, <얼마나 닮았는가>, <고래눈이 내리다>, <다섯 번째 감각>
내가 구매한 책이 이렇게 많은데 <7인의 집행관>부터 읽은 이유는... 밀리의 서재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구독 서비스를 이용할 때 아껴두고 나중에 보려고 했던 컨텐츠들을 놓치곤 했다. 그 이유는 계약이 끝날 때가 있기 때문에!
오늘은 뭔가 온 마음 다해 쓸 수 없는 후기라서 블로그에 남길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평상시 쓰는 블로그는 두서 없이 썼다 할지라도, 마음에서 뻐렁차 올라오는 생각과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이 썼다고 말할 수 있다.
근데! 지금 작성하고 있는 <7인의 집행관>은 내가 이해를 잘 못하기도 했고, 놓친 부분도 있기 때문에 후기를 쓸 때 자신이 없다.
근데! 재독할 자신이 더 없다는 게 문제다.
근데! 또 이 책을 읽고 나도 할 말이 있기 때문에 블로그를 켰다.
<7인의 집행관> 대략 요약
이 여섯 명이 여섯 개의 세계에서 여섯 번 피고의 사형을 집행하며, 사형 방식은 각 집행관의 재량으로 결정할 것이다. 피고는 각 세계에서 생과 죽음을 겪을 것이며 각 생의 관계를 알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 사형이 끝남과 동시에 죄수는 진정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이 선고는 모든 권위에 우선하는 부도국의 신성한 법에 의한 것이며 무엇도 이 선고를 되돌릴 수 없다.
주인공 흑영이 대역죄를 저질러 7번의 사형을 선고받았다. 흑영에게 원한을 품은 6인의 집행관들이 각각 설정해놓은 가상세계에서 (흑영은 기억을 잃은 채로) 그 시나리오대로 사형을 당하는 것이다. 근데 도무지... 시나리오대로 죽지 않는 흑영, 그리고 중간에 난입한 조정자. 도대체 흑영은 무슨 죄로 7번의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그 조정자는 누구인가?
흑영과 비영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
솔직히 말하자면, <7인의 집행관>이 약간 웹소설 재질인 줄 알았다. 김보영 작가가 약간 판타지 물같은 웹소설 전문 작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파국 서사를 독자 마음 간질거리게 만들었다. 부도국의 문제아 흑영이 지고지순하게 한 여자 비영을 지키기 위한 순애보같은 사랑을 서술할 때마다, 나는 막 청소년 때 읽었던 백묘 생각나고 그랬다고... (백묘 작가 아시는 분? 이 분이 내 청소년 시기에 가상 연애 많이 도와주셨음)
어쨌든 자신의 목숨을 걸 만큼 연모하고 있던 비영이기에, 이 모든 집행은 모두 비영을 지키기 위해 벌여둔 판에 불과했다.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몰입감
내가 나라면
기억을 잃고도 지식과 지력을 잃고도
노력과 판단력과 신체 능력과 경험을 포함해서
나를 규정하는 모든 것을 잃고도
누구의 기억으로 어떤 인격을 갖든
어떤 모습으로 어떤 인생을 살든
내가 내 근원에서 나온 나 자신이라면
내게서 무엇을 없애든 '나'를 없애지 못한다면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채로도 나를 유지한다면.
기억을 지우고도 '나'는 '나'인 채로 존재할 수 있을까? 이런 기억에 관한 혼선으로 인해 자아가 분리되는 이야기는 <미키 7>에서 읽어본 적이 있다. 만약 전생이라는게 존재한다고 치자면, 내가 전생의 기억을 온전히 갖고 있다고 치자면, 전생의 '내'가 진정한 '나'일까? 아니면 현생의 '내'가 진정한 '나'일까?
흑영은 가상현실에서 각기 다른 인물로 설정되었지만, 끝내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다. 어느 생에서든 똑같이 비영을 연모했고 지켜주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말로 사람들을 죽일 수 있을 만큼 거짓에 능하기도 했고, 맘만 먹으면 이 가상세계의 시스템을 파괴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사실 매 집행마다 이게 지금 가상세계인건지, 현실인건지 종잡을 수 없었다. 흑영과 나머지 인물들이 신인지, 인간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흑영의 이복 형이자, 부도국의 왕이 진짜 누구한테 죽은건지도 항상 헷갈렸다. 이런 헷갈리고 복잡스러운 전개와는 별개로 한 편, 한 편이 마치 영화같이 생동감 넘치게 표현되어 내 상상을 도왔다. 진짜 이런 생동감 넘치는 전개는 진짜 오래간만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감동했던 생동감 넘쳤던 작품이 뭐가 있었더라? 지금 생각나는 건 정유정 작가의 <완전한 행복>이나 <7년의 밤>이 떠오른다.
꼬일대로 꼬인 가족의 숨겨진 이야기(스포주의)
아, 내가 진짜 원했던 것은 흑영의 과거였다구...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인거냐구...
일단 내가 짐작하기로는 실제로 이중인격인건지 귀신인건지는 모르겠다. 아버지는 이중인격(혹은 귀신에 씌인)이라 다른 인격일 때 어머니와 동침을 하여 흑영을 낳았다. 하지만 메인 인격으로 돌아왔을 때, 합방한 적 없다면서 다른 남자의 애를 가졌다고 아내를 모함했다. 하지만 아내를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내칠 수는 없었다. 그러다 결국 아내는 옥상에서 떨어져 자결을 한다. 자결을 할 때, 흑영이 함께 있었는데 아버지는 이중인격을 물려받은(혹은 귀신에 씌인) 흑영이 어미이자 자신의 아내를 죽였다고 생각한다.
흑영은 원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출생이 불분명하다면서 숨겨놓고 차남 선우를 장남으로 호적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왕위에 오른 선우는 흑영의 손인지 귀신의 손인지 모르겠지만 살해를 당했다. 결론은 흑영은 어미를 죽이고, 형을 죽이고, 죄가 없는 어린아이(무진의 동생)을 죽이고, 많은 피를 묻힌 죄로 이 벌을 받게 된 것이다.
하여튼 각각의 집행 시나리오를 통해 흑영의 기억을 끄집어 내 진실을 밝혀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결국 흑영을 원망하던 아비는 자신때문에 아들과 아내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되고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아... 근데 아직도 시원하지 않아. 뭔가 내가 놓친게 있는걸까? 하지만 재독할 자신이 없다.....;;; 내 기대와는 달리 이 책은 드라마적 요소보다 철학적 사색에 더 집중한 것 같다.
죄인에게 처벌을 내릴 수 있는 권리
6명의 집행관이 흑영에게 사형 집행을 내리려고 시나리오를 썼다. 나는 집행관들에게 이입을 해봤는데, 결국 본인만 다치게 되고야 말았다. 뭔가 손가락 하나가 잘린 수경은 사실 형 선우였다. (그리고 인간인지, 영혼인지, 신인지 이 인물들의 정체성이 난무했기 때문에 누가 누구인지 더 이상 분석하지 않으련다....) 흑영이 죽기 전, 어떤 일말의 반성이라도 할런지, 혹은 사과라도 받을 수 있을런지, 진실을 듣게 될 수 있을런지 뭔가 기대를 품고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근데 간혹 진실을 듣게 될 때면 본인들이 더 상처를 받아버린다...
피해자의 가족들은 가해자에게 어떤 복수를 원하는 작품들을 자주 보곤 한다. 급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이 떠오르는군. 우리는 복수를 할 권리가 있을까? 그리고 그 복수를 하면 나는 속이 시원할까? 그래, 진실을 알게 되면 속은 시원하긴 하겠다.
하여튼 10번째 집행이었나, 흑영이 그 세계의 주인이 되었는데 무진에게 가서 죽여달라고 했다. 무진이 하는 말, "내가 미쳤소? 아무리 복수에 눈이 멀어도 이 세상의 주인을 죽이면, 여기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까지 파멸시키는건데!!!! 나는 그 정도의 복수는 아니오." (생각나는대로 적어봤는데, 실제 작품에선 이렇게 싼티나게 말하진 않았다.) 하여튼 복수라는게 무엇인지, 누군가를 처벌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질 사람이 있는건지, 좀 되짚어 볼 수 있게 됐던 장면이었다.
무진의 동생의 서사는 그게 끝인가효..?
무진의 어린 동생을 왕이 될 재목이라 판단하고 죽인 흑영의 잔혹함에 대해 더 많은 변명을 원했다. 근데... 어그로만 잔뜩 끌어놓고 설명들이 별로 와닿지가 않았다. 애초부터 무진은 껍데기만 참여하고 나머지는 조정자(귀신)와 아버지가 꾸민 일처럼 이야기했다. 하여간 설정해놨던 캐릭터들이 휘릭휘릭 바껴버리니, 근본없는 반전 같은 느낌?ㅋㅋㅋㅋㅋ
나는 이 주인공이 실제로 어떤 일을 벌였고,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좀 더 자세하게 떡밥을 회수할 줄 알았는데 철학과 심연이 한 가득 묻어있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엔 이 주인공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내가 모르는 알맹이가 있는거냐구요. 하여튼 작가에 대한 공부를 덜 하고 읽으니 이런 부작용이 생겨버렸다.
오히려 <7인의 집행관>이라는 책을 읽고 이미 4권이나 사버린 김보영 작가의 책에 편견이 실려버렸는데 이걸 어쩌나...;;;
그래도 읽어야지 뭐 어쩌겠나..
'그냥,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겠어요 (9) | 2025.07.17 |
|---|---|
| 제레드 다이아몬드, <문명의 붕괴;Collapse: How Societies Choose to Fail or Succeed> | 물욕을 사라지게 만드는 책.... (5) | 2025.07.16 |
| 아니 에르노, <탐닉>, <집착> (14) | 2025.07.09 |
|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 도대체 어디까지 솔직할 수 있는거야 (7) | 2025.07.08 |
| 성해나, <혼모노> | 결코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이해못할 이유도 없다 (13) | 2025.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