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덥지 않은 조언

2025. 5. 28. 11:00내일이면 잊을 순간의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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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amjamzo @Haleakalā, Maui

 

A가 고민을 털어놨다.

 

딸 B가 교회에 있는 한 남성에게 드럼과 공부를 배운다고 했다. 그런데 교회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 모습이 곱게 비치지 않았다. 젊은 유부남이 고3 여자아이에게, 그것도 단둘이 밀폐된 공간에서 드럼과 공부를 가르친다는 건 아무래도 의심의 눈초리를 피하기 어려웠다. 최근 있었던 김수현 스캔들 때문에 분위기가 예민해진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결국 교회 사람들은 두 사람이 단둘이 따로 활동한다는 점을 문제 삼았고, 그 남성은 그 반응에 크게 분노했다. 자신이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는 데 화가 난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오히려 오기가 생긴 듯, “B의 엄마가 허락한다면 계속 가르치겠다. 제3자는 빠져달라”는 식으로 나왔다.

 

A는 그 말에 더 화가 났다. A는 예전부터 그 남자가 어딘가 쎄하다고 느껴졌고, 그래서 B에게도 몇 번이고 조심하라고 경고했다고 했다. 결국 일이 이렇게 터질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 남자가 스스로 둘만의 활동을 멈췄다면 조용히 정리될 일이었는데, 결국 모든 책임을 B의 엄마인 A에게 떠넘긴 셈이었다. A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B는 그 남자에게 더 이상 공부도, 드럼도, 그 어떤 연락도 받을 수 없게 완전히 차단당했다.

 

B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배우고 있었고, 남자도 순수한 마음으로 가르치고 있었다고 믿었는데, 왜 사람들은 자신들이 '금단의 사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더럽게 바라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B는 집에서 하염없이 울다가 결국 그 결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점심시간에 밥 먹다가 이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걸 부모가 항상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처음 스노우보딩 배울 때도 어떻게 타는지보다 어떻게 넘어지는지를 먼저 배우잖아요.
볼더링도 마찬가지고요. 어떻게 잘 올라가느냐보다 어떻게 잘 착지하느냐가 더 중요하죠.

그래서 미리 예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좋지만,
이미 일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그런데 A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이 말에 대한 대답을 피하려는 건지 엉뚱한 답을 했다. 

 

나는 다시 설명하려다가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다.

자기 자식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길 바라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B는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내가 감히 누군가의 가정에 훈수를 두려 했다는 건, 오만이자 경솔한 행동이었다.

 

내가 “다치는 걸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다.”라는 생각을 해왔다면, 
더 나아가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기억했어야 했다. 

 

상대 입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받아들이면 될 일이었는데, 나는 조언이랍시고 말만 앞세우려 했다.
A가 말머리를 돌리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무책임한 말을 두 번이나 던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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