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7. 7. 17:26ㆍ그냥, 책
박정민 배우가 한 건 했다.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 이 말의 파급력이 나에게는 엄청 났다. 어떤 기대감을 안고 이 책을 읽었던건지, 박정민의 개그 코드, 소설에 관한 취향 등이 너무 궁금해지게 만들었다. 박정민 팬은 아니지만 그냥 책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의 이야기는 한 번쯤 귀를 기울이게 된다. 왜냐면, 나는 독서 블로거니까!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사실 젊은 작가들에 대한 선입견을 많이 갖고 있는 편이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삶의 깊이나 통찰력에 대해 아주 살짝쿵 편견을 갖고 있었다. 내가 색안경을 낀 이유는, 내가 얕은 통찰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었다ㅋㅋㅋ 나는 성해나 작가의 작품을 정말 즐겁게 읽었다. 피식피식 웃음을 자아내는 개그코드를 가진걸까 상상하면서 시작했는데, 작가는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를 깊이 들어가 열린 결말로 마무리지어 그 어느 누구의 편에 서지 못하게 오랫동안 그 자리에 생각이 머무르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아직까지 내 취향저격 유머는 정세랑 작가가 일등ㅋㅋ)
<두고 온 여름>
다정했던 한 순간의 기억
<두고 온 여름>은 내가 후기를 쓰지 않으려고 했건만, <혼모노>를 읽고나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두 이복형제에 관한 이야기지만, 딱히 무엇을 딛고 성장했다는 성공적 결말도 아니고, 서로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는 해피엔딩도 아니고, 누구 한 명이 일찍이 죽어서 그리워한다는 CJ감성도 아니었다. 그 시절 우린 그랬었지, 그리고 우리는 많이 변했지. 아토피가 너무 심했던 재하, 새 아들들에게 잘해주려고 무던히 애를 쓰는 재혼 부모들, 실제 속마음은 여렸지만 겉으로는 툴툴댈 수밖에 없었던 사춘기 형 기하,... 재하의 친아빠가 찾아와 난동을 부려, 재혼했던 부부는 서로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이 안타까웠고, 형제 둘이 서로를 의지할 수 있었는데 그럴만한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도 너무 안타까웠다. 아 이런 소재 너무 잔인했다.
세월이 흘러 두 형제가 재회했을 때, 이미 지나온 세월이 있으니 두 사람은 이미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삶에 찌들어버린 서로의 모습에서 어떤 기대감도 없었고, 나중에는 제대로된 번호도 주고받지 못한 채 '시절 인연'으로 남겨져 버렸다. 사진관을 운영하던 새아빠가 재하에게 DSRL을 주었다. 고장 난 줄 알았던 DSLR은 둔탁하게 나마 작동해 일본으로 간 재하는 하루에 한 장씩 찍는다. 재하는 오오누키 씨의 도움을 받아 메모리 카드에 있던 사진들을 인화하게 되고, 기하네 집이 했던 사진관으로 기하의 사진을 엽서로 보내게 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읽은지 꽤 몇 주가 지나 구체적인 내용은 가물가물한 상태인데, 그 때 느꼈던 잔잔했던 마음들이 아직도 저릿하게 느껴진다. 사랑은 참 복잡하면서 신비로운 것 같다. 아주 스쳐지나갔던 다정했던 기억만으로도 그 전체가 빛이 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DSLR에 찍힌 단 한 장의 행복하거나 다정했던 추억들이 그 기억을 전부 지배하는 것 같다. 재하는 기하가 제대로 된 번호를 남겨줬기 때문에 서운한 마음이 있었지만, 서로 함께 했던 추억들을 되새기면 그게 꼭 이해못할 것 도 아닌 것처럼 소중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두고 온 여름>은 열린 결말로, 형제의 어떤 행보를 독자에게 상상으로 맡겨버리는지라 더 여운이 남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재하와 기하는 서로에게 다정했던, 가족같았던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며 서로를 간직하고 싶은 그 마음은 변치 않은 것 같다.
<혼모노>는 총 7편의 단편소설이다. 그 중 마음에 오래 남았던 단편은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였다. 이 외 6편 모두 열린 결말로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다음 편으로 넘어갈 때마다 나는 감정을 삼킬 준비 시간이 필요했다. 약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나서 바로 양치하기 싫은 느낌? 장편의 열린 결말도 힘이 드는데, 단편의 열린 결말 퍼레이드는 은근하게 감정소모를 일으켰다.
결론만 말하자면, <혼모노>라는 작품에서 우리는 타인을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지만, 이해못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 하나하나가 정답이 없는 것처럼, 7편의 이야기도 하나같이 정답이 없었다.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주인공은 김곤 감독에 푹 빠져 덕질을 했었다. 김곤 감독은 한 아이를 꼬집으며 억지 연기를 끌어낸 것이 문제가 되어 한동안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것 또한 사랑할 수 있을 정도로 그에게 제대로 입덕을 한 것이다. 주인공은 김곤을 사모하는 길티 클럽에서 회원 한 명이 김곤의 행동이 잘못됨을 짚었을 때, 그녀를 비난하며 김곤을 감싸돌았다. 하지만 김곤이 새로운 영화를 내고, 한 때 자신이 잘못했던 행동에 대해 늬우치는 사죄를 하고 나니 주인공은 마음이 이상해졌다. 그리고 김곤을 탈덕했다.
유명한 사람을 덕질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없다... 주인공은 아동학대 비스무리한 논란을 감싸줄 정도로 김곤을 사랑했지만 길티를 갖고 있었다. 그냥 차라리 김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없었던 일인 것처럼 부정했더라면 주인공은 탈덕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사실상 별거 없는 김곤에 대한 뜨거운 추앙을 했다라는 사실이 주인공을 허탈하게 만든걸까?
난 사실 이번 단편에서 예술에 대해 조예가 깊은 척 했던 주인공의 전남친이 너무 길티였다ㅋㅋㅋㅋ.... 그거 너무 나잖아! 아, 그래서 비슷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끼리 만나야 하는 것 같다. 나 또한 깊은 조예 따윈 없다. 그저... 지적허영심에 미쳐있을 뿐, 진짜로 지적이진 않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감상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답답함을 느꼈다. 왜 내 맘을 몰라주고, 나를 유난인 사람으로 만드는지... 근데 어쩌면 내가 유난을 떨어 상대의 취향을 무시한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든다.
스무드
재미교포 3세인 주인공 듀이는 한국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이다. 어머니는 입양된 한국인이고,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아 한국 문화와 단절된 상태로 살아왔다. 그러다보니 듀이는 자연스럽게 한식이 익숙하지 않았고,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미국인이었다. 그러다 비즈니스 때문에 한국에 오게 됐는데 휴대폰 배터리는 나가고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성조기와 태극기를 이고 시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배터리 충전할만한 곳이 있냐고 물어봤다. 듀이는 당연히 한국어를 할 줄 모르고, 그 사람들은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 중 대구 미군기지 근처에서 일했던 김씨 할아버지가 와서 영어로 대화를 했다. 서툰 영어였지만, 듀이는 그것만으로도 감사함과 환대를 받았다.
아, 내 정치색은 현재까지는 분명하게 "진보"이기 때문에 여기 나온 극우세력들에 대해 호감을 가진 적이 없다. 하지만 <스무드>에서 본 극우세력은 뭔가 밉지가 않다. 한국 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듀이에게 한국인의 정을 더 보여주란 말이다!!! 하면서 응원까지 하게 되다니. 논픽션으로 역사의 흐름을 읽을 때와 픽션으로 역사의 일부를 간접 체험할 때의 경험과 비슷한 것 같다. 미디어로 본 극우세력들은 비호감 그 자체였지만, 그 개인으로 다가가면 다 그럴 이유도 있겠구나 싶었다.
혼모노
신빨이 다 빠진 어느 무당의 이야기다. 자신이 모시는 신령이 맞은 편에 자리한 스무 살 어린 소녀의 몸으로 옮겨 갔다. 나름 할멈이 적중률이 좋아 꽤나 돈을 벌었는데, 어느 순간 할멈이 없어졌다. 알고 보니 이번에 새로 이사온 신애기한테 옮겨간 것이다. 이미 신빨 다 빠진게 소문이 나버려서 신애기한테 손님들을 다 뺏겼다. 그나마 돈줄이었던 황보 의원 또한 주인공에게 굿 받는다고 해놓고, 신애기한테 다시 굿을 받기로 했다. 주인공은 굿판 한 번 제대로 벌여본다.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일까? 내가 진짜라고 믿으면 진짜가 될 수 있는 것일까? 나를 진짜라고 정의하는 것은 누구인가? 신령의 유무는 일반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다. 결국 보이는 것에 대한 믿음에서 갈라지는 것이었다. 주인공이 피를 뚝뚝 흘리면서 굿을 해도, 본인이 진짜라고 믿는다면 그게 진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정말 이번 단편은 나의 몰입에 비해 너무 답답했다. 아무래도 샤머니즘 자체가 너무 신비해서 더 답답하게 느껴졌을 수도?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갈월동은 실제로 숙대 근처에 있는 지명이름이나 마찬가지다. 작품에서 언급되는 '국제해양연구소'나 '경동수련원'은 실제로 '남영동 대공분실'을 모티브로 만든 픽션이었다. 물론 건축가도 여재화나 구보승이 아니라, 김수근에 의해 건축되었다고 한다. 하여튼 이 작품으로 보면 여재화는 자신의 명성을 잇고 싶었던 야망에 무리해서 고문실까지 맡게 된다. 하지만 일이 너무 많아 야망이 없어보이지만 기본에 충실했던 구보승을 꾀어낸다. 구보승에게 야망은 보이지 않았지만, 한 번 맡은 일에 집요한 진심을 보이면서 어시스트를 했다. 여재화는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을 고문하기 위해 만드는 고문실에 자신의 예술과 철학을 넣기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구보승에게 맡겨놨더니, 거의 뭐 고문실 전문가였다. 인간에게 일말의 희망을 남기지 않는 도면을 그려냈다. 그러다 나중엔 하루에 단 10분만 빛이 들어오는 희망 고문마저 고안해내는 광기를 비췄다.
훗날 여재화는 정권교체가 되면서 자신의 명성 또한 추락하게 되었다. 그리고 잔혹했던 '경동수련원'의 건축가 이름은 자신이 아닌, 제자의 이름을 올려놓고 '구의 집'이라고 불리게 만들었다. 준공 이후 구보승은 업을 바꿔 공인중개사가 되었고, 이 세계에서 거의 없어진 사람이 되었다. 그에게 '구의 집'은 진심을 다해 미쳐 만든 애정어린 작품이었지만, 한편으론 누굴 위해 만든 작품인지 자신이 만든 잔혹함으로 괴로운 작품이기도 했다.
야망으로 인해 고문실을 맡은 여재화가 나쁜 놈일까? 니즈에 맞게 최고의 고문실을 만든 구보승이 나쁜 놈일까? 내가 생각한 나쁜 놈은 고문실을 만들라고 시킨 놈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쁜 일을 시킨다고 해서 시키는대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거절할 수 없는 유혹적인 일들도 많을 것이다. 그 유혹을 거절한 사람들을 칭찬해야지, 그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은 그냥 보통 사람들이 아닐까?
우호적 감정
다 좋은게 좋은거다. 라는 것은 비겁한걸까? 가끔 나도 알렉스처럼 어색한거 싫어서 괜히 더 챙겨주는 사람 쪽에 속했다. 이상하게도 드라마같이 더 챙겨주면 좋은 퍼포먼스를 발휘하는 결론보다 그냥 뭔가 내 감정만 잔뜩 소비되는 느낌을 더 많이 받았긴 했다. 수잔의 한마디 "너무 애쓰면 멀어져." 그래, 맞다. 나는 너무 애써서 환멸을 느꼈던 적이 참 많았다.
근데 꼭 내가 알렉스의 입장만 됐던 것은 아닐거다. 어느 그룹에선 진이 될 수도, 수잔이 될 수도, 맥스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도 어떤 집단의 특성에 따라 내 역할이 미묘하게 달라졌을 것이다. 나도 이상하게 알렉스처럼 괜히 아빠같은 진이 마음에 걸렸을 때가 있었다. 그렇다고 앞으로 진같은 사람들 안 챙길거라고 말은 못하겠다. 맨날 툴툴대는 수잔이 거슬리면서도 그녀의 마음을 이해못하진 않는다. 항상 사람들을 챙기는 알렉스 또한 굉장히 피곤할 것이다. 아... 이 단편은 너무 하이퍼리얼리즘 그 자체였다. 회사 생활 PTSD 마구 떠오름... 근데 어떻게 해야겠다는 결론은 없음. 그냥... 대충 살어리랏다.
잉태기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개싸움. 이건 진짜 흥미진진했다. 시아버지는 손녀 서진(복이)을 너무 사랑했고, 품 안에 항상 넣고 다니고 싶어했다. 하지만 며느리 또한 자기 자식인지라 꼭 자기 품 안에 넣고 다니고 싶어했다. 둘 다 똑같았다. 그냥 품 안에 자식이라 애를 오냐오냐 키우는 바람에 스스로 할 줄 모르는 바보 딸이자 손녀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자기 인생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같은 편일땐 든든하지만, 다른 편일때는 정말 미치도록 싫은 사이. 이거 은근 사람 미치게 만드는 관계다. 만삭이 된 서진(복이)를 괌에서 출산하게 만들어 미국 시민권자가 되게 만들려는 어미나 꼬마빌딩으로 애 살살 꼬셔가면서 자기 옆에 꼭 붙어 있게 만들려는 할애비나... 재력이라도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말해야하나. 하여튼 서진(복이) 인생 망친 건 어른들이다. 앞으로 애 낳으면 할아버지랑 엄마가 가만 있겠냐구. 그것마저도 소유하고 통제하려고 난리나겠지.
메탈
메탈 밴드를 꿈꾸는 3명의 친구들이 대학을 가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서로 멀어지는 이야기다. 서로 어떤 열정을 퍼붓고 음악을 했던 적도 있었으나 각자 인생의 중요한 부분은 모두 달랐다. 우림은 음악이 전부였고, 그 음악을 함께했던 시우와 조현이 좋았다. 그들과 음악을 함께 하면 외롭지도 않았을 것이다. 조현도 또한 삼총사가 같이 한 음악이 좋았을 것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부모님이 이해해주지 않았고, 조현 또한 음악을 계속 해야한다는 확신 또한 없었다. 서울권에 있는 공대에 입학했지만 아버지는 그 마저도 탐탁지 않아 졸업식에 가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조현은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으로 편입준비를 열심히 했을지도 모른다. 그저 펜션 가업을 물려받고 부모님에게 이쁨받는 우림이 자신을 이해할 수 있을거라 생각 못했을 것이다.
수 년이 흐른 뒤 우림과 조현은 연락이 끊기게 됐다. 조현은 우림에게 전화를 걸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나는 다시 한 번 '시절 인연'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오래 된 친구는 편안한 것도 있지만, 과거에 머물러 있다. 사람은 계속 변하는데 친구들의 추억 속에 나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과거와 현재의 이질감이 커서 서로 이해를 못하는 관계가 되버려 멀어지는 것이 시절인연인데, 우림과 조현은 아마 함께 음악했던 찬란했던 순간만 남긴 채 관계엔 더 이상 진전이 없지 않을까 싶다.
'그냥,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니 에르노, <탐닉>, <집착> (1) | 2025.07.09 |
---|---|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 도대체 어디까지 솔직할 수 있는거야 (1) | 2025.07.08 |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 불쾌하면서 연민을 느끼게 되는 복잡한 마음을 갖게 하는 작품 (2) | 2025.06.19 |
<모순>, 양귀자 | 결핍이라곤 경험하지 못하게 철저히 가로막힌 이 지리멸렬한 삶 (2) | 2025.06.07 |
<광인>, 이혁진 | 질투에 눈이 멀면 이렇게 됩니다.... (5) | 2025.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