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 <탐닉>, <집착>

2025. 7. 9. 11:59그냥,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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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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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 도대체 어디까지 솔직할 수 있는거야

아니 에르노(Annie Ernaux) : 기억과 욕망을 기록하는 작가 아니 에르노는 1940년 9월 1일, 프랑스의 릴본(Lillebonne)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공장에서 일하다 나와 작은 식료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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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참조

 

<탐닉(Se perdre; 길을 잃다)>

 

 

<단순한 열정>에서 나온 A와 불륜 관계일 때 썼던 내면 일기였는데 10년 뒤 내놨다고 한다. 

왜? 내 생각으론 어떤 자극이 왔을 수도 있겠다... 새로운 사랑이 자기 맘같지 않았을 때 이 글을 읽으며 다시 반성하려고 했던건지 러시아 외교관이 다시 연락이 왔다던지, 새로운 무언가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 것 같다. (지극히 나의 뇌피셜) <단순한 열정>에선 나름 불륜상대를 지켜주려고 A라고 표현하고 국적도 밝히지 않았지만 이건 그 때 당시 일기라서 그런지 S라고 부르며 러시아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히 공개했다. 

 

나는 솔직히 <단순한 열정>보다 <탐닉>에서 좀 더 많은 영향을 얻게 된 것 같다. 단순한 열정이 워낙 짧아 양에 대한 부담감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 더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탐닉을 구매했는데.... 웬걸? <탐닉>은 3년간 썼던 일기였던지라 양이 상당했다.(생각했던 것보다 읽는데 시간이 걸렸다...) 다시 한 번 읽으라고 한다면 너무 감정 소모가 많이 되어 두 번 읽고 싶지는 않다. 나의 현재까지 최애 작가인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오!윌리엄>을 읽으면서 나만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나 내 글로 인해 누군가가 위로받았으면 하는 그런 오만한 마음이어서 그런지 쉽사리 글이 써지지 않았다. 이번에 <탐닉>을 읽고 확실히 생각이 굳어졌다. 나는 내 글로 나를 위로하고 싶어졌다. 오히려 솔직하고 용기있는 단어가 가끔씩 나를 도려내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더 이상 나의 뿌리깊은 상처들을 외면하고 싶지 않아졌다. 

 

이런거보면 아티스트들은 참 대단한 것 같다. 내가 쏘아올린 나의 생산물이 누군가에게 철저하게 해부당해 분석 당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세상에 내놓은게 아닌가? 나는 아직도 솔직하지 못할 때가 많다. 역시 나는 예술을 내 길이 아닌가보다ㅋㅋㅋ 그래도 하루하루 느낀 것들을 담담하게 마주보고 일기를 써보도록 해야할 것 같다. 나쁜 기억이 있다면 낱낱이 적어내려 마주하고 잊을 수 있게 보내고, 좋은 기억이 있다면 그것 또한 낱낱이 적어내려 언제든 꺼내볼 수 있도록 말이다. 

 


사랑이란 악취도 품는 것?

그는 큰 자동차나 사치스러운 것, 또는 사교적 관계 등을 좋아한다. 거의 지적인 것과는 상관없는. 이런 것들조차 내게 과거를 상기시킨다. 그것들은 내가 싫어했던 남편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지나간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지금은 너그럽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자동차를 타더라도 그와 함께라면 두렵지 않다. 내가 애착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너무 빨리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가 내 곁에 있으려고 애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탐닉"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8954685597

 

 전남편과 비슷한 취향을 가진 S. 사실 일기를 쓰면서 한편으로 아니 에르노는 객관적으로 S를 바라볼 때가 많았다. S는 아니 에르노에게 금발의 초록 눈을 가진 알랭 드롱을 가진 젊고 잘생긴 러시아 청년이었다. 근데 가끔은 악취가 날 때가 있었고 윗사람에게 잘보이려고 아부를 떨 때 별로였고, 헐렁하고 너덜해진 팬티를 입고 나타나고, 지적교양이 상당히 차이날 때를 느꼈다. 이런 소소한 부분에서 정이 떨어질 수 있었지만 젊고 잘생긴 얼굴만 생각하면 그가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아니 에르노는 얼빠 of 얼빠 였던 것 같다.) 

 

 한편으론 이런게 일종의 사랑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뭔가 사랑이라는 것은 다양한 형태로 표현될 수 있다지만... 이런 정떨 모먼트가 있더라도, 옳지 않은 관계라 할지라도 무조건 상대에게 열의를 다 하는 자세가 사랑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집착일 뿐이지만.

 

여성 억압을 깨부신 아니 에르노

나의 모든 생은 남자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 그 자체였다. 1963년에 나는 성경 구절을 되풀이하여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는 그녀 위에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리라.” 이 구절이 욕정에 대한 것이며, 내 위에 정액을 강물처럼 흐르게 하리라는 의미인 줄도 모르고. "탐닉"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8954685597

 

엥...? 이런 의미였나..? 성경 구절 재해석ㅋㅋㅋㅋ 뭐 실제로 저런 뜻인들... 당시 아니 에르노는 욕망덩어리였으므로 저렇게 계속 생각했을 것 같다. 지금이야 그냥 욕망 가득한 여성이었지만, 당시 프랑스에서는 발정난 암캐라고 욕 많이 먹었을 것 같다. 아니 에르노는 페미니즘의 시초였던 것 같다. (불륜을 저질렀든, 남미새든, 얼빠였든 모두 차치하고) 어쨌든 사회가 여성을 억압하는 것을 계속 뚫고 나오려고 했다는 것에 굉장히 마음이 간다. 

3주. 이제 나는 고통 아닌 슬픔에 잠겨 있다. 희망 없고, 성취할 일 없이, 그저 늙어가기만 할 뿐, 쾌락이라는 대가가 없는 시간에 대한 슬픔. 아침이면 가슴이 뛰면서 혐오감을 느낀다. 여러 가지 꿈. 그중 하나는 나의 옛 시집 식구들을 만나는 꿈이다. 꿈속에서 나는 결혼한 상태다. 나는 피에르와 그의 부인 모리스 그리고 시어머니를 맞이한다. 그들을 본 지가 오래됐기 때문에 내가 너무 늙어 보일까봐 두렵다. 내가 낡은 분홍 스웨터 같은 끔찍한 스타일의 옷을 입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남편과 다툰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껍질을 까지 않는다면 콩깍지 요리를 하지 않겠다고 거부한다. 주부가 하는 일에 대한 내 혐오감을 반영. 깨어나며, 남편과 보낸 18년이라는 잃어버린 세월에 대한 아픔 "탐닉"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8954685597

 

 나름 중산층의 매너, 말투 등을 동경해왔기 때문에 중산층 집안에 시집을 갔다. 막상 18년 동안 결혼생활을 해보니 여성은 제도 안에 갇혀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편은 허구헌날 바람피우지, 남편 맨날 따라댕기는 자신의 모양새가 혐오스럽지, 아내라고 해서 모든 잡일을 다 처리해야하는 것도 너무 혐오스러웠다. 아니 에르고는 18년의 결혼 생활 이후, 연애와 사랑은 끊임없이 했지만 결혼을 아직까지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랑에 자아가 상실되는 한이 있더라도 제도로 인해 자아가 상실되는 꼴을 못 보는 참여성이었다....

 

 <사건>이라는 책을 통해 여성들이 낙태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질 수 있도록 펜을 들기도 했다. 20살 피임없이 성관계를 해서 원치 않는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는데, 당시 낙태를 왜 본인이 선택할 수 없는지에 대해 답답함을 느꼈던 것 같다. 사람은 참 입체적이라서 마음놓고 비난할 수 없는 것 같다. 어떤 가정의 상처를 준 가정 파괴범인 불륜녀이지만, 프랑스 사회 내에서 여성 인권 및 소외된 계층을 위해 소리를 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근데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페미니즘을 하는 여성이 옳아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가끔은 자아도취에 빠질 때도... (feat. 안나 카레니나)

젊은 남자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도대체 나는 무엇으로 사람들을 끄는 걸까?
"탐닉"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8954685597

 

 쉰 살의 작가에게 젊은 남자들이 자주 플러팅하는 것에 대해 언급했다. 일기니까 자유롭게 쓸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을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기도 하다. 나는 그저 익숙하지 않은 자아도취적 문장들이 익숙하지 않을 뿐이었다. 근데 이게 자아도취인지, 진짜 불쾌해서 쓰는건지 알 수는 없다. 그저 작가는 자기 자신이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내용이 잦아 의문이 들 뿐이다...

 

 그리고 아니 에르노는 이 시기에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가 쓴 <안나 카레니나>를 참 자주 읽었다. 자신은 안나 카레니나고, 자신이 만나고 있는 남자는 브론스키라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러시아 남자를 만나고 있기 때문에 특히 감정이입을 심하게 했던 것 같다. 안나 카레니나 처럼 불행한 결말을 겪지 않을거라 다짐하긴 하는데... 말은 바로 하자. 안나 카레니나는 스스로의 가정을 파탄낸거였다. 아니 에르노는 남의 가정을 파탄내고 있었던거고... 러시아 남자에게 빠져 러시아 문학에 감정이입을 심하게 했다고 치자. 

바람둥이만 만나는 이유

여태껏 나는 바람둥이들만 만났다. 오늘 그가 완벽하게 진실해 보이는 듯하지만 자주 거짓말을 한다는 확신이 섰다. 
"탐닉"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8954685597

 

 나는 일부러 아니 에르노가 바람둥이만 만나는 것 같다 생각했다. 바람둥이를 만나면 어느정도 날 두고 다른 사람을 만날거라는 예상과 확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바람둥이가 아닌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이 바람을 필지 안 필지 확신이 없다. 오히려 내가 믿음을 주어야 한다. 이미 오래전 남편부터 시작해 연애했던 남자들이 바람을 피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자에 대한 신뢰는 바닥이다. 하지만 스스로 너무 외롭기 때문에 마음을 채우고 싶어 사랑을 단념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어차피 받을 상처라면 예상할 수 있는 상처가 낫다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결혼은 안 하고 연애만 하는거니... 본인이 아프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어. (불륜치정 이런거 빼고!)

 

아니 에르노에게 글쓰기란?

5년 전부터 즐거움과 자신감(섹스, 질투심, 사회적 출신 성분 역시)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더는 수치심을 갖고 살지 않기로 했다. 수치심은 모든 것을 덮어버리고 앞으로 더 나아가는 것을 방해한다. 또한 내게 글쓰는 작업은 도덕적 기능을 지닌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에는 글쓰기에 대한 집념을 잃지 않기 위해서 사랑의 모험을 원치 않았다. 오랫동안—아직도 그렇지만—글을 써왔기 때문에 쾌락적인 삶은 내게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 내 남편이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그가 글을 쓰지 않기 때문에 용서했다. 글을 쓰지 않는 인생이 다른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먹고, 마시고, 섹스하는 걸 빼고는. "탐닉"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8954685597

 

사실 아니 에르노는 출신에 대한 열등감이 많았던 작가였다. 그런 수치심을 글로 승화시켜, <자리>라는 책을 통해 아버지의 이야기를 쓰고 상까지 받았다. (나중에 진짜 한 번 읽어봐야겠다... 궁금궁금) 하여튼 글쓰는 작업을 하는 것은 치유와 위로도 하고,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하는 어느 하나의 지점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런 행위를 하지 않는 남편에게 무언가 깨닫게 하는 것도 입만 아프니 그냥 용서를 해줬겠지? 

 

나는 지나간 고통을 기억하지 않는다. 따라서 매번, 절절한 고독 속에서 새로운 고통을 살아간다. 게다가, 내가 하는 모든 것은 과거 속에서만 좋고 아름답게 보인다. 퀘벡에 대한 내 글은 좋았다. 요즘에는 그런 글을 쓸 수 없다. "탐닉"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8954685597

 

이 문장에서 미나토 가나에 작가의 <고백>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무언가를 잊기 위해 세세히 기록하는 것, 그리고 덮어두는 것. 근데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닌가보다. 고통을 덮어두면 또다른 새로운 고통이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을 보니... 그래도 나는 <탐닉>을 통해 더 많이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과정이 나 또한 필요하거든. 

 

글쓰는 행위 속에 자유가 존재하는지 이젠 확신할 수가 없다. 오히려 과거나 과거에 겪었던 공포감이 회귀하는 최악의 자기 상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반대로, 그 결과물인 책은 다른 사람들이 자유를 찾는 것을 돕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탐닉"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8954685597

 

어느 정도 유명한 작가의 위치에 오르게 되면 자신의 글에 책임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해방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을 갖고 쓰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나의 생각을 누군가가 그릇된 사상으로 승화시킬까 두려움도 갖고 있지 않을까? 마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은 케네디 대통령 암살자같이 말이다... 

 

 불륜녀들이 자기 연민에 빠져 <탐닉>이나 <단순한 열정>을 통해 스스로 위로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거북해서 책을 덮을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훗날 이런 선택을 하지 않도록 마음에 새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작가에게 일종의 책임감도 있지만 어떤 마음을 갖는건 독자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됐건, 작가는 글쓰기를 통해 어떠한 책임과 대가를 톡톡히 치르려고 한다. 어찌보면 스스로에게 말하는 결의같다. 

 

<집착> 

 

 

 

 누군가에게 집착해본 적이 있나? 나는 내 전남친의 새로운 여자친구나 썸녀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어 조사했던 적이 있다. 이 책에서 작가는 만나던 남자가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집요하게 그 여자를 파기 시작했다. 어느 한 단서를 알게 되면 그녀의 신원을 알아내려 애를 썼다. 얼마나 인간이 아무 연관 없는 사람한테 질투를 느끼고 집착할 수 있는지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책이었다.

 

 나도 분명 누군가에게 집착했던 적 분명 있었지만 이 사람이 너무 심하게 집착하는 바람에 공감은 커녕 너무 피곤해졌다. 내가 굳이 누군가에게 집착해야할 정도로 내 삶이 한가하지 않다는 것도 상기시켜줬다....... 

 

위의 탐닉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서 <집착>을 읽을 때 너무 지친 상태였다.

하여튼 ... 아니 에르노 작가님.. 한동안 멀어질게요. 오랜만에 텍스트로 너무 많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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