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금이가 삶을 대하는 태도
주어진 모든 것에 애정을 쏟아붓기
사람들이 너를 오해하는 게 있다.
네 능력은 뛰어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쉬지 않고 하는 것에 있어.
모두가 그만두는 때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시작하는 것.
너는 얼음 속에 던져져 있어도 꽃을 피우는 꽃씨야.
장금은 어머니(박나인)의 죽기 전 남기셨던 유언을 이루기 위해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박나인이 장금이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꼭 최고상궁이 되라고 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모를 어릴 적부터 잃은 장금이가 세상의 끈을 놓지 않도록 미션을 준 것이나 다름없다. 꼭 살아야 하는 이유를 준 것이다. 이 깊은 뜻을 한상궁이 장금이 등에 엎혀 궁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이야기할 때 알았다. 장금은 정말 더 이상 누구를 위해 살고 싶지 않았지만, 한상궁이 남긴 유언을 통해 다시 또 살아가려고 애를 쓴다. 명목상 어머니와 한상궁의 억울함을 풀기 위한 목표로 살게 되었지만, 결국 어머니와 한상궁이 장금을 살게 만들기 위해 짜놓은 판이었다.
하지만 장금은 어머니가 남긴 유언으로 필사적으로 궁녀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한상궁이 남긴 유언으로 필사적으로 궁으로 다시 되돌아가기 위해 관비의 신분으로 의술을 익혀 의녀가 되었다. 나는 장금이가 오로지 복수만을 위해 달려오다 "대장금"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장금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장금의 사랑하는 방식
(1) 인간관계 - 오지랖처럼 보이지만 결국 덕으로 되돌아온다
조실부모한 장금을 처음부터 아무 이유도 없이 애정을 주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 이유없이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무 이유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장금에겐 그런 복이 없었다. 아무 이유없이 장금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겠지만, 딱히 그녀를 도와주려고 먼저 손을 내밀어 오지랖을 부린 이들은 많지 않았다. (내 생각으론, 문정왕후, 의녀 장덕와 제주진 장교 정도는 장금을 먼저 도움을 줬던 인물같다.)
장금이는 강덕구와 나주댁이 사는 집으로 들어갔을 때도 나주댁에게 바가지 긁히지 않도록 강덕구의 비밀을 잘 지켜주었고, 허리가 맨날 아파 힘들어하던 나주댁을 보살폈다. 결국 그 진심은 통했고, 나주댁은 마음을 열어 장금을 수양딸로 품게 되었다. 장금은 그 후에도 어미를 보고 싶어 하던 연생을 위해 휴가를 넘기고, 금계를 잃어버린 금영을 도와 몰래 궁을 빠져나오고, 본인 코가 석자면서 칼침맞은 민정호를 치료를 한다. 뿐만 아니라, 훗날 강덕구의 누명을 풀어주고자 본인 몸으로 실험하다 수라간 궁녀에게 가장 중요한 미각마저 잃게 된다. 장금이가 의녀가 된 후에도 정말 많은 오지랖 에피소드들이 많지만 다 읊으려면 손가락만 아프다.
많은 인연들이 스쳐지나 갔지만, 어느 인연도 허투루 생각하지 않았다. 최상궁과 금영에게 자신이 배운 의술로 복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에게 사과만 받는다면 용서할 생각도 있었다. 자신이 걸어온 길들을 사랑하기에, 아무리 자신에게 악행을 저질렀던 사람들이어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삶을 오롯이 걷듯이 다른 이들의 삶을 존중해 주었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냥 지나가도 될 오지랖이지만, 결국 그렇게 베푼 덕은 나중에 장금에게 곱절로 돌아온다. 선한 마음은 항상 이긴다.
(2) 일 - 그 시대에 미천한 일이라고 부를지언정 주어진 일을 사랑한다.
장금이 어릴 적부터 궁녀가 되었다고 해서 모든 궂은 일을 하는게 내성이 된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따돌렸고 괴롭혔기 때문에 했던 궂은 일들도 많았다. 하지만 설렁 대충 해도 되는 일인데 그런 식으로 삶을 대하지 않았다. 내가 아주 작은 일을 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이 작은 역할이 어디까지 파장이 갈지 예상할 수 있는 똑똑하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었다. 흙비가 자주 내려 식기들을 설거지 할 때 물을 한 번 끓여 설거지를 해야 됐다. 다른 궁녀들과 함께 설거지를 해야 됐는데, 따돌림을 당해서 홀로 그 많은 식기들을 모두 씻었다. 사실 혼자서 덤터기를 씌였으면 대충 빨리 일을 끝내놓아도 될 터인데, 장금은 이 그릇으로 다른 사람들이 먹어 병에 걸릴까 염려되어 모든 식기들을 끓인 물로 소독하여 설거지했다.
사람들은 꼭 그들만의 기준으로 "대단한" 일들을 해야 대우를 해준다. 이를 테면 돈을 많이 버는 일, 명예와 권세를 누릴 수 있는 일, ... 등 사람들이 멋지다고 규정해 놓은 일들만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그 누구도 허투루 돈을 버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각자 자기가 맡은 역할을 해내야 이 세상이 돌아가는 것이다. 장금은 무슨 일을 하게 되든 그저 그 길을 걸었고, 그 길에 자신의 소명과 책임의식을 느꼈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말이다. 어차피 죽어도 아무도 모를 사람을 구해주지 않아도 된다. 죽을병이 걸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 그래도 장금은 숨이 다 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치료한다. 밥 한 끼를 차려주더라도 먹는 사람이 행복해 하는 것을 상상하며 요리를 한다.
어쩌면 대장금을 보면서 요즘 나의 삶을 되돌아 보고 있다. 내가 가진 직업이 누군가에게 폄하받지 않을지, 내 연봉이 다른 이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진 않을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의 삶을 산다면 지옥이 아닐까? 내가 현재 갖고 있는 직업에 책임감을 느끼고,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 나의 미소가 누군가에게 기쁨으로 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더라도 온 마음 다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은 작은 일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독이 될 수도, 득이 될 수도 있는 중요한 일이다. 나의 마음 하나가 세상을 좌우할 수도 있다. 나는 항상 장금이처럼 내가 가진 일에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3) 과거 - 지나온 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사랑하자
연생아, 그냥 가야할 때가 있어.
주어진 상황에 어찌할 도리 없이 그냥 가야할 때.
지금이 그런 때야.
그냥 가야해, 지금은.
그냥 두려움도 버리고 생각도 버리고.
장금이의 아버지는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먹였던 종사관이었기에 연산군 재위 시절 쫓기고 있었다. 그래서 백정 마을에서 대장장이로 살게 되었고, 장금이의 어머니는 궁녀였지만 궁녀는 아이를 가질 수 없기에 또 조용히 숨어지내는 신세였다. 장금은 우리 부모가 여기서 이렇게 일할 사람들이 아니라는걸 가슴 속 깊이 간직하며 뿌듯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백정이라고 무시받자 참을 수 없어 종사관이었다는 사실을 경솔하게 내뱉고 만 것이다. 오랜 시간동안 이 사건은 장금에 마음에 깊이 상처로 박혀 있었다. 그 이후로 함부로 입을 놀리지 않게 되었다.
한상궁과 최상궁이 최고상궁 자리를 두고 경합을 했을 때에 장금은 설렁탕을 빨리 우리는 방법을 알아냈다. 대비가 말한 경합의 주제는 백성들이 값싼 재료로 든든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었다. 금영이는 그 포인트를 알아채고 정성과 시간을 들여 설렁탕을 내어 왔다. 장금이도 똑같은 설렁탕이었지만 결국 한지를 이용해 빨리 우렸던 맛은 깊지 않았던 것이다.(장금이는 과학자가 분명하다....남자였으면 장영실 뺨쳤을 듯) 한상궁은 장금이를 그저 두고 보기만 하고 일절 잔소리 하지 않았다. 스스로 깨우치길 바랄 뿐이었지. 한상궁은 장금이를 중전의 병든 유모가 있는 곳으로 쫓겨나 병간호를 했다. 절에서 정성스럽게 식재료를 준비하는 것을 보고 본인이 얼마나 잔꾀를 부리고 있었던 것인지 깨달았다.
장금은 과거의 영광은 "라떼는 말이야~" 이러면서 떠벌리지도 않고, 과거의 실수는 되풀이하지 않는다. 과거에 있었던 인연에 대한 슬픔, 분노와 같은 마음은 잠시 유예시켜두고 자신의 현재 눈 앞에 있는 일에 집중한다. 나의 현재에 몰두하는 사람만큼 멋진 사람이 어디있을까?
인물탐구
장금의 곁에 있던 사람들
민정호
유니콘, 그 자체!
내가 누군가에게 민정호 같은 사랑은 못 받아볼 것 같지만, 적어도 나는 이런 사랑을 주려고 한다. 장금이에게 그 어떤 강요도 하지 않고, 그 제안도 하지 않는다. 그저 장금이가 가려던 길을 묵묵히 응원해주고, 혹여나 불편하지 않게 백업도 해준다.
장금이 좌절을 하면 위로를 해주고, 장금이 "대장금" 칭호를 받아 중종의 주치의가 될 때 귀향을 자처하면서까지 그녀를 지지했다. 관직까지 버리고 관비가 된 장금을 따라 제주까지 따라가고... 참나..
신분이 달랐고, 남녀가 유별했지만 민정호는 항상 장금에게 존대를 했다. 항상 존중했다. 사랑은 이렇게 하는거다.
한상궁 & 의녀 장덕
한상궁과 장덕은 장금을 최고상궁과 임금의 주치의까지 이끌어준 스승이다. 두 스승의 공통점이 있다. 장금의 재능을 질투하지 않고 어떤 품성과 재능을 갖고 있는지 지켜보고 적절한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두 사람은 성품이 강직하여 꺾이지 않는 특성이 있다. 그 강직함을 장금이가 배운 것이다.
대장금같은 드라마가 인생 드라마가 아니면 어떤 드라마가 인생드라마일까? 나는 이 작품에서 장금이가 될수도, 한상궁이 될수도, 민정호가 될 수도, 금영이가 될수도, 강덕구가 될수도, 최상궁이 될 수도 있다. 그 어떤 사람의 서사도 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드라마를 통해 나를 보게 된다. 진정한 스승을 만들어주는 드라마다.
결론 : 각자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최상궁과 금영은 그저 자신이 가야할 길을 걸어야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도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겠지. 하지만 태어나보니 최고상궁이 되어야만 하는 집안이었다. 다른 사람의 희생을 밟고 올라가 앉아야 했던 자리였다. 영로도 또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었을 것이다. 의녀 열이도 제조상궁에게 덕을 입어 최상궁 일대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의녀가 되었다. 참... 얽히고 설킨 사람 사는 이야기다.
어쩌면 장금이가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천재미, 영재미"를 뽐냈을 지언정, 결국 장금이는 그저 가야할 길을 묵묵히 걸었던 것이었다. 누구보다도 집요하게 해결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의 가야할 길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버릴 각오가 되어있었다. 오늘 이걸 하다 죽어도 나는 후회가 없다는 마음으로 살았던 것이다.
가끔 내가 일하기 싫을 때, 누군가에게 환멸을 느낄 때, 내 자신이 싫을 때가 있다. 이런 감정은 자연스러운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장금이를 떠올리면서 내 자신을 한 번 더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오늘 하루 충분히 사랑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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