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 11. 05:00ㆍ그냥, 독서로그

11장 선순환
블랙법
1723년 5월, 의회는 블랙법Black Act을 통과시켜 교수형에 처할 수 있는 이례적인 50개 죄목을 신설했다. 블랙법에 따르면 무기를 소지하고 다니는 것은 물론, 얼굴을 검게 칠하는 것도 범죄에 해당했다. 이 법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예 블랙 행위 자체를 교수형에 처할 만한 범죄로 규정하기도 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애쓰모글루·제임스 A. 로빈슨 저/최완규 역 - 밀리의 서재
얼굴을 검게 칠하고 다니는 지역 왈패들을 블랙이라고 불렀다. 귀족 지주들 입장에선 블랙들이 자신의 재산을 침해하는 왈패라고 분류되지만, 귀족들의 영토만 늘어나고, 공용지가 축소되기 때문에 일반 농민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없었기 때문에 귀족들의 땅을 침해했던 사례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즉, 블랙법은 귀족 지주를 위했던 법이었던 것이다.
블랙법의 폐지와 법치주의의 탄생
하지만 18세기 후반부터 산업화, 도시화가 되면 "사소한 범죄에 사형은 과하다"는 비판이 등장하게 되고, 형법을 완화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방향은 귀족 뿐만 아니라 다른 계층 세력들의 입장을 고려하는 다원주의, 점진적인 법치주의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더딘 민주주의의 행보
블랙법의 폐지 이후, 비엘리트층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청원이 먹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신들의 권력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시험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근데 저자는 아주 중요한 것을 지적했다. 그냥 시민들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고, 강압적으로 그들을 억압한 다음 권력을 쟁취할 수도 있었을텐데, 상인, 농민과 같은 계급의 사람들의 말을 왜 들어줬을까?
이미 영국은 명예혁명 이후에 정치・경제 제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사유재산권도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 컸겠지. 다른 유럽 국가들은 농노 제도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고, 기존 엘리트층의 재산이 너무 많아 잃을 것도 많았기 때문에 강압적인 면모를 보여주는게 유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기존 엘리트층도 딱히 잃을게 많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꽤나 비엘리트층들이 영국 내 산업활동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역할도 컸던 것 같다. 그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고, 또한 비엘리트층과 같이 힘을 모아 권력을 차지하는게 더 유리했을거란 생각이 든다. 확실히 평생 권력을 모르고 살았다면, 이렇게 영국이 발전할 수 없었을텐데.. 절대왕정의 틀을 깨부셨던게 큰 전환점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1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린 뒤 1918년, ‘인민대표법Representation of the People Act’이 통과되어 21세 이상의 모든 성인 남성과 30세 이상의 납세자 혹은 납세자와 결혼한 여성이 투표권을 갖게 되었다. 마침내 남성과 마찬가지 조건으로 모든 여성이 보통선거권을 누리게 된 것은 1928년에 이르러서였다. 1918년에 마련된 조치들은 전쟁 중에 협상한 것으로, 병력과 무기 생산 노동력이 필요했던 정부와 노동계급 사이에 이루어진 주고받기식 대타협이 반영되어 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애쓰모글루·제임스 A. 로빈슨 저/최완규 역 - 밀리의 서재
더디지만 촘촘하게 변화해온 영국의 민주주의를 알 수 있었던 대목이었다.
포용적 제도의 점진적 순환
교육제도 역시 대중이 더 다가가기 쉽게 개혁되었다. 종전에는 여러 종파가 운영하는 엘리트층을 위한 학교가 주를 이루었고, 가난한 사람에게 학비를 내게 하는 식이었다. 영국 정부는 1870년 교육법Education Act을 제정해 최초로 체계적인 보편 교육을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1891년에는 무상교육이 시행되었고, 1893년에는 의무교육 연한이 11세로 정해졌다. 1899년에는 12세로 높아졌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동을 위한 특별 지원 제도가 마련되었다. 그 결과 1870년 40퍼센트라는 실망스러운 수준이던 10세 재학생 비율이 1900년에는 100퍼센트까지 뛰었다. 그리고 마침내 1902년 교육법이 통과되어 학교에 유입되는 자원이 대폭 확충되었고 중등학교grammar school가 도입되어 훗날 영국 중등교육의 길을 닦아주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애쓰모글루·제임스 A. 로빈슨 저/최완규 역 - 밀리의 서재
와우! 영국에서는 일찍이 의무교육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었네.. 엘리트층이 비엘리트층에게 무상교육을 왜 해줬는지 알 것 같다. 일단 위협적으로 억압하기 위해선 비엘리트층이 덜 똑똑한게 나을 것이다. 하지만 머지 않아 파멸의 길로 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엘리트층들이 똑똑한 비엘리트층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며 점진적으로 나아가는게 오히려 그들의 자리를 덜 위협하고, 평화롭게 존속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더 똑똑한 인재가 많아질수록, 더 말귀를 잘 알아듣고 정세를 파악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평화로운 견고함을 유지하기 편했던 것이다.
트러스트 깨기
1870년대 부터 1900년대에 강도 귀족(Robber Barons)가 등장했는데, 이들은 남북전쟁(1865) 이후 철도, 석유, 철강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경쟁 기업을 인수・합병하고 가격을 조장하면 시장을 장악했다. 대표적인 인물은 석유의 록펠러, 철강의 카네기, 금융・철도의 모건이라 볼 수 있다. 이들은 'Trust(트러스트)'는 여러 기업의 주식을 신탁(트러스트) 형태로 묶어 하나의 거대 독점 기업처럼 운영하는 구조였다. 석유와 철도가 비밀 운임 계약을 맺어 미국 시장의 90% 장악했던 대표적인 사례들이 있다.
하지만 대중들이 입은 피해가 어마했다. 독점 이후에 소비자들은 가격이 인상됐지만, 선택권이 없기 때문에 비싼 값을 치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독점됐기 때문에, 노동자는 낮은 임금으로 장시간 노동을 해야 됐던 것이다. 그리고 이미 독점된 상태였기 때문에 노조도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 대기업의 횡포가 이렇게 심하니 소기업들은 나설 자리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이런 록펠러의 독점 행위를 폭로한 사람이 생겼고, '셔먼 반독점법'을 제정해 시장 경쟁을 보호하게 되었다.
법은 항상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늘 제정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법의 허점을 악용하는 무리들을 정부에서 개입해 막을 수 있다는게 이 사건의 가장 큰 의의였다. 대기업의 권력이 너무 세져 정부가 꼼짝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대중의 편에 서서 시장의 혼란을 잠재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법부 개혁 시도
미국의 상·하원 역시 대통령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한다면 정부체제에서 힘의 균형이 무너져 자신들도 무사하지 못할지 모르며 다원적 정치제도마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애쓰모글루·제임스 A. 로빈슨 저/최완규 역 - 밀리의 서재
루즈벨트가 대공황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미국을 뉴딜 정책으로 안정적인 시장으로 바꿔보려 애썼다. 의도는 너무 좋았으나, 기존 사법부가 워낙에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그 정책이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존 사법부의 권력을 약화시키려고 했는데, 아무리 좋은 의도로 정책을 펼친다해도 사법부까지 건드는건 대중이 원치 않았던 것이다. 적어도 무슨 일이 나더라도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법부의 역할이 민주주의에서 중요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대공황은 어느 정도 극복을 하게 되었지만, 뉴딜 정책에 대한 이슈가 경제 위기 속에서도 정체 제도가 붕괴되지 않은 포용적인 제도로 재설계 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의의다.
아르헨티나의 사례
이후 여러 차례 군사정권과 민간정부가 번갈아 들어섰지만, 군사정부든 민간정부든 법관을 입맛대로 임명했다. 그렇다고 대법원 법관 선출이 군사정권과 민간정부의 권력 이양 과정에서만 벌어진 일은 아니었다. 1990년, 아르헨티나는 마침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 간에 권력 이양이 성사되었다. 민주정부가 다른 민주정부에게 권력을 넘겨준 것이다. 하지만 이미 대법원에 관한 한 민주정부라고 해서 군사정권과 태도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애쓰모글루·제임스 A. 로빈슨 저/최완규 역 - 밀리의 서재
메넴은 대법원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자 앞서 언급한 파행을 거듭한다. 내친김에 헌법을 뜯어고쳐 재선에 도전할 수 있도록 임기 제한을 없애버렸다. 재선에 성공하자 또다시 헌법을 수정하려 했지만, 이번엔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파행을 막은 것은 아르헨티나 정치제도가 아니라 그의 독주에 맞서 싸운 페론당 내부 파벌이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애쓰모글루·제임스 A. 로빈슨 저/최완규 역 - 밀리의 서재
미국과 비슷한 사례였지만, 결국 대법원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입맛대로 바꾸는 이상한 민주주의의 시작ㅠ 그리고 독재정권 엔딩..
긍정적 피드백과 선순환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는 긍정적 순환을 되풀이하면서 선순환의 고리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어, 그런 제도가 더 오래가고 확대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가능성이 크다. 선순환은 여러 메커니즘을 통해 작동한다.
1. 다원주의 정치제도의 논리는 독재자, 정부 내 파벌, 심지어 선의의 대통령이라 해도 권력 찬탈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든다.
2. 포용적 정치제도와 포용적 경제제도는 서로 의지하며 확대되는 양상을 띠게 된다.
3. 포용적 정치제도하에서는 자유언론이 번성할 수 있고, 자유언론은 포용적 제도를 위협하는 움직임을 널리 알려 저항 세력을 부채질하는 역할을 하는 사례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