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3.09]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 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A. 로빈슨 | 10장 번영의 확산

2026. 3. 10. 10:18그냥, 독서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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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번영의 확산

호주의 길

호주는 사실 영국의 범죄자들을 집합소로 시작했던걸 언급한다. 아무리 영국이 사유재산권을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빨리 인정했다고 한들, 죄수의 사유재산권까지 인정해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호주에서 첫 민사재판에선 죄수의 사유재산권을 인정해주는 행보를 보여줬다. 그들은 죄수의 명목으로 호주에 오게 된 것이지만, 한편으론 새로운 정착민의 신분으로 왔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을 들어주게 되었나보다. 

 

죄수들끼리 서로의 물건이나 음식을 훔치는 행위를 통해 죄수의 사유재산권을 어디까지 인정해줬는지 알 수 있었다. 죄수끼리의 절도는 도낀개낀으로 무시하는게 아니라 추가적으로 절도죄로 인정받게 되는 것을 호주에서 보여줬다. 

 

죄수에게 경제적 자유를

충분한 원주민도 살지 않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 죄수들은 중요한 노동 인력이었다. 처음에 인센티브는 커녕, 그냥 음식만 조금 나눠주고 일을 안 하면 매질을 했더니, 호주에서 서로 살아갈만한 인프라의 발달이 너무 느려지는 것이다. 그리고 돈이 있어야 재료도 수입하고, 좀 더 발달할텐데 인력이라곤 죄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죄수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면서 일을 시켰더니 꽤나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 간수들은 처음에 이런 상황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했는데, 죄수들이 일을 열심히 해서 생산력을 높일수록 간부가 큰 돈을 만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때 당시 그들은 럼주 사업을 하고 있었다. 

 

'바스티 호의 반란' 이후, 전직 군인 맥아더는 다시 호주로 돌아와 양모 사업을 시작했다. 죄수들을 고용했고, 죄수들이 형기를 마치고 나면 땅도 주고, 권리도 주기 시작했다. 

 

대의제도에 대한 요구

하지만 호주의 땅 주인은 영국 소유의 땅이었으니(불쌍한 원주민들....), 호주 땅 위에서 양모 사업을 하는게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남의 땅의 풀을 양들에게 먹이면서 벌인 사업이었으니 말이다. 근데 영국에서도 너무 완강하게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미국처럼 독립하겠다고 들고 일어설수도 있으니 말이다. 

 

미국은 포용적 제도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영국의 식민 지배를 떨쳐버려야 했다. 잉글랜드에서는 오랜 역사를 거치며 깊이 뿌리박힌 절대주의 왕정을 제거하려면 혁명이 필요했다. 미국과 호주에서는 그런 장애물이 없었다. 메릴랜드의 볼티모어 경이나 뉴사우스웨일스의 존 맥아더가 그런 역할을 열망했을지는 모르지만, 이들의 야망이 결실을 볼 만큼 확고하게 사회를 장악하지 못했다. 미국과 호주에서 포용적 제도가 뿌리내렸다는 것은 두 나라에 산업혁명이 빠르게 확산되어 부가 쌓이기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캐나다와 뉴질랜드 등 다른 식민지 역시 두 나라의 길을 따랐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애쓰모글루·제임스 A. 로빈슨 저/최완규 역 - 밀리의 서재

 

어쨌든 영국에서는 절대왕정이라는 장애물을 뛰어넘기 위해 혁명이 필요했지만, 미국과 호주에서는 영국의 지배만 이겨내면 됐던 것이었다. 근데 미국/호주로 이민 간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영국에서 사유재산권을 인정받고 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어떻게하면 돈을 굴릴 수 있을지에 대한 감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척박한 땅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스페인이 식민 지배를 했던 멕시코 같은 지역에서는 원주민도 많았고, 금은보화가 넘쳐났기 때문에 착취적인 행보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버지니아 주나 호주 같은 곳은 아무래도 금은 보화는 없기 때문에, 노동력을 활용해서 어떤 산업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아마 미국과 호주도 금은보화가 넘쳐났다면, 영국이 가만 놔뒀을리가 없다...

장애물을 무너뜨린 프랑스혁명

동산과 부동산을 가리지 않고 세금과 관련한 금전적 특혜는 영구히 폐지된다. 온 시민이 모든 재산에 대해 세금을 납부하여야 하며 그 방법과 형식에 차등을 두지 않는다. 모든 시민이 균등하게 세금을 납부하도록 하는 계획을 검토해야 하며, 올해 남은 여섯 달도 예외로 인정하지 않는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애쓰모글루·제임스 A. 로빈슨 저/최완규 역 - 밀리의 서재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다른 나라들이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도 있지만, 프랑스 혁명도 다른 나라, 특히 영국의 산업화를 보다 빵 터지게 된 결과라고도 한다. 또한, 프랑스의 정부가 급격히 가난하게 됐던 것도 프랑스 혁명의 원인 중 하나라고 한다.

 

혁명의 수출

유덴가세는 끔찍할 정도로 비좁았다. 길이 400여 미터에 폭도 3.7미터 정도에 불과했고, 폭이 겨우 3미터밖에 안 되는 지역도 있었다. 유대인은 끊임없는 박해와 규제 속에서 살았다. 매년 거주가 신규로 허용되는 가족은 기껏해야 둘이었고, 결혼도 최대 열두 쌍을 넘지 못했는데 그마저도, 신랑 신부가 모두 스물다섯 살이 넘어야 가능했다. 유대인은 농사를 짓지도 못했다. 무기, 향신료, 포도주, 곡물을 거래할 수도 없었다. 1726년까지는 확연히 눈에 띄는 표식을 지니고 다녀야 했는데, 남자는 두 개의 노란색 원형 고리를 옷에 달았고, 여자는 줄무늬 베일을 썼다. 또 온 유대인이 특별 인두세를 납부해야 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애쓰모글루·제임스 A. 로빈슨 저/최완규 역 - 밀리의 서재

 

유대인이 저 정도로 오랜 시간동안 박해를 받았다는게 약간 충격이다. 근데 한편으로는 유대인의 남다른 종교의식 때문에 어느정도 서로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든다. 세상의 왕따가 유대인이 아니라, 유대인이 알고 보면 세상을 왕따시킨걸수도 있으니.. 쩝스

 

1791년 프랑스 국민의회는 프랑스 유대인을 해방시켰다. 프랑스 군대가 라인란트Rhineland에 진주하던 터라 독일 서부의 유대인도 덩달아 해방되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애쓰모글루·제임스 A. 로빈슨 저/최완규 역 - 밀리의 서재

 

이렇게 유대인의 자유를 인정해주는 프랑스의 혁명이 옆 나라 독일에도 전파가 되었다는데... 히틀러 이 사람이 다 망쳤네;;

 

근데 나폴레옹이 은근 유럽 혁명의 시발점같이 느껴진다. 영국은 영국 자체 내에서 포용적인 경제체제를 만들어갔지만,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영토를 정복할 때마다 만인이 평등하다는 나폴레옹 법전을 공포했다고 한다. 이로써 프랑스가 물러간 뒤에도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봉건질서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물론, 피바람이 불긴 했지만 그동안 착취당했던 설움이 폭발하는 시기가 되기도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몇몇 나라(폴란드, 에스파냐)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 신세였다고 한다.

 

서로 다른 길을 간 일본과 중국

이처럼 초반의 제도적 차이 때문에 양국은 19세기에 직면한 도전에 서로 다르게 대응했다. 산업혁명이 가져다준 결정적 분기점을 맞아 일본과 중국은 서로 크게 엇갈린 길을 가게 된 것이다. 제도를 개혁한 일본의 경제는 고속 성장의 길로 들어섰지만, 중국은 제도적 변화를 꾀하는 세력이 그만큼 강하지 못해 착취적 제도가 대체로 고스란히 존속하다 1949년 마오쩌둥의 공산혁명을 계기로 개악改惡의 길을 걷게 된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애쓰모글루·제임스 A. 로빈슨 저/최완규 역 - 밀리의 서재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도대체 일본이 서구문명과 어떤 접점이 있었길래, 그들의 근황들을 잘 알 수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챗지피티를 찾아보면 꽤 오랜 시간동안 네덜란드와 서로 무역을 하면서, 해외정세를 들었다고 한다.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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