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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책

테드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4) 당신 인생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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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할 지 모를 정도로 원작 소설은 완벽했다. 심지어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알고 싶고, 여운이 남는 것 같다. 이 영화를 도저히 원작 소설 하나로 감당할 수 없어서 영화 <컨택트>를 찾아서 봤다. 원작을 다룬 영화가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함을 느꼈다. 소설로 이해했던 부분들과 영화는 아주 조금 다르게 해석했지만 거의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 또 감사했을 정도! 하.. 이 명작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써야할 지 모르겠다. 

# 줄거리 진행 방향

1. 햅타포드이야기

 어느 날 언어학자인 루이스의 사무실에 어떤 손님들이 찾아왔다. 한 명은 대령, 다른 한 명은 물리학자. 갑자기 외계인들이 지구의 착륙하여 그들이 어떤 이유로 온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루이스에게 외계인의 언어 번역을 의뢰한다. 주인공은 외계인들이 착륙한 지역의 캠프로 가서 외계인의 언어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외계인들을 햅타포드(7개의 발이라는 라틴어)로 이름을 정하고, 그들의 음성언어는 햅타포드A, 그들의 문자언어는 햅타포드B라고 정했다. 그들의 정체와 지구에 온 목적을 알기 위해 그들에게 언어를 가르친다. 

 루이스는 지구의 언어를 가르치면서 동시에 햅타포드A와 햅타포드B를 연구하여 공부했다. 햅타포드B를 공부하면서 그녀는 미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그녀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은 아직 존재도 모르는 자신의 딸과 함께 했던 인생들이다. 그녀는 그녀가 존재하는 미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햅타포드는 지구에 온 목적을 알려주지 않은 채 지구를 떠났다. 

2. 루이스가 본 미래

 루이스의 미래는 뒤죽박죽이다. 루이스 인생의 두 번째로 중요했던 전화로 그녀의 딸이 죽었다는 것을 알렸다. 그 때 그녀의 나이 25살이었다. 루이스는 딸에게 집안일을 시키기도 하고, 딸과 함께 열심히 등산을 하기도 하고, 그녀를 혼내기도 했다. 미래의 루이스도 그녀의 딸이 이른 나이에 죽을 것을 이미 예상했지만, 여느 엄마들과 똑같이 그녀의 딸을 키웠다. 그녀는 남편과 이혼을 하고, 몇 년 뒤 넬슨이라는 남자와 한적한 시골에서 산다. 

 

# 시작과 끝

<시작>

 네 아버지가 지금 내게 어떤 질문을 하려고 해. 이것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고, 나는 온 정신을 집중해서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억에 새겨두려고 하고 있지. 그이와 나는 밖에서 디녀쇼를 보고 방금 돌아온 참이란다. 자정을 넘은 시각, 우리는 보름달을 보기 위해 파티오에 나와 있어. 춤을 추고 싶다고 네 아버지에게 말하자 그이는 쾌히 응했고, 그래서 지금 우리는 서로를 껴안고 춤을 추고 있어. 달빛 아래에서, 십대들처럼, 삼십대의 남녀가 앞뒤로 천천히 몸을 흔들면서. 밤의 한기는 전혀 느끼지 않아. 이윽고 네 아빠는 이렇게 말해. "아이를 가지고 싶어?"

<끝>

 나는 처음부터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에 상응하는 경로를 골랐어. 하지만 나는 환희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아니면 고통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내가 달성하게 될 것은 최소화일까, 아니면 최대화일까? 
 이런 의문들이 내 머리에 떠오를 때, 네 아버지가 내게 이렇게 물어. 
 "아이를 가지고 싶어?" 그러면 나는 미소 짓고 "응"이라고 대답하지. 나는 내 허리를 두른 그의 팔을 떼어내고, 우리는 손을 마주잡고 안으로 들어가. 사랑을 나누고, 너를 가지기 위해. 

 

 이 책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3번을 본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100% 이해했다고 보기 어렵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안의 온 세포가 감동받았다는 것은 팩트다. 작품의 끝과 시작은 같은 장소이고, 이 작품에서 은근히 강조하고 있는 인과관계에 부합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에 시작에서 이미 뒤의 반전을 예고했다고 볼 수 있다. 

 <시작>에서 어떤 질문을 하려고 하는 것은, <끝>에서 "아이를 가지고 싶어?"라는 것이다. <시작>에서 모든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는지 알고 있었고, <끝>에서는 모든 이야기의 결말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주인공은 모든 미래를 알면서도 그것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그녀의 딸 혹은 누군가의 인생이 담긴 이야기의 결말, 즉 목적지까지 가는 그녀의 인생이 고통일지, 환희일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그 여정을 시작하려고 한다. 

 

# 세월의 숲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세월의 책>은 틀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책의 시나리오는 어떤 사람이 가능한 미래가 아닌 실제의 미래에 관한 지식을 제공받는다는 전제에 입각해 있다. 이것이 고대 그리스 비극이었다는 운명을 회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반 사정에 의해 결국 그 운명에 따라 행동한다는 식으로 얘기가 흘러갈 것이다. 어차피 그리스 신화의 예언은 모호하기로 악명이 높다. 이에 비해 <세월의 책>은 극히 명확하고, 책에 명시된 식으로 그녀가 경주마에 돈을 걸도록 강요할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모순이 생겨난다. <세월의 책>은 절대 옳아야 한다. 그러나 이 책이 뭐라든지 그녀는 그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이 두 가지 사실을 양립시킬 수 있을까?
 양립할 수 없다,가 통상적인 대답이다. <세월의 책>은 논리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 존재 자체가 위에서 언급한 모순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중략)
 자유의지의 존재는 우리가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는 직접적인 경험에 의해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의지란 의식의 본질적인 일부인 것이다. 

 이 책에서 언급한 <세월의 숲>은 미래를 바꿀 수 없는 실제 미래를 알려주는 책이다.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은 내가 무슨 일을 해도 나비효과로 벌어질 일을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래를 안다는 것은 쓰여진 방향대로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세월의 책>은 바꿀 수 없는 고정된 미래라고 볼 수 있지? 아마 이 부분을 테드 창이 꼽은 것 같다. 

 <세월의 숲>을 바탕으로 말하자면, 루이스는 모든 미래의 내용을 세세하게 알고 있었다. 햅타포드와 두 번째 선물 교환식을 할 때, 그녀는 이 대면이 마지막일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웨버 대령(루이스에게 외계인의 언어를 번역하라는 임무를 준 사람)에게 마지막일거라는 예언을 절대 하지 않고, 햅타포드의 말을 번역해주는 일만 했다. 그리고 햅타포드를 떠나 보냈다. 루이스는 그녀가 보았던 미래 그대로 수행하였다. 

 어느 날은 물리학자 게리와 함께 장보러 나갔는데, 그가 어느 샐러드볼을 보고 멋지다며 그것을 샀다. 샐러드볼을 사는 순간 루이스는 먼 훗 날 그 샐러드볼에 머리를 맞아 몇 바늘 꿰맸던 그녀의 딸이 보였다. 루이스는 그녀의 딸이 다칠 것을 뻔히 알았지만, 샐러드볼을 사는 것을 막지 않았다. 루이스는 그녀의 미래를 모두 알고 있었지만,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녀의 미래대로 수행하고 있었다. 

 한 편, 그녀의 미래대로 수행했지만, 그녀의 미래 설계 안에서도 루이스는 그녀의 죽음을 염두해두고 있었다. 그녀의 딸은 등산하다가 죽게 됐는데, 죽게 된 이유와 시체를 본 이후 딸을 등에 업고 산을 오르는 악몽을 수도 없이 꾸게 된다. 그녀의 딸은 어릴 때부터 어딘가에 오르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녀를 조금 더 안전하게 어딘가로 오르게끔 항상 일러주고 도와주고 같이 하였다. 

 

# 페르마의 원리

 "당싱은 빛의 굴절을 인과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데만 익숙해 있어. 수면에 도달하는 것은 원인이고, 그 방향이 바뀌는 것은 결과라는 식이지. 페르마의 원리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는 건 빛의 행동을 목표 지향적인 표현을 써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야. 마치 광선에 대한 게명의 느낌이랄까. '네 목표로 갈 때는 도달 시간을 최소화하거나 최대화할지어다' 하는 식으로 말이야."
 '작용'이나 적분에 의해 정의되는 다른 것들처럼 햅타포드들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물리적 속성들은 일정한 시간이 경과해야만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목적론적인 사건 해석으로 이어진다. 사건을 일정 기간에 걸쳐 바라봄으로써 만족시켜야 할 조건, 최소화나 최대화라는 목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가장 처음과 가장 마지막의 상태를 알아야 한다. 원인이 시작되기 전에 결과에 관한 지식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서서히 이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페르마의 원리

 사실상 웨버 대령이 알고 싶은 것은 '그들이 왜 지구에 왔는지', 물리학자 게리가 알고 싶은 것은 '그 쪽 세상의 수학과 과학'이었다. 그래서 언어학자인 루이스의 언어 번역이 시급했던 것이었다. 어느날 물리학자인 게리는 햅타포드와 페르마의 원리에 대해 대화했다. 루이스는 처음 게리의 말을 들었을 때, 도저히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중국집에서 그가 다시 해준 말을 들어보니 이치를 알게 되었다. 

 아무리 빛의 반사와 굴절을 통해 최소가 되는 경로를 찾는 이론이라지만, 시작점과 끝점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거리를 측정할 수가 없다. 목적지가 없으면 최단거리, 최장거리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루이스는 무엇을 서서히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위의 #세월의 숲에 대해 말했을 때, 루이스는 절대 미래를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고, 주어진 방향대로 그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시작과 끝의 <시작>에서 루이스는 모든 것을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세세하게 기억할 것이라고 한다. 도대체 왜?

 그렇게 주어진 길대로 가는 길은 가장 빠른길, 그녀의 딸을 만날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고, 지켜볼 수 있는 지름길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주어진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다면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녀를 더 빨리 잃을 수도 있고, 못 만날 수도 있다. 명확하게 명시된 그녀의 세월의 책을 따르는 자유의지를 행했던 것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주인공은 자살 시도를 했던 동생을 막기 위해 시간을 되돌렸다가 그녀의 딸이 아들로 바껴서 충격받았다. 그래서 그는 다시 그녀의 동생의 자살 시도 후로 돌아가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동생의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주었다. 이처럼 나의 작은 행동 하나가 모든 것을 변형할 수 있기 때문에, 루이스는 안내서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 영화 '컨택트(Arrival)'은?

-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

 영화는 외계인의 등장으로 어수선해진 세계를 보여준다. 그래서 총 12개국의 12대의 UFO가 왔기 때문에 전세계가 혼란스러워 졌다. 전세계는 외계인들이 왜 왔는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집중하게 되었다. 언어학 교수 루이스에게 의뢰를 하게 된다. 책에서는 오로지 외계인의 등장, 언어를 해석해 나가는 과정, 미래 이야기에 집중을 하는데, 영화는 같은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해석해서 관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전반적으로 같은 내용이지만, 차이는 영화 <컨택트>는 인물과 사건의 개연성에 집중하였고,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메세지에 집중했던 것 같다. 그래서 소설을 읽었을 때, 상상이 더 필요했던 부분을 영화에서 채워주고, 영화에서 표현했던 햅타포드의 메시지를 좀 더 과학적 철학으로 표현해준 것은 책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영화가 정말 재미있었고, 외계언어를 표현하는 방식도 흥미로웠다.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었더라면 책이 분명 흥미가 안 생겼을 것 같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본 것이 참 다행이다. 

 

- 추가, 게리와 루이즈의 헤어진 이유

 위에 말했듯, 반전이라면 반전이겠지만 게리(영화에서는 '이안')는 루이스의 미래 남편이다. 책을 읽을 때, 게리와 소설 전반적으로 애틋했는데, 왜 미래엔 아이를 낳고 이혼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혼한 이유를 알려주지 않아서 나는 테드 창은 초현실 로맨티스트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사랑을 하고, 정이 생겼어도, 이혼할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저렇게 쓴건가? 했다. 그런데 감독은 더 개연성있게 이혼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모든 미래를 알고 있는 루이스는 딸이 25살에 죽을 것을 알면서도 게리와 끝내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았다. 아마 남편이었던 게리는 그 모든 것이 이질적으로 혹은 배신감을 느껴졌을 수도 있다. 미래를 알고 있는 아내가 불편했을 수도 있고, 어차피 일찍 죽을 딸을 굳이 낳아서 디데이까지 카운트다운해야 하는 삶도 싫었을 것이다. 

 

- 햅타포드가 의미한 선물

 다른 건 모르겠고, 햅타포드가 주인공 루이스에게 준 선물은 알겠다. 외계인의 등장이 그녀의 인생에서 중요한 이유는 남편을 만나서 딸이 낳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언어를 배움으로 미래를 볼 수 있었던 점. 

 영화에서 선물은 지구의 도움이 필요해서 왔는데 지구인들이 햅타포드 언어를 배우면 미래를 알게 되어 3000년뒤 도와줄 수 있다. 더군다나 언어를 알게 됐으면 말도 통할테니 더더욱 돕겠지. 책에서 선물은... 선물교환식을 치뤘지만, 햅타포드도 스크린으로 차례대로 이미지를 나타내었다. 마지막 교환식엔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내지도 못한채 그냥 가버렸다. 심지어 왜 왔는지 여전히 알아낼 수 없었다. 

 

 이 책과 영화는 철학과 과학이 공존하는 명작 중의 명작이라고 한다. 솔직히 다른 책과는 비교할 수 없는데(읽은 책이 많이 없어서...), 영화로 따지자면 베스트 명작 중에 들어가는 작품이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보기 전, 총 8편의 단편 중 4번째에 속하는 이 소설이 기대가 되면서도, 영화도 상을 많이 받은 유명한 명작이라는데 나의 기대치에 못 미치게 될까 두렵기도 했다. 이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다른 작품을 읽고 이런 느낌을 다시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책에서는 미래를 볼 수 있어도 미래를 바꾸지 않는 희한한 전개를 하고 있다. 그 희한한 전개가 가장 말이 되며 가장 여운이 남아 미쳐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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