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 아름다워서 사랑하는 것이 아닌, 사랑하니 아름답게 보이는 것(⭐️스포주의⭐️)

2025. 5. 1. 12:57그냥,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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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교보문고

 

실은 인간은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거야. 
사랑받지 못하면 살 수 없는 거라구. 
어쩔 수 없이, 끊임없이 영리활동을 하면서도 사랑을 하는 기분, 사랑을 받는 기분... 
같은 걸 느끼고도 싶은 거야. 
인간의 딜레마지.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중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 대해서

 작가가 된 어느 남성이 열아홉 살 자신이 사랑했던 그녀를 회상하며 쓰는 에세이 형식이다. 주인공의 이름과 그가 사랑했던 그녀의 이름은 이 소설에 언급되지 않을 뿐더러 다른 인물들 역시 이름이 없다. 오직 두 사람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던 '요한'만이 이름을 갖고 있다.

 남자의 아버지는 인기가 많은 배우였다. 무명 배우일 때, 아내를 만나 자식(주인공)을 얻게 되어있지만 결국 수퍼스타가 되자마자 자신의 조강지처와 아이를 버리고 아름다운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 예쁘지 않은 엄마는 아빠를 잡을 수 없었고, 그냥 무력하게 술을 퍼마시며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부터 였을까? 어느 날 백화점 알바 자리가 생겨 일을 시작했는데, 어느 못생긴 여자가 자꾸 눈에 밟혔다. 그녀가 무거운 박스를 들면 말없이 도와주고 싶었다. 옆에서 지켜본 매니저 요한은 그에게 충고를 했다. 어설프게 시작할거면, 그 여자는 크게 상처를 입을 수 있으니 시작하지도 말라고.

 주인공, 요한, 못생긴 그녀를 중심으로 쓰여진 절절한 사랑이 담긴 소설이었다. (스포주의) 마지막에 큰 반전이 있지만, 주인공이 그녀를 회상하며 써내려간 절절한 사랑에 대한 사색이 너무 슬프고 아련했다. 

 아, 이 작가는 문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편이다... <눈 먼 자들의 도시>의 주제 사라마구가 떠오를 만큼 집중력이 필요하다... 어이없는데서 단어를 끊고, 새로운 문단에서 그 호흡을 이어간다. 한 번은 내가 직접 입으로 낭독하면서 읽어 봤다. 뭔가 말하듯이, 생각하듯이, 뜸들이듯이, 멈칫하듯이 나도 그 감정의 선을 따라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집중이 안됐지만, 결국 그 호흡에 매료되어 버렸다. 


그와 그녀가 말하는 사랑은?

외모 컴플렉스, 주변 사람들의 평판, 사회적 위치.. 등 모든 것을 뛰어 넘는 이해와 포용이 넘치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자기최면이라도 하듯 이건 연애야, 그래서 우린 결혼한 거야 라고 다들 믿는 게 아닐까 싶어. 그러고는 사랑이 식었다는 둥, 환상이 깨졌다는 둥... 애당초 동기가 된 영리활동에 대해선 끝까지 부정하면서 말이야. 즉 세월이 흐를수록 남자 입장에선 돈만 벌어다주면 되는 거잖아, 난 돈 버는 기계인가... 의 자각이 생길 수밖에 없는 거잖아. 그런 당연한 일을 왜 서운하게 생각하냐는 거지. 즉 매우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그런 착각이나 포장을 버리지 않는 습성이 인간에겐 있다는 생각이야. 즉 투명하게 생각한다면 대부분의 결혼생활에 사랑이 없는 건 매우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어. 그러니까 정말 서로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인간도 실은 지극히 희귀하다는 얘기지. 재벌의 수만큼이나... 혹은 권력을 쥔 인간들, 또 스크린을 장악한 스타의 수만큼이나 희귀하다는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착각하고 포장을 일삼는 이유도 마찬가지지. 실은 인간은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거야. 사랑받지 못하면 살 수 없는 거라구. 어쩔 수 없이, 끊임없이 영리활동을 하면서도 사랑을 하는 기분, 사랑을 받는 기분... 같은 걸 느끼고도 싶은 거야. 인간의 딜레마지. 그러니까 언니들한테 얘길 해. 언니들은 그냥 그렇게 살면 되는 거라고. 남자들이 다 똑같은 게 아니라

함께, 똑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라고 - 와 같은 얘길 늘어놓아 군만두를 아연실색케 하는 것이다. 너 진~짜 이상한 애다, 하면서도 군만두는 괴로운 표정을 지었고..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 밀리의 서재

 '군만두'라는 예쁜 여자 동료는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주인공을 꼬시려 계속 옆에서 치근덕댔다. 잘 보일 생각이 없는 주인공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에 대한 모순을 지적한다. 남자는 얼추 괜찮은 외모를 가진 여자를, 여자는 얼추 괜찮은 능력을 가진 남자를 대상으로 자신과 결혼할만한지 판단을 한다. 그리고 결혼을 한 뒤, 자신이 충분히 사랑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 점검을 한다. (필자에 따르자면) 이미 계산 들어간 사랑이라면,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는데 자신들은 그것이 사랑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즉, 진정한 사랑을 통해 결혼을 한 사람들은 운이 좋다고 말한다. 

결혼을 하고 살아가는 많은 이웃들을 보아왔고, 외면하고 싶은 그들의 현실을 볼 수밖에 없는 삶이었어요. 지지고 볶는다는 ‐ 한 줄의 표현처럼 그러기 마련인 것이 삶이라 믿고 있습니다. 또 그것이 당연하다 생각하고 있어요. 피곤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후회하는... 그런 삶 속에 당신이 함께한다는 것은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일입니다. 걱정 마라, 세월이 흐르면 다 짝이 나타나는 거란다.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엄마의 위로처럼, 그런 삶을 함께할 남자라면 정말 누구라도 괜찮은 게 아닐런지요. 아니, 끝끝내 외로운 여자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 해도 저는 당신을... 그런, 당신의 기억을 지켜내고 싶은 것입니다.

못생긴 그녀 또한 결혼을 믿지 않는다. 처음에는 사랑이라는 마음으로 결혼까지 이르렀을지 모르겠지만, 결국 그 사랑은 오래가지 못하고 결혼을 하게 되면, 서로를 미워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온전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그를 훼손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와 이별을 택했던 것이다. 

 그녀가 결혼을 부정했던 이유는, 자신의 외모가 이 세상에서 온전한 존재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없는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있다. 그리고 아무 조건없이 사랑을 받았던 순간이 흔치 않을거라 짐작했기 때문에, 사랑해준 존재인 그를 훼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차곡 차곡 쌓아온 상처가 깊었기 때문에 이렇게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 방어를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는 그녀의 이런 마음을 알고 있기에, 결혼하는 사람들과 평가 받기 위해 준비된 사람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그녀를 위로하는 것이다. 이 세상이 말하는 '정상' 범주 안에 들어있는 사람들이 그를 벗어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는 냉소를 떠나 비난까지 한다.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그녀를 보호했다. 그는 이게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낭만을 언제부턴가 그리워했나?

지금 현재의 나의 감각들이 미래엔 낭만처럼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과거를 회상할 때, '그 땐 그랬지.'라며 그 날의 낭만을 그리워한다. 

언젠가 꼭 저곳을 가보겠다 생각을 하면서도 졸업을 할 때까지, 또 직장을 다니면서도 시간을 낼 수가 없었어요. 아니, 시간보다는... 제가 이곳을 오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부터 잊고 있었단 느낌이에요.  고궁(古宮)을 거닐며 그녀는 얘기했다. 11월의 어느 날이었고, 어느 한가한 도서관을 열 배는 확장시켜 놓은 느낌의 크고, 적막한 고궁이었다. 가고 싶은 곳 없어요? 아마도 전날 밤, 그렇게 물었던 기억과... 한참을 생각한 끝에 고궁이요, 답하던 그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마도 그것이 우리의 첫 데이트였을 것이다. 그냥... 와보지 그랬어요? 먼 거리도 아닐 텐데. 그저 말없이 웃을 뿐이었지만, 훗날 언젠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중풍을 앓는 아버지와 어린 동생, 행상을 하는 어머니... 어떤 묘사를 하지 않아도 세상의 가혹함은 빛을 발하는 법이었다. 나열되는 몇 개의 단어만으로도 그녀가 고궁을 찾지 못한 수백 가지의 이유를 나는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런 사실을 모른 채, 하지만 그 순간은 서로를 뒤덮은 젊음의 빛만을 보았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이렇게 왔잖아요. 오히려 한 번도 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봄이나... 가을의 고궁을 보았다면 지금의 이 풍경에 실망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좋아요. 지금도 좋고... 앞으로는 계속 더 아름다운 고궁을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런, 그녀와  그저 떠돌듯 아무것도 없는 고궁의 뜰을 거닐고 또 거닐었었다. 눈이라도 내리는 한겨울이 아니었고, 잎이라도 남아 있는 늦가을도 아니었다. 차라리 밤 풍경이 더 운치가 있지 않을까 싶을 만큼, 11월의 고궁은 쓸쓸하고 공허했다.

그와 그녀는 봄날에 단 둘이서 고궁을 함께 걸었다. 그녀는 서울 근처에 자취를 했지만, 고궁을 걷는 여유가 없는 환경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세상이 그녀에게 주는 따가운 눈초리들이 너무 아파 차마 나갈 수 없기도 했다. 

예전에 나는 좋아하는 길이 있었고, 사색을 즐기던 시절이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효율과 실용을 따지게 된 바람에 사색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이렇게 자연을 거닐며 좋아하는 사람과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를 주고 받은게 언젠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둘이 고궁을 거닐었던 장면을 상상하면, 내가 사랑했던 순간들이 회상되었다. 나는 이 장면이 그렇게 아름다웠다. 나는 이 장면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행복한 지난 추억 회상으로 하루가 채워졌는지 모르겠다. 

(스포주의)인생 공부할 땐, 요한에게 집중하자

세계라는 건 말이야, 결국 개인의 경험치야. 평생을 지하에서 근무한 인간에겐 지하가 곧 세계의 전부가 되는 거지. 그러니까 산다는 게 이런 거라는 둥, 다들 이렇게 살잖아... 그 따위 소릴 해선 안 되는 거라구. 너의 세계는 고작 너라는 인간의 경험일 뿐이야. 아무도 너처럼 살지 않고, 누구도 똑같이 살 순 없어. 그딴 소릴 지껄이는 순간부터 인생은 맛이 가는 거라구. 이하동문이라고

 오직 한 사람의 이름만 언급이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요한'. 그는 이 책에서 19살 청춘들의 사랑을 이어주는 큐피트 역할이자, 인생의 조언자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다독가였기 때문에, 읽은 책도 많고 그만의 철학도 있었다. 너무 아는 것이 많아서 자살 시도까지 했던 요한. 

 근데 알고보니 나중에 반전은, 요한이 이 모든 이야기를 지어난 필자였던 것이다. 사실 거의 사실 기반의 이야기지만, 주인공은 불의의 사고로 인해 죽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요한과 같이 서로 살기 위해 위로하다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게 작품 중간에 '사랑 없는 결혼'을 읊어대더니, 그들은 그런 결혼을 한 것이다. 그리고 요한은 주인공을 기리기 위해 이 사랑이야기를 써내려온 것이고. 요한은 그와 그녀가 진심으로 함께이길 바랐던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그려주고 싶었다. 

 요한이 갖고 있는 철학들은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따뜻함도 있고, 깊게 분석하는 냉철함도 갖고 있었다. 어쩌면 주인공의 이야기를 넘어 요한의 이야기를 넘어 작가 박민규의 생각이었겠지? 

 처음엔 집중하기 어려웠지만 나름 마음이 아려왔던 슬픈 사랑이야기였다. 역시 인간은 사랑하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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