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영, <고래눈이 내리다> | 세계의 멸망 정도가 아니면 독자를 붙잡을 수 없어...

2025. 7. 30. 11:00그냥,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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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교보문고

 

 

 

김보영 작가의 두 번째 책 <고래눈이 내리다>,

사실 <7인의 집행관>에서 작가의 필력과 흡입력, 몰입감은 인정한 바가 있다.

하지만 나도 이제 슬슬 소설을 읽는 독자로서 살짝 자칭 고인물이 되어가려는 찰나,

김보영 작가가 여전히 생경한건 어쩌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처량한 우리의 현실과 애환을 낱낱이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려는 슬픔이 없어서 좋고,

이 분의 유머 약간 내 취향이라 좋고,

정말 현실과 공상 과학(혹은 판타지) 그 사이에서 실제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뤄서 더 흥미진진하달까?

 

개인적인 후기

  • 고래눈이 내리다 
  • 저예산 프로젝트 ⭐️
  • 너럭바위를 바라보다 
  • 껍데기뿐이라도 좋으니 ⭐️
  • 느슨하게 동일한 그대 ⭐️
  • 까마귀가 날아들다 ⭐️
  • 새벽 기차
  • 귀신 숲이 내리다
  • 봄으로 가는 문

⭐️ 표시한 단편이 약간 내 취향이었다ㅋㅋㅋ

 

고래눈이 내리다

 

“맹독이든, 병균이든, 슬픔이든, 아픔이든, 여기에서는 모두 같아. 모두가 아름다운 눈송이가 되지. 은혜로운 양식이자 생명의 기쁨이 되지. 이 아래에서는 모두가 다 같아지지.”

"고래눈이 내리다"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1168342881

 

심해에 사는 물고기들은 눈발이 짙어 고래눈이 내리는 줄 알았다. 죽고 나서 남은 잔해물들이 심해에 눈처럼 내리는데, 이 곳에 사는 생명체들에겐 축제나 다름 없을 정도로 먹을 것이 많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인간들이 수도 없이 죽어 남은 인간의 잔해물이 눈처럼 내리는 것이었다.

 

인간들은 유독물을 매일 수천 톤씩 배설해 대양에 버리기 때문에, 수면에 가까이 사는 윗동네 물고기들은 전염병에 걸리기도 하고 산호처럼 귀한 목숨들이 사라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이 만든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인해 수온이 상승해버리는 바람에 태풍이 멈추질 않는다. (태풍은 뜨거운 바다에서 증발한 수증기를 먹고 자란다. 바닷물이 따뜻하면 따뜻할수록 태풍은 더 강해지고 오래 지속된다. 바닷물이 차가우면 수증기가 잘 증말하지 않아 태풍을 쉬게 해준다.) 이들은 인간이 혼자만 지구 쓰는 것처럼 횡포를 부렸는데도 세상이 오래 버텨줬다며 한편으로는 시원하게 여긴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을 기도해준다. 심해에 내려올 때는 고래도, 쓰레기도, 인간도 모두 같은 눈발로 내리기 때문이다.

 

<고래눈이 내리다>라는 글을 처음에 읽고 최근에 읽은 <문명의 붕괴>가 자꾸 생각났다. 인간이 지구의 빌런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유로 지구에 있는 자원들을 고갈시키고, 서식지∙삼림∙생태 피라미드를 파괴하는 등 민폐만 끼치고 있다. 오래 전에 공룡이 멸종되었던 것처럼 인간도 최강 포식자로서 멸종될 수도 있다. 인간이 공룡이 멸종됐다고 해서 슬퍼하고 안타까워 하지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처럼, 남은 동식물들도 인간의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단편인 것 같다. 

 

 

 

저예산 프로젝트

“우리 인생도 선택으로 가득해. 하지만 그래봤자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왜냐하면 어차피 평생 갈 수 있는 길이 하나뿐이라면 결국 안전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 영웅적인 선택도 바보스러운 선택도 할 수가 없어. 원하지 않는 길을 어쩔 수 없이 가야 한다고. 그렇게 우리는 다 자신의 인생에서 소외되는 거야……. 하지만 게임은 그렇지 않아. 선택지가 나타났을 때 알게 되는 거야. ‘나는 저 모든 길을 다 갈 수 있겠구나.’ 세계의 이면을 다 보고, 모든 가능성의 경로와 결과를 다 볼 수 있겠구나……. 그걸 알게 되는 순간 내 게임을 하는 사람은 세계의 주인공이 되는 거야. 그게 바로 게임이야. 그게 진짜 게임 시나리오라고.”

"고래눈이 내리다"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1168342881

 

위의 고래눈이 내리다를 읽다가.. 아, 이 작가는 앞으로 이런 식으로 쓰려나..하면서 괜히 책 4권이나 샀나 싶었는데;;;

저예산 프로젝트를 읽고 다시 애정이 생겼다ㅋㅋㅋㅋ

 

'세계 멸망'을 주제로 쓴 게임을 쓰는 이세연, 그리고 학찰시절 이세연 추종자였다가 그녀가 만든 회사에 들어가 일하게 된 주인공. 자극적이고 중독적인 게임과는 달리 이세연의 게임은 서사가 있었다. 처음 주인공은 그녀가 만든 서사에 매료되었지만 직접 일하면서 그 서사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월급은 커녕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자금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주인공은 이세연을 떠나게 된다. 훗날 이세연은 유행 감기에 걸려 어이없게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 (돈이 없어 제대로된 영양가 있는 음식들을 먹지도 못하고 밤낮 바뀐 생활을 하고 있으니 면역력이 뚝뚝 떨어졌을 거다.) 주인공에게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한 이세연의 게임들이 집으로 날아왔다. 

 

이세연은 타자기로 칠 때 말을 더 빠르고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느릿느릿 말을 해 허술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세연은 게임 시나리오를 만들 때 철학이 있었다. 게임 유저가 주인공이 되는 시나리오를 만들고 싶어했다. 현실 세계에서는 돈, 명예, 사회적 인식, ...등을 고려해서 안전하게 선택하게 되지만, 게임만큼은 정의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 늘 엔딩이 지구멸망으로 이어지게 해놓지만 꼭 하나의 경우의 수만큼은 모두를 구하는 서사로 이어지게 해놓는다. 이세연은 이 세계에서 신이었다. 

 

사실 주인공은 이세연 덕질하느라 코딩을 시작해서 그녀랑 함께 공동대표도 맡았던 성덕 of 성덕이었다. 물론 그 안에서 이세연이 지긋지긋한 순간도 있었겠지. 결국 그 회사를 나와 이세연과 멀어지게 되었다. 마지막 결말에서 게임 캐릭터 홍운을 다시 마주친다. 

 

 

 

마치 내가 그간 어떤 선택을 했든, 
어떤 길을 걸었든,
우리가 어떤 다툼을 했든, 
모든 일들은 세월에 마모되고 윤색되었고,
가장 아름다운 추억만이 이 자리에 남아 빛나고 있다고 말하듯이.

 

게임 캐릭터 홍운은 나의 애정했던 모든 것들을 상기시켰다. 친구들, 내가 좋아했던 작가, 영화, 노래,... 

많이 좋아했고, 많이 실망하기도 했고, 그냥 서서히 멀어지기도 했던 지난날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다. 

 

저예산 프로젝트와 같이 게임을 디자인하는 청춘 남녀의 사랑과 야망을 담은 소설인 가브리엘 제빈의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이 떠올랐다.  그 소설을 읽기 전엔, 게임 디자이너들이 이렇게 서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몰랐다. 이야기는 그 무언가의 영혼인 것 같다. 

 

너럭 바위를 바라보다

 

 현실에서는 쓰레기와 공해가 넘쳐 인류의 마인드 업로딩을 통해 가상현실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이 안에서도 쓰레기 데이터는쌓였고 무한해 보였던 서버 용량도 다 차고 말았다. 주인공과 예지 씨는 가상 현실의 한 마을의 너럭 바위를 지키기 위해 운동을 한다. 하지만다른 사람들은 식탁 하나도 못 지키면서 너럭 바위를 왜 지키냐고 이해를 못한다. 

 

 인간의 물건에는 기억이 담겨있다. 가상 세계조차 쌓아 두었던 물건엔 추억과 기억이 담겨있다. 물건 뿐인가? 우리가 갔던 여행지에서 바라봤던 풍경에서도 우리의 기억과 추억이 담겨있다. <너럭 바위를 바라보다> 중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저버리고 기억만 가지고 가상세계로 가는 것이다. 기억이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도구라면, 당연히 그 동네의 상징이었던 너럭 바위도 그들을 대변할 수 있는 기억의 일부일텐데... 

 

 <미키7>이 떠오른다. 메모리가 진짜냐, 본체가 진짜냐?

 

 

껍데기뿐이라도 좋으니

 늘 바라마지않았다. 이런 풍경이 너의 결말이기를.
 같이 맛있는 식사를 하고 수다를 떨고, 따듯하고 푹신한 곳에 편히 누워 고요함 속에서 이야기가 마무리되기를. 너의 결말이 안온함 가운데 찾아오기를. 그렇게 뚝 끊긴 너의 이야기에 내가 지금 만든 이 작은 결말을 덧붙이는 것으로 위로받을 수 있기를. 그렇게 너의 새 결말을 같이하는 것으로 또한 내 이야기를 다시 마무리하기를. 내가 그랬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 내 남은 아이들도 위로받기를. 너와 나의 이야기가 이렇게 끝을 맺기를.
 비록 겉보기만 그럴듯하다 할지라도…….
"고래눈이 내리다"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1168342881


유서를 남기지 못하고 갑작스레 죽은 사람은 전자 납골당에 들어와 유서를 쓰는 동안 머물 수 있다. 그 때 먼저 죽은 사람을 불러 함께 머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그 죽은 사람의 인격은 AI로 부활해서 만날 수 있다. 주인공은 어린 날에 죽은 동생 미주를 불렀다. 

 

아직까지 운이 좋게도 내 주변의 대다수 사람들을 먼저 보내지 않았음에 감사하다.

내가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묻는다면, 내가 13살에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뵙고 싶다.

나는 외할머니가 다른 손녀들을 더 챙겨도 좋았다.

그냥 할머니의 웃을 때마다 앞니에 금니가 보였던 모습, 할머니의 쪼글거리는 손, 할머니가 옥수수 알들을 떼어 한 알씩 먹여주시던 모습..

나는 어릴 적에 할머니가 내 곁에 오래토록 머물길 바랐다. 

무슨 잘못을 해도 할머니는 항상 내 편이었다.

영원히 내 편일 것 같았던, 한없이 사랑만 주시던 할머니.

 

할머니한테 묻고 싶다. 왜 그렇게 나를 사랑해줬냐고.

너무 뻔한 질문이지만, 할머니가 뻔한 답변으로 말해준걸 듣고 싶다. 

한동안 할머니가 꿈 속에 많이 나왔는데 요새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내가 할머니를 많이 잊고 살았구나 싶네.

보고싶다 할머니! 

 

느슨하게 동일한 그대


와, 이거 진짜 내가 원하는 세상이야!

비행기 타고 외국나가는거 너무 지겨웠는데, 전송기 하나로 내가 뿅 하고 다른 나라에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 나온 예림 수녀는 전송기에 몸이 전송이 되면, 그냥 죽었다고 생각한다. 

인간A in 한국 => (전송기) 전송 => 인간A-1 in 미국

그냥 인간A와 인간A-1은 같은 얼굴, 같은 기억을 가졌어도 새로운 생명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림 수녀는 비행기타고 추락 위기에 놓이자, 전송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예림수녀는 전송기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더 이상 예림수녀가 아니라구 존재 부정타임 왔다. 

 

그렇게 예림수녀가 만난 워퍼 권현수씨. 전송 대행 단체에서 일하면서 협상,교섭, 대면업무를 해주는 일을 한다. 

수도 없이 전송을 하는 현수를 본 예름은 그가 수십번은 죽었다고 생각한다. 

하여튼 티격태격댔지만 나름 서로의 가치관도 공유하고 미운정도 들게 됐다. 

현수는 매일 똑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자신이 잘 돌아왔음을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수녀는 그가 매일 다른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줬다....ㅠ

“나는요, 내 동생들이 보기에만 살아 있으면 돼요. 내가 지금 좀비면 어때요? 나는 그 애들에게 밥을 먹여주는 대단한 좀비예요. 그럼 이 좀비는 존재해야죠. 내가 살아 있는 게 중요하냐고요? 아뇨, 하나도, 조금도 안 중요해요. 나는요, 가족이 살아 있는 게 세상 무엇보다도 중요해요. 내가 수녀님 말대로 이미 죽었으면 더 그렇지 않겠어요? 어차피 죽었는데 또 죽는 게 뭐가 무서워요? 그까짓 것 동생들이 따듯한 집에서 잘 자고 잘 먹고 편하게 학교 다니는 것만 볼 수 있다면 만 번도 더 죽을 수 있어요.”
"고래눈이 내리다"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1168342881

 

그래, 현수도 수녀를 통해 다른 존재로 계속 부활함을 인정한다. 

그러다 현수가 전송기의 오류로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수녀는 현수를 찾고 싶은 마음인건지, 수도 없이 공간을 초월하면서 전송기를 이동했다. 결국 마지막 인천공항에 돌아와 현수를 보고 수녀는 눈물을 흘린다.

 

우리는 타인을 통해 존재한다. 예림 수녀는 영혼을 믿어서 전송기로 왔다갔다 하는 것은 죽는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현수가 아무리 수만 번은 죽었다해도 예림은 끝내 인정한거나 다름없다.

그렇게 눈 앞에 존재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안도된다는 것을. 

내가 수십 번 정신적으로 죽었다 하더라도 내 몸뚱이가 존재하는 한 모두 내가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나도 나의 주변 사람들이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안심이 될 때가 있다. 

우리가 죽지 않고 살아야 할 이유는 꼭 내 의지만이 아닐 수도 있다. 

 

까마귀가 날아들다

한께 있어줄게. 함께 있으면 외롭지 않을 거야. 나랑 같이 있어서 정신 사납게 죽었단 말은 들었어도 심심하게 죽었단 말은 못 들어봤어. 그리고…… 음, 그다음에는, 에, 앞으로 잘 지내보자고, 신입. 저승사자 일도 하다 보면 재미있어. 너 같은 사람도 만날 수 있고 말이지. 내가 너처럼 인간이었을 때 이야기해줄까?
"고래눈이 내리다"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1168342881

 

이 단편.. 다음 이야기 또 내주세요ㅋㅋㅋㅋ

까마귀로 변신한 저승사자! 자신의 후임을 구하러 이승에 내려왔다.

보통 저승사자는 자살을 하려는 영혼을 후임으로 삼는데, 이 인간은 도저히 죽길 원하는 삘이 아닌거다.

알고봤더니 자기 목숨을 바치면서 시위를 나갈 결의가 있는 인간이었다.

 

아! 저승사자된 썰 듣고 싶다구여. 

 

새벽기차

 

 행성을 기차로 횡단하는 키바라는 행성의 이야기다. 지구 30일이 키바의 1년이다. 기차에 탄 사람들을 제외하고 기차 밖에서는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하지만 단 한 명의 남자가 지프차를 몰며 자기의 생을 바치고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위의 까마귀 단편은 더 알고 싶었는데 너무 빨리 끝나 아쉬웠고...

새벽기차는 흠... 여기서부터 집중을 잃기 시작했다... 하 

 

귀신숲이 내리다

 

귀신숲, 산천. 한 때 우주 요양 병원이었지만, 병원장 현아라의 자폭으로 인해 우주 어딘가에 있는 구조물은 폐구조물이 되었다. 

37년이나 사람의 발길이 닿지도 않았을 뿐더러 병원이었던 것만큼 온갖 균들이 있었다. 
자폭했던 이유는 군인들이 마음대로 미사일을 설치하고 이용했기 때문. 

 

조금은 신선했던 작품이었다.

인간만이 생각과 감정을 가질 수 있는게 아닌, 이 구조물 또한 자신의 집이자 자신인 이 공간을 폭파시키려는 이 사람들로부터 지키려고 온갖 균을 발사한다. 하여튼 인간군상이 너무 다양해서, 인간이 문제인 것 같다.

뭐가 옳고 그른지는 그 시대와 환경, 상황에 따라 정의가 될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그건 인간들의 입장인거고. 

인간 외의 모든 생명체들, 하다못해 기계까지 그들이 가지고 있어야할 가치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산천은 호버들에게 따로 음성으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지 않는 대신, 몸으로 표현한다. 

동작으로 표현한 소통은 확실히 오류가 없는 것 같다.

호버들이 냅따 알아차리고 귀신들렸다고 기겁기겁..

그리고 호버들 중 현아라의 딸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갑자기 또 나우림과 거의 합체된 수준으로 행동으로 보여준다.

 

아... 근데 이런 장르는 좀 내 취향이 아닌 것 같다.. 단편소설을 너무 힘겹게 읽음.

 

봄으로 가는 문

 문 너머는 어느 집 마당인 듯했다. 예쁘장하게 꾸민 소박한 정원이었다. 나는 그곳이 몰디브나 마이애미 같다고 생각했다. 일생 가본 적도 없는 곳이다. 그저 그 이름을 입에 담을 때 떠오르는 쨍하니 직사하는 햇살이 문 너머에 있었다. 뜰에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그런데도 그 낯선 풍광이 희한하게도 친근했다.
 
 ……사실 나는 늘 내가 사는 이 세상을 낯설게 느꼈다. 이만하면 그래도 살 만큼 살았는데도. 늘 내가 여기에 잘못 끼워진 조각 같아서, 숨만 쉬어도 쑤시고 움찔거리기만 해도 마음 어딘가가 긁히곤 했다.

(... 중략)

얘, 이제야 알겠어. 내 사는 꼴이 왜 그 모양이었는지. 왜 내가 늘 세상에 잘못 끼어든 불협화음 같았는지.

무슨 소리니, 하고 묻자 친구가 말했다. 저 너머가 내 고향이야. 내가 어릴 때 저기에서 넘어왔어. 우연히 열린 문을 따라서. 잠깐의 호기심을 못 이기고.

진정해, 그럴 리가 있니, 내가 말했다. 네겐 반려도 있었잖니. 음, 여자였지만. 음, 물론 혼인 신고는 못 했지만, 부모님도 있잖니. 음, 절연했지만. 네가 만약 저기에서 왔다면, 어떻게 네게 부모가 있고 가족이 있었겠니.

"고래눈이 내리다"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1168342881

 

진정해, 그럴 리가 있니, 네겐 반려도 있었잖니. 음, 여자였지만. 음, 물론 혼인 신고는 못 했지만, 부모님도 있잖니. 음, 절연했지만. 

ㅋㅋㅋㅋ주인공 너무 웃김. 위로와 팩폭이야...?ㅋㅋㅋㅋㅋㅋㅋ 혼인신고는 못했지만, 절연했지만..

 

근데 사실 웃긴 얘기는 아니다. 쩝스..

내가 지금 존재하는 이 세상이 사실 가상세계였다면?

내 현실은 다른 곳에 있다면?

현재 내 존재가 현실에서 불협화음처럼 잘 맞지 않는데,

저 문만 넘어서면 나는 확실하게 잃어버린 한 조각의 퍼즐처럼 잘 맞춰 끼어질 수 있다.

 

나는 주인공과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나는 이 낯선 공간 또한 내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돌아간다면 너무 모든게 착착 잘 맞아떨어져서 내 삶에 환멸을 느끼고 또 낯선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을까?

주인공의 아버지처럼... 이 공간 저 공간 왔다갔다..;;

 

안정을 추구하는 나는 상상으로도 딱히 도전하지 않는다는걸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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