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철학 독서 챌린지]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1)

반응형

출처 : YES24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당신이 오류를 범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불확실하오. 그런데 왜 전적으로 진리라고 고집하지요?

 

 철학자는 항상 진리를 찾으려고 하지만, 진리의 기준이 매우 모호한 것처럼 느껴진다. 과연 그들이 말하는 진리가 정말 '세상의 이치'가 맞는 것일까? 철학자가 특정 진리에 대해 정의를 내리려고 한다면, 그들이 어떻게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지, 평상시 그들의 관점은 어떤 쪽으로 치우쳐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철학자 또한 인간이기 때문에 '본능'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쩌면 자신이 내린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살아가는 겁쟁이라고 니체는 표현했다. 그래서 하나의 철학자의 의견만 수렴하는 것은 안되고, 시대와 환경에 따라 새로운 관점을 발명 혹은 발견하는 철학자의 이야기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6. 실제로, 어떤 철학자가 어떻게 해서 가장 부자연스러운 형이상학적인 주장을 하게 되었는지를 분명히 파악하려면, 우선 다음과 같은 물을 제기해보는 것이 좋다(그리고 그런 물음을 제기해보는 것이 현명한 처사다). 즉 그 철학은(그 철학자는) 어떤 도덕을 지향하고 있는가?
9. 철학은 항상 자신의 모습에 따라 세계를 창조한다. 철학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철학은 이러한 전제적인 충동 자체이며, 힘에 대한 가장 정신적인 의지이며, '세계를 창조하고' 자신이 제1원인이 되려는 가장 정신적인 의지다.
14. "인간이 보고 붙잡을 수 있는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는 탐구할 것도 없다"
15. 따라서 감각주의는 발견의 원리라고는 할 수 없어도 최소한 규제적인 가설이라고 할 수는 있다.

 감각에 의존하여 연구를 시작한 물리학, 감각적 증거에 저항하는 플라톤식 이론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니체는 적어도 인간이 감각적으로 느껴 탐구하고 싶은 욕망이 없다면 감각적 증거에 저항하는 이론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간혹 니체가 칸트를 비판하는 내용들이 가끔 나온다. 어떤 것도 확실하게 정의할 수 없으며, 감각적으로 판단한 주관적인 명제도 틀리다고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21.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반드시 따라오지도 않으며 어떠한 법칙도 지배하고 있지 않다. 원인, 잇달아 일어남, 상호성, 상대성, 강제, 수, 법칙, 자유, 근거, 목적 등을 만들어낸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가 이러한 기호세계를 현실 자체로서 사물들 속에 투사하고 투입한다면, 우리는 항시 그래왔듯이 또다시 신화적으로 사고하는 셈이 된다. 

 우리의 삶은 그저 흘러갈 뿐이다. 그 삶에 의미를 담고, 인과 관계를 파악하며 핑계와 구실을 만들거나 신화적인 스토리를 만드는 것은 그저 우리의 상상일 뿐인 것이다. 그렇게 사는 것이 마음에 편하니까. 누구도 나에게 자유를 빼앗지 않았지만, 그저 우리는 그 상황에 맞게 필연적으로 행동하기에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 자유와 의지는 '책임'에 따라 무게가 달라지는 것이다. 

 


제2장 자유정신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극소수의 인간에게만 가능하다. 그것은 강한 자들의 특권이다.


24. ... 우리가 처음부터 우리의 무지 상태를 존속하게 하려고 애썼던 것은 상상도 못할 자유, 무분별, 경솔함, 왕성함, 삶의 명랑함을 즐기기 위해서, 즉 삶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 최상의 학문이야말로 이렇게 단순화되고 철저하게 인위적으고 적당히 꾸며지고 적당히 왜곡된 세계에 우리를 붙잡아두려고 한다는 사실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최상의 학문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오류를 사랑한다. 왜냐하면 학문도 하나의 살아 있는 것으로서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알면 다친다. 무지한 채로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보면 삶을 즐기기에 평온하다. 괜히 이것저것 파고 들면 더 세상을 이해하기는 커녕, 파고 든 구덩이 안의 세계에 갇혀 내 행복을 바라볼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니체는 아는 것(즉, 학문) 또한 사랑한다. 학문에 정답이 없다는 걸 알지만 그렇게 항해하는 삶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이다. 

30. ... 만인을 위한 책은 항상 악취를 풍긴다. 그것에는 소인배의 냄새가 배어 있다. 대중이 먹고 마시는 곳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들이 숭배하는 곳에서조차 악취가 나곤 한다. 순수한 공기를 마시고 싶은 사람은 교회에 가서는 안 된다. 

  어떤 좋은 소리를 늘어 놓더라도,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 들으면 오히려 위험한 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받아들이기 전에 나의 환경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특정으로 예를 들기엔 인간은 너무 다양하지만, 어떤 좋은 책이라도 높은 영혼(통찰력을 갖고 긍정적인 방향 - 긍정의 방향 또한 상대적이지만 - 으로 끌 수 있는 사람)이 읽으면 모를까, 저급한 영혼이 읽으면 상황은 바뀌게 되는 것이다. 세상을 보는 가치관에 따라 나의 선택을 좋은 선택이, 혹은 나쁜 선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41. 인간은 자신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고 명령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적절한 때에 자신을 시험해보아야 한다. (...)
어떤 사람에 매여서는 안 된다. (...)
조국에 매여서는 안 된다. (...)
연민에 매여서는 안 된다. (...)
자기 자신의 해방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더 많은 것을 자기 아래로 내려다보기 위해서 항상 보다 더 높이 비상하려는 새처럼 먼 곳과 낯선 곳을 탐욕스럽게 집착해서는 안 된다. (...)
자기 자신을 거의 돌보지 않고 관용의 덕을 악덕에 가깝게 베푸는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보존할 줄 알아야만 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독립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 통과해야만 하는 가장 어려운 시험이다. 

 모든 귀한 것은 귀한 인간을 위해 존재하며, 각자 가진 귀한 것을 돌보고 무엇에 매여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것에 주의하라는 말인 것 같았다. 니체가 말하는 자유로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악'한 것에도 감사함을 느낀다. 그 '악'한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편견으로부터 해방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현재에 감사하는 이 삶 자체, 어디에도 종속되어 있지 않은 상태가 바로 '자유정신'이라고 볼 수 있다. 


제3장 종교적인 것

59. 세계를 깊이 통찰한 사람이라면 인간의 피상성에는 깊은 지혜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 피상적이고 가볍고 거짓되게 살라고 가르치는 것은 인간의 자기 보존 본능이다. 
(...) 종교적 인간도 예술가들 속에, 즉 그것도 최고의 등급을 차지하는 인간들로서의 예술가들 속에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수천 년 동안 그들로 하여금 존재에 대한 종교적 해석을 붙들고 늘어지게 만든 것은 치유할 수 없느 염세주의에 대한 깊은 의혹과 공포였다. 즉 그것은 인간이 충분히 강해지고 굳세어지고 충분히 예술가가 되기도 전에 너무 빨리 진실을 알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본능적인 공포심이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라고 전부 허위를 믿는 바보는 아니다. 종교란 보이지 않은 무언가의 뜻을 받들어 믿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믿음 안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받드는 것이다. 그 사상이 나를 평온하게 만들어 준다면, 그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니체는 예술가나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별반 다를게 없다고 생각한다. 삶을 있는 그대로, 즉 사실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왜곡해서 자신의 것으로 표출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종교로 사람들을 이용하려는 자가 나쁜 것이지, 종교를 통해 자신의 평안과 안위를 찾으려는 태도는 지혜로운 것일 수도 있다. 

62. 모든 가치를 전도하는 것 -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해야만 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강자를 좌절시키고, 위대한 희망에 어두움을 드리우고, 아름다운 것에 기쁨을 느끼는 것에 의혹의 눈길을 던지고, 독립 자존적이며 남성적이고 정복하고 지배하려고 하는 본능, 즉 가장 고귀하고 가장 훌륭한 유형의 '인간'에게 고유한 모든 본능을 불안과 양심의 가책과 자기 파괴로 왜곡하고 지상의 것에 대한 모든 사랑과 대지에 대한 지배를 향하는 모든 사랑을 대지와 지상의 것에 대한 증오로 전도하는 것. - 바로 이것을 교회는 자신의 사명을 삼았으며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교회의 가치기준에 따라 마침내 '세속으로부터 초탈'과 '관능의 근절' 그리고 '보다 높은 인간'이 하나의 감정으로 융합될 지경에 이르렀다. 

 니체는 분명 종교라는 사상에 관해서는 우호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종교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하게 반응한다. 어떤 이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어떤 이는 그에 저항하고, 어떤 이는 그 삶의 만족감을 얻고, 어떤 이는 배움을 얻는 등 다양하다. 종교라는 것을 통해 사람들은 삶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런 종교를 통해 사람들을 이용하려고 한 '사람'이 문제라는 것을 지적했던 것 같다. 

 종교라는 것은 진실여부를 떠나 누군가에게 삶의 의미가 부여됐다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 스스로 종교를 가진 것인지, 그 종교에 대해 이용당하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용하는 사람이 나쁜 것이다.

 


제4장 잠언과 간주곡

사랑에서 행해지는 일은 항상 선악의 저편에서 일어난다.


 다른 장에 비해 내용이 짧아서 그렇다기 보다, 한마디 한마디가 참 임팩트가 있다고 느껴진다. 약간 트위터 재질(?!). 일침을 놓는 듯한 한 구절 한 구절이 마음에 와닿아 할 말이 많아진다. 

67. 한 사람만을 사랑한다는 것은 야만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로 인해 그 밖의 모든 사람은 무시되기 때문이다. 신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다.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구절이었다. 한 사람만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극단적으로 표현했지만, 내 생각에 이 구절은 다양한 사람들의 가치관 자체를 존중할 줄 모르는 것에 대한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내 종교가 옳다, 내 신념이 옳다, 내 사람이 옳다, ... 등 나의 일관적인 사랑으로 인하여 대비되는 것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소유하는 사랑, 편향적으로 치우친 사랑, 몰입하는 사랑이 절절하고, 사랑의 진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니체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철학가인 에리히 프롬에 의하면 사랑이란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그 자체로 존중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70. 나름의 성격을 갖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되풀이되는 자신만의 전형적인 체험을 갖게 된다. 
76. 호전적인 인간은 평화 시에는 자신을 공격한다.
79. 자신이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영혼의 침전물을 드러내는 셈이다. 그렇게 되면 맨 밑바닥에 있던 침전물까지 떠오른다.

 누구나 마음 속에 꺼내고 싶지 않고,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다. 상대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배려하면 그 부분은 잘 드러나지 않는데, 그 사랑을 베풀 줄 모른다면 그 숨기고 싶은 마음은 그저 적나라하게 드러날 뿐이다. 그저 빤히 보일 뿐. 

82. "모든 사람에 대해서 동정을 갖는다는 것" - 이것은 그대 자신에 대한 가학과 폭압이 될 것이다. 나의 친하는 이웃들이여!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할 뿐, 동정은 금물. 가끔 F들처럼 마음 속 깊이 상대에게 감정이입하는 사람들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103. 행복에 깃들어 있는 위험. "지금 내 모든 것이 최선의 상태에 있고 이제 어떠한 운명도 사랑할 것이다. 누가 나의 운명이 되고 싶어 하는가?"

 삶에는 행복한 순간만이 있는게 아니다. 돌연 찾아오는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된다. 하지만 잃지 말아야 하는 마음이 있다. 이 순간 자체를, 그리고 나의 운명 자체를 사랑하는 수밖에. 

113. "그의 호감을 사고 싶은가? 그러면 그 앞에서 당황하는 척해보라."

 이건 거의 데일 카네기의 <인간 관계론> 아닌가?ㅋㅋㅋ 근데 진짜 맞는 말이다. 열악해보이는 상대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 나보다 못한 자를 구원해줄 수 있다는 기만한 생각. '선'을 가장한 음흉한 마음이지만, 이런 것들이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요소인 것 같다. 

143. 우리의 허영심은, 우리가 가장 잘하는 일이 우리가 가장 하기 어려운 일로 인정되기를 바란다. 많은 도덕의 기원은 여기에 있다. 
146.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싸우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만일 그대가 심연 속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도 그대 속을 들여다본다. 
151. 재능을 갖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재능에 대한 그대들의 허락도 받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은가? 나의 친구들이여?

 누구나 본인만이 갖고 있는 재능 하나쯤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재능의 쓰임은 그 사회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영화 <길복순>처럼 사람을 죽이고, 위장을 잘하는 실력이 있는 사람은 실제 사회에서는 위험한 재능이다. 하지만 그 영화 내에서 그 재능 자체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자 되는 것이다. 

 또한 그 사회에서 볼품없이 여기는 재능이라 아무도 관심이 없다면, 평생 그 재능을 보유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이 뭔지 끝내 모를 수도 있다. 

175. 인간이 궁극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욕망이지 그 욕망의 대상이 아니다.
182. 우월한 인간이 다른 사람을 허물없이 대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우월한 인간을 허물없이 대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183. "나에게 충격을 준 것은 네가 나를 속인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더 이상 믿지 않다는 사실이다."
184. 악의처럼 보이는 오만한 선의가 있다. 
185. "그는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냐고? "내가 그에게 미치지 못하니까." 일찍이 이렇게 대답한 사람이 있었던가?

 

 


 

반응형